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럭키 펀치 (3)
그의 양아치 같은 행동에 선배 채집꾼들이 대신 열을 내며 그를 달랬지만 영민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이런 일이야 괴롭힘을 당하던 예전에 무수히 겪던 일이고, 직접적인 폭행으로 이어진 적도 무수히 많았다.
그에 반해 지금은 어쨌든 신체적 손상을 입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베테랑 채집꾼들이 입을 모은다 해도 그처럼 유망한 인재에게는 가벼운 징계로 끝날 것이 분명했다. 그를 뛰어넘는 슈퍼 루키, 진지한 정도가 목소리를 낸다면 모를까.
‘이 이상 민폐를 끼칠 순 없지.’
그를 떠올린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영민은 괜찮다고 말하고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계속했다.
“조심들 하게.”
오현모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채집꾼들도 계획을 수정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못 미덥기는 하지만, 좀 더 반경을 넓혀 채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영민도 마찬가지였다. 구역을 배정 받고, 다른 채집꾼들과 함께 나아갔다.
“쯧, 조금이라도 실적 올려보겠다고 혈안이 됐군.”
“실적이요?”
“그래. 처음으로 저들끼리 진입을 허락받았으니 조금이라도 더 수익을 올려서 윗분들 눈에 들고 싶은 게지. 그래봐야 위에서 볼 때는 푼돈인데 말이야.”
그제야 이해가 갔다. 헌터라면 사냥에만 집중을 하면 되지 왜 굳이 채집꾼들까지 들들 볶아댔는지.
채집꾼들을 몰아붙여서 채집량이 늘어나면 위에는 자신들이 빠르게 몬스터를 정리하고 채집 환경을 조성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깔대기를 댈 생각이겠지.
그래봐야 2레벨 던전의 수입 따위, 아무리 효율을 높여봐야 3레벨, 4레벨 던전의 수입에 비하면 하찮을 뿐인데 말이다.
“일단 자네는 적당히 시간 좀 더 때우다가 와. 자네를 만만하게 본 모양이니 일찍 돌아가봐야 비슷한 꼴만 당할 테니까.”
정작 영민은 일당제가 아닌 수수료제로 일을 하고 있음에도 개의치 않을 것이 분명해보였는지 선배 채집꾼들은 그를 걱정하고 조언을 해주었다. 김상식은 아예 찢어진 영민의 배낭 대신 자신의 것을 넘겨주었다.
다행인 것은 영민도 일찍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실수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2레벨 던전 씩이나 왔으니 그 효과는 톡톡히 누리는 편이 좋지 않겠나? 던전의 레벨이 다르다는 것은 채집물의 수준도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영민이 시야를 넓히자 빛무리에 싸인, 처음 보는 약초들이 즐비하게 널려있었다.
자, 숙련도를 올릴 시간이다.
영민은 선배가 멀어지자마자 전력을 다해 채집을 시작했다. 약초의 위치야 훤히 보이고, 늘어난 스텟으로 움직임 또한 빨라졌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이미 D등급 강화계 수준으로 육체 능력이 상승한 영민이다. 장비까지 착용하면 어쩜 그 이상의 전투 능력을 보일 수도 있는 만큼 약초와 약초 사이를 이동하는 속도가 경이로웠다. 거기에 약초 채집의 숙련도도 이제 50%를 훌쩍 넘어 어지간한 약초쯤은 손만 대도 뽑혀 나왔다. 그러면서도 숙련도의 보정을 받아 상등품의 품질을 유지했다.
사실 1레벨 던전에서 등장하는 조잡한 약초들 따위로 이 정도의 숙련도를 올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지만 영민의 자비없는 행운이 거의 매 채집시마다 숙련도를 올려준 덕이다.
거기에 사람들은 아직 용도를 잘 모르는 잡초 같은 약초들까지 모조리 뽑아내니 숙련도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쌓여갔다.
“조합.”
오히려 약초들을 조합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지경이다.
조합의 큐브를 이용해 연금술을 펼치는 영민의 행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 동안은 잘 팔리지 않는 약초들을 중심으로 조합을 했다면 이제는 판매가 잘 되는 약초들까지 거침없이 조합했다. 채집꾼은 ‘아이템’의 판매가 제한되어 있지만 ‘헌터’라면 다른 것이다.
자신과 아리랑 길드 간의 계약은 어디까지나 그가 D등급에 도달하기 전까지였고, 그 이후에는 당당히 한 명의 헌터로 인정을 받으며 작별을 고할 것이다.
영민은 그 때를 준비했다.
주력으로 만드는 것은 해독초와 지혈제, 그리고 회복환.
하급 헌터들이 가장 많이 찾고, 자주 사용하는 것들이었다. 포션을 쓰자니 가격이 부담되는 C등급 이하의 헌터들의 애용품들. 동시에 가장 회전도 빠르고 돈이 되는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오현모가 시비 걸지 못하도록 판매용 약초는 따로 배낭에 챙겨두었다. 애초에 코볼트 던전을 돌며 모아둔 양이 상당하지 않던가.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돌아가니 사냥에서 돌아온 오현모가 시비를 걸려다가 괜시리 헛소리를 늘어놓고 타겟을 바꾸었다.
“저런 놈이랑 사흘이나 있어야 하다니··.”
그 모습에 채집꾼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 던전 공략은 사흘 일정. 그 동안 매일 같이, 매 타임마다 놈에게 들들 볶일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팠다.
“별 거 아니라니까. 단 번에 쓸어버리자고.”
“현모씨. 하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만약은 무슨! 내가 놈들 절단을 내버리던 거 못 봤어? 내 윈드 슬러시에 걸리면 보스고 나발이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자 헌터들 쪽에서 분란이 일어났다. 그들 중 가장 주목 받는 루키인 오현모가 찔끔찔끔 나눠 잡을 것 없이 몰이 사냥을 하고, 보스까지 단숨에 해치우자고 강력히 주장하며 나선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능력을 확실히 증명 할 수 있다나?
무리를 짓는 코볼트들의 특성을 생각할 때 거절하는 것이 옳았지만 그 동안 놈들을 압도하며 안전한 사냥을 이어오던 루키들인지라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채집꾼들 사이에도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들이 무리를 한다면 그들만 위험해지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좋아. 조금씩 몰면서 수를 늘려나가도록 하지.”
그나마 절충안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듯 했지만 모두들 어딘가 찝찝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사라지는 즉시, 김상식이 수신호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만일에 대비했다.
실패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쫓겨 올 경우의 행동강령, 전멸 당할 경우의 대처방법에 대해 간단히 브리핑하고 결연한 표정으로 다시 채집을 위해 흩어졌다.
여러 가지 말은 많았지만 결국은 만약의 경우 몸을 숨기고 구출조가 올 때까지 버티라는 것이다. 채집물을 최대한 많이 담기 위해 텅 비워가던 배낭에 약간의 식량을 넣었고 발이 빠른 채집꾼 중 일부는 루키들이 사라진 방향 쪽을 따라 움직였다. 유사시 달려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다.
“괜찮겠지.”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몬스터 소굴 한 가운데로 뛰어들지는 않을 것 아닌가. 몬스터가 과도하게 몰려 마나가 동나지 않는 이상 문제가 발생할 리는 없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채집에 열중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그로부터 3시간 30분 가량이 지난 후부터였다.
“이거, 이상한데?”
루키들은 약속 시간보다 30분이 더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그들의 감시역을 겸해 움직인 발빠른 채집꾼도 소식이 끊겼다.
때문에 채집꾼들 사이에도 이상한 기류가 감돌았다. 경험으로, 본능으로 위기를 감지한 것이다.
“‘그거’ 한 번 써봐.”
“그걸요? 한 번 쓰면 죽어나는데··.”
모두의 초조한 모습에 김상식이 한 사람에게 지시를 내렸다. 살짝 못마땅한 표정이 사내.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곧 얼굴이 시뻘개 시도록 정신을 집중했다..
“염시.”
고유 능력을 발현한 것이다. 지정한 누군가의 상황을 훔쳐보는 능력. 마나량이 부족한 탓에 간신히 간신히 힘을 끌어 모아야 겨우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두어번을 외치고 나서야 사내는 눈을 번쩍 떴다.
“빌어먹을.”
“왜, 무슨 일이야?”
“빨리 튀어야겠수다. 애송이들이 잘못 건드렸어.”
“?”
너무나 힘을 쏟은 탓인지 기진맥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했지만 사내는 간신히 몸을 가누며 온 힘을 다해 소식을 전했다.
염시를 통해 본 루키들의 상황을 최대한 간략하게 전달했다.
“코볼트 워리어가 낀 무리를 건드렸어. 이리로 도망··. 서둘러야····.”
휘청
힘이 다해 쓰러지는 그를 다른 이가 받쳐 들었다.
상황 파악은 끝난 상황. 이제 김상식의 결정만이 남았다.
“각자 흩어져서 몸을 숨긴다. 상황이 정리되거나 안전지대가 확보되면 연락할 테니까 그때까지는 죽은 듯이 숨어있어.”
“조장님은요?”
“나는 남아야지. 루키들이 놈들을 따돌리고 올지도 모르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그러라고 내가 너희들보다 돈을 더 받는 거야. 잔말 말고 다들 피해.”
단호한 김상식의 말에 채집꾼들은 쭈뼛쭈뼛 눈치를 보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숲속으로 가는 대신 베이스 캠프를 해체하는 것이다.
언제라도 만들 수 있고 그다지 물품이 많이 들어가지도 않지만 몇몇의 물건은 제법 고가인 까닭이다. 김상식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 중에는 짐을 지키려는 의도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채집꾼들은 말 없이 베이스 캠프를 해체하고 물품들을 나누어 짊어졌다.
영민도 자진해서 한 짐 짊어졌다. 이미 육체능력으로는 E등급을 넘어섰기에 남들보다 더 무겁게 짊어져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여차하면 인벤토리에 넣는 것으로 무게를 0으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럼, 갑니다.”
“살아서 봅시다.”
“나가면 제가 크게 한 턱 낼게요. 조장!”
“컹! 컹!”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아머드 코볼트 떼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달렸다.
‘싸울까?’
영민은 멀어지는 김상식의 모습을 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만약 아머드 코볼트 떼가 베이스 캠프를 덮치면 김상식은 죽는다. 반드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설마하니 이쪽으로 도망쳐온 놈들이 목숨 걸고 그를 지켜줄 리 없지 않은가?
만약 마지막에라도 방향을 틀어 피해간다면 다행이지만 두 마리 이상하고만 마주쳐도 E등급의 능력으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더구나 김상식이 자리에 남은 이유도 고유 능력이 ‘메시지’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일정 범위 내에 있는 인식된 사람들에게 텔레파시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그의 능력은 전투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커엉! 크르르릉!”
아머드 코볼트의 울부짖음이 더욱 가까워졌다. 이제 몇 분 뒤면 들이닥칠 상황. 결정을 내려야 했다.
‘돌아가자.’
영민은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달려가며 자신의 상태를 전환시켰다.
모든 짐들은 인벤토리로. 무기와 방어구를 장착 상태로.
명령어에 의해 빠른 태세 전환이 이루어지며 한 명의 어엿한 헌터가 나타났다.
“다 왔다!”
“젠장, 없잖아!?”
상처를 입은 채로 베이스 캠프에 도착한 루키들이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이곳이라면 채집꾼들이 모여 있을 것이고, 그들을 방패 삼아 몸을 빼낼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틀어진 것.
“어떻게 된 겁니까!”
김상식이 소리쳐보지만 이미 그들은 듣지 않았다.
“일단 피했다가 다시 모인다! 수가 줄었으니 다음번에는 잡을 수 있어!”
그러나 멈출 수도 없었다. 오현모의 지시에 따라 김상식의 바로 앞에서 사방으로 흩어진 루키들은 각자의 살길을 도모하며 속도를 높였다. 자신들과 같은 속도를 낼 수 없는 김상식을 제물로 삼은 것이다.
조금의 짬만 있으면 얼마든지 나무위로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올라갈 나무까지 봐둔 김상식이지만 루키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시선을 돌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주 조금의 시간끌기만 해줘도 충분할 텐데, 그들은 시간끌기는커녕 오히려 김강식을 빠르게 스치며 행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컹! 컹!”
몇몇은 놈들을 쫓아갔지만 대다수의 아머드 코볼트가 타겟을 바꾸었다. 쫓기 힘든 루키들보다 멈춰서있는 먹잇감을 택한 것이다.
“저리 꺼져, 이 똥개들아!”
당황스러웠지만, 조장 씩이나 되는 인물 답게 김상식은 상황 판단이 빨랐다. 만약을 대비해 미리 준비한 횃불과 단검을 휘저으며 놈들의 접근을 막았다.
도망친다? 사냥한다? 어느 쪽도 아니었다. 단지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채집꾼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아저씨, 재수 없었다고 생각해!”
그런 그의 필사적인 저항을 보며 오현모는 아무렇지 않게 몸을 피했다. 바람술사의 능력 중 하나인 ‘윈드 워크’를 이용해 스스로의 속도를 더욱 높이면서.
동일한 능력을 김상식에게 걸어줄 수도 있지만, 이미 버리기로 마음 먹은 이상 그런 짓을 할 리 없었다.
“크르르르르르··.”
김상식의 위협적인 기세에 경계하는지 아머드 코볼트들은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그러나 물러나지도 않았다. 그를 천천히 말려죽이듯, 그가 등진 나무까지 포위하며 서서히 좁혀오고 있었다.
“이쪽이다!”
그때였다. 나무를 타고 점프한 영민이 정면으로 오던 아머드 코볼트의 정수리를 쪼갰다.
[크리티컬!]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되기까지 하는 크리티컬이 터지며 놈의 마빡이 쩍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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