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 MAX-29화 (29/177)

29화 - 코인 상점 (2)

슬라임의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그 수는 무척이나 많았다. 꽤나 오랫동안 방치되었기 때문인지 일반적인 숫자보다도 더 많은 수가 등장한 듯 했다.

물론 영민에게는 땡큐였지만, 다른 이들이었다면 질색을 했을 법한 상황이다.

슬라임이라는 몬스터의 특성상, 제 아무리 영민이라도 드랍 아이템을 먹기는 어려웠다. 확률이 낮은 것도 있지만 애초에 그다지 특별한 아이템을 뱉는 종이 아니다. 내놔봐야 ‘녹슨’ 또는 ‘망가진’의 접두사가 붙은 쓰레기 잡템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니 예약하는 사람이 없지.’

영민도 애초에 아이템 욕심은 버리고 들어오긴 했지만 은근히 아쉬움을 표하며 계속해서 사냥을 이어갔다.

행운 Max인 영민에게도 이런 저급한 템이 나올 정도면, 정말로 거지인 거다.

“저기가 보스방인가?”

일방적인 학살에 가깝던 슬라임 사냥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이 났다. 달려가서 콕콕 두 방씩 칼침을 놔주면 정리가 되니 세 마리가 몰리든 열 마리가 몰리든 상관도 없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조심스레, 한참이 걸려 해야 할 일들을 영민은 고작 1시간도 안 되어 끝내버렸다. 그마저도 이동거리 때문에 시간을 잡아먹은 것이지, 실제 사냥 시간만 따지면 30분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주한 거대한 공동.

넓고 높은 그곳에 주저없이 발을 들인 영민은 빠르게 보스의 상태를 확인했다.

‘인간형. 나이스!’

슬라임 던전의 보스는 두 종류 중 하나였다. 점액질을 압축시킨 탄탄한 몸매의 인간형 배틀 슬라임이거나, 일반 슬라임에서 덩치만 집채만하게 키워놓은 킹 슬라임이거나.

이번의 경우 전자에 해당했다.

“푸잇, 푸잇?”

영민이 방패를 들어 올릴 때, 배틀 슬라임도 그를 인식했다. 신축성이 끝내주는 팔을 빙빙 돌리며 최초의 일격을 준비했다.

“피윳-!”

쿠웅!

만화에서 “고무고무~.”하고 외치는 캐릭터와 같은 모습. 길게 늘어난 팔이 한순간 수축되며 영민의 방패를 때렸다.

“윽.”

묵직하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강화계에 가깝도록 힘민체에 스텟을 몰아준 덕분이다.

아무리 보스 몬스터라고는 하나, 고작 1레벨 던전에 기거하는 최하급의 수준이었고 영민은 검은 개미 세트까지 풀세트로 착용한 상태. 큰 데미지를 받는 것이 이상했다.

“빨리 베기!”

이후는 간단했다. 막고, 찌른다. 더 빨리 찌른다. 이 간단한 사실에 기초한 영민의 공격은 계속해서 상태이상을 유발했고 그때마다 배틀 슬라임은 느려지거나, 굳거나, 얼어버렸다.

효과가 중첩되지는 않았지만 한파의 단검으로 받을 수 있을 거의 모든 디버프를 안은 채 약해져만 갔다. 냉기가 스미니 특유의 탄성을 이용한 공격도 부담스러워졌고 결국 5분도 되지 않아 핵이 파괴되고 말았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50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신규 기능이 오픈 됩니다.]

[코인 상점이 오픈 됩니다.]

[탈 것 기능이 오픈 됩니다.]

동시에 레벨 업 알림이 울려왔다. 그래도 보스 몬스터라는 것인지, 코볼트로는 좀체 오르지 않던 경험치가 단숨에 꽤 많이 차오른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던 알림이 들려왔다.

50레벨의 달성!

코인 상점 오픈!

탈 것 기능 오픈!

강태성의 기억 속에서 애가 타게 기다려왔던 첫 번째 도약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강태성의 말을 빌려 표현해보자면 이전까지의 고유능력 [게이머]가 ‘쓰레기’ 같은 것이었다면 ‘어딘지 쓸모가 있을 것도 같은 잡캐’ 쯤 되는 순간이다.

물론, 강태성과는 여러모로 상황이 다른 영민에게는 ‘잡캐’가 아니라 ‘만능캐’가 되는 첫 걸음이었지만.

“일단은 노가다부터.”

하지만 지금은 눈앞의 상황부터 정리가 필요했다. 달콤한 과실은 나중에 맛보기로 하고, 채집물부터 수거에 들어갔다.

영민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슬라임 던전에 진입한지 만 하루가 지난 후였다. 동굴의 형태라 광물들이 제법 많이 묻혀 있었지만 가파르게 솟아오르는 채광 숙련도 덕분에 시간을 많이 단축 시킬 수 있었다.

던전을 나오자마자 스마트폰을 조작해 완료 사실을 전한 뒤 영민은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문제 있으면 연락 하겠지 뭐.”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채광으로 얻은 광물들은 어차피 집에 쌓아둔 다른 광물들과 같이 1차 가공작업을 해야 했고 현금화는 잔고가 떨어졌을 때, 딱 필요한 만큼만 할 생각이니까.

집으로 돌아온 영민은 인벤토리를 전부 비우고 잡템과 여분의 장비류들을 다시 채워 넣었다.

그리고 외쳤다.

“코인 상점 오픈!”

[코인 상점이 열립니다. 즐거운 쇼핑 되시기 바랍니다.]

게이머 능력의 꽃, 코인 상점이 눈앞에 펼쳐졌다.

모든 종류, 모든 등급의 아이템을 사고 팔 수 있는 만물상점.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 상점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어디에도 없는, 오로지 게이머만 얻을 수 있는 ‘코인’이라는 것인데 게임에서 몬스터를 잡으면 인벤토리에 돈이 쌓이듯, 사냥을 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이 코인이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획득량에도 한계가 있고, 파티 사냥을 하게 되면 코인 획득량도 감소하게 되어 생각처럼 마음껏 쇼핑을 하게 되는 경우는 강태성의 기억 속에서도 별로 없었다.

코인 상점이 오픈되자 인벤토리에 저절로 획득 코인수가 생겨났다.

“어? 뭐가 이렇게 많지?”

그 숫자를 보고 영민이 짐짓 놀랐다. 강태성의 기억에서는 레벨 50에 처음 코인 상점을 열면 많아야 5천 코인 정도가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2만 코인이라니.”

무려 2만 코인에 가까웠다. 정확히는 18,420코인. 강태성은 어떻게든 꼽사리를 껴서 파티 사냥을 해왔지만 영민은 솔로 플레이, 독식을 통해 성장한 차이였다. 물론 그것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같은 몬스터라도 코인의 획득량은 일정 범위 내에서 랜덤하게 변동되는데 행운 Max를 찍은 영민이기에 많게는 배 이상까지 많은 양을 획득한 까닭이었다.

“대박.”

놀라웠지만,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그저 만끽하면 될 뿐이다.

“일단은 인벤토리 정리부터.”

코인 상점이 취급하는 물품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무기류, 방어구류, 악세서리류의 장비는 물론이고 소모품이며 채집물, 재료(1차 가공물), 각종 스킬북까지. 가격만 맞으면 어떤 것이든 살 수 있었다. 아니, 판매도 가능했다. 구입하는 비용에 비해 20~50%의 값을 받을 뿐이기는 하지만 그조차도 소중했다. 그 아이템들을 현실에서 판매하면 많은 돈을 얻을 수 있겠지만 코인은 현금으로 구매 할 수가 없으니까. 반대로 코인으로 아이템을 구입해서 현금을 받고 파는 것은 가능했다.

“캐시템은 없나.”

게임 능력이라 하니 문득 캐시 아이템은 없나 하는 합리적인(?) 생각을 해봤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기능은 없었다.

영민은 일단 재료 아이템만 놔두고 잡템과 여분이 장비를 몽땅 팔아치웠다. 현금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아쉽게도 그레이 울프 가죽과 조합해 만든 ‘강화 가죽 세트’는 판매가 불가했지만 검은 개미 세트의 일부 부위들이나 무기, 기타 재료가 되지 않는 부산물들은 판매가 가능했다.

그렇게 얻은 것이 4,730 코인. 인벤토리가 가득 차도록 차곡차곡 모아놓은 부산물이 꽤나 많았고 검은 개미 세트와 레어 등급인 숲지기의 단검, 나르할을 막타치고 먹은 아이템들이 선방해준 덕이었다.

총알은 넉넉하다. 이제는 쇼핑 타임!

“어디보자, 스킬이··.”

눈 돌아가게 만드는 삐까뻔쩍한 아이템들을 제치고 영민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스킬북 카테고리였다.

사실 기억 속의 강태성은 코인 상점이 열리자마자 장비부터 구입했다. 당장의 스펙업을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푼돈이나 만지는 채집꾼으로 제대로 된 헌터 장비를 구하기란 레고로 실물 사이즈 건담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니까.

강태성이 세운 회귀를 위한 계획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쓸만한 스킬 하나와 아이템을 섞었다는 정도가 다를까.

하지만 영민은 달랐다. 당장 쓸 아이템은 충분하다. 아니,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사고자 한다면 악세서리와 여분의 목숨이라는 포션류, 혹은 기적과 같은 현상을 일으키는 주문서들 정도를 살 수도 있겠지만 그는 온전히 스킬북에 올인 했다.

“이건 레벨 제한이 걸리고, 이거는··.”

가장 먼저 찾은 것은 회복 스킬. 힐러는 언제나 환영 받는 법이니까. 물론 셀프로 사용할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레이트 힐, 풀 힐, 매스 힐 등등 좋아보이는 것은 많았지만 죄다 레벨 제한이 높았다. 당장 익힐 수 있는 것은 그냥 힐 하나였다.

사는 김에 버프 스킬도 살까 했지만 레벨에 맞는 것 중 썩 쓸만한 것이 없었다. 일단 버프 3종 세트는 있으니 패스. 대신 해독 주문인 큐어 포이즌을 구입했다.

다음은 탱커 스킬이다.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은 만큼 탱커의 스킬들은 여러모로 유용했다.

구입한 것은 도발과 불굴의 정신, 갑옷 강화, 방패 강화.

불굴의 정신은 정신 계열 방어 능력과 확률을 상승 시켜 주고, 갑옷강화와 방패강화는 이름 그대로 갑옷과 방패의 방어력을 일정 비율만큼 항시 상승시켜주는 것이었다. 도발을 제외하면 모두 패시브 스킬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스킬 하나에 1,500코인 씩 벌써 9,000 코인이 날아갔다. 그러나 영민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다음으로는 이동기와 회피기를 얻었다. 이동속도를 영구히 상승시켜주는 바람의 축복과 쿨타임은 조금 긴 편이지만 위험으로부터 회피시켜주는 이스케이프를 추가로 구매했다. 순간적으로 이동속도를 높이는 전력질주 스킬도 탐이 나긴 했지만 강태성의 기억이 이것은 반복 숙달로 익히도록 권고했다.

공격 스킬의 구입은 고민이 많았다. 공격력을 제법 높여주는 패시브 스킬은 레벨이 모자랐고, 순간적인 데미지 딜링이 높은 액티브 스킬을 구입할 생각인데 종류가 꽤나 많은 것이다. 원거리 스킬을 제외하고, 너무 극단적인 스타일을 제외해도 그랬다.

강태성이 애용하던 스킬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그것이 과연 영민에게 딱 맞는다고 할 수 있을까? 활용법은 누구보다 잘 알게 될 테지만 의문이 들었다.

“그래. 이거다.”

고심 끝에 영민이 고른 세 가지 스킬은 강태성이 저레벨에 즐겨 쓰던 삼단 베기와 일정 확률로 출혈 효과를 일으키는 혈관 베기, 마지막으로 독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포이즈닝이었다.

포이즈닝의 경우 그 자체로는 공격 스킬이라 말하기 어려웠지만 포이즈닝 스킬을 사용해 날이 있는 무기에 독을 바르면 이야기가 달랐다. 일정 확률로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것. 여기에 영민이 가진 연금술 스킬을 접목하면 그저 데미지를 입히는 것 뿐 아니라 마비, 가려움 등의 상태이상을 독으로 추가 할 수 있었다.

삼단 베기를 제외하면 두 가지 모두 ‘확률’에 초점을 맞춘 선택. 하지만 영민은 그 선택이 옳은 것이라 믿었다. 아직도 믿기는 어려웠지만 분명히 상태창에서는 행운이 Max로 찍혀있다. 벌써 여러 번 효과를 보았고. 그렇다면 그것을 최대한 이용해먹어야 하지 않겠나? 평생 스스로를 낮추고 움츠리며 산 영민이지만 이제는 믿어보기로 했다. 자신을, 자신의 변화를.

여기까지 벌써 16,500 코인이나 사용했지만 영민은 한 번 더 검색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계산하기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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