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이중 던전 (4)
[스트라이킹의 기운이 몸 안에 깃듭니다. 습득 조건(2/3)을 만족했습니다.]
[프로텍트 아머의 기운이 몸 안에 깃듭니다. 습득 조건(2/3)을 만족했습니다.]
[그레이트 실드의 기운이 몸 안에 깃듭니다. 당신의 능력을 초과하여 습득할 수 없습니다.]
위험하면 때려치우고 바로 도망쳐 나오라는 지한의 당부를 몇 번이나 듣고 나서야 영민은 그의 버프를 받을 수 있었다.
지한은 심지어 자신의 장비를 벗어주려고까지 했지만 ‘착용 조건’이 B등급 이상인 고급품들이라 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착용조건이 걸린 아이템의 경우, 조건에 맞지 않는 자가 착용할시 효율이 크게 하락해버리는 까닭이다.
맞지도 않는 옷을 입을 바에야 영민이 감춰둔 아이템을 착용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다녀올게요.”
“그래. 위험하다 싶으면 뒤도 보지 말고 도망치고. 알았지?”
몇 번이나 거듭해서 주의사항을 전달했음에도 지한은 걱정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촉’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물가에 어린 아이 내놓은 마냥 불안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반면 영민은 거침없이 안으로 진입했다. 일반적인 던전에 입장할 때와 비슷한 느낌. 푸른 막과 같은 게이트를 통과하자 전혀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흡.”
습하게 느껴지던 동굴의 한기가 사라지고 숨이 턱하고 막히는 더운 공기가 폐속으로 들어왔다.
영민은 재빨리 손을 들어 코와 입을 가리고 자세를 낮췄다.
“사막 지형.”
살짝 인상이 찌푸려졌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로 뒤덮인 사막 지형은 여러 던전의 타입 중에서도 가장 곤란한 종류였다.
지한이 딱히 지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걸 보면 길드에서도 오현모가 들어올 예정이라 크게 상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바람술사인 그에게는 이까짓 모래바람 쯤은 장애가 되지 않을 테니까. 여차하면 몸을 가볍게 만들어 지형효과도 무시 할 수 있으니 적절한 선택임에 분명했다.
책임자로 지한이 들어오면서, 오현모 대신 영민을 투입하면서 틀어지고 말았지만.
“사막지형 몬스터라면‥.”
온 사방이 모래 밖에 없는 절망적인 광경. 대체로 이중 던전의 경우 그 크기가 대단치 않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난감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었다.
“샌드웜? 사보텐더? 아냐, 그건 너무 거창한데‥.”
사막 지형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들을 하나 둘 떠올리던 영민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하나 같이 까다로운 놈들 뿐. 그러나 3레벨에 턱걸이 한 나르할 던전에 나타난 보너스 던전치고는 하나같이 너무 고난도였다.
“그러고 보니‥채집꾼이 살아 돌아왔다면 몬스터 자체는 강하지 않은 거 아닌가? 아니, 어쩌면 있지도 않을 수 있겠네.”
긴장하던 영민은 순간 긴장을 풀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고작 채집꾼이 안을 살피고 무사히 돌아왔다면 아예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은 까닭이다.
물론 아예 없지는 않을 테고, 운이 좋았거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없는 정도이겠지만 말이다.
“이 막막한 곳에서 길을 어떻게 찾‥‥?!”
그때였다. 영민의 발이 쑥 빠지는가 싶더니 급속도로 무너져내렸다.
“젠장!!”
팔 다리를 휘저으며 발버둥을 쳐보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누군가 강한 힘으로 발목을 붙잡아 끄는 듯 영민의 몸은 속절없이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돼‥.”
무릎이, 허리가, 가슴이. 그리고 턱 밑까지 모래가 차올랐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영민을 마지막 머리카락 한 올까지 집어삼켜버렸다.
결국 이렇게 끝인건가. 불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순간, 발 밑이 허전해졌다. 몸이 추락했다.
쿠웅
“푸핫! 퉤!!”
엉덩이가 얼얼해지는 충격에 몸부림 칠 새도 없이 입 안 가득 들어찬 모래부터 뱉어냈다. 콜록 콜록. 여기가 어디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지형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좀 전까지 사막이었는데, 이제는 동굴이다.
“지하 동굴인 건가?”
분명 자신은 모래 속으로 빨려들어갔었는데‥. 그렇다면 의심할 것은 단 하나 뿐이다.
좀 과격하긴 했지만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찾은 것이다.
“캠핑.”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지하동굴이건만, 희미한 빛은 존재했다. 스스로 은근하게 빛을 밝히는 광물들이 동굴 내에 띄엄띄엄 존재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조금만 어둠에 적응하면 실루엣 정도는 확인이 가능했다.
하지만 마음 놓고 활동하기에는 충분치가 않기에, 영민은 캠핑 스킬을 발휘했다.
환해지는 주위. 예상대로 동굴의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다.
“사막과 동굴이라.”
강태성의 기억이 몇 가지 이름들을 속삭였다. 사막 지형에서, 동굴을 파고 생활하는 몬스터의 종들. 그 중에 너무 강력한 것들을 제외하니 남는 것은 몇 되지 않았다.
“역시.”
횃불을 만들어 들고 외길을 나아가자 노오란 빛을 번뜩이는 한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
“거대 개미였군.”
노란 안광을 빛내는 거대화된 개미. 제법 단단한 껍질과 돌도 씹어 삼키는 강력한 턱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였다.
“일개미 정도는 일도 아니지!”
그렇다고는 해도 개미굴의 가장 말단에 속한 수준이었다. 숫자로 밀어붙이지 않는 이상 D등급 헌터도 무난히 사냥할 수 있는 일개미쯤은 이미 영민의 상대가 아니다.
기억을 통해 그것을 확인한 영민은 씨알도 안 먹힐 아재 개그를 내뱉으며 놈의 머리를 쪼개갔다.
퍼억!
검을 내지르자 투구 같던 머리가 갈라지며 녹색 체액을 내뿜었다. 영민은 그것이 몸에 닿지 않게 주의하며 즉시 몸을 빼냈다.
거대개미의 체액은 다른 개미들을 불러 모으는 독특한 향을 포함하고 있기에, 저걸 뒤집어썼다가는 밀려드는 거대개미들을 피할 길이 없었다.
“개미굴이라, 어떻게 할까.”
고작해야 거대 일개미를 상대했을 뿐이지만 영민의 머릿속에서는 대략의 견적이 나왔다. 구성에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평균적인 수준과 나올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몬스터까지 계산한 견적이 머릿속에 박히듯 나타났기 때문이다.
거대 일개미 다수에 거대 전투 개미 다수. 그리고 거대 여왕개미와 놈을 호위하는 거대 병정 개미까지.
거대 병정 개미만 아니라면, 거대 전투 개미가 끝도없이 밀려드는 것만 아니라면 해볼만한 수준이다. 20일 전이었다면 모를까, 스킬을 진화시키고 능력을 대거 흡수한 자신이라면 충분히 압도할 수 있었다.
아니, 거대 병정 개미도 일대일이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그 이상이 한 번에 덤벼들 경우. 둘 정도면 도망이라도 가능하지만 셋 이상이라면 답이 안 나왔다.
거대 여왕 개미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개미들의 체액을 뒤집어쓰지 않을 자신은 없었으니까.
“마법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원거리에서 구워버리는 거라면 모르겠다. 어차피 굴은 좁고, 거대 개미들의 덩치는 크니, 화염분출 계열의 능력을 습득했다면 (마나가 충분하다는 전제 하에)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체액을 묻히지 않고 돌파해나갈 수 있을 텐데.
“놈들을 피해 갈 수는‥없겠지?”
개미굴에 대한 기억 속에서는 미로처럼 꼬이고 꼬인 수십 개의 길들이 떠올라 있었다. 그렇다면 잘만 선택하면 개미들을 마주치지 않고 여왕의 방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은 ‘행운 Max’이니까 말이다.
“응?”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강태성의 기억 중 일부가 또 다시 유입됐다.
“은신?”
바로 은신 스킬에 대한 정보.
게임에서 도적 계열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은신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주입되었다.
몸이 투명화 되어 바로 옆을 지나더라도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는 은신 스킬이라면, 위기를 겪지 않더라도 이 상황을 수월히 타개할 수 있지 않을까? 영민은 즉시 실행에 옮겼다.
“후우.”
마음을 비우고 평점심을 유지한다. 없는 사람처럼. 유령처럼 모든 기척과 존재감을 지우고 시야의 사각을 따라 움직인다.
기본은 은폐엄폐. 아직 은신 스킬이 활성화되지 않았으니 아무리 기척을 죽여도 보이면 걸리는 거다.
“쿠쿡?”
길을 따라 조금 더 걷자 또 한 마리의 거대 일개미가 나타났다. 저만치 앞에서 죽은 거대 개미의 체액향을 맡았는지 조금 흥분한 모습니다.
놈이 저벅저벅 다가오자 영민은 어느 순간부터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몸을 벽에, 바위 뒤에 숨겼다. 호흡마저 거둬들이고 놈이 지나치기를 기다렸다.
“쿠쿠쿠쿠.”
동족의 체액이 너무 매혹적이었던 것일까, 영민의 대처가 제법 그럴싸 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운이 좋았던 것일까.
숨을 곳도 별로 없는 동굴임에도 거대 일개미는 영민이 숨은 곳을 스쳐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 순간.
[은신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제 은신 스킬을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은신을 이용한 연계 스킬 획득에도 도전해보세요!]
‘!!’
눈 앞에 떠오르는 알림에 영민 스스로도 크게 놀랐다. 분명 강태성의 기억 속에서는 이 스킬을 얻기 위해서는 성공 여부를 떠나 최소 수십에서 수백 번은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적에게 노출되어 전투를 치러야 할 것이라 이야기했는데 단 번에 성공한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영민의 행운 덕분이었다. 특정 행동이 ‘스킬화’ 될 ‘확률’에 영민의 행운이 작용한 것이다.
‘좋았어‥!’
놀란 것도 잠시, 영민은 쾌재를 부르며 자신을 스쳐간 거대 일개미를 쫓았다.
‘은신.’
마나 50을 소모해 은신 스킬까지 발동시킨 뒤였다.
은신 스킬을 사용하면 몸이 투명화 되는 장점이 있었지만 무거운 옷을 입은 것처럼 행동이 둔해지고 이동속도가 느려졌다.
추격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 역시 숙련도가 오르면 어느 정도 해소되겠지만.
그러나 다행히도 거대 일개미의 속도 역시 빠른 편은 아니었다. 뽈뽈거리며 열심히 다리를 놀려보지만 동족의 시체에 닿기 직전, 영민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약점은‥여기지!’
뒤를 잡은 영민은 망설이지 않았다. 거대 개미 시리즈의 공통된 약점을 향해 몸을 낮추고 검을 내질렀다.
“뀍!!!”
툭 튀어나온 엉덩이의 한 가운데. 인간으로 치면 항문이라 할 수 있는 그곳에 숲지기의 단검이 틀어박혔다.
놈이 고통스레 몸부림을 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급소를 관통 당하는 순간 힘이 쭉 빠진 터라 영민의 몸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비열한 습격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제 비열한 습격 스킬을 사용 할 수 있습니다.]
[비열한 습격은 은신 상태에서만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오!”
또다. 은신을 사용했을 때만 얻을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도적 계열 스킬들. 그 중 핵심 스킬 중 하나인 비열한 습격을 단 번에 얻었다.
“대박.”
공격력 증폭은 기본이요, 관통력 강화 효과까지 부여하는 최고의 기습용 스킬 중 하나. 거기에 Max를 찍은 행운 수치의 효과로 크리티컬까지 터진다면? 상대에 따라 일격에 하나를 죽이고 시작할 수도 있을 터였다.
영민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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