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 MAX-25화 (25/177)

25화 - 이중 던전 (6) [1권 끝]

줄 때 주더라도 지금부터 신주단지 모시듯 할 필요는 없다. 영민은 일단은 두 가지 장비 모두 착용했다.

적어도 4배 이상은 올랐을 공격력을 얼른 확인해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지만 일단 할 일은 해야지.

“곡괭이 착용.”

영민이 집어든 것은 한파의 단검이 아닌 곡괭이였다. 일반 스킬 ‘채광’을 사용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아이템.

이 개미굴에 들어온 순간부터 ‘광맥 탐지’ 스킬이 애가 타게 영민을 부르고 있던 것이다.

다른 것들은 천천히 채광하려고 내버려두고 있었지만 한 번 나가면 다시 들어 올 수 없는 거대 여왕 개미의 방이니 포기 할 수 없었다.

까앙!

[채광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영민의 노가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     *     *     *     *

영민이 이중 던전 안으로 들어간지 만 하루가 지났다. 바깥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를 처리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던전이기 때문인지 던전을 총괄하는 진지한의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으음‥.”

“지한님.”

그런 그에게 한 사내가 다가왔다. 지한의 보조이자 오현모의 감시역으로 따라 들어온 베테랑 채집꾼 정찬혁이었다.

지한과 더불어 이중 던전의 존재와 현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잠시 지한의 얼굴을 살핀 그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었다.

“벌써 일곱 시간이 지났습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직. 아직입니다. 3레벨 던전에 생긴 이중 던전이라면 2레벨 던전 이하라는 소리. 영민 동생이 그렇게 쉽게 당했을 리 없어요.”

“‥‥알겠습니다. 다만.”

지한과 영민의 관계를 알기에 조심스러웠지만, 그는 아리랑 길드의 인물. 사적인 감정보다는 객관적인 판단을 도울 의무가 있었다.

“내일 이 시간에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예정대로 오현모를 투입시키겠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 정도까지 시간이 흐른다면 영민의 구출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았다. 설마하니 이중 던전에서 채집까지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때문에 지한은 그 사실을 인정했고, 영민을 기다렸지만 다음 날에도 영민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결국, 진지한은 이중 던전의 입구에 오현모와 함께 섰다.

하필이면 오현모를 택한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위의 지시이니 이제는 그도 어쩔 수가 없다. 오현모 대신 영민을 투입한 것도 조금은 무리수였던 셈. 성공한다면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의 무리이긴 했지만.

“네가 할 일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예.”

불꽃을 뒤집어 쓴 바람에 이제는 머리털이 얼마 남지 않은 오현모가 눈알을 굴리며 대답했다.

진입하는 인원이 많을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는 이중 던전의 특성상 투입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만일을 위해 조금 전 대략의 설명은 끝내둔 터였다.

이중 던전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이미 전달했고 영민의 신변 확보를 최우선으로, 그 다음 이중 던전 클리어를 목표로 거듭 강조해 일러두었다.

그러나 어째 못미더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함께 가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찬혁이 그와 함께라는 것이다. 고유 능력 ‘길잡이’를 가지고 있는 그는, 특정한 대상을 떠올리고 갈망하며 능력을 발휘할 경우 대상이 있는 장소로 갈 수 있는 최단 루트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그 능력을 활용한다면 영민도, 던전의 보물상자로 수월히 찾을 수 있겠지.

마나소모가 꽤 크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길잡이 능력 자체는 무척 훌륭한 것이었다.

“찬혁씨, 그럼 부탁합니다.”

진지한의 부탁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이중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저쪽이다.”

‘원하는 것’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길잡이 능력은 희귀하진 않지만 꽤나 대우 받는 것이었다. 특히나 그처럼 숙련도가 높은 이들은 채집꾼에 불과해도 어지간한 C등급 헌터 이상의 대우를 받기도 했다.

오현모가 징계 중이 아니더라도 정찬혁이 더 윗줄이라는 소리. 당연히 주도권은 그에게 있었다.

“모래?”

그것이 불만인지 입을 삐죽거리긴 했지만 곧 그가 가리킨 곳을 보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해? 따라와.”

반면 정찬혁은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믿었고, 경험을 믿었다. 모래더미 속으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푸하!”

그들이 다시 눈을 뜬 곳은 영민과 마찬가지로 개미굴의 어딘가였다. 똑같이 모래 속으로 빠졌지만 들어온 입구는 다른 모양. 상황을 파악한 정찬혁은 모래를 토해내며 버둥거리는 오현모를 일으켜 앞세웠다.

“2레벨 수준 이하의 던전이다, 이거지요?”

미지의 상대에 불안했는지 오현모가 재차 물었다.

“그래. 차근차근 정리해간다면 어렵지는 않을 거다.”

문제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아리랑 길드에서 선발한 만큼, 그 실력 만큼은 D등급 중에서도 톱이니까.

게다가 그는 능력의 컨트롤이 퍽이나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보물상자가 있고요?”

“그래. 그러니까‥.”

서걱

그 순간, 정찬혁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자신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 그 해답은 오현모가 직접 들려주었다.

“길로틴. 너처럼 주제를 모르고 설치는 놈들을 위해 개발한 기술이지. 어디 채집꾼 주제에 나대? 나대기를.”

오현모가 바람의 힘을 압축시켜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작두를 만들어낸 것이다.

“채집꾼 따위가 던전에 들어왔으면 뒤질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래? 크큭.”

비열한 웃음을 지어보인 그는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당당히 안으로 진입했다.

바람술사인 그에게 개미굴은 나쁘지 않은 전장이었다. 거대 개미들의 외피가 단단하기는 했지만 이미 C등급에 육박하는 마나를 지닌 그였기에 부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다만 놈들이 죽으며 내뿜는 체액의 효과를 몰라 초반에 조금 고생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도 눈치가 있는지라 알고 난 뒤에는 냄새가 퍼지지 않도록 바람을 조종해 막음으로서 개미들이 몰려드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이후는 간단했다. 치고, 빠지고. 일개미며 전투 개미들을 그야말로 박살내며 순조롭게 안으로 진입했다.

“드디어!”

심지어는 거대 전투 개미를 사냥하고, 마나가 풍부한 이중 던전 안을 활보하면서 보유한 마나량마저 적지 않게 증가했다.

절대량으로 보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을 만큼 큰 변화를 겪었다. ‘격’이 달라짐을 느낀 것이다.

단순히 마나량 1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 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능히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D등급의 끝자락에 있던 오현모의 마나가 C등급에 올라섰다.

“크크크. 기다려라. 빌어먹을 놈들.”

힘에 취한 오현모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     *     *     *     *

거대 여왕 개미의 방에 매장된 대량의 광물들을 채집한 영민은 밖으로 나간 뒤 곧장 바로 옆의 방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일개미의 방. 여왕 개미와 병정 개미를 잡으며 올라간 레벨에 드레인으로 흡수한 능력까지 더하니 일개미쯤은 그야 말로 학살을 할 수 있었다.

아니, 또 한 가지가 더해졌다.

[스트라이킹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프로텍트 아머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스피드 업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지한이 그에게 걸어주었던 버프 중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것이다. 아무리 마나를 느낄 수 있다 해도 다른 이의 능력을 카피한다는 것은, 마나의 경로를 흉내낸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영민은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해냈다.

이 기초적인 버프는 강태성이 게이머의 능력을 개화하며 익혔던 스킬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머리뿐 아니라 몸에까지 각인된 기억은 그 어려운 것을 꽤나 수월하게 만들었다.

지한이 걸어준 것보다는 약하지만 거대 일개미를 상대로는 차고 넘쳤다.

그 다음은 거대 전투 개미의 쉼터. 차례로 세 곳을 돌며 채광과 약초 채집을 마치고 나자 꼬박 하루가 걸렸다.

“끄응. 또냐.”

마지막 한 마리, 마지막 광물 하나까지 채취하고 방을 나서자 저 멀리서부터 개미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물로 씻어내기는 했지만 그들만 느낄 수 있는 채액의 강렬한 향을 지우지는 못한 것이다.

결국 영민은 다시금 개미 학살을 시작해야 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상대하기 쉬워졌다고는 하나 쉬지 않고 적을 베어넘기는 것은 상당한 피로를 가져왔다. 강화계가 아니고서는 마나가 부족해서, 체력이 부족해서 쓰러지고 말았을 것. 하지만 영민에게는 강력한 아이템과 레벨업이 있었다.

때때마다 모든 피로와 소모된 체력, 마나를 보충해주는 신의 은총과도 같은 빛이 번쩍이니 일방적인 학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중간에 어쩐지 개미들이 조금 강해진 느낌도 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는 터라, 기분 탓으로 치부했다.

쐐애액-

퍼억!

“?!”

놈들을 좁은 길로 유인해 사냥을 계속해가던 영민의 눈앞에 있던 거대 전투 개미의 머리통이 박살났다. 그는 전혀 손을 쓰지 않았는데도.

“흥. 운이 좋군. 아니, 운이 나쁜 건가? 한 방에 깔끔하게 죽을 기회를 잃었으니. 크크.”

저 멀리, 거대 개미들의 뒤편에서 등장한 의외의 인물에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현모?”

“이 빌어먹을 새끼가 어디 감히 이 몸의 존함을 막 부르고 있어?”

쐐액-

“윽!”

심기가 불편해진 오현모가 또 한 번 바람을 일으켰다. 소리만 들어도 두려운 파공음에 움찔 몸을 숙이자 뒤쪽의 벽이 또 다시 터져 나갔다.

“어쭈, 또 피해?”

“너 이 새끼‥.”

이제 영민도 확실히 오현모를 적으로 인식 했다.

그러나 그에게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그가 아니더라도 거대 개미들이 눈앞까지 짓쳐들고 있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라.”

뒤통수 치는 새끼들에게는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강태성의 기억이 더해지며 분노가 극도로 치솟았다.

“빨리 베기!”

일단 눈앞의 거대 개미들부터 처치해갔다. 아까부터 한참을 사냥한 터라 이제는 그 수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몸을 낮추고, 거대 개미들을 방패 삼으니 오현모도 쉽게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길로틴!”

서걱!

간혹 수직으로 떨어지는 공격을 해오기도 했지만 영민은 재빠르게 몸을 날려 거대 개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오현모의 길로틴은 사람의 몸을 동강내버릴 만큼 강력했지만, 그만큼 준비시간이 길었으니까. 조금만 집중하고 있으면 피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오현모에 대한 적의는 불타올랐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하는 군. 그래봤자 이 좁은 통로에서 네가 피할 곳은 없다.”

결국 거대 개미를 모조리 잡아 죽였다. 이제는 단 둘만 남은 상황. 그러나 오현모는 오히려 거대 개미 때문에 자신이 제대로 조준하지 못한 것이라 여긴 모양이다.

“C등급에 오른 기념으로 고통 없이 죽여주려 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나를 이런 치욕으로 몰아넣은 죄값을 받게 해주마!”

동시에 그의 주위로 바람의 소용돌이 세 개가 일어났다. 강력한 회전력을 머금은, 쐐기 화살 같은 압축된 바람의 힘이다.

“대쉬!”

그것을 보자 영민이 즉각 대응했다. 오히려 그를 향해 돌진하며 틈을 노렸다. 그와 같은 마법 계열에게는 시간을 주고 거리를 줄수록 불리해지니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은 거리를 좁히려는 것이다.

“같잖은 짓을!”

세 개의 쐐기 바람이 영민을 향해 날았다.

“점프!”

그 순간 영민도 재빨리 대응했다. 일반 스킬의 힘을 빌어 한 번 더 도약한 것이다. 갑작스런 도약에 두 개가 빗나가고, 하나의 쐐기 바람이 그를 쫓았다.

“큭!”

영민은 그 마저도 방패를 들어 막아냈다. 몸이 공중에 뜬 상태라 어쩔 수 없이 힘에 밀려 벽에 부딪히고 말았지만, 유효타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정확하게 방어에 성공했다.

“응?”

그리고, 이상함을 느꼈다.

“맞다. 너, 바람이었지?”

그저 밀려나서 벽에 부딪힌 작은 충격 이외에 별다른 데미지가 없는 것이다.

그제야 윈드 엘리멘탈의 효과를 떠올린 영민은 오현모를 향해 포식자의 미소를 지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