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럭키 펀치 (2)
사용 가능한 마나량이 증가했기 때문일까? 생산 스킬 이외에 못 보던 스킬이 저절로 생겨나 있었다. 이는 강태성의 기억에도 없는 것이다.
“럭키 펀치?”
그런데 어째 떨떠름한 이름. 설명을 보니 더 가관이었다.
[럭키 펀치]
얼떨결에 내지른 주먹이 상대의 급소를 때린다.
- 1(+운 수치*0.1)% 확률로 크리티컬 데미지를 준다.
- 크리티컬 데미지의 경우 기존의 계산법과 달리, 운 수치에 비례하여 위력이 증폭된다.
- 소모 마나 : 300
하지만 위력만큼은 상상이 안 됐다. 운 수치에 비례하는 크리티컬 데미지? 그럼 운 수치가 Max인 영민은?
비율은 알 수 없으나 꽤 높은 데미지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마나도 300씩이나 잡아먹으니까. 어지간한 D등급 헌터들의 스킬이 마나를 100~150 정도씩 소모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꽤나 강력한 스킬이거나 어마어마하게 효율이 안 좋거나. 둘 중 하나였다.
“써보면 알겠지.”
어쨌든 공격 스킬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의 마나로는 딱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일단은 기억만 해두고 집결장소로 계속해서 이동했다.
‘어? 쟤들은··.’
모여든 인원은 제법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채집꾼들 중 절반쯤은 지난 번 봤던 얼굴들이고 사냥을 주도할 헌터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모 역할을 할 C등급 이상의 헌터는 없었지만 첫 헌팅 때 보았던 10명의 루키 중 다섯이 팀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도 코볼트 던전이라니까··.’
어쨌든 그레이 울프도 잡았던 자들인데 고작 코볼트를 못 잡을까. 불안하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여차하면 장비만 착용해도 자신에게 위해가 가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갑시다.”
헌터들 중에서도 리더로 보이는 녀석이 앞장서서 던전 안으로 입장했다.
“전투 준비!”
자기 몫의 짐가방을 짊어지고 따라 들어간 영민은, 입장하자마자 들려온 다급한 음성에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초짜라고 몰래카메라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급작스러운 상황.
먼저 들어간 선배 채집꾼들은 이미 등짐을 벗어 몸을 가리고 서있었다. 여차하면 방패삼겠다는 듯이. 그 모습에 영민도 재빨리 등짐을 벗어 앞으로 세웠다.
“차핫!”
그러나 다행히 그것을 써먹는 일은 없었다. 나타난 몬스터의 수가 적기도 했고, 아리랑 길드의 루키 다섯명이 열심히 싸워준 덕이다.
그러나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도 영민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못볼 것을 봤다는 듯, 눈만 껌벅거렸다.
“그냥 코볼트가··아니라고?”
그가 목격하고, 저들이 사냥한 몬스터는 2레벨 던전에서 나온다는 아머드 코볼트가 분명했다.
“아머드 코볼트라니.”
1레벨 던전의 코볼트 전사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일반 코볼트보다는 월등한 존재. 그런 놈들이 셋이나 나타난 것이다.
비록 얼마 가지 못해 D등급 헌터들에게 정리당하기는 했지만 이곳이 1레벨 던전이 아니라는 것부터가 영민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서, 선배님. 여기 설마 2레벨 던전인 건가요?”
베이스 캠프 설치를 미루고 그들이 주변을 정리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영민은 안면이 있는 다른 선배 채집꾼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응? 신입 자네··. 설마 던전 레벨도 확인하지 않고 지원한 건가?”
그는 영민의 표정을 확인하더니 푸홧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자네 같은 친구들이 꼭 있지. 코볼트 던전이니 더 그럴 수 있겠어. 하지만 잘 봐야한다네. 코볼트가 1레벨 던전에 주로 출몰하는 몬스터인 것은 맞지만 2레벨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거든. 가끔 착각하고 지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헌터라면 제한에 걸리겠지만 채집꾼이라면 얼떨결에 위험 레벨에 들어가는 수가 있어. 이번에는 그나마 2레벨이지만 말이야.”
“아, 예··.”
2레벨 던전이라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자 제법 긴장이 됐지만 영민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최대한 냉정을 찾았다.
어차피 채집꾼으로 지원한 이상 직접 전투를 치를 일도 없을 테고 오히려 2레벨 몬스터들의 능력을 흡수할 좋은 기회로 볼 수도 있었다.
강태성의 기억을 뒤져보더라도 2레벨 던전. 그것도 아머드 코볼트 정도라면 그리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코볼트 전사처럼 무장을 하고 두 발로 걷는 진화된 개체이기는 하지만, 코볼트 전사에는 미치지 못하는 전투력을 지녔으니까. 단순히 전투력만 놓고 보자면 2레벨 몬스터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놈들이다.
문제라면 코볼트 투사, 혹은 코볼트 워리어로 불리는 보스 몬스터인데 이 놈은 최소 D등급 헌터 셋 정도는 달라붙어야 잡을 수 있을 만큼 확실히 1레벨 던전의 수준을 넘어선 존재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2레벨 중에서는 말단에 속할 뿐이지만.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일단 루키들이기는 하지만 선별된 능력의 D등급 헌터가 다섯이나 되니까. 한 번에 몰려들지만 않으면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여차하면 자신만 믿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채집꾼의 역할로 따라오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헌터였고, 부족한 마나지만 각자의 고유 능력을 한 두 번쯤은 사용 할 수 있는 것이다.
‘채집꾼이 그래봤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명색이 아리랑 길드의 지원부서인 만큼 유사시에는 전투인력이 될 수 있을 만큼 능력 있는 자들도 많았다. 아니면 방어나 보조에 특화된 능력이거나.
게다가 영민이 낙하산이라는 것쯤은 다들 들어 알고 있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그를 지켜주겠다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어찌되었건 그들의 따뜻한 배려에 영민은 또 한 번 감동했다.
그 사이 주변이 정리되고, 선배들의 숙련된 지시가 이어졌다.
“오, 신입 제법인데? 그 동안 연습 좀 했나봐?”
영민 역시 한 팔 도와 거들었다. 여전히 막내인지라 불 피우기부터 기타 잡다한 일들을 도맡았지만, 캠핑 숙련도를 43.7%까지 끌어올려둔 터라 어지간한 숙련자만큼이나 빠르게 일처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손도 빠르고, 알아서 일을 찾아하니 예쁨을 받는 것이야 당연하다.
덕분에 베이스 캠프가 빠르게 차려지고, 물을 끓이는 등 간단한 작업들까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이제 채집을 시작하면 되죠? 언제까지 모일까요?”
“아니. 잠깐. 채집은 좀 미루자고.”
“예?”
숙련도 올리는 재미에 푹 빠진 영민이 당장이라도 나서려고 들자 선배 채집꾼 중 하나가 손을 들어 그를 말렸다.
“딱 봐도 초짜잖아? 주변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을 수가 있어. 적당히 채집하는 척 하면서 시간을 좀 끌자고.”
그는 턱짓으로 사냥 채비를 하는 D등급 헌터들을 가리키곤 슬쩍 눈을 돌리며 입으로만 주의를 주었다.
안철현처럼 베테랑이 주도하거나 끼어있다면 모를까, 이제 막 능력을 개화해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을 완전히 믿는 것은 지나친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이었다.
때문에 채집꾼들은 베테랑들을 중심으로 의견을 맞추며 채집 반경과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추었다.
아머드 코볼트 한 두 마리라면 채집꾼들끼리도 힘을 합쳐 어떻게든 상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모두가 뭉쳐있을 때의 이야기. 누가 뭐래도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적당히 베이스 캠프를 정비하고, 채집에 나서는 시늉을 하자 다섯 루키들은 재차 사냥에 나섰다. 아머드 코볼트를 한 번 상대해보더니 자신감이 붙은 모양. 긴장도 풀려 보이고 개중 하나는 나타나기만 하면 자기가 몽땅 곤죽을 만들어놓겠다며 허세를 부려댔다.
“선배님, 공략은 가능하겠죠?”
“그래. 문제없을 거야. 이번 애들은 좀 모자라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아리랑 길드의 루키들이니까.”
다른 길드도 아니고, 아리랑 같은 대형 길드의 루키들이니 가진 고유 능력도 남다를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이들이 딱히 능력의 상성도 타지 않는 아머드 코볼트 던전 따위에 무너질리 없겠지.
그래도 어쩐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지우며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자 선배 채집꾼은 영민의 어깨를 탁 치며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정 안되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숨자고. 5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면 구출조가 투입 될 거야.”
그제야 영민도 조금 얼굴이 풀어졌다. 고작 2레벨 던전 수준의 난이도에서 5일 이상 귀환하지 않는다면 아리랑 길드의 구출조가 투입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C등급의 헌터로 이루어진 그들이 나타난다면 설사 던전 전체가 아머드 코볼트로 가득 차 있더라도 몰살시키고 자신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
대신 루키들의 평판은 형편 없이 떨어지겠지.
그렇게 적당히 시늉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 사냥을 나섰던 루키들이 돌아왔다.
“이 개새끼들은 다 어디로 숨은 거야?”
투덜거리며 몇 안 되는 아머드 코볼트의 시체를 쌓아놓는 것이 방향을 잘 못 잡았거나 탐지 능력이 형편없는 모양이다.
“뭘 봐? 물이나 가져와!”
그러고는 괜히 채집꾼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 꼬장꼬장한 외침에 다른 채집꾼들은 납작 몸을 엎드렸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그에게 다가가 물을 부어 씻기고, 시체들을 인계 받았다.
아리랑 같은 대형 길드이니 그나마 이 정도라도 대우를 받지, 일반적으로 채집꾼들은 헌터들에게 목숨까지 맡기는 ‘슈퍼 을’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누구도 토를 달거나 그와 부딪히려 하지 않았다.
그들도 이제 막 헌터가 되기는 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늘상 들어와서인지 사람들을 막 부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아니면 지난 20일 남짓 동안 자연스레 몸에 익은 건가?’
자신이야 휴식 기간을 최대한으로 늘려 던전에 1번 밖에 더 입장하지 않았지만 저들은 다를 수 있었다. 확실히 보호자를 데리고 1레벨 던전에 입장 하던 이들이 단독으로 팀을 꾸려 2레벨 던전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 사이에 여러 시험대가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어이, 거기. 너!”
다른 이들처럼 그들을 최대한 외면하며 시선이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하던 것이 무색하게 거들먹거리던 루키 하나가 영민을 불러세웠다.
“그래. 너. 뒤에 보지 말고 너!”
영민이 모르는 척 두리번거리자 콕 집어 소리치는 그였다.
‘오현모라고 했던가?’
방출계 바람 칼날의 고유 능력을 지닌 바람술사 오현모.
영민은 그가 첫 헌팅에서도 물을 가져오라며 자신에게 구박을 했던 대상임을 확인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너, 초짜지? 어리버리한 게 딱 초짜구만.”
‘지는····.’
영민은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간신히 참으며 맞습니다. 하고 대꾸를 했다. 눈빛을 보니 자신을 기억하는 것이 분명했다.
“보니까 하는 거 없이 노는 것 같던데 우리 사냥 간 동안 얼마나 캤어?”
“제가 아직 미숙해서 조금··.”
“까봐.”
“예?”
“까보라고. 얼마나 캤는지.”
“채집물을 보시는 건 이쪽 규칙상···.”
대뜸 배낭을 뒤집어 영민의 채집량을 확인하려는 행동에 다른 채집꾼들도 화들짝 놀랐다. 채집물을 중도에 확인하지 않는 것은 채집꾼들 사이의 불문율일 뿐 아니라 헌터들 역시 존중해주는 일인 것이다.
“니들, 우리가 목숨 걸고 싸우는 동안 놀고 있던 거 아니야?”
오현모는 눈알을 뒤집으며 영민의 배낭을 뺏으려 이리저리 힘을 썼다. 처음으로 저들끼리 나오니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제 힘 스텟이 제법 되는 영민이 강화계도 아닌 그에게 휘둘릴 리 없다.
“이 새끼가 반항을 해?!”
아무리 용을 써도 뜻대로 되지 않자 더욱 열이 오른 오현모.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한 그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자 참다못한 채집꾼 조장, 김상식이 나섰다.
“그만 하시지요. 채집꾼들의 채집량을 중간 집계하지 않는 것은 채집꾼들 사이에서도 불문율 같은 것입니다. 다른 헌터분들도 이해해주시는 일이고요.”
“이잇··.”
오현모의 어린 눈빛이 그를 향하더니 분노와 함께 잠시 흔들렸다. 채집꾼 조장이라면 아직 루키에 불과한 그가 함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고작 2레벨 던전이긴 하지만 조장까지 맡을 정도의 경험자라면 자신보다 까마득히 높은 분들과 함께 헌팅을 나가기도 할 테니까.
실제로 그는 안철현과 서로 존중해주는 사이가 아니던가? 어쩌면 더한 인맥이 있을 지도 몰랐다.
“흥. 앞으로 지켜볼 테니까 똑바로 해. 니들이 적당히 하는 건 길드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니까. 내가 지켜보겠어.”
과잉충성인지 핑곗거리인지 모를 말을 지껄이며 화를 삭인 오현모는 돌아서는 척 슬쩍 움직이며 마나를 움직였다.
부욱
후두두둑
“오현모님!”
날카로운 바람이 영민의 배낭 밑바닥을 긁었다. 배낭이 대번에 배를 벌리며 품고 있던 것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바람술사인 그만이 할 수 있는 장난질.
그 모습에 채집꾼 조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이쿠, 거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지. 실수. 안 그래?”
그러나 오현모는 가소롭다는 듯 고개를 뻣 들고 돌아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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