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럭키 펀치 (1)
추가로 몇 가지 물품을 구입해 집으로 돌아온 영민은 곧장 던전에 진입했다. 그리고 총 5일동안 연달아 두 번을 더 공략했다. 예상보다도 하루가 더 빨랐다.
사실 공략이라기 보다는 ‘파밍’ 또는 ‘노가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미 코볼트들은 날파리처럼 귀찮은 존재에 불과했고 코볼트 전사 역시 계속해서 레벨 업을 거듭하는 영민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까.
강태성의 기억을 훑어보면 전투력이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닌 이 레벨 구간에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 영민은 그야말로 쾌속 질주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순전히 랜덤, 운빨이라고 기억되는 숙련도까지 쭉쭉 올라서 그가 회귀 전 예상했던 수준을 한참이나 앞서가고 있었다.
때문에 이 기억이 정말 옳은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만약 약초 조합법처럼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것들이 아니었다면 그저 꿈처럼 여겼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들어가기는 무리고··.”
하루를 남기고 오전에 던전에서 빠져나온 영민은 오랜만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하루, 아니 반나절 남짓의 시간. 곰곰이 생각을 하던 영민은 하릴 없이 거리를 배회했다.
일단 10만원 어치 로또 복권을 사고, 스마트폰을 검색해 맛집이라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애인도, 친구도 없는 그에게는 시간이 있고 돈이 있어도 할만한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능력 테스트를 다시 받아볼까?”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레벨 업과 보너스 포인트로 능력을 끌어올린 지금, 자신은 아직도 F등급의 헌터일까? 하는 것이었다.
또한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마력 스텟. 체력의 경우 1 스텟 당 10의 HP(Hit Point)가 상승했다. 그렇다면 마력도 비슷하지 않을까? 마력 스텟은 막 각성했을 당시와 다르지 않지만 지금은 여분의 보너스 포인트가 있었다.
당장 코볼트를 상대로는 필요가 없으니 아껴둔 덕이다. 이걸 마력 스텟에 투자하면 MP(Mana Point)가 상승하지 않을까?
능력 테스트 당시 나온 수치도 50이었으니 MP가 상승하면 등급 테스트 상의 수치도 달라질지 몰랐다. 아니, 아마 확실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순간 강태성의 기억이 밀려들었다. 게이머의 능력에 대한 지식 중 일부였다.
“으음, 그렇군.”
영민의 추측은 정확했다. 마력 스텟을 올리면 얼마든지 등급을 올릴 수 있었다. 다만 게이머라는 능력의 특성상 보너스 포인트의 양은 제한되어 있고, 무작정 등급만 올리려 마력 스텟에 올인했다가는 정작 등급만 높은 헛껍데기가 될 수 있었다.
때문에 강태성의 계획에서도 마력 스텟은 의심을 받지 않을 최소한인 10까지만 일단 올려두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사실 마나가 있어도 써먹을 만한 스킬을 얻는데 꽤나 시간이 필요했다.
“관심 받아 좋을 건 없지.”
그 계획에 영민도 동의했다. 확실히 대기만성형인 게이머와 드레인의 특성상, 초반에 주목을 받아서 좋을 것은 없었다.
물론 이 능력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강태성의 기억을 뒤져봐도 이용을 당하면 당했지, 그런 일은 없을 터였다.
영민은 그대로 인근의 헌터협회로 찾아가 능력 테스트를 다시 받았다.
마력 스텟에 5를 투자해 10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마나량 100! E등급!”
역시나, 등급이 바뀌었다. 간신히 E등급에 턱걸이한 것에 불과했지만 동시에 더 높은 등급으로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기에 의미가 있었다.
마나량이 딱 맞춰 100으로 표시되는 것은 검사 담당 헌터에게도 신기했는지 흥미롭게 영민을 보기는 했지만 관심이 몇 초를 넘기기는 힘들었다.
특이하다한들 고작 E등급에 불과했으니까.
영민이 굳이 처음 검사를 받았던 건대지부를 찾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 마나량의 상승이지만 어쨌든 2배나 오른 것이고, 공식적으로는 1레벨 던전에 단 한 번 들어갔을 뿐인 영민이니 관심을 받을까 염려한 것이다.
계열 테스트에서는 여전히 흑색이 나타났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자신의 고유 능력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영민의 기록은 마나량 100의 평범한(?) E등급 헌터인 것으로 덮어씌워졌다.
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헌터증을 재발급 받으니 이미 저녁 시간이 되었으니까.
영민은 배불리 먹고 호텔방에 누워 컨디션 조절을 했다.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익히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는 쪽에 투자했다.
바로 강태성의 기억.
파편화된 기억을 다수 가지고 있지만 그야말로 조각 조각에 불과해서,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알아가는 수준인 것이다.
때문에 이를테면 ‘조각 모음’이 필요했다. 어떠한 상황에 닥쳐서야 알게 되는 것과, 미리 알고 대처하는 것은 분명한 결과의 차이를 낳게 되니까.
적어도 강태성이 계획했던 시나리오가 무엇인지는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강태성의 계획, 1년 내에 일어날 일들. 그리고 게이머 능력의 육성법.’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천천히. 영민은 밤새도록 수많은 기억들을 흡수해갔다.
워낙 방대한 기억과 디테일한 계획들이었기에 기억의 흡수를 단 하루에 끝낸다는 것은 택도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기간을 한정했음에도 그랬다.
결국 영민은 다음날부터 시작 된 1레벨 던전 공략 내내, 그리고 다시 돌아와 10일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꼬박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소모했다.
“잘 하고 있다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
자신이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를 파악한 영민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잘해내고 있었다. 강태성이 계획했던 그것보다도 더!
기억 속의 계획에서는 아리랑 같은 대형 길드에 소속되어 안정적이고 정기적인 던전 진입을 할 수도 없었고, 드레인 같은 능력도 없어 생산직 스킬 사용시 쥐꼬리만큼 획득하는 경험치를 이용해 정말이지 개고생을 해서 레벨 업을 해야했다.
그나마 서브 플랜 중에 하나는 미래의 기억과 지식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인 뒤, 그걸로 용병을 사거나 재료 아이템을 구입해 노가다를 하는 것인데 강태성 역시 자신처럼 이 시기에는 쥐뿔도 없는 신세라는 것이 변수였다.
돈 놓고 돈 먹기라는 게 기반이 되는 밑천이 있어야 뭘 해도 할 수가 있는 법이니까.
그런 것에 비하면 자신은 아주 평탄하게, 고속주행을 하듯 달려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레벨이 43이었고, 코볼트 던전은 아직 4번이나 더 독식할 수 있었으며 언제든 채집꾼으로서 던전에 입장 할 수 있었다.
아니, 원한다면 보너스 포인트를 찍고 언제든지 D등급의 헌터로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도 있었다. 코볼트 던전이 이미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더 이상 보너스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고 모아두었으니까.
거기에 자본금도 있다. 남은 유산과 복권 당첨금을 포함해 2천 5백만원을 조금 넘는,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돈이 통장에 잠들어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드레인을 통해 습득한 스텟까지 더하면 강태성의 계획보다도 최소 1년은 빠른 셈이다.
“아직은 만족 할 수 없지.”
묘한 흥분을 만끽하던 영민은 곧 스스로를 추스르고 아리랑 길드의 본사로 향했다. 강태성이 계획한 것보다도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래봤자 저렙이다. 아직 갈 길은 멀었고, 진짜 힘을 받고 가속도가 붙는 구간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본격적으로 몸을 써서 레벨을 올려나가야하는 레벨 구간에 이른다면 자신이 강태성보다 우월하기 힘들 것은 분명했다. 그는 산전수전 다 겪어본 헌터 중의 헌터였고, 자신은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아무리 기억 속에 ‘몸을 쓰는 방법’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그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열심히 해야지.”
결국 영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레벨을 올리는 것 밖에 없었다. 레벨이 깡패라는 말은 모든 게임의 진리가 아닌가?
부족한 전투 센스는 레벨과 운으로 메우는 수밖에.
“권영민씨?”
“네. 전데요?”
예약을 잡은 던전에 입장하기 위해 아리랑 길드의 본사에 조금 일찍 도착한 영민은 자신을 찾는 누군가를 맞이했다.
“이것 받으세요.”
“네?”
다짜고짜 어떤 물건들을 건네는 그는 자신이 지원부서 보급계 소속임을 밝히며 물건을 온전히 건네받았다는 사인을 요구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일단 사인을 한 영민. 그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살펴본 아이템들은 꽤나 의외의 것이었다.
“스텟 캔디?”
강태성의 기억에도 있는 물건이다. 특정한 스텟을 랜덤하게 상승시켜주는 능력을 지닌 소모형 아이템. 알사탕처럼 생겨서 깨물어 먹으면 되는데, 깨무는 즉시 일정한 스텟 상승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 중에서도 마력을 올려주는 스텟 캔디.
스텟을 일정 수치까지 맞춰주는 ‘스텟 볼’에 비하면 소량의 증가를 보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마나를 올려준다는 이유만으로 상당한 금액을 주어야만 겨우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것이 무려 3개. 이것만으로도 아리랑 길드는 진지한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대형 길드답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추가적으로 몇 가지 장비 아이템까지 쥐어주었다.
“이 정도라면··.”
영민이 코볼트 던전에서 구하고, 조합해서 만든 것에는 못 미치지만 이 정도라면 E등급이라 해도 1레벨 던전의 하위 몬스터 쯤은 상대해봄직한 수준이었다. 당장 어디가서 D등급이라고 뻥을 치고 약한 축에 속하는 1레벨 던전에 합류해도 크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 정도. 거기서 경험을 쌓고, 몬스터를 죽이며 마나를 흡수해간다면 진지한이 장담했던 대로 D등급까지 오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마음 써 준 진지한이 한없이 고마워졌다.
“지한이 형. 고맙습니다.”
강태성의 기억에 이름이 없다면 후에까지 이름을 날릴 만큼 큰 인물이 되지는 못했거나 그 전에 죽었다는 의미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고 말겠다는 작은 다짐을 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콰득 콰드득
아리랑 길드의 신입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다면 1레벨에 한해 서브 헌터로 입장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겠다는 쪽지까지 읽은 영민은 일단 인벤토리에 받은 장비들을 넣고 스텟 캔디를 깨물었다.
박하사탕 같은 화한 느낌과 함께 미증유의 힘이 몸 안에 깃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마나인 모양.
슬쩍 상태창을 열어 살피니 무려 300이나 되는 마나가 증가해있었다. 스텟으로 따져도 30이나 되는 상당한 수치였다.
도합 400마나. 마나량 500부터를 D등급 헌터라고 부르니 단숨에 근접해온 셈이었다.
“운이··. 장난이 아니네.”
화들짝 놀란 영민은 스스로가 가진 ‘운’ 수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강태성의 기억에 있는 스텟 캔디는 1~100까지, 랜덤한 수치만큼 마나를 증가시켜주는 물건인 것이다. 대부분이 하나당 20~30수준의 상승효과를 보는데 영민은 세 개 모두 최고치인 100을 찍었다.
일반적으로 ‘행운’이라는 스텟을 보조 또는 있으나 마나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생각하는데 이 행운 수치가 Max를 찍으니 말도 안 되는 결과들을 가져왔다.
“응?”
그때, 상태창 중 한 곳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스킬 창이다.
“스킬이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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