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이중 던전 (3)
첫 번째는 바로 숙련도다. 무두질 숙련도. 나르할의 덩치는 작지만 숫자가 제법 되었던 탓에 여러 번 사냥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었는데 영민이 나서 깔끔하게 무두질을 해버린 덕에 돌아가는 수고를 줄였다. 시체인 상태와 무두질을 해서 가죽으로 접어버리는 것은 부피의 차이가 엄청났으니까. 처음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 깔끔한 무두질 실력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영민도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부분이었다.
‘이게 이렇게도 되네?’
바로 아이템. 고작 막타만을 쳤을 뿐인데 드랍되는 아이템 중 일부가 인벤토리로 들어온 것이다.
이미 다른 헌터들이 많은 데미지를 입혀놓은 까닭인지 일부는 땅에 드랍 되고, 일부는 인벤토리에 들어온 것에 불과했지만 남들이 보거나 확인 할 수 없는 인벤토리로 아이템이 들어오는 것은 의미가 굉장히 컸다. 남들은 드랍되는 아이템을 나눠먹을 때 자신은 드랍템도 배분받고 인벤토리로 들어온 아이템은 고스란히 혼자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물론 지금은 채집꾼으로 들어온데다 드랍템은 모두 길드로 귀속 될 테니 배분 받을 것은 없겠지만 인벤토리로 들어온 놈들은 아무도 모르게 꿀꺽 할 수 있을 터였다.
덕분에 영민은 생각지도 못한 아이템들을 하나 둘 모아갈 수 있었다. 행운 Max의 효과로 오히려 드랍되는 아이템보다 인벤토리에 들어오는 아이템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이템 드랍율이라는 것이 랜덤으로만 여겨지는 것이기에 아무도 의심을 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오늘은 조금 운이 없네.’ 정도로만 여겼다.
이후 사냥은 순조로웠다. 불만은 여전히 가득했지만, 나르할을 상대하는 것에는 요령이 붙었는지 이제는 진땀을 빼는 정도는 아니고, 호흡만 가쁜 정도로 해결이 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능력을 써야 효율적인지 몸으로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지한님. 설마‥ 이놈까지입니까?”
그렇게 천천히 활동 반경을 넓힌지 3일 째 되는 날.
보스 몬스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의 입구에서 마침내 헌터들이 반기를 들었다.
“물론.”
지한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빠지겠습니다.”
“뭐라?”
한결 같은 지한의 반응에 헌터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저희는 들어가지 않겠으니 저 놈에게 막타를 몰아주고 싶거든 알아서 하시라는 겁니다.”
아무리 B등급의 헌터라지만 힐러의 포지션을 갖고 있는 진지한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차피 이 던전의 보스, 메가 나르할까지는 잡아낼 수 없다고 판단한 승부수였다.
‘우리가 잡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돌아갈 건데?’라는 듯한 오만한 눈빛. 단단히 결심을 하고 작당을 했는지 모두가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꺼져.”
“‥‥예?”
그러나 돌아온 것은 기대와 전혀 다른 말이었다.
꺼지라고? 정말 자신들한테 한 말인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무슨 배짱으로?
‘시간을 때우려는 건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구출조가 들어온다. 해당 던전을 무슨 일이 있어도, 완벽하게 클리어 할 수 있는 인원들로 구성되어서.
이 경우는 최소 C등급 중상위 이상의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와 단번에 깨버리겠지.
그걸 기다리는 건가? 자존심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진짜로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C등급 헌터들의 파업 때문에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고 구출조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것대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니까.
때문에 그들이 원한 것은 약간의 타협과 양보였을 뿐이다.
정작 진지한은 그들의 예상을 무참히 깨버리는 행동을 하고 있지만.
“너희는 낙제다. 멍청이들아. 영민 동생, 가자.”
“예.”
진지한은 그들을 낙제로 못 박은 뒤, 거침없이 동굴로 들어가버렸다.
영민도 망설이지 않고 그를 따랐다.
진지한의 포지션이 힐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헌터들과 비슷하게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영민은 알고 있었다.
‘미스터 진은 강력한 헌터라고 했었지.’
보통 힐러에게 ‘강력한’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진지한에게 단순히 힐과 버프의 능력 이외에 다른 전투 능력이 있다는 말.
이렇게 성큼성큼 나아갈 수 있는데도 그런 배경이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덕분에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다가 길가에 버려진 아이처럼 망연자실해진 헌터들은 따라 들어가지도,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멍하니 그들의 뒷모습만 쫓았다.
“그냥 내 뒤만 따라오라고. 동생.”
거침없이 안으로 전진하는 지한의 모습에서는 긴장 비슷한 것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하긴, 6레벨 던전에도 다녀왔을 그가 고작 3레벨 던전에서 겁을 먹는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다.
“스트라이킹, 프로텍트 아머, 스피드‥.”
대신에 안으로 들어가는 걸음걸음마다 지한의 몸에 새로운 버프가 걸렸다.
‘이게 몇 중첩이야!’
그 모습에 강태성의 기억을 가진 영민조차 깜짝 놀랐다. 보통 고유 능력으로 버프를 가지고 있다 한들 두어 개, 많으면 서너개를 사용할 수 있는데 당장 지한이 걸어대는 것만 세어도 열은 족히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능력 테스트 당시 보여주었던 녹색 빛은 회복 능력이 분명하다.
어떤 고유 능력인지는 몰라도 회복까지 포함해 최소 열이 넘는 종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괴물이 따로 없었다.
더 가관인 것은 능력 하나하나에 깃든 마나의 양으로 볼 때, 효과 역시 범상치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여럿에게 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몰빵을 했기에 마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도 일어나지 않을 듯 했다.
[스트라이킹을 관찰했습니다. 습득 조건(1/3)을 만족했습니다.]
[프로텍트 아머를 관찰했습니다. 습득 조건(1/3)을 만족했습니다.]
[스피드‥‥.]
변화는 영민에게도 일어났다. 게이머의 능력이 발현되며 스킬 습득을 시도한 것이다. 게이머 능력이 스킬을 얻는 방법 중 하나인 ‘스킬 카피’의 발동이었다.
상대의 스킬을 보고, 느끼고, 완벽히 이해해 따라하는 것에 성공했을 때 해당 스킬의 80%수준까지 능력을 복제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 다만 ‘스킬 관찰’조차도 상당한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조건 충족이 되지 않고 보다 쉽게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이 있어서 강태성도 초반에만 겨우 몇 가지 카피해 사용하던 능력이다. 그것을 행운 Max답게 영민이 몇 가지 능력이나 조건을 충족 시킨 것.
물론 개중에는 현재 영민이 가진 마나의 총량보다 소모 마나가 많아서 사용 할 수 없는 것도 있었기에 한정된 스킬만 관찰 가능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마나 컨트롤은 강태성의 기억이 있으니까.’
해당 스킬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야 진지한에게 부탁을 하면 그만이니 별 문제가 없다고 여겨졌고 마나 컨트롤을 흉내내 동일한 스킬을 발현하는 것은 강태성의 기억이 할 수 있을 터였다.
드디어 나도 스킬을 얻는 건가? 한껏 기대에 부풀려는 순간, 불빛이 일렁이며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나왔군.”
두 마리의 나르할과 함께 보스 몬스터인 메가 나르할이 나타났다.
“동생은 잠깐 피해있어. 흐읍!”
이번에도 지한은 거침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열 가지 버프를 떄려 박은 것도 모자라 내부의 마나를 순환시켰다. 마나에 의한 육체 강화를 일으켰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세포 하나하나에 마나가 깃들었다.
퍼엉!
뛰쳐나간다 싶은 순간, 나르할 두 마리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압도적인 위력.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두 새끼들에 분노했는지 메가 나르할이 괴성을 내뿜었다. 일반 나르할의 열배는 되는 앞발을 들어 장작패듯 지한을 찍어내렸다.
투웅!
그러나 들려온 것은 흉폭한 기세와 어울리지 않는 맹한 타격음이었다. 지한이 두른 방어막을 뚫지 못한 것.
힐에, 버프에, 방어막까지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괴력]으로 꼽히는 메가 나르할의 일격을 막을 정도라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정도면 혼자 다 해먹겠는데?’
기절할 듯 놀라웠지만 영민은 끝까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시끄러!!”
쿠웅
놈의 일격을 막아내느라 잠시 움츠렸던 지한이 쏘아져나가 주먹을 내지르자 메가 나르할의 거체가 크게 떨리며 밀려났다.
적어도 키 3미터, 몸무게 이백 킬로그램 이상은 족히 나가는 놈을 주먹 한 방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미쳤네. 미쳤어.’
진짜로 공격력까지 갖췄어? 물론 ‘그래봐야 B등급’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지만 잘만 활용하면 A등급에도 필적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파티 플레이는 물론이고 솔로잉도 가능한 ‘완성형 힐러’라고나 할까?
“역시 남자는 주먹이지. 안 그래?”
기세가 오른 지한은 영민에게 찡긋 눈짓을 하더니 재차 놈에게 달려들었다.
힘과 힘의 대결.
지한이 가볍게 끊어치는 주먹질에 닿을 때마다 메가 나르할의 육중한 몸이 들썩 거렸다.
“자신 할만 하네.”
이 정도면 아무리 잘난척을 해도 척이 아니라 잘난 게 된다. 스스로의 주제파악, 역량 파악도 못하는 떨거지들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나 할까.
메가 나르할도 온 힘을 다해 마주쳐가지만 강화계 C등급 헌터의 육체능력마저 뛰어넘은 지한에게는 손색이 있었다.
“끝났군.”
전투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다. 한 번 승기를 잡은 지한은 그대로 몰아쳐 메가 나르할을 눕혀버렸고 놈은 머리가 피떡이 되어 숨을 거둔 것이다.
[메가 나르할의 마력을 흡수합니다.]
영민은 자연스럽게 지한을 추켜세우며 메가 나르할의 시체를 만졌다. 슬쩍 상태창을 열어보니 마력 스텟이 3이나 상승해있었다.
“어때, 간단하지?”
“형 정말‥대단하네요.”
영민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강태성의 기억을 뒤져봐도 진지한만큼 전천후의 능력을 보이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물론 어느 시점부터는 강태성 역시 그보다 더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능력을 발휘하고 다녔지만.
“별거 아냐. 버프만 받으면 영민 동생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제가요?”
이쯤에서 영민이 슬쩍 연기를 했다. 스킬 카피를 위해서라도 그의 버프를 직접 받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얼마든지. 한 번 해볼래?”
“음, 그건‥.”
영민은 짐짓 고민하는 척을 했다. 버프를 받고 싶긴 하지만 과연 버프를 받는다 한들 지금의 자신이 일반 나르할과 겨룰 수 있을까? 강태성의 기억을 흡수하며 얻은 약간의 요령들을 이용하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기껏해야 D등급에 막 오른 이가 버프 좀 받았다고 나르할을 상대하는 것은 이목을 끌기 쉬워보였다.
“실은 말이지. 영민 동생에게 부탁할게 있는데 말이야.”
그때, 진지한이 모처럼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탁이요?”
“이거 참,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사실 이 던전에 들어오면서 길드로부터 한 가지 미션을 받았거든.”
“?”
“이 던전에 있는 이중 던전을 클리어하게 도우라는 거였지. 이 안쪽으로 조금 더 가면‥.”
퍼억
후두두둑
그의 주먹질에 막혀있는 것으로 보였던 흙벽이 무너지며 사람이 통과할만한 길이 열렸다.
“던전 안의 던전, 즉 이중 던전이 나오는데 그걸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마나량 2,000미만. 즉 C등급 이하의 헌터가 필요하다고 하더군.”
“!!”
그의 말에, 안쪽 길의 끝에서 보이는 푸른 게이트의 모습에 영민의 머릿속에도 관련된 기억이 떠올랐다.
입장 조건이 달려있는 던전 속의 던전. 이번 던전의 조건은 아마도 ‘마나량’인 모양이었다.
“원래는 채집꾼으로 따라온 녀석을 집어넣으라고 했는데, 그 놈을 넣기엔 아무래도 ‘촉’이 안 좋단 말이지. 안쪽과 왕래가 가능한지 이미 E등급의 채집꾼도 들어갔다 나온 적이 있다고 하던데, 영민 동생이 가보는 건 어때?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머드 코볼트를 상대해 본 적 있다고 하니 내 버프까지 받고 들어가면 해볼만 할 것 같은데. 이중 던전은 수준이 한 단계 이상 낮다고 하니까. 위험하면 바로 도망쳐나오면 되고.”
“좋아요. 형 부탁이니까‥. 한 번 해볼게요.”
사실 이런 부탁이라면 이쪽에서 해야 할 판이다. 이중던전은 다른 말로 '보너스 던전'으로도 불리니까. 영민은 살짝 고민하는 척하다가 그의 제안을 수락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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