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 MAX-31화 (31/177)

31화 - 쌍뿔 도깨비 (2)

“이걸 팔고 싶습니다.”

“가죽 갑옷 세트군요. 혹시 특별한 효과가 붙어 있나요?”

“예. 확인해보시죠.”

영민이 자신이 알고 있는 강화 가죽 갑옷 개별의 능력과 세트 효과를 적어서 넘기자 점원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언뜻 보기엔 허름해 보이는데, 이처럼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지만 그건 곧 확인해보면 될 일이다. 마켓에는 아이템을 감정 할 수 있는 감지 계열의 헌터가 상주하고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점원은 잠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른 사람을 불러왔다. 아마도 감지 계열 고유능력을 가진 헌터겠지.

그는 강화 가죽 갑옷 세트를 면밀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대답했다.

“확인했습니다. 다만··.”

“··?”

“말씀하신 세트 효과는 확인이 되지 않는 군요. 착용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영민의 허락을 맡은 그는 주섬주섬 장비를 착용했고, 다시금 능력을 발휘했다.

“말씀하신 대로네요. 확인했습니다.”

그는 영민이 이야기한 그대로의 능력임을 확인했다. 다만, 이들 역시 10이하의 데미지 무효화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코볼트에게 물려도 아무렇지 않다는 말을 해줄까 하다가 말았다. 이 장비들의 출처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뒀기 때문이다.

슬라임 던전에서 죽은 누군가가 떨군 아이템. 그것이 영민이 생각한 답변이었다. 슬라임의 공격력이 10을 넘기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슬라임의 가장 무서운 공격을 점액질의 몸으로 얼굴을 덮어 질식시키는 것이니까.

점원과 헌터는 한 쪽에서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곧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급히 처분하셔야 하는 게 아니라면 저희가 테스트를 해본 뒤 판매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경매에 올려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낮은 등급의 헌터용이긴 하지만 세트 효과의 성능만 괜찮으면 대형 길드에서도 관심을 가질만 할 것 같습니다. 만약 급한 돈이 필요하시다면 저희가 임의로 금액을 정해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세트 효과에 따른 추가 비용은 높이 쳐드리기 어렵습니다.”

“음, 좋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경매에까지 올리겠다는 말에 잠시 고민했지만 곧 수락했다. 급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어차피 지금 팔아치워서 던전에 들어가도 한 번이 고작이다. 거기서 돈이 될만한 무언가를 얻어 나오지 못한다면 결국 또 돈 걱정에 시달릴 것. 그럴 바에는 조금이라도 돈을 올려받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장비를 인계한 영민은 입고 있는 검은 개미 세트를 팔고 조금 낮은 등급의 방어구를 구입할까도 고민했지만 곧 접었다. 어차피 솔로 플레이를 계속 할 텐데, 좋은 방어구는 유사시 목숨줄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또 복권이라도 긁어봐야 하나··.”

터덜터덜 마켓을 걸어나오던 영민은 한탄 같은 푸념을 늘어놓다가 멈칫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즉석복권에 당첨된 날 추첨식 복권을 샀었지.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은근한 기대와 함께 지갑 속 로또 복권을 꺼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이게 몇 회차더라? 당첨번호를 확인했다.

“헉.”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어? 이거 설마?

마지막 번호까지 맞춰본 영민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 일등··.”

어안이 벙벙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로또 복권 1등 당첨자. 전생에 나라를 구한 딴 세상 사람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로 바뀐 순간이었다.

“이게 얼마야?”

하나, 둘, 셋, 넷··. 당첨금의 자릿수를 확인한 영민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45억! 세금으로 33%가 날아가도 근 30억이 남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평생을 놀고 먹고 몇 대까지 부를 물려 줄 수 있는 금액. 물론 10년 뒤 세상이 망해버리면 휴지조각도 되지 못하는 것이지만 당장 그 의미는 크게 다가왔다.

쓰는 거야 천천히 생각하면 되지. 영민은 일단 은행으로 달려가 당첨금부터 수령했다.

당첨금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그러다 망하는 사람 많다는 경고어린 정신교육을 받고 당첨금을 수령한 영민은 아무도 모르게 다시 은행을 빠져나왔다. 보통은 자신이 이제 부자라는 사실을 만끽하기 위해 상당한 금액을 현금으로 바꿔가기도 한다는데 재수가 없어봐서 잘 아는 영민은 굳이 그런 위험한 짓거리를 하지 않았다. 자신이 헌터이기는 하지만 돈이 궁한 사람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이다.

특히나 로또 1등 당첨자는 별도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기에 그곳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범죄를 계획하는 자들도 없지 않다고 들었다.

“투자를 할까? 장비를 바꿀까? 일단 던전 예약 비용은 좀 빼놔야지··.”

평생 만져볼거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액수가 찍힌 통장을 들고 영민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만한 밑천이면 강태성의 기억을 살펴 투자를 해봐도 괜찮았다. 나중에 비싸지는 것들을 구입해도 좋았고, 대박을 치는 주식도 몇 가지쯤은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장비를 교체하고픈 생각도 들었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도 이미 C등급에서는 최상급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영민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아이템 조합이 떠올라 있었으니까.

“아니면 이사부터 할까.”

당장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도 좋겠다. 허름한 월세 원룸에서 벗어나 내 집을 가지고 다달이 나가는 돈을 줄이면 생활이 크게 안정 될 터였다. 아마도 던전에서 얻는 것들 중 상당수를 코인 상점에 팔아치우게 될 테니 그것도 좋을 듯 했다.

“띠리리링-.”

“?”

할 수 있는 것들을 엑셀로 정리하고, 각각의 조합에 대한 장단점을 생각하고 있을 때 좀처럼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가 울렸다. 스팸 필터에도 걸러지지 않는 개인 번호.

“누구지?”

자신에게 전화를 걸 사람이 있던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권영민 씨 핸드폰 맞습니까?”

“예. 저인데··.”

“우선 축하드립니다. 큰 행운을 얻으셨다고요. 이런 좋은 일은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나눔 재단이고 좋은 일 좀 하시라고 전화 드렸습니다. 헌터시면 돈에 대한 큰 부담도··.”

“일 없습니다.”

나눔재단? 좋은 일? 니들이 언제 나 힘들 때 십원 한 장 보태줘봤냐?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는 내용에 영민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금세 또 전화가 울렸다. 다시 건 걸까? 그건 아니다.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있지만 다시 전화를 받았다.

“어이고, 동생. 좋은 일 있다고 들었는데 공돈은 원래 여기저기 써야하는 거 알지? 거 같이 좀 나눠씁시다. 나 명동 오거리파 한동수인데, 들어 봤을 거야. 헌터로 이루어진··.”

이제는 하다하다 별의별 전화까지 다 왔다. 조폭이었다가 헌터로 각성해서 길드랍시고 그 세를 넓혀나가는 인간들까지.

개중에는 B등급의 헌터까지 있는 모양이지만 영민은 쿨하게 전화를 끊었다. 겁먹을 필요도 없고,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정말로 강한 길드라면 영민이 가진 30억쯤은 얼마든지 벌어들일 능력을 갖고 있으니까.

영민은 그 후로도 몇 통이나 전화가 계속 오는 것을 확인하고 전원을 꺼버렸다. 나중에 확인하고 안 일이지만 부재중전화며 문자가 잔뜩 쌓여있는 것 중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신을 외면했던 친척들의 연락도 섞여 있었다.

그랬던 인간들이니 핏줄이라 땡기니 마니 하는 것도 없었다. 사업이 힘들어 죽겠다느니, 지금 죽으러 간다느니 하는 헛소리까지 남겨져 있지만 그래서 뭐? 그들과 자신은 남남이니 자살을 하든 사채를 끌어쓰든 알 바가 아니다.

애초에 정말로 자살을 결심할 인간이었다면 이런 연락도 하지 않겠지. 당장 달려와서 무릎 꿇고 빌어도 십원 한장 던져줄 마음이 없는데 어림 없는 소리다.

휴대전화를 꺼버린 덕분에 스마트폰을 못 쓰게 되어 귀찮아졌지만 태블릿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바로 던전에 들어가려던 영민은 잠시 숨을 고른다 생각하고 일단 집을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혼자 사시는데 이만한 집이 또 없습니다. 근처에 대형 길드가 있어 치안도 좋고, 철저한 입주민 보호 시스템으로··.”

“여기로 하죠. 언제부터 들어올 수 있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즉시 입주 가능합니다.”

어차피 혼자 살 집이니 그리 큰 평수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돈이야 충분히 있으니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전화를 받았던 그런 인간들이 함부로 찾아오지 못하도록 경비 시스템이 철저한 집을 고르느라 가격이 비싸지긴 했지만, 자잘한 일에 신경을 쓰느니 이 편이 나았다. 집 값은 7억. 애초에 30억이라는 숫자가 워낙 현실성이 없다보니 쓰는 것도 소꿉놀이 하듯 통 크게 지출했다. 던전이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안전성이 보장되는 집이라면 계속해서 값이 뛰기 마련이다. 정 돈이 급해지면 팔아버려도 일이억은 이득을 볼 수 있을 터였다.

비싼 집이라서인지 요청만 하면 청소며 포장이사 서비스까지 즉시 이용 가능했고, 영민도 굳이 시간을 끌 필요성을 못 느꼈기에 모조리 맡겨두었다.

남은 돈 중 2억은 던전 예약을 위한 예치금으로 넣고, 1억은 생활비 통장에 넣어 관리비 같은 자잘한 것들이 알아서 나가도록 했다. 남은 것은 20억. 영민은 그 중 다시 3억을 떼어 게이트 키퍼를 고용했다.

게이트 키퍼. 말 그대로 던전 게이트를 지키는 자들이다. 한 팀이 던전 내에 진입한 뒤, 다른 이들이 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이들. 간혹 던전 내에서 생기는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살인, 협박 등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는 이들이 있기에 생겨난 직종이었다. 특히 강원도 산골 같은 인적 드문 던전에 입장 할 때 안심 할 수 있어 좋았다.

게이트를 지키는 인원이 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그들을 건드렸을 때였다. 게이트 키퍼는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만큼 강력한 길드였고, ‘의뢰인’을 건드리거나 ‘업무 방해’를 하는 이들을 결코 가만두지 않았으니까. 설사 의뢰인이 죽어 돈을 받을 곳이 없어졌다 해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강력한 집단이라 자신들의 큰 피해가 예상되는 일이라도 신용을 위해 단호히 검을 빼들고, 응징의 철퇴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니 일단 던전 입구에 게이트 키퍼의 문양을 가진 이가 있으면 그 쪽을 쳐다도 안 보는 것이 상책이었다.

“다녀오면 얼추 정리가 되겠네.”

확실한 안전장치까지 한 영민은 곧장 던전을 예약했다. 이사고 뭐고 던전 한 번 들어 갔다 나오면 모두 정리가 되어 있겠지.

귀찮게 구는 놈들도 몇 개월쯤 지나면 포기하고 다른 먹잇감을 노리며 사라질 테고.

2레벨 던전에 홀로 진입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D등급 상위 능력자만 되어도 클리어 가능하다는 것을 되뇌이며 조심스레 던전으로 진입했다.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