32화 - 쌍뿔 도깨비 (3)
“음침하네.”
이번에도 역시 동굴 형태의 필드였다.
이름하여 도깨비 굴.
아시아에만 등장하는 몬스터인 도깨비는 크게 외뿔 도깨비와 쌍뿔 도깨비로 나뉘는데 전자는 힘과 체력이 월등한 전사형 몬스터이고, 후자는 환영과 분신에 능한 주술사형 몬스터였다.
단순한 전투력으로만 따지자면 쌍뿔 도깨비가 훨씬 약했지만 환영과 분신이라는 것이 상대하기 무척이나 까다로운 것이라 대부분 외뿔 도깨비가 나오는 던전을 공략하고, 쌍뿔 도깨비 던전은 기피하는 추세였다.
그렇기에 이 던전 역시 슬라임 던전과 마찬가지로 자리가 남아돌았고 즉시 예약이 가능했던 것이다.
“환영과 분신이라.”
영민은 안으로 들어서며 놈들의 능력을 다시 한 번 되뇌였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능력이지만 영민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일단 환영의 경우, 파티 사냥을 할 때 골치가 아파진다. 아군이 적으로 보이고, 적이 아군으로 보여 눈 먼 칼에 맞아죽기 딱 좋지만 애초에 혼자 들어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냥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죽이면 그만이니까. 조심해야 할 것은 돌기둥 따위를 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인데, 어차피 한파의 단검이 가진 공격력이 엄청나니, 한 번 찔러보고 아니다 싶으면 곧장 포기하면 땡이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분신이다. 혼자인 만큼 분신을 사용하는 적은 잡는다 해도 체력 소모가 크기 쉬웠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헤매다가 잡는 것이 보통이니까.
하지만 영민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나왔군.”
놈들도 양반은 못 되는지 모습을 드러냈다. 생김새가 민속신앙에 나오는 도깨비와 흡사하다.
속전속결. 놈들이 도술을 쓰기 전에 영민이 먼저 달려들었다.
“놀자, 인간!”
퍼엉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놈이 들고 있던 방망이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순간 녀석의 몸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었다.
“분신술.”
본체까지 도합 넷이나 되었다. 네 마리가 동시에 가시 같은 것이 튀어나온 몽둥이를 들고 영민에게 짓쳐들었다.
‘찍는다.’
어떤 것이 본체일까. 영민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한파의 단검을 휘둘렀다.
“꺽!”
영민의 막강한 공격력이 쌍뿔 도깨비의 심장을 찔렀다. 손 끝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 이 놈이 진짜였다.
“삼단 베기!”
퍼엉 펑 펑
본체가 당하자마자 분신들이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오, 이게 바로 도깨비 방망이?”
놈이 들고 있던 방망이 한 자루였다.
[도깨비 방망이][소모]
바닥에 힘껏 내리치면 랜덤한 아이템이 나타난다. 갖고 싶은 것을 마음속으로 강하게 생각하며 “○○ 나와라 뚝딱!”이라고 외치면 해당 아이템이 나타날 확률이 소폭 증가한다. 사용 후 도깨비 방망이는 소멸된다.
사용 시 랜덤한 아이템이 나타나는 소모형 아이템. 그러나 생각만큼 좋은 아이템이 나타나지는 않아서 ‘도박 템’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어떤 갑부가 도깨비 방망이를 100개나 구입해서 실험을 해봤는데 대부분이 쓰레기고 레어 1개, 매직 6개가 나왔다던가? 덕분에 날린 돈이 억단위라니 도박이 맞았다.
그럼에도 한 탕을 노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니 그냥 팔아도 일이백 정도는 받을 수 있겠지만 영민은 일단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다. 원래 랜덤 아이템은 몰아서 까는 맛이다.
[쌍뿔 도깨비의 힘을 흡수합니다.]
놈의 시체에 손을 얹자 드레인 능력이 다시 작동했다. 상태창을 열어보니 한 번에 힘 수치가 2만큼 상승했다. 보다 상위 개체라고 더 많은 상승을 일으킨 것이다.
영민은 만족스레 손을 털고 일어났다. 다음 사냥감을 찾아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백발백중.
찍기의 신!
누군가 영민을 봤다면 소리질 말이었다. 나타나는 쌍뿔 도깨비들이 저마다 분신을 만들어 냈지만 아무렇게나 덤벼드는 영민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정리 당했다. 분신에서 나오는 수적인 우위가 있을 뿐, 단일 전투력에서는 꽤나 차이가 나는데 그 수적인 우위가 아무런 의미로 갖지 못한 것이다.
환영을 보여줘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알고 공격하는 것이 아님에도 영민은 쌍뿔 도깨비들의 본체를 골라서 베어나갔다.
그럴 때마다 도깨비 방망이는 차곡차곡 쌓였고, 드레인 덕분에 능력치도 쑥쑥 올랐다. 그 뿐이 아니었다. 50레벨에 도달하며 생겨난 변화. 레벨이 오를 때마다 1씩 랜덤하게 오르던 능력치가 이제는 2씩 오르고, 레벨 업 당 주어지는 보너스 포인트도 1이 아니라 2였다. 더욱 가파르게 능력을 성장 시킬 수 있다는 소리. 영민은 신이 나서 동굴 안을 휘젓고 다녔다.
“행운이 대박은 대박이네··.”
도깨비 굴을 휘젓고 다니는 내내 영민은 실패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남들은 불빛을 비춰보고, 일시에 몇 발이나 되는 견제를 날려 확인한다고 하는데 자신은 쳤다하면 본체요, 베었다 하면 상태이상으로 적들이 골골댔다.
스스로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을 정도.
더구나 드랍율은 어찌나 좋은지 벌써 도깨비 방망이만 7개 째였다.
“이런 건 좀 별로지만.”
[이백년 묵은 도깨비 T 팬티][레어]
쌍뿔 도깨비가 입던 이백년 된 팬티. 조금 독특한 취향을 가졌던 것 같다. 이백년 간 빨지 않아 체취가 듬뿍 묻어있다. 같은 도깨비에게는 매혹적이겠지만 인간에게는 맡기 힘든 냄새일 수도 있다.
- 방어력 : 250
- 내구도 : 500 / 700
- 종족 특성상 [바지]로 분류된다.
- 착용자의 체형에 맞춰 크기가 변화된다
- 매혹 계열 능력에 높은 확률로 저항한다
드랍률이 높은 탓에 도깨비 팬티며 도깨비의 노래주머니 같은 이상한 것들도 나온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취할 것만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 그만이니 위안을 삼았다.
신이나서 쓸어버리다 보니 어느덧 동굴의 막바지.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차례였다.
“대왕 도깨비였지, 아마?”
도깨비 굴의 경우 외뿔 도깨비 던전이든 쌍뿔 도깨비 던전이든 보스는 동일하게 대왕 도깨비가 나타났다. 두 종류의 도깨비를 하나로 합쳐 강화 시켜놓은 듯한 녀석. 육체적 능력도 뛰어나고 이상한 주술 같은 것도 사용하니 영민으로서도 살짝 긴장이 됐다.
“속전속결!”
가장 좋은 방법은 놈이 수작을 부리기 전에 때려눕히거나 근접전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영민은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입구부터 대쉬로 달려 나갔다.
“삼단 베기!”
퍼엉!
순식간에 짓쳐들어 검을 날리는 순간, 대왕 도깨비의 형체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회피기가 발동한 것이다.
“칫.”
연기가 방 한 구석에 있는 호리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영민이 혀를 찼다.
호리병에 들어간 상태에서는 무적.
다음 공격을 준비해야 했다.
“좋은 거겠지?”
공격은 실패했지만 위안이 되는 것은 그 회피기가 놈이 딱 한 번 사용 할 수 있는 능력이란 것이다.
영민은 짧은 순간 지형을 살피고 놈의 등장 위치를 가늠했다.
금세 들썩 거리는 호리병.
퍼엉!
다시 연기가 뿜어지며 놈이 나타났다.
“나와라, 뚝딱!”
재등장과 함께 대왕 도깨비의 금빛 방망이가 땅을 찍었다. 동시에 허공에서 튀어나오는 세 마리의 쌍뿔 도깨비. 영민 같은 솔로 헌팅을 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부하 소환 능력이었다.
“파워 어택!”
일단은 쫄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던 놈 하나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심장을 꿰뚫렸다.
“늘어나라, 뚝딱!”
그러나 그 사이, 새롭게 나타난 쌍뿔 도깨비들은 또 한 번 방망이질을 했다. 분신 소환. 둘이 되었던 쌍뿔 도깨비가 순식간에 여덟으로 변해버렸다.
“파이어 볼!”
영민은 이를 악물었다. 함께 뛰어오른 두 놈을 향해 화염의 구를 쏘아냈다.
퍼엉!
처음으로 헛방이 나왔다. 낼름거리는 불꽃이 놈들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연기가 터지며 분신들이 사라져버렸다.
쿠웅
“응?!”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힘 없이 사라진 분신들을 뚫고 지나간 파이어 볼이 천장을 때리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억?”
퍼걱!!
파이어 볼이 때린 것은 거대한 종유석의 뿌리였다. 충격과 함께 뒤흔들린 거석은 그대로 떨어져내려 대왕 도깨비를 덮쳤다.
“럭키 펀치!”
그 위로 막강한 힘을 담은 영민의 일격이 내리꽂혔다.
행동 불능에 빠진 대왕 도깨비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던 쌍뿔 도깨비를 잡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레벨 던전에서도 오버 밸런스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영민의 공격력이 워낙에 압도적인 탓에, 체력이 높은 대왕 도깨비도 몇 방 버티지 못하고 혀를 쭉 내민 채 죽어버렸다.
드랍된 것은 하나의 아이템.
[도깨비 감투][유니크]
강력한 은신 능력이 있는 도깨비의 감투. 착용자의 모습과 기척을 지워준다.
- 방어력 : 30
- 내구력 : 200 / 200
- 착용 시 [은신] 스킬 획득
- 기존 은신 계열 능력 보유 시 숙련도 + 30%
- 공격 행위 시 자동 착용해제. 재적용 시간 3초
전래동화에서나 보던 도깨비 감투였다. 착용하고 있는 동안 은신 스킬을 부여하고, 기존 은신 계열 능력을 지닌 자라면 숙련도를 대폭으로 상승시켜 효과를 강화하는 아이템. 방어력이 낮고 별도의 능력이 붙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아쉽지만 애초에 ‘종이 몸’ 취급받는 도적 계열 능력자에게는 체력이나 방어력이 큰 의미가 없으니, 최고의 아이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공격 행위 시 모습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반 은신 스킬 역시 마찬가지. 근접 전투 중 3초가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재은신이 가능 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는 있었다.
“아싸, 득템!”
내심 놈이 내놓는 또 다른 아이템, [황금 도깨비 방망이]를 바라기는 했지만 이것도 훌륭했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황금 도깨비 방망이를 사용해도 어차피 랜덤이고, 잘해야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에 반해 도깨비 감투는 애초부터 유니크 등급이다.
만족스레 미소를 지은 영민은 아이템을 갈무리하고 채집을 시작했다. 도깨비의 기운이 서린 곳이라 그런지 일반 던전과는 다른 다양한 광물이며 약초에 제법 많았다. 영민은 그 모두를 하나도 남김 없이 쓸어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태블릿을 조작했다.
“오케이.”
공략 완료 사인과 함께 재예약을 건 것이다. 워낙 인기가 없는 던전인지라 대기가 없었고, 영민은 즉시 재진입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공략법을 달리했다.
핵심은 바로 도깨비 감투. 은신 능력을 대폭으로 상승시켜주는 그것을 착용하자 쌍뿔 도깨비들은 그가 지척에 다다를 때까지 인식하지 못했다.
“비열한 습격.”
덕분에 선공은 늘 영민의 몫이었다. 압도적인 공격력을 바탕으로 한 필살의 일격. 거기에 포이즈닝 스킬을 이용해 만든 순간 마비독을 바르니 설사 일격사하지 않는다 해도 저항이 불가능했다.
“삼단 베기.”
목과 가슴 허벅지를 빠르게 베는 삼단 베기는 한 번만 스쳐도 심각한 전투력 손실을 일으켰고, 분신을 일으킨다 한들 영민의 행운 앞에서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영민은 쌍뿔 도깨비의 던전을 무려 네 번이나 연달아 격파했다. 획득하는 경험치가 적은 편이기는 했지만 어렵지 않게 독식 할 수 있는 여건이니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생각 같아서는 이곳에서 더 꿀을 빨고 싶지만 아쉽게도 던전의 입장 횟수가 모두 소진되어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한 가지. 추가적인 소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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