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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 MAX-18화 (18/177)

18화 - 스킬 노가다 (1)

“여기 있습니다.”

김상식의 우려와 달리 영민의 무두질은 빠르고 능숙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볼트 던전을 독식하며 홀로 무두질을 해댄 탓에 숙련도가 50%를 넘기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어지간한 베테랑들과 맞먹는 수준이다. 그것도 길드에서 전문적으로 기회를 몰아주며 숙련도를 올릴 수 있게 배려한 이들을 기준으로.

물론 대형 길드에는 그보다 수준 높은 채집꾼들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4,5레벨 이상의 고위 던전에 투입되니 이 정도 수준에서는 최고 수준의 숙련도를 갖춘 것.

자신이 해도 이만큼을 할 수 있을까 생각 될 만큼 훌륭히 해체를 완료하자 김상식은 얼떨떨해하면서도 나머지 해체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머드 코볼트에 이어 코볼트 워리어까지.

순식간에 놈들이 조각조각 해체되었다. 영민은 그것들을 단 하나도 빼돌리지 않고 한 쪽에 잘 쌓아두었다.

안타깝게도 아이템은 단 하나도 없었다. 보스 몬스터까지 아무런 아이템을 드랍하지 않는 것은 꽤나 드문 현상이라고 김상식이 설명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던전을 나가는 즉시 빼돌린 것은 없는지 검사를 받게 되니까. 거짓으로 고하고 아이템을 훔쳤다는 의심은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마나석은 운 수치가 적용 됐는지 평소보다 훨씬 많이 나와 오히려 인센티브를 받지 않을까 생각 될 정도였다.

‘어떻게 하지‥.’

가볍게 말하는 김상식과 달리, 영민은 내심 뜨끔했다.

‘아이템이 꽤 많이 나왔는데.’

드랍되지 않은 것으로만 알고 있는 아이템들이 몽땅 영민의 인벤토리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아머드 코볼트의 것부터 코볼트 워리어의 것까지. 이상하게 여길 것을 염려해 귀환석은 시체 밑에 깔아두었다가 꺼내는 시늉을 하기는 했지만, 그 밖에 다수의 아이템이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었다.

꺼내놓을 수도 없고, 가지고 나갈 수도 없고.

당장 인벤토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으니 걸리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잘못 꺼냈다가 누군가 추적해오기라도 한다면 아리랑 길드와 척을 지게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다시 꺼내놓자니, 인벤토리 같은 능력을 들켰다가는 채집이고 헌팅이고 몽땅 거부 당할 지도 몰랐다. 자신들 모르게 슬쩍 꿍쳐 둘 수 있는 능력을 그 누가 좋아하겠나?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 일단은‥.’

일단은 숨겼다. 인벤토리의 존재가 밝혀져 봐야 좋을 것 하나 없으니까.

물론 비슷한 류의 고유 능력을 지닌 헌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공간’이라고 하던가? 그런 이름의 능력을 지닌 헌터가 몇몇 존재했다.

대신 그들은 길드에서 철저하게 관리를 한다고 들었다. 던전 진입 시 획기적으로 많은 양의 장비와 소모품을 가지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언제 슬쩍 물건을 빼돌릴지 알 수 없었으니까.

영민은 결코 그런 감시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후우. 자, 우리도 이제 숨지.”

영민이 머리를 굴리는 동안 고유 능력을 발휘해 채집꾼들에게 메시지를 전송한 김상식은 다소 의외의 제안을 했다.

채집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남은 아머드 코볼트들을 사냥해달라는 부탁 같은 것을 할 줄 알았는데 함께 몸을 숨기자고 말한 것이다.

영민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담담히 말을 덧붙였다.

“우리를 미끼 삼아 도망친 놈들이네. 과연 그들이 그것을 들키고 싶어 할까? 이제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야.”

영민의 머릿속에 김상식을 미끼로 던지고 도망치는 오현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이해가 갔다. 상황이 정리된 것을 알면 오현모 등이 오히려 영민과 채집꾼들을 해치려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김상식을 죽이려 한 것과 다름 없는 그들이 목격자를 남겨 치부를 드러내려 할까? 첫 단독 헌팅에서 성과를 보이려 그 무리를 했던 이들이?

알려지는 즉시 평가는커녕 징계를 받을 것이 뻔한 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니다.

때문에 김상식은 메시지 능력을 사용하며 루키들이 보여도 절대 먼저 움직이지 말고 숨으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그냥 지금 귀환석을 쓰는 건 어떻습니까?”

귀환석을 쓴다면 던전 내의 모든 사람들이 던전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고 루키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던전의 입구는 허락되지 않은 추가 입장을 막기 위해 아리랑 길드의 헌터가 돌아가며 지키고 있으니까.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고작해야 D등급의 루키가 마음대로 날뛰었다가는 길드 추방은 물론 헌터 생활을 마감할 각오를 해야했다.

그러나 영민의 의견에 김상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랄 맞은 상황이 오기는 했지만, 그는 채집꾼들과 채집물들을 총 책임지는 책임자였다. 아직 채집할 수 있고, 해야하는 것들이 지천에 널린 상태에서 조금의 위험 때문에 던전을 리셋 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일단 며칠만 버티고 구출조가 나타나면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다시 채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을 하던 영민은 던전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뜻에 따라 루키들을 피해 몸을 숨겼다.

그렇게, 던전 안에서 5일이 지났다.

*     *     *     *     *

“쓰벌. 왜 귀환석이 안 나오는 거야?”

“코볼트 워리어는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채집꾼 새끼들 쳐먹고 배불러서 어디로 숨어버린 건가?”

던전 안을 돌아다니는 것은 오직 다섯 명의 헌터들 뿐이었다. 영민도, 채집꾼들도 모조리 자취를 감추었다.

동시에 자신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이십여 마리의 아머드 코볼트와 코볼트 워리어도 모습을 감췄다는 것이 특이점인데 그 때문인지 귀환석을 구할 방도가 없었다.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스 몬스터가 귀환석을 가지고 있는데, 그 대상인 코볼트 워리어가 사라져버렸으니 이제 몸을 추스르고 놈을 상대할 준비가 되었음에도 어찌해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젠장. 평가가 바닥을 치겠군.”

그 상황에서도 놈들은 평가 점수를 걱정했다. 자신들과 비슷한 시간에 2레벨 던전에 입장한 다른 팀들은 벌써 밖으로 나갔을 텐데 하고 혀를 차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감히 오현모에게 탓을 할 수는 없었다. 무리한 작전을 계획하고 지시한 것은 그였지만 동시에 그들 중 가장 강한 능력을 지닌 것도 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등급의 차이는 있어도 능력의 우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발전 시키는가의 문제일 뿐이다.”라고 이야기 하지만 분명히 능력의 강약, 우열은 존재했다. 위력이 강하든, 전투에 도움이 되든 말이다.

때문에 은연 중 자신들 가운데 가장 높이 올라갈 것도 오현모라는 것을 알았다. D등급이기는 하지만 거의 끝자락의 마나량을 보유했다고 들었으니 어쩌면 곧 C등급에 오를 수도 있겠지.

그러면 자신들과는 한참이나 차이 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감히 거스르거나 반목을 일으킬 용기가 없었다.

부스럭 부스럭

그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나타났다.

혹시 코볼트 워리어인가? 반색을 하며 돌아보던 루키들의 표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너희들인가?”

구출조가 도착한 것이다.

그들의 복장만 보고도 채집꾼은 아니란 것은 확인이 가능한 터라 많은 말이 오가지는 않았다.

“예. 맞습니다.”

루키들은 똥 씹은 표정이 되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제압해.”

“?!”

그들이 무언가를 내려놓은 순간, 구출조가 움직였다. 벼락 같이 들이닥쳤다.

깜짝 놀라 저항하는 이들의 팔을 꺾고, 힘으로 눌렀다. 아예 팔을 쓸 수 없도록 묶어 고유 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원천봉쇄했다. 숙련이 되면 의지만으로 능력을 일으킬 수 있지만 D등급의 루키들에게 그것을 바라기는 무리였다. 아직은 팔이라든지 다리와 같은 매개가 있어야 능력 사용이 용이한 것이다.

“대체 왜‥?!”

눈을 부릅뜨고 다시 봐도 그들의 복장은 아리랑 길드의 그것이 맞았다. 그렇다면 길드가 왜?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멍청한 눈빛으로 현실을 부정하려 할 때, 영민과 김상식. 이하 채집꾼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그들보다 먼저 구출조를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한 것이다.

그들이 벌인 오판과 만행. 그리고 코볼트 워리어가 심장마비로 죽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야기까지.

다른 이도 아니고 벌써 몇 년이나 아리랑 길드를 위해 일을 한 김상식의 증언이었다. 구출조에도 몇 번이나 그와 함께 던전에 들어갔던 이가 있어 이야기가 빨랐다.

때문에 쓸데없는 저항이 있기 전에 그들을 제압부터 한 것이다. 아마도 징계는 생각보다 가벼울 테지만, 적어도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이익‥!”

“이 새끼들이!!”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억울하기만 했는지 제압된 상태에서도 악다구니를 써댔다. 그리고 그 반응이 구출조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했다.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니오. 그러면 지금까지 기다린 의미가 없지요. 채집을 마저 끝내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심증이 굳어졌는지 구출조원들이 다시 한 번 김상식과 채집꾼들에게 물었다. 대답은 같았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나가겠다는 것. 박수를 쳐줘야 마땅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구출조는 제압한 이들을 다시 능력으로 속박하고 원래 그들이 했어야 할 일들을 묵묵히 수행했다.

바로 던전의 청소다.

D등급 헌터만으로도 충분한 일에 C등급 헌터 여럿이 나서니 던전 내의 몬스터가 박멸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거기에 ‘구출’을 위해 온 것인 만큼 ‘감지’에 특화된 헌터도 포함되어 있어서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보호 속에서 채집꾼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특정 인물이 도맡아 해오던 무두질을 영민이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무두질을 전담한다는 것은 숙련도를 쌓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 만큼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불가능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역할이 컸기에 양보 받은 것이다.

그렇게, 던전을 이잡듯 뒤져 취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취하고 나서야 영민들은 던전의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저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겠지. 걸리고 나서 날뛰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죄가 명백하니 활동에 꽤나 제약이 걸릴 거야. 기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루키니까. 다른덴 몰라도 아리랑이 이런 일에는 철저한 편이거든.”

“징계가 끝나고 난 다음에 해코지를 하면 어쩌죠?”

“그건 걱정 마. 이제 저들하고 함께 던전 매칭이 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말을 듣고도 영민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그들과 매칭이 잡히지 않도록 지원부서에서 조율을 해준다는 것인데, 영민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놈들도 아리랑 길드에 있는 한, 다른 채집꾼들이나 헌터들과는 만날 일이 없기야 하겠지만‥.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뭐, 그런 것까지 자세히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지. 영민은 적당히 대꾸를 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영민의 행동 등에 대한 입증이 필요했지만 갱신된 헌터 등급 기록과 스텟 캔디, 장비 선물 등이 있었기에 크게 의심을 받지는 않았다. 구출조가 등장할 때쯤 장비를 길드에서 지급 받은 것으로 슬쩍 바꿔치기 한 덕이다.

사실 그 이외에는 인벤토리에 들어 있어 확인이 불가하니 달리 의심 할 수도 없었다.

덕분에 차후 추가 조사시 필요하면 부르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본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물론 배낭 가득 채운 약초를 판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과연 2레벨 던전이라는 것인지 약초 값도 비싸서, 무려 200만원이 넘는 돈을 한 번에 쥐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온 영민은 몸을 씻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밖으로 나섰다. 코볼트 워리어를 상대하며 느낀 바가 있는 것이다.

‘준비가 필요해.’

코볼트 워리어는 원래 상대하지 못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려웠던 것은 레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본기’와 ‘스킬’의 부족 때문이었다.

미리 반복 행동을 통해 검술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고, 기초적인 액티브 스킬들만 습득해놓았어도 충분히 해볼만 했을 것이라고 강태성의 기억이 외치고 있었다.

‘노가다를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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