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쌍뿔 도깨비 (1)
마지막으로 찾은 카테고리는 바로 마법.
마나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탱커 스킬로 익힌 것들이 딱히 마나가 필요하지 않은 패시브 스킬이기에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마법의 경우 공격력도 공격력이지만 여러모로 써먹을 곳이 많기도 하고.
마법 역시 종류가 많아 한참을 고민했지만 당장 가장 유용하게 사용 할 수 있는 세 가지를 골랐다.
단일 대상 공격 마법 중 가장 빠르고 파괴력이 강한 라이트닝 애로우와 폭발형 범위 마법인 파이어 볼, 빛 속성 무기 인챈트 마법인 홀리 웨폰이었다. 많은 속성 인챈트 중 빛 속성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범용적이라는 것. 다른 속성들은 상극이라든지, 쓰기 어려운 상황들이 있지만 빛 속성은 어디에서도 크게 약화되는 일이 없었다. 특히 나중에 문제가 될 악마형 몬스터들과 언데드 몬스터들에게도 극상성이라 미리 숙련도를 올려두면 상당한 도움이 될 터였다.
파이어볼이 보다 상위 스킬이었던 까닭에 쇼핑을 끝내니 무려 22,500 코인이 사라졌다. 이전의 강태성이었다면 반의 반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꽤나 큰 금액이다.
“부지런히 벌어야겠네.”
남은 코인은 고작해야 650. 자잘한 아이템을 더 구입할 수도 있지만 일단 코인 상점을 닫았다.
“이제 노가다를 할 차례군.”
방안 한 구석에 수북히 쌓인 재료들을 보니 어쩐지 어깨 근육이 벌써부터 뻐근해지는 느낌이다.
예상대로, 영민은 몇 시간이나 조합의 큐브를 꺼내 흔들어야 했다. 약초들을 조합하고, 원석 상태인 광물을 하나씩 넣어 흔들었다. 여러 개를 한 번에 넣고 흔들어도 괴의 형태로 제련이 되지만 한 개씩 넣는 이유는 강태성의 기억이 제공한 꼼수 때문이었다.
광물을 넣고 조합의 큐브만 흔들어도 ‘대장술’ 스킬 숙련도가 오르는 것이다. 1개를 넣고 흔들어도 1회로 인정이 되고, 10개를 넣고 흔들어도 1회로 인정 되니 하나씩 나누어 흔드는 편이 더 많은 스킬이 오를 수 있는 기회였다.
광물 제련의 경우 물품 제조에 비해 숙련도 상승 확률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깟 확률 따위는 영민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팔이 떨어지도록 흔들어 대는 동안 꼬박꼬박 스킬 숙련도 상승 알림음이 들려왔고, 그 덕에 힘을 낼 수 있었다.
광물 제련은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했으니까.
“에고고고.”
광물들을 제련해 ‘괴’의 형태로 만든 영민은 코인 상점에서 몇 가지 아이템을 더 구입했다. 대장장이의 망치와 간이 모루, 간이 화로였다. 남은 650코인 중 무려 450코인이 사라졌다.
대신 이제 본격적인 제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화로와 모루를 붙여서 설치하고, 모루 위에 괴를 올려둔다. 그 다음 대장장이의 망치로 세 번을 두드리면 완성!
빛과 함께 망치질을 하기 전, 선택한 제품이 나타났다. 가장 재료가 적게 들어가 많이 시도 할 수 있는 비도였다.
하지만 영민은 그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차피 낮은 숙련도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야 성능이 뻔하다. 한 쪽에 휙 던져 쌓아두고 계속해서 비도를 찍어냈다.
그리고 더 이상 재료인 괴가 없자 쌓아두었던 비도들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화로에 던져넣었다.
화륵!
비도 하나하나가 들어갈 때마다 거친 불꽃을 내뿜는 화로에서 비도 대신 괴가 튀어 나왔다. 제작에 들어간 양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지만 다시 재료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둔 비도를 모두 재료로 녹여낸 영민은 다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비도를 만들고, 재료가 부족하면 다시 녹이고. 지겹고 지치는 일이었지만 어디 안 그런 노가다가 있던가? 재료가 바닥이 날 때까지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휴, 끝났다!”
[인내의 방패를 제작했습니다.]
피날레는 마지막 재료를 긁어모아 만든 방패 제작이었다.
유일하게 코볼트에게서 얻은 장비였던 방패마저 제작템으로 바꾸는 것으로 영민은 쇼핑을, 장비 교체를, 노가다를 일단락 했다.
정비를 마친 영민은 스마트폰을 꺼내 다시 던전을 예약했다. 동일한 슬라임 던전으로.
업그레이드 된 능력을 시험해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만큼 약한 상대이기는 했지만 마법이든 뭐든 얼른 던전에 들어가 써보고 싶었다.
워낙에 인기가 없는 던전이라, 여전히 자리는 비어 있었다.
이동 거리를 생각해 시간을 예약하고 곧장 던전에 입장했다. 이번에도 팀 이름으로 예약을 했기에 의심하거나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킬들을 얻기 전에도 썰고 다니던 던전이니 이제는 아주 날아다녔다.
순식간에 슬라임들을 도륙하고 능력을 흡수했다.
그런데, 보스에게 도착하기 직전 문제가 생겼다.
[해당몬스터의 능력을 더 이상 흡수 할 수 없습니다.]
[더 높은 수준의 몬스터를 사냥해주세요.]
“아!”
당황스러웠지만 단번에 이유를 파악했다. 수준이 안 맞는 것이다. 1레벨 던전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로 상승 시킬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에 도달했다.
“상태창.”
[권영민]
레벨 : 50 고유능력 : 드레인, 게이머
타이틀 : 천운초월자 성향 : 준법적인
Hit Point : 1060 Mana Point : 1100
힘 : 121 (+21)
민첩 : 75
체력 : 103 (+15)
마력 : 105 (+20)
정신력 : 65 (+10)
인내 : 55
운 : Max
보너스 포인트 : 0
가장 마지막에 생성된 스텟인 인내가 55를 찍었다. 별도의 추가 수치로 표기되지는 않으나 무려 50이나 상승한 셈. 이로써 모든 능력치가 드레인으로만 +50이 된 것이다.
얼마 전부터 힘민체가 아닌 마력과 정신력만 오르더니, 한 스텟 당 최고 증가량이 50인 모양이다.
“드레인이 대단하긴 하네.”
레벨 당 1씩 랜덤하게 오르는 능력치와 보너스 포인트를 이용한 추가 능력치를 통해 올릴 수 있는 기본 스텟보다 1.5배의 능력을 지닌 셈이다. 스텟의 경우 일정 기점에 도달할 때마다 폭발적으로 효과가 증폭되는 점을 생각할 때, 지금의 영민은 강태성보다 1.5배 강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꼭 1레벨을 안 잡아도 된 건가?”
스텟창을 보며 상황을 파악하던 영민은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과연 1레벨 던전의 몬스터를 잡아 올릴 수 있는 능력치 구간을 보다 고위 능력치로만 채우면 어떻게 될까? 아무 상관이 없을까? 아니면 혹시 해당 레벨 몬스터를 잡아야하는 구간에서 패널티를 받을까?
알 방법은 없지만 게임을 해본 경험상 가능하면 단계별로,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이 좋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간혹 그런 게임들이 있다. 일정 레벨만 채우면 다음 단계로 승급이 가능하지만, 승급을 미루고 경험치를 꾹꾹 눌러 담아 최고 단계까지 채운 뒤 승급을 하면 후반에 가서는 큰 차이를 내는 그런 게임들이. 영민은 이 드레인이라는 능력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내를 가지고 천천히 해나가면 나중에 가서는 큰 차이를 보이는 대기만성의 힘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어차피 강력한 하나의 개체를 잡기보다는 자신에게 쉬운 수준의 몬스터 여럿을 학살하는 편이 훨씬 쉽기도 했다.
보통의 게임에서는 자신보다 살짝 강한 몬스터를 잡아야 빠른 성장이 가능했지만, 지금 영민에게 중요한 것은 눈 앞의 레벨 업이 아니라 10년 후 벌어질 끔찍한 일들을 막을 힘을 갖추는 것이다. 인류가 패퇴하는 어떠한 시점까지는 조금 느려도 괜찮았다.
‘사실 느린 것도 아니지.’
한 가지 스텟이 100을 넘는다는 것. 기억 속의 강태성은 그것을 D등급을 벗어나 C등급에 오르는 기준으로 보았다. 그런데 영민은 아이템의 도움이 있다고는 하나 이미 3개나 되는 스텟이 100을 넘겼다. 그 자체만으로도 확실한 C등급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무장한 아이템 등의 효과까지 합친다면 중급 이상의 전투력이 될 것이다.
물론 능력 테스트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겠지만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체내의 마나량으로만 등급을 판정하는 방식이 강화계와 같이 육체적 능력의 비중이 높은 이들이나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구현 계열, 연결체의 능력이 중요한 강림 계열의 전투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방식의 등급 측정기를 도입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아직 보스가 남았지만, 영민은 다음 던전을 고민했다. 어떤 던전을 가야 할까, 슬라임 던전처럼 남들에게는 까다롭지만 자신에게는 쉬운 던전이 어디가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며 걷는 동안 보스룸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배틀 슬라임이 아닌, 집채만한 크기의 킹 슬라임이었다.
영민은 그냥 베어서는 끝도 없게 생긴 녀석을 보고도 별다른 감흥 없이 손을 뻗었다. 새롭게 익힌 마법을 연달아 발현했다.
“파이어 볼, 라이트닝 애로우, 홀리 웨폰.”
파이어 볼이 폭발하며 놈의 거체를 터트렸다. 금방 복구가 되겠지만 한 순간 녀석의 몸체 중 3분의 1이 사라졌다. 그 사이를 빠르게 비집고 들어가는 전격의 화살. 약해진 핵 주위의 막을 강타하며 꿰뚫을 듯 위협했다.
“하앗!!”
핵을 파괴하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사라지는 전격의 잔류를 영민은 마냥 지켜만 보지 않았다. 빛 속성의 인챈트까지 건 한파의 단검을 앞세우고 핵을 향해 달려들었다.
푸확!
얼어붙는가 싶더니 물풍선처럼 터져버리는 킹 슬라임. 이제 1레벨 던전 쯤은 가뿐하게 처리해내는 영민이었다.
채광에도 이제 탄력이 붙어서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던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영민은 갑작스레 변화된 상황에 머리가 복잡했지만 일단 한숨 자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아··. 돈이 문제네.”
다음 날, 당분간 1레벨 던전을 돌며 능력을 키우려던 영민은 강태성의 기억과 헌터넷의 정보를 뒤지며 2레벨 던전들을 파악했다. 인기 많은 던전은 대기도 많고 보는 눈도 많으니 패스. 사람들이 꺼리는 타입 중 혼자서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곳들을 추려보니 몇 개가 나왔지만 이번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바로 통장 잔고가 없다는 것.
1레벨 던전을 예약하기 위해서는 500만원의 입장료를 지불해야하고, 2레벨 던전을 예약하기 위해서는 1천만원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는데, 진입자 수와 관계 없는 팀당 금액이긴 하지만 영민은 이것을 오롯이 혼자 부담해야 했다.
거기다 던전을 돌아 얻는 부산물들을 모조리 코인으로 바꿔버렸으니 현금화를 한 돈은 제로인 것. 그렇다보니 당장 2레벨 던전을 예약하고 지불할 입장료가 부족했다.
물론 어젯밤 슬라임 던전에서 얻어온 광물들을 처분하면 일부 현금이 들어오긴 하겠지만 1천만원을 만들기엔 턱도 없었다. 애초에 지난 2번의 1레벨 던전 입장료도 아리랑 길드에서 받은 포상금을 때려박은 것이었으니까.
“마켓에 가봐야겠군.”
결국 영민은 코볼트 던전에서 재미를 보게 해줬던 강화 가죽 세트를 들고 마켓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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