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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 MAX-21화 (21/177)

21화 - 이중 던전 (2)

대머리가 된(본인은 주변 머리가 남았다고 우길지 모르지만) 오현모가 넋을 놓고 있는 동안 손짓 한 번으로 화상을 치료해낸 지한은 영민을 이끌고 채집꾼들이 있던 자리를 벗어났다.

그가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전투에 나설 헌터들이 모인 곳.

채집꾼으로 알고 있는 영민이 그 자리에 나타나자 모두들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자, 우리도 시작해볼까?”

“지한님. 그 분은··?”

진지한과 막역한 듯 해 존대를 쓰기는 했지만 은근히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고작해야 채집꾼을 자신들 곁으로 데려온 이유가 무엇인가? 설마 구경이라도 시키겠다는 건가? 아무리 평가자라지만··.

별 생각이 다 드는지 미묘한 표정들이 스쳐갔지만 정작 지한은 그들의 생각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단호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평가를 시작하겠다. 내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지시불이행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겠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람 좋고 넉살 좋은 진지한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에게 어떻게든 잘 보여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는, 그러면서도 남들에 대한 무시와 우월감은 버리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철저히 ‘갑’으로서, 사무적으로 대했다.

그 알 수 없는 박력에 다른 헌터들도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감히 반항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타고난 금수저인 진지한은 ‘갑’에 더 어울리고 익숙한지 모르겠다.

“자, 그럼 평가 미션을 주지. 키워드는 ‘제압’이다. 나타나는 몬스터를 모두 생포해라. 상태는 어떻든 상관 없으니 죽이지만 말고 제압해보도록.”

“예?!”

그 말에 모두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죽이는 것보다 죽이지 않고 생포하는 것이 적어도 1.5배 이상은 힘든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3레벨 몬스터이고, 자신들은 갓 C등급에 오른 루키들 아닌가? 물론 자신들이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번 던전 역시 3레벨 중에서 중하급에 속하기는 하지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잠시 눈알을 굴리던 녀석들은, 곧 상황 파악을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눈치 빠른 녀석 하나가 선수를 치자 너도나도 자신감을 표출하며 진지한의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썼다. 사실 길드 가입 시기를 볼 때 그들보다도 후배인 진지한이지만 헌터의 세계는 단순히 입문 순서 따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비슷한 능력과 등급이라면 모를까, 철저히 윗 등급과 고위 능력자에게 힘과 권한이 쏠리는 강자존의 세계였다.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들처럼 일곱이 떼를 지어 앞장서는 것을 보며 영민은 눈만 껌벅거렸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채집꾼인 자신을 사냥에 끌고 가는 진지한의 의중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 거릴 뿐이다.

“동생은 나만 믿고 따라와.”

찡긋 눈짓을 하는 진지한. 영민은 순간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기억속의 ‘미스터 진’은 누구보다 여자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호방한 성격의 사내였으니까.

그가 나쁜 의도로 하는 일은 아니라고 믿기에, 영민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를 따라 이동했다. 어차피 헌터들이 주변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채집도 불가능 했으니 달리 할 것도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도 채집꾼 조장에게 이야기는 해둔 뒤, 지한과 헌터들을 따라 이동했다.

“내 옆에만 있으면 안전하니까 걱정하지마.”

헌터들은 몬스터를 마중하기 위해 저만치 앞서나갔지만 영민의 곁에는 지한이 버티고 있었다. 힐러라고는 하지만 무려 B등급의 헌터. 단순히 마나를 육체 강화에만 사용을 해도 어지간한 C등급 헌터 이상의 능력을 낼 수 있을 터였다.

저급한 수준에서는 그저 고유 능력에 따라 마나를 사용할 뿐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고유 능력 이외의 방법으로도 마나를 사용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섬세한 마나 컨트롤을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지한이 익히고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안전은 지켜지겠지.

“나왔다!”

“모두 위치로!”

채집꾼들의 활동 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주변을 훑으니 몬스터들이 하나 둘 걸려들었다.

이번 던전의 주력은 나르할이라는 이름의 사람 머리통만한 몬스터. 귀여운 외모에 언뜻 방심할 수 있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강철 방패에도 스크래치를 낼 수 있는 녀석이다.

“나르~.”

선공을 취한 것은 나르할 쪽. 첫 대면이기 때문인지 먼저 공격하기보다 방어를 택한 헌터들은 사람 키보다 높이 도약해 덤벼드는 녀석을 방패로 밀어 쳐내며 위력을 가늠했다.

힘이나 공격력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다행이지만, 크게 차이가 난다면 단번에 큰 피해를 입고 시작할 수도 있는 선택. 그들의 전투를 지한은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합은 잘 맞는데?’

영민도 그 나름대로 그들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스스로의 경험은 일천하지만 누구보다 풍부한 강태성의 기억이 있는 덕이다. 그 기억으로 비추어 볼 때 녀석들의 점수는 대략 60점. 아직 능력 활용이 자연스럽지 못한 C등급의 헌터인데다 나르할을 상대하는 것이 처음이라는 고려했을 때 그럭저럭 후하게 준 점수였다.

연계가 어설프긴 하지만 몇 번 합을 맞춰보기는 한 것인지 큰 무리 없이 상대를 제압 할 수는 있을 정도라고나 할까?

“이봐, 죽이면 안 돼!”

“젠장. 알고 있어!”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죽을 동 살 동 하고 있었다.

몸집은 작은데 손톱은 면도날보다 예리하고, 그렇다고 힘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저 작은 몸집에서 무슨 이런 무식한 힘이 나오나 싶을 만큼. 탱커의 방패조차 흔들리게 만들 힘을 자랑하는가 하면, 무시무시한 도약력을 실어 덤벼든다. 그럴 때는 탱커마저도 어쩔 수 없이 방패를 틀어서 비껴쳐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러한 육체 능력이 전부라는 것. 다른 스킬이나 마법적인 능력은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에 안도하며 차근차근 공략을 해갔다.

사실 공략이랄 것도 없다. 착실히 데미지를 쌓고, 놈을 침몰시켜가는 것이 전부였다. 공격력에 비해 체력이 부족한 탓에 큰거 한방으로 반전시킬 생각은 애초에 버리고, 작은 공격을 몇 번이고 꽂아 넣으면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늦어졌다.

“후우, 제압했습니다.”

그렇게 10분쯤을 드잡이질 하니 모두 세 마리의 나르할이 팔다리가 꽁꽁 묶인 채로 제압되었다.

처분만을 기다리는 상황. 그때 진지한이 이해 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영민 동생. 가서 끝장 내봐.”

“에엣? 제가요?”

“지한님!!”

그 말에 영민을 비롯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더니 실컷 고생한 것은 자신들인에 어째서 마무리는 영민이 한다는 것인가. ‘막타’의 중요성은 헌터들 사이에서도 유명하기에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나는 이번 던전 공략과 평가에 대한 모든 권한을 일임 받았다. 무슨 문제 있나?”

그러나 그 불만을 터트리기도 전에 지한의 싸늘한 목소리가 그들을 휘감았다. 불만이 있다한들, 네까짓 놈들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듯한 태도. 그 압도적인 기세에 영민마저 움찔 몸을 떨고 말았다.

보통의 인물들에게는 다정하고 따뜻한 인물이지만 지금 이들의 평소에 대해 들은 것도 있고, 애초에 던전에 들어오기 전 이 던전에 대한 모든 권한을 넘겨 받은 상태였다. 계약을 할 때부터 영민을 D등급까지 지원해주기로 했으니 어떻게 생각하면 던전 전체가 영민을 위한 선물인 셈.

“자, 어서.”

거듭되는 지한의 재촉에 영민은 검을 들어 나르할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숲지기의 단검이 아닌, 길드에서 지급 받은 검을 사용하느라 조금 애를 먹기는 했지만 몇 번이고 목젖을 찔러대니 숨을 끊어놓을 수 있었다.

‘오··.’

슬쩍 상태창을 살피자 상당한 경험치가 들어온 것이 확인 되었다. 한 두 마리만 더 잡으면 레벨 업을 할 정도. 영민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시체에 슬쩍 터치까지 해서 능력도 마저 흡수했다.

“좋아. 계속한다.”

영민이 세 마리의 숨통을 모두 끊어놓자 지한은 되었다는 듯, 사냥 재개를 명했다.

정작 사냥을 도맡은 헌터들을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지만 입을 댓발 튀어나온 채로 명에 따랐다.

헌터들이 던전에 들어와 열심히 사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몬스터가 드랍하는 아이템이나 마나석, 기타 부산물들을 얻으려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능력의 상승, 등급의 상승을 꾀하기 위함이다.

마나로 가득한 던전 내에 일반인이 들어올 경우 마나 질식이라 불리는 현상에 의해 천천히 죽어가게 되지만 각성한 헌터라면 오히려 좋은 자극제가 되어 마나가 성장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몬스터의 숨통을 직접 끊어놓을 경우, 비교적 높은 확률로 마나 성장을 이룰수도 있었다. 물론 비교적 높을 뿐, 마나의 성장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고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할수록 그 확률은 상승하고 단순히 전투를 치르는 것보다는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는 작업, 즉 ‘막타’를 치는 것이 성장 확률이 더 높았다.

그런데 그 막타를 일개 채집꾼에게 몰아주고 있으니, 아니 가져다 바치고 있으니 그들의 속이 좋을 리가 없었다.

당장에 아리랑 길드만 아니라면, 평가만 아니라면 이런 부당한 대우에 반발하고 욕을 한 바가지 해준 다음에 나가버릴 터였다.

“형, 계속 이렇게 해도 정말 괜찮아요?”

지한이 하고 있는 행위가 어떤 것이지 잘 알고 있는 영민 역시 우려를 표했다. 경험치도 공짜로 먹고, 능력치 흡수도 꾸준히 하고 있어 땡큐이기는 한데 헌터들에게 몬스터 사냥이, 막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에 우려를 표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지한은 괜찮아, 괜찮아 손을 저으며 웃어보였지만 영민은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전 이만··.”

“무슨 소리야? 영민 동생은 이번 던전에서 쭉 우리랑 함께 갈건데. 내가 채집꾼 쪽에는 다 이야기해놨으니까 걱정하지마.”

그래도 주변 정리 정도에서 그치겠지 하는 생각에 별 생각 없이 막타를 뺏어먹던 영민은 1차 사냥이 끝나자 채집꾼들 사이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지한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형, 하지만··.”

“내가 말했지? 무슨 일이 있어도 D등급까지는 만들어주겠다고. 원래는 스텟 볼을 하나 챙겨주려고 했는데 요새 그거 구하기가 쉽지 않다지 뭐야.”

1인당 스텟 캔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총 5회. 영민은 그 중 3회를 쓴 상태였다. 그 밖에 남은 방법은 스텟볼을 이용한 2회의 기회와 신의 구슬이라 불리는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 뿐인데 하나 같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대단한 물건 들이었다.

아무리 슈퍼 루키인 지한의 요청이라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심지어 본인이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허접한 채집꾼에게 먹일 것을 아는 판에야. 입수 경로가 있어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내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지한이 영민을 불러들인 것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리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영민에게 막타를 몰아줘서 D등급까지 성장시키려는 계획. 헌터들이 또 다시 불만을 표시했지만 그 뿐이었다.

감히 지한의 의지를 거스르지 못했다.

결국 영민은 지한의 옆에 딱 붙어 손 하나 까딱 안하고 막타만 주워 먹을 수 있었다.

추가적인 소득도 있었다. 그것도 두 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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