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새출발 (1)
“그거 한 번 막았다고 기고만장 하기는··!”
그러나 윈드 엘리멘탈에 대해 알 리가 없는 오현모는 다시금 힘을 일으켰다. 영민이 가진 방패에 어떤 특별한 힘이 담겨져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다시 해봐.”
영민 역시 배짱을 부렸다. 그의 최강 공격 쯤 된다면 모를까, 어설프게 일으킨 힘 정도로는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건방진 놈! 윈드 애로우!”
순식간에 만들어진 바람의 화살이 연달아 쏘아졌다. 조금 전처럼 회전하는 쐐기 화살보다는 약하지만, 충분히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다.
푸쉬쉭-
까짓거, 영민은 몸으로 때웠다. 기세등등하던 바람의 화살은 영민의 몸에 닿는 순간 허깨비처럼 꺼져버렸다.
“윈드 슬러시!”
오현모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영민에게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윈드 애로우는 견제용으로만 여겼을 뿐, 진짜배기를 따로 준비한 것이다.
압축된 바람의 칼날이 맹렬히 덮쳐왔다.
“하앗!”
그것을 영민이 정면으로 받았다. 파워 어택까지 활용해 힘으로 찍어 눌렀다.
본래라면 오히려 영민이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검이 닿는 순간 강렬하던 바람의 힘은 소멸되고 그나마 있던 약간의 물리력마저 간단히 해소되었다.
거칠 것이 없어진 상황.
그러나 오현모 또한 D등급 상위의, 아니 C등급의 루키였다.
“빌어먹을 새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빠르게 물러선 것이다. 윈드 워크까지 걸어 영민이 따르기 어려운 속도였다.
“칫.”
영민은 이를 악 물고 뒤를 쫓았다. 이미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거리를 준다면 상황이 더 나빠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람술사인 그가 바람 속성이 통하지 않게 되었으니 낙승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강태성의 기억을 이어받은 영민은 만약의 만약까지 생각하며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도주를 하면서도 몇 번이나 공격을 시도한 오현모는 자신의 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만 거듭 확인하며 절망의 비명을 질렀다.
고작 채집꾼에게, 자신의 발 밑에 있던 놈에게 이런 치욕을 당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 네 놈이 자초한 일이다. 뒈져버려!!”
마지막으로, 숨겨두었던 비장의 한 수를 꺼내들었다.
화악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던지는가 싶더니 바람의 힘으로 난도질을 했다. 그러자 주머니 안에 들었던 어떤 분말 같은 것들이 공기 중에 퍼져 영민을 덮쳐갔다.
‘독!’
그 모습에 영민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강태성의 경험이 분말의 정체를 경고한 것이다.
보통 바람술사와 어울리는 조합이 ‘불’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독’이다. 분말 형태이든 액체 형태이든, 혹은 제 3의 형태이든. 속도와 위치, 범위를 마음대로 조종 할 수 있으니 독의 위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늦었다.’
그것을 확인한 영민은 분말이 닿기 전 재빠르게 대응했다. 어차피 피할 수는 없다. 속도를 늦추기도 어렵고, 방향을 튼다 한 들 바람술사인 오현모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영민은 피하는 대신 돌파를 선택했다. 인벤토리에서 미리 제작해둔 씹는 해독제를 꺼내 입안에 넣고, 숨을 참으며 분말 속으로 뛰어들었다.
[거대 여왕 개미의 은빛 날개의 효과로 상태 이상 '중독'에 저항합니다.]
“!!”
숨을 참아 봐도 미세하게 흘러들어오는 독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씹는 해독제를 준비한 것인데 전혀 생각지 못한,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바로 거대 여왕 개미의 은빛 날개가 가진 부가 효과 중 하나인 ‘모든 상태 이상에 5% 확률로 저항’이 발동한 것이다.
끝장을 보겠다는 것인지 오현모가 계속해서 바람을 움직여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는 매번 저항 성공. 5%는 낮은 확률이었지만 Max를 찍은 영민의 행운이 5%를 50%, 100%처럼 만들어 버렸다.
“후우! 스로잉!!”
상황을 파악한 영민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위축된 몸을 바로 펴고 두 눈을 크게 떠 적을 응시했다.
거리를 좁히는 대신, 야구를 하듯 쥐고 있던 한파의 단검을 집어던졌다.
“무슨!”
그의 돌발 행동에 승리를 자신하던 오현모가 당황한 듯 허둥거렸다. 급히 몸을 틀고, 바람을 움직여 막아보지만 아슬아슬하게 허벅지에 날을 스치고 말았다.
쩌저적!
“끄악!!!”
그 순간 놈의 다리가 얼어 붙었다. 둔화도, 동상도 아닌 빙결 효과가 나타나며 놈의 오른 다리를 통째로 얼려버린 것이다.
“흐앗!”
그 사이 거리를 좁힌 영민의 몸이 녀석을 덮쳐갔다. 허우적거리는 놈을 향해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럭키 펀치!"
"씨발! 꺼져!!"
오현모도 필사적이었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공포감을 이기기 위해 전력을 다해 힘을 발휘했다.
거친 바람이 영민을 밀쳐냈다.
후웅
순간적으로 자세가 흐트러지며 영민의 주먹이 생각지 못한 곳에 꽂혔다.
펑?!
“컥! 끄읍!!!”
“····?”
빗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놈의 하체에서 피가 튀었다. 덜렁거리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그곳으로부터 피분수가 뿜어졌다.
"고, 고의는 아니었다."
죽기 살기로 싸우던 순간이건만, 영민은 저도 모르게 같은 남자로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고 사과했다.
"큽?! 커허헙!!"
어떻게 해야할까.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을 보며 영민이 움찔하는 동안 오현모는 또 다른 고통에 가슴을 틀어쥐었다.
얼굴 전체에 핏줄이 솟아오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한 손으로는 아래쪽을, 다른 한 손으로는 온 몸을 더듬으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
영민은 그제야 몸을 털고 뒤로 물러났다.
“제 꾀에 제가 당한 셈인가?”
독이었다. 영민에게 묻히기 위해 애를 썼던 독이 자신에게 옮겨오면서 끔찍한 고통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고위의 독을 사용하려면 독에 대한 이해와 독을 다루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법이니 별 것 아닐 거라 생각 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바람 조종 능력을 믿고 꽤나 강한 독을 품고 다닌 모양이었다.
“자업자득이지 뭐.”
영민은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굳이 다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마지막 일격을 가할 생각도 없었고, 독을 사용하는 자들이 만약을 위해 항상 품에 해독제를 품고 다닌다는 것은 알지만 살리려고 애를 쓸 생각도 없었다.
[정당방위가 인정됩니다. 카오틱 수치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
조금 더 기다리자 그의 죽음을 알리는 알림이 나타났다. 그래, 사람을 죽여도 제법 대량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지. 사실 그보다 좋은 것은 인간이 몬스터와 달리 부산물 대신 완제품의 장비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몬스터는 껍질을 벗기고, 뼈를 잘라 재료를 마련한 뒤 장인에게 맡겨 가공을 해야 했지만 인간은 죽이면 그 자가 가지고 있던 장비들이 온전히 남으니까. 훨씬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얻은 물건들은 장물이고, 특수한 표시라도 되어 있는 것을 잘못 사용하다가는 살인자로 쫓기게 될 테지만 말이다.
“채집꾼 하러 온 주제에 별 걸 다 챙겼네.”
오현모의 죽음을 확인한 영민은 독연이 어느 정도 가신 것을 확인하자 다가가 그의 품을 뒤졌다.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몽땅 털고 입고 있던 옷까지 홀랑 벗겼다. 나름 길드에서 손꼽히는 루키로 주목받던 녀석답게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도 하나 같이 D등급 중에서는 최상급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영민의 인벤토리로 옮겨갔다.
사람이 죽었다는 두려움이나 방치한 것에 대한 고민과 공포 따위는 없었다. 패시브 스킬인 게이머의 정신이 보호하는 것인지 강태성의 기억을 흡수했기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첫 살인, 아니 강태성에 이은 두 번째 살인인 것치고는 꽤나 담담했다.
애초에 그가 다짜고짜 자신을 죽이려 했으니 죄책감이 덜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 모든 것을 챙긴 영민은 다시 곡괭이를 꺼내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직 탐색하지 못한 개미굴을 돌며 마저 채광을 이어갔다.
인벤토리가 가득찬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귀환석을 사용한 것은 오현모의 습격이 있은지 반나절 가량이 지난 후였다.
우우웅-
번쩍!
빛과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낸 영민을 맞이한 것은 하얀 빛에 휩싸인 솥뚜껑만한 주먹이었다.
“이 개자식··!”
“헉!”
“?!”
멈칫
영민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듯 짓쳐오던 주먹이 1cm를 남겨두고 우뚝 멈춰섰다.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던 지한이 뒤늦게 영민을 확인하고 주먹을 멈춘 것. 까딱했으면 머리가 날아갈 뻔한 영민의 등줄기로 식은 땀이 주륵 흘렀다.
“영민 동생!!”
“어떻게 당신이··. 오현모는 어디 있지?”
와락 껴안으려 덤벼드는 지한의 뒷편에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는 다름 아닌 정찬혁이었다. 길잡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오현모와 함께 이중 던전에 진입했다가 배신을 당해 목이 달아났던 사내. 정확히는 오현모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그가 가진 ‘길잡이’ 능력의 진화 버전인 ‘길잡이 소환’ 능력이었다. 전투 능력이 없다시피한 그가 자신을 보호하면서 길잡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술. 마나로 이루어진 분신체를 만들고 길잡이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때문에 소환체와 시야를 공유하며 오현모의 배신을 확인한 그가 진지한에게 보고를 한 것이고, 진지한이 이중 던전 클리어 현상이 일어나자마자 영민을 오현모로 오해하고 때려죽이려 한 것이다.
그 사이에서 곤란한 표정을 짓던 영민은 착용하고 있던 브로치를 끌러 그들의 앞에 보였다.
본래를 이것을 내놓으려던 것이 아니지만, 이 모든 일에 대한 해명을 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요했다.
보랏빛의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에픽 등급의 아이템, 윈드 엘리멘탈.
“헉!”
“이게··. 보물상자에서 나온 겁니까?”
“예. 그리고 오현모의 습격도 막아줬죠.”
감지 계열의 능력이 없어 영민에게 효과를 전해들은 두 사람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전에 벌인 일은 통해 대충 D등급 강화계 수준의 전투 능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던 영민이다. 거기에 지한의 버프를 잔뜩 받았으니 안에서도 어떻게든 사냥이 가능했을 것. 거기에 운과 우연이 겹쳐서 어떻게든 보물상자를 열었고, 이 어마어마한 아이템을 얻었으리라는 것이다. 이후 오현모가 기습을 해왔지만 하필이면 상극인 아이템의 효과 때문에 역으로 당했을 것이고.
에픽 등급이라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아이템의 등장은 다소 어설프게 여겨질 수 있는 알리바이조차 완벽하게 만들어줬다.
정찬혁이 안에서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를 보지 못하고 죽은 것 또한 큰 역할을 했다. 만약 이 아이템을 얻었는데 바람 속성을 지닌 몬스터들의 소굴이다? 그럼 상황이 끝나는 거다. 영민은 안에서 치트키를 쓴 것처럼 무쌍 놀이를 하며 꿀 빨다 온 것이 된다.
“아, 그리고 등급도 오른 것 같아요.”
“역시! 축하해. 동생!!”
“축하드립니다.”
그 기회를 이용해 영민이 슬쩍 등급 상승에 대해 운을 띄웠다. 영민의 경우 상황이 좀 달랐지만, 다른 헌터들의 경우 마나가 충만하게 퍼져 있는 이중 던전에서 보유 마나량이 크게 느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또한 테스트를 다시 받지 않더라도 체감을 통해 새로운 경지에 들었음을 알아차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의심을 받지 않고 능력 상승을 납득 시킬 수 있겠지.
지한이 호들갑을 떨며 영민의 상태를 살피고, 안에서의 일들을 묻는 동안 정찬혁은 그를 대신해 복귀를 준비했다. 모든 이들을 불러 모으고 채비를 마친 뒤 귀환석을 사용했다.
설사 미진한 부분이 있어도 상관 없다. 에픽 등급 아이템의 등장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현실로 돌아오자 정찬혁은 영민에게는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니 따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진지한을 억지로 이끌었다. 보고서도 제출해야 했지만 그것보다 먼저, 길드장을 만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진지한은 단호히 그것을 거부했다. 길드장에게 보고를 하든, 불러오든 그에게 알아서하도록 일임하고 영민과 회포를 풀기 위해 인근 호프 집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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