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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 MAX-28화 (28/177)

28화 - 코인 상점 (1)

잠시 가만히 서서 그 기분을 만끽한 영민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D등급 헌터로서 홀로서기를 하자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팀 등록을 하고 싶습니다.”

영민이 먼저 찾은 곳은 헌터협회였다. 던전에 진입하기 위해 팀 등록을 하려는 것이다. 파티나 길드 등록에는 제한이 있지만 단순한 팀 등록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D등급 이상이라면 누구나 팀을 만들 수 있고, 가입 할 수 있었다.

“팀 등록을 하려면 본인이 와야 합니다만?”

혼자서 덜렁 신청서를 내는 영민을 보고 접수원이 의아한 눈빛을 던졌지만 영민은 당당히 카드를 내밀었다.

“일단은 단독 팀입니다.”

“알겠습니다.”

그제야 접수원도 표정을 풀고 접수를 받았다. 팀은 꾸리고 싶은데 아직 믿을만한 동료를 구하지 못한 이가 등록부터 하는 일이 없지 않은 까닭이다.

“팀 이름은?”

“노가다요.”

“······죄송하지만.”

어차피 노가다를 위해 만든 팀인 만큼 영민은 직관적인 이름을 제시했다.

“이미 있는 팀 이름입니다.”

“아.”

그러나 이미 있는 이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들 멋있는 걸로 짓는 거 아니었나? 그럼 뭘로 하지? 잠시 고민하던 영민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럭키맨."

“예예. 행운을 빌게요.”

영민의 단독 팀 이름은 결국 ‘럭키맨’으로 결정되었다.

이름을 그렇게 지으면 아이템 하나라도 더 나올 거라는 생각인지 ‘럭키가이’니 ‘로또당첨’이니 하는 이름으로 짓는 자들도 없는 게 아니라 이 또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등록 완료됐습니다.”

간단한 전산처리로 끝나는 작업이라, 영민의 팀 등록은 금방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리랑 길드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받았다. 헌터증도 갱신 받았다.

헌터넷에 접속 할 때 해당 아이디를 사용하면 ‘팀 럭키맨’의 이름으로 등록과 접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영민은 이것을 이용해 이목을 속일 생각이었다. ‘개인’이 던전을 예약하고 공략하면 세간의 주목을 받지만 ‘팀’이 던전을 예약하고 공략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니까.

사람들이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팀 이름 뿐이니 조금만 조심한다면 얼마든지 솔로플레이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게이머 능력의 특성상, 자신이 익힌 스킬들의 특성상 어설프게 파티 사냥을 하는 것보다 솔플을 하는 것이 나았다. 능력을 내보일 필요도 없고 사냥부터 채집까지, 모조리 혼자서 독식을 하려면 시간이 제법 필요했으니까.

능력이 부족하다면 모를까 이미 D등급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힘을 가졌고, 아이템은 규격 외라 할 만큼 대단했다. 다른 것 필요 없이 한파의 단검 하나만 놓고 봐도 그랬다.

“그럼 독식을 해야지.”

때문에 영민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먼저 진입할 던전부터 물색했다.

어디가 좋을까, 오현모에게서 흡수한 바람 저항력을 써먹을 수 있는 곳으로 할까? 아니면 대량 학살이 가능한 곳?

“더럽게 비싸네.”

던전 하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몬스터가 드랍하는 아이템부터, 시체에서 얻는 부산물. 지형에 따라 약초와 광물, 목재까지.

물론 그 모든 것을 뽑아먹자면 숙련도가 높은 일부 인원 또는 다수의 인원이 투입되어야 했고 그러자면 인건비가 많이 들거나 분배 금액이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그런 이유로 1레벨 던전에 불과하더라도 1회 이용에 대한 금액은 꽤나 비싼 편이었다. 던전의 종류가 확인되고, 뽑아먹을 것이 많은 던전일수록 그랬다.

더구나 영민이 안전하게 돌 수 있는 1레벨 던전의 경우 수요가 높은 편이라서 인기 있는 형태의 던전은 비용을 더 주더라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응?”

그때 영민의 눈에 들어온 이름이 있었다.

“슬라임 던전.”

상대하기 까다롭고, 아이템이 드랍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아무도 찾지 않아 매입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던전이었다.

만화나 게임에서는 흔히 초보용 레벨업 몬스터로 나오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는 슬라임은 어떤 의미에서 1레벨 던전 최강의 몬스터였다.

몸체를 이루는 핵을 파괴하면 그 순간 무너지는, 물방울 떡 같은 모습의 몬스터이지만 그 핵을 파괴하기가 쉽지가 않다. 속성 공격에는 취약하지만 어지간한 물리공격으로는 타격 자체를 줄 수 없는데 D등급 헌터의 수준으로는 제대로 된 속성 인챈트를 하기 어려웠고, 공격 마법으로만 상대를 하자니 마나가 먼저 고갈되기 쉬웠다.

그나마 일반 슬라임이면 어떻게든 저항이라도 하지, 포이즌 슬라임이나 에시드 슬라임을 만나면 지옥을 맛보게 될 지도 몰랐다. 독에 중독되어, 산성에 녹아내리며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아무런 저항을 할 수가 없으니 이승이 지옥이 되고 스스로 심장을 찔러 죽음을 원하게 될 지경이다.

그런 반면 던전을 공략해내도 건질거라고는 채집물들이 전부이니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하겠다.

“사람이 몰리는 게 이상하지.”

강태성의 기억 속에서도 슬라임 던전은 끝까지 기피대상이었다.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든지 하는 일도 없었고 그냥 던전이 터지도록 방치했다가 소총 같은 걸로는 죽이기 어려우니 화염방사기로 구워버렸다. 그러면 이동속도가 빠른 편이 아닌 슬라임들은 그 자리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리곤 했다.

“슬라임, 슬라임이라···.”

영민은 강태성의 기억을 뒤져 방법을 찾았다.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슬라임을 상대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이 흘러들어왔다.

“좋았어.”

가능성을 확인한 영민은 즉시 팀 이름으로 슬라임 던전에 대기를 걸었다. 내일 날짜로 예약을 걸고 확인을 누르자 금방 예약 완료 문자가 왔다. 문자에 적힌 계좌번호로 이체까지 하니 끝. 간단한 안내 메시지가 다시 왔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정상적으로 모든 예약 절차가 끝났음을 확인한 영민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다시 노가다의 시간이다.

이것저것 일이 바빠 지난 던전에서 얻은 수확물들을 정리하지 못한 것이다. 모처럼 인벤토리가 가득 채워 나왔는데 무엇을 얻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아이템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일단, 채집템은 이쪽으로.”

후두두두둑

인벤토리에서 채집물을 지정해 쏟아내자 한쪽 가득히 쌓였다.

“장비는 이쪽, 잡템은 이쪽. 마나석은 이쪽··.”

그 밖에도 인벤토리 가득히 쑤셔박힌 아이템들을 외형만으로 분류해냈다. 일단은 카테고리 별로.

그 중 채집템과 마나석은 한 쪽에 밀어두고 잡템부터 다시 뒤적거렸다.

“거대 개미의 더듬이 열 개에, 거대 개미의 산성독 일곱 개, 최하급 체력 포션 두 개, 최하급 마나 포션 하나. 이 정도인가?”

잡템으로 분류해놓은 것 답게 대단한 건 없었다. 애초에 드랍 아이템 자체가 별 게 없는 개미이기도 했고.

다음은 장비류. 장비류 완제품을 내놓는 것은 전투 개미 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잡아죽인 수가 꽤나 되었기에 풀세트는 가뿐히 나왔다. 다만 그 중에 붙어있는 옵션을 체크하고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갖추기 위해 분류했다.

그렇게 얻은 것이 검은 개미 세트.

모든 피스가 다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세트로 갖춰 입고 있으면 꼭 머리 가슴 배의 구분이 뚜렷한 개미 한 마리가 서있는 것 같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쨌든 2레벨 던전 급의 몬스터나 내놓은 만큼 코볼트 세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니, 보너스 던전에서 나온 탓인지 3레벨 던전에서 나오는 어지간한 놈들보다 괜찮았다. 방어력이 거진 두 배가 오르고 개미 세트의 특성상 힘과 체력이 적잖이 상승했으니까. 거기에 세트 효과까지 발동했다.

“인내 스텟 개방과 몸무게에 비례한 힘 수치 증가라··.”

약간 마른 편에 속하는 영민이기에 몸무게에 비례한 힘 증가 옵션은 애매한 감이 있었지만 인내 스텟의 개방은 대박이었다.

한 번 개방 된 스텟은 이후 장비를 해제해도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검은 개미 세트는 시장에 내놓아도 금방 팔려 나가는 인기 품목이었다.

단지 입었다 벗은 뒤 팔아버려도 이득이니까. 인내 스텟의 개방 횟수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면 무난 하군.”

고작 D등급의 헌터에게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강태성의 기억 덕택에 눈이 높아진 영민은 봐줄만 하다 정도의 말로 정리를 하곤 다시 필요한 물품들을 인벤토리에 추려 넣었다. 공식적인 첫 솔플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여기 사인하시고 언제든 들어가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은··?”

“곧 올 겁니다.”

다음날, 푹 자고 컨디션을 끌어올린 영민은 아침 댓바람부터 던전을 찾았다. 그가 예약을 하고 구입한 것은 ‘던전 1회 입장권’이지만 일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른 오전 또는 새벽에 입장해서 마지막 날 자정 직전에 나오는 것이 이득이었다.

“나오면 바로 신고해주셔야 하는 거 알죠? 신고 안하거나 무단으로 재진입하면 패널티 먹고, 3일이 지나도 안 나오시면 실종처리 됩니다. 일정 넘겨서 나와도 패널티 먹고요. 그럼 행운을 빕니다.”

헌터 협회에서 나온 직원은 살짝 귀찮은 듯 영민만을 확인하고 돌아가버렸다. 어차피 팀원이 함께 들어가든 따로 들어가든 그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민은 별다른 제지 없이 홀로 던전 안으로 진입 할 수 있었다.

“캠핑.”

필드 타입은 동굴이었다. 1레벨 던전 중 가장 많은 형태인 만큼 새삼스럽지도 않다.

인벤토리에서 나뭇가지를 꺼내 불을 만든 영민은 습관적으로 베이스 캠프를 꾸리고 횃불을 만들었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개. 그 중 하나를 들고 나머지는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냉동 된 것처럼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퍽 재미있다.

“쯔잇, 쯔잇.”

새로 습득한 3종의 버프를 걸고 거침없이 안으로 진입하자 슬라임 한 마리가 꾸물대며 기어온다. 천천히 걷는 정도의 느린 속도. 우습게 보이지만 놈들에게 먹히는 공격 방법이 없다면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의 발걸음처럼 무섭게만 느껴질 터였다.

그럼 어떤 방법을 써볼까.

일단은 가장 간단한 방법을 취했다. 검을 들어, 벤다.

“쯧!!”

한파의 단검이 닿는 순간 슬라임의 몸체가 파르르 떨린다. 푸딩처럼 출렁거리던 육체가 바짝 경직되며 얼어붙었다.

한파의 단검이 지닌 특수능력이 발동 된 것. 빙결은 아니지만 동상이나 한파의 저주에만 걸려도, 아니 둔화 효과에 깃든 시린 기운에도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리니 특유의 유연성에서 발휘되는 ‘물리효과 저항’이 무용지물이었다.

“좋았어!”

스걱

영민의 검이 살얼음 낀 것처럼 어설프게 단단해진 슬라임의 핵을 정확하게 찔렀다. 그러자 유지력을 잃고 몸이 바닥으로 녹아내렸다.

단 이격으로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슬라임을 해치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준비한 다른 것들이 의미가 없지. 득의의 미소를 띄우며 해파리처럼 변한 슬라임의 시체에 손을 얹었다.

[슬라임의 인내를 흡수합니다.]

새롭게 개방된 인내 스텟이 상승했다. 원래대로라면 레벨을 올리거나, 보너스 스텟을 사용하거나, ‘미친 짓’이라 불릴 만한 인내의 행동들을 해야만 올릴 수 있는 그것의 수치가 아주 수월하게 한 단계 상승했다.

“일단 쓸어보실까?”

영민은 만족해하며 슬라임 던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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