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 스킬 노가다 (2)
간단한 조사를 받고 돌아온 영민은 곧장 짐을 꾸렸다. 던전으로 들어가기 위한 짐이었다.
남은 코볼트 던전 입장 횟수는 3번. 다음 던전으로의 진입 시간인 10일이면 딱 맞았지만 영민은 내친 김에 휴가를 더 받았다. 본래는 어림 없는 일이지만 헌터로부터의 살해위협이라는 충격적인 일을 당했으니 20일까지 쉴 수 있도록 배려받은 것이다.
멍청한 루키의 판단이라고는 하나 길드에서 벌어진 일이고, 그런 것에 아리랑 길드는 철저한 편이었다.
덕분에 영민은 평소보다 두 배 더 오랫동안 던전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것을 십분 활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약초를 뽑아 채집 숙련도와 연금술 숙련도를 올리는 것은 기본이다. 베이스캠프를 몇 번이고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해 숙련도를 올리는 한편, 코볼트 전사만 일찌감치 잡아버리고 남은 코볼트들의 공격은 무시해버리는 선택까지 했다.
[최하급 물리저항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받는 물리 데미지가 미세하게 줄어듭니다.]
[맷집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기초 방어력이 미세하게 증가합니다.]
물리저항과 맷집 스킬을 올리기 위함이다. 공격력이 강하던 약하던 많이 맞을수록 숙련도가 증가하는 두 스킬을 노가다하는데 이곳 코볼트 던전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개체 수가 많아 쉴새 없이 두들겨 맞는데 아이템의 효과로 데미지는 무효화 되어버리는 최적의 노가다 장소! 낮에도, 밤에도 계속해서 두들겨 맞은 덕분에 영민의 방어력과 물리저항 능력은 D등급의 어지간한 탱커만큼이나 빠르게 상승했다.
“후욱. 후욱.”
그뿐이 아니었다. 일반 스킬을 생성하기 위해 몇 가지 간단한 공격법을 반복해서 동작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검술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검을 이용한 공격력이 미세하게 증가합니다.]
[방패술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방패를 이용한 공격력과 방어력이 미세하게 증가합니다.]
[강 베기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빨리 베기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횡 베기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대쉬 스킬 숙련도가··.]
스킬 획득에서 그치지 않고 숙련도 작업까지!
행운 Max의 효과로 숙련도가 기똥차게 오르는 영민으로서는 지루할 뿐, 그다지 어려운 작업도 아니었다.
코볼트가 들러 붙거나 말거나, 검 끝에만 집중한 덕분에 몇몇 눈 먼 코볼트가 맞아 죽어나가기도 했지만 놈들을 대신해 자신을 때려줄(?) 대타는 많았으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지루하고 귀중한 시간이 흘러갔다.
* * * * *
마지막 남은 코볼트 던전 이용 횟수를 사용하고 한창 노가다에 매진하고 있을 때, 영민의 몸에. 정확히는 스킬에 변화가 생겼다.
[검술 스킬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검술 스킬이 하급 실전 검술로 변경됩니다.]
[방패술 스킬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방패술 스킬이 하급 방패전투술로 변경됩니다.]
[맷집 스킬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맷집 스킬이 단단한 근육 스킬로 변경됩니다.]
[최하급 물리 저항 스킬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최하급 물리저항 스킬이 하급 물리저항 스킬로 변경됩니다.]
숙련도 100%를 찍은 일부 스킬들이 진화를 한 것이다. 덕분에 숙련도가 다시 0%로 떨어져버렸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0% 상태에서도 이전 버전의 최대 숙련도보다 우월한 성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좋았어.”
근육에 새롭게 새겨진 능력들을 확인하며 영민이 코볼트의 목을 따버렸다.
하고자 한다면 좀 더 노가다를 할 수도 있지만 이미 18일이나 버텼다. 육체적으로는 버틸만 했지만 정신적으로 한계였다. 지루함을 참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코볼트의 정신력을 흡수합니다.]
[코볼트의 마력을 흡수합니다.]
한바탕 쓸어버린 코볼트들의 시체에 손을 얹으니 추가로 능력이 상승했다.
그러나 영민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드레인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힘과 민첩, 그리고 체력은 오르지 않고 정신력과 마력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능력의 한계인지, 단순히 운인지, 코볼트에게서 흡수 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정체되는 것만 같아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강태성의 기억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니 어찌 할 수도 없다. 남은 코볼트의 시체를 모두 벗겨낸 영민은 인벤토리 가득해진 아이템과 코볼트 가죽, 마나석을 가지고 던전을 빠져나왔다.
파앗-
던전의 마지막 입장 횟수를 사용한 영민은 현실로 돌아온 즉시 뒤를 돌아봤다. 소용돌이 치듯 게이트를 빨아들여 만들어지는 자그마한 돌멩이. 던전 스톤이라 불리는 물건을 받아들었다.
“휘유. 드디어 집이네.”
사십 여일 만에 집문을 열고 들어오자 묘한 감격 같은 것이 밀려왔다.
“텅 빈.”
그러나 현실은 금세 다가왔다. 텅빈 집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은 외톨이였으니까.
그래도 이제는 익숙했기에, 어색했던 호텔방보다는 쉽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영민은 간만에 늦게까지 잠을 자고 오후가 돼서야 일어났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여니 던전에 있는 동안을 포함해 연락이 온 곳은 한 한 곳. 아리랑 길드로부터였다.
20일의 휴식 기간이 끝나니 내일까지는 채집꾼 지원을 마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문자를 보고 영민은 고민했다. 과연 언제까지 채집꾼으로 생활할 것인가.
아이템 빨은 차치하고라도 코볼트의 마력까지 흡수해 이미 D등급의 마나량을 갖추고, D등급 강화계 중에서도 상위에 해당하는 육체 능력을 지닌 터였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공격스킬이 대부분 특별한 공격력 증폭이 없는 일반 스킬 뿐이라는 것인데, 그 동안 강태성의 기억을 통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덕분에 제법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그 또한 큰 의미는 없다고 여겼다.
더구나 채집꾼으로 익힐 수 있는 스킬 중 채집과 연금술은 벌써 60%가 넘게 숙련도를 올렸으니, 어지간한 베테랑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채집꾼으로 던전에 들어간다 한들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끽해야 2레벨 이상의 던전에 따라 들어가서 보다 상위 몬스터의 능력을 흡수하는 정도일까.
그마저도 눈치를 보아가며 간신히 만져 흡수해야하고, 깐깐한 조장이 걸리기라도 하면 며칠이나 되는 시간만 버려야하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떠나기 전에 지한이 형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은데··.”
결국 영민은 등급 테스트를 다시 받기로 마음 먹었다. 채집꾼으로 있어봐야 더디게 성장할 뿐이라는 것을 강태성의 기억이 맹렬히 경고했다.
원래 기억의 주인보다도 압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는 했지만 상대는 그들마저 어찌해볼 엄두를 못내던 존재였다. 아무리 다그치고 재촉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D등급 헌터라··.”
마음을 정하고 나니 자신의 처지가 새삼스러워졌다. 자살을 생각하던 패배한 인생에서 대기업 신입보다 높게 쳐준다는 헌터라니.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 얼떨떨할 정도다.
게다가 그조차도 이제 막 시작일 뿐이라니.
앞으로 닥쳐올 암울한 미래를 알고 있다고는 해도 기쁘게 두근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집 밖으로 나선 영민은 등급 테스트를 받는 대신 쇼핑을 했다. ‘마켓’이라 불리는 헌터 전용 백화점에 간 것이다.
따로 장비를 구입하거나 판매할 생각은 없지만 헌터라면 필수라고 불리는 부수장비들은 미리 구입해둘 필요가 있었다.
“헌터넷 접속 장비랑 회원권을 구입하려고 하는데요.”
“네. 그러시군요. 실례지만 등급은··.”
“D등급입니다.”
등급을 묻는 것이 조심스러웠는지 은근히 물어오는 점원에게 D등급이라 속여 말을 했다. 장비라면 모를까, 그저 헌터넷 접속 장비와 회원권 정도로는 등급 조회를 하지 않는 것이다.
“D등급 회원권은 500만원이고 접속 장비는 300만원부터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저걸로 하죠.”
진열대에는 몇 가지 종류의 접속 장비들이 놓여져 있었다. 옛날 팩을 꽂아 사용하는 게임기처럼 생긴 싸구려부터 태블릿 PC처럼 생긴 것, 평소에는 시계로 사용하다가 조작하면 화면을 쏘아내어 조작할 수 있는 것까지.
그 중 영민이 고른 것은 1천만원이 넘는 태블릿 PC 형태의 기종이었다.
회원권까지 하면 거의 전재산을 털어부은 셈.
그러나 내일이면 또 던전에 들어갈 테고, 당분간 버틸 돈은 생길 테니 걱정하지 않았다.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신가요? 저희 신라 컴퍼니는 헌터넷 접속 장비 뿐 아니라 각종 장비류, 소모품류, 지원 물품까지 모두 취급하고 있습니다.”
초라한 행색과 달리 거금을 지른 탓일까? 덤덤하게 소개하던 점원의 표정이 180도로 달라지며 싹싹하게 손을 비벼댔다.
“한 번 둘러보죠.”
영민은 굳이 추가로 물품을 구입할 생각도, 돈도 없었지만 짐짓 의사가 있는 척 굴었다. 강태성의 기억에서 나온 약삭빠름이었다.
점원이 침을 튀겨가며 소개하는 것들은 대부분 강태성의 기억 속에 있는 물건들이다. 그럼에도 굳이 시간을 들여 돌아보는 것은 현재의 시세나 제품 출시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강태성이 방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이템의 출시 순서까지 연도별로 착착 정리해둔 것은 아니었으니까.
‘생각보다 수준이 낮네.’
아직 헌터와 던전, 몬스터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신상품이라며 자랑을 해대는 아이템들도 썩 시원찮았다. 통신기술이 급격히 발달했듯 몬스터 가공 기술도 어느 순간 급물살을 탔던 까닭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의 영민으로서는 구입할 엄두를 내기 어려운 희귀한 아이템도 많았지만 영민의 머릿속에는 그것들을 대체할 것들에 대한 정보가 넘쳐났다.
“오늘은 이것들만 구입하죠. 계산해주세요.”
“할부는 몇 개월로··?”
“일시불로 해주세요.”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어차피 신용카드는 없고 제시한 것도 체크카드일 뿐이었지만 슬쩍 있는 척을 했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그러자 영민을 돈 많은 호구쯤으로 본 것인지 점원이 명함과 함께 사은품도 몇 개 찔러 넣어줬다. 연막탄과 섬광탄. 다른 화기들은 던전 내에서 무용지물이 되지만 이것들 만큼은 통용되어 여분으로 몇 개씩들 챙겨가는 물건이었다.
신라 마켓이라면 1, 2천만원쯤은 우습게 사용하는 거물들도 드나드는 곳이지만, 그가 일을 하는 파트에는 300만원짜리 기기를 겨우 사가거나 그마저도 36개월 할부로 구입하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영민 정도의 재력이 있는 이들을 단골로 만드느냐의 여부가 매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른 파트의 물건이라도 자신이 물어다가 거래를 성사시키면 일정 부분의 인센티브가 지급되는 까닭이다.
영민은 어찌되든 상관 없었지만 일부러 챙겨준다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명함은 간직해두고, 마켓을 빠져나왔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아리랑 길드의 본사였다. 던전 진입은 내일이지만, 한 가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예? 입장 던전이 조정 됐다고요?”
그리고 그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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