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 MAX-13화 (13/177)

13화 - 세트 아이템 (3)

영민이 던전을 빠져나온 것은 입장한지 삼일 째 되는 날이었다. 약초를 캐고, 베이스 캠프를 만들고, 간혹 나타나는 코볼트 잔당을 때려잡는데 무려 이틀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서두르자면 더 빠르게도 가능했겠지만 이것저것 실험도 하고 스킬 숙련도 노가다를 병행한 탓이다.

더불어 코볼트의 경우 영민이 쓸어버린 마을에 많은 수가 모여 있었을 뿐,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보스이자 귀환석을 품고 있는 코볼트 전사가 그곳에 있었을 뿐 코볼트 자체는 던전 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긴, 코볼트와 그레이 울프의 전투력 차이가 있는데 개체수가 비슷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던전의 레벨이 다른 것도 아니고 같은 1레벨 던전에서.

덕분에 처음 던전을 클리어 했을 때, 운이 좋으면서도 나빴다는 것을 깨달았다.

채집할 정신까지는 없었다 해도 귀환석을 쓰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나머지 코볼트들을 처치한 경험치와 아이템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까. 아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곧장 코볼트 마을을 끝장내면서 귀환석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간혹 보스몬스터가 아닌 일반 몬스터들이 귀환석을 가지고 있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화마가 덮치는데 귀환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자신도 함께 끝장이 났을지 몰랐다.

또 한 가지. 그러한 일련의 사실들을 인지하는 순간 관련 정보와 기억들이 쏟아졌다. 기억이 불완전한 탓에 모든 것을 한 번에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정확한 의문이나 정보를 떠올려야만 조건부로 정보의 습득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이제 아홉 번 남았네.”

초기화를 뜻하는 녹색의 빛이 번뜩이는 던전 입구를 보며 영민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앞으로 아홉 번. 그 뒤에는 E등급, 아니 D등급에 올라 사람들에게 무시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으으. 일단은 좀 씻어야 할텐데··.”

그러던 것도 잠시, 일단은 씻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베이스 캠프야 수십 개를 만들어 놓고 나왔다지만 그 안에서 샤워를 할 방법은 마땅치 않은 탓이다. 방어구를 벗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씻을만한 폭포나 샘 같은 것도 없었다. 맛있게 먹겠답시고 탄산을 잔뜩 싸짊어지고 가지고 간 덕분에 보유한 물로는 간단한 세면 정도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다음에는 꼭 1.5L짜리 생수를, 아니 정수기 생수통을 가지고 들어와야지.”

쏴아아아-

그때였다. 그럼 당장 온 몸에 들러붙은 이 피딱지들은 어떻게하지? 하며 고민하던 영민의 귀에 시원스레 쏟아지는 빗소리가 들렸다.

“오, 럭키!”

이 말을 자신이 써본 적이 있기는 하던가? 새삼 묘한 기분이 들며 당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온몸으로 비를 맞았다.

쏴아아아-

세찬 빗줄기에 핏물들이 어지간히 씻겨나간다.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고, 그 간의 불운까지 모조리 씻겨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가벼운 흥분까지 일었다.

그러다 문득, 영민이 눈을 번쩍 떴다.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아, 산성비··.”

얼마 전 봤던 뉴스가 떠오른다. 요즘 산성비가 장난 아니라고 했는데··.

“머리가 다 빠지는 건 아니겠지?”

숱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제야 후다닥 머리를 가린 영민은 가까운 건물 아래로 몸을 피했다.

말라붙은 핏물이 어느 정도 씻겨나간 즉시 장비를 벗어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탓에 크게 시선을 끌지도 않았다. 보였다 해도 헌터겠구나 하고 말테지만.

영민은 비가 그칠 때까지 잠시 처마 밑에서 피했다가 근처 호텔 방을 잡고 휴식을 취했다.

“으음, 잔고가····바닥이네.”

한참을 자고 일어난 영민은 상황을 정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통장 잔고였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은 제법 되었지만 온갖 사건들을 수습하느라 대부분 써버린 상태였다. 거기에 무리해서 호텔방까지 이용하느라 잔고는 이제 오백만원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얼마 전 채집꾼으로 던전에 들어가 번 수입은 던전 입장을 준비하는데 다 써버렸으니 그게 전재산이라는 소리였다.

“던전을 계속 클리어하자면 계속 밖에서 묵어야 할 거고, 갈아 입을 옷 같은 것도 사야하지. 그리고··.”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통장이 바닥나도록 돈을 쓰기만 하며 버텨야 한다는 소리. 막막한 상황에 영민은 돈 벌 구석을 떠올려보았다.

미래의 기억을 이용한 시세 차익?

가능은 하다. 하지만 시간과 자본금이 필요했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영민에게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

그렇다면 여분의 아이템 판매는 어떨까?

현재 인벤토리에는 각종 약초들을 조합해 만든 몇 가지 아이템들이 들어차있고, 그 밖에 여분의 장비 아이템을 몇 개나 더 모았다. 조합한 아이템은 몰라도 장비들은 암시장을 통해 판매한다면 제법 값을 받을 수 있을 터. 그거라면 아홉 번의 던전 출입 동안 상당히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 또한 문제가 있었다. 암시장이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 접선 방법 등은 기억을 통해 알고 있지만 수완이나 눈치는 물론 자신을 지킬 최소한의 무력을 갖추지 못하면 물건을 팔러 갔다가 스스로가 물건이 되어 시장에 나올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강태성의 기억을 뒤져봐도 아직은 리스크가 크니 패스.

그렇다면 다른 돈 나올 구석은··.

“··없네.”

다시 채집꾼 일을 하면서, 적당히 인벤토리에서 약초를 빼내 팔아볼까? 그것이 가장 현실성 있었지만 한 번에 벌 수 있는 돈도 적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코볼트 던전을 돌려던 영민의 계획과는 맞지 않는 선택. 그럼 어떻게 하지? 어디 복권이라도 당첨되면 좋을텐데··.

“에··. 복권?”

그러고 보니 운이 최고치라고 하지 않았나? 던전 이외의 곳에서도 적용이 되는지는 몰랐지만 아니라고도 할 수 없었다. 헌터들이 던전 안에서만 능력을 사용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한 번 사볼까?”

사실 영민이라고 복권을 사본 적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당첨이 되어본 적도 있다. 그 어렵다는 로또 복권에 꽤 여러번이나 당첨이 됐다. 그것도 5등도 아니고 2~4등으로만.

하지만 손에 돈을 쥔 적은 없었다. 잃어버리거나, 뺏기거나. 꼭 무슨 일을 당하면서 없어지면 그게 당첨이 됐다. 심지어는 당첨금을 받으러 가는 은행 입구에서 날치기를 당해 빼앗긴 적도 있었다.

마치 그것이 더 절망으로 빠지는 일이라는 것처럼.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을까? 불신과 기대가 뒤섞였다.

“올인 할 건 아니니까··.”

고민하던 영민은 밖으로 나와 10만원을 찾았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10만원어치만 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 정도면 안 된다고해도 타격이 아주 크지 않아 적당했다.

그럼 뭘로 해볼까? 로또? 토토? 프로토? 아니지. 그것들은 너무 멀다. 당장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즉석 복권 주세요.”

“이거 다요?”

“네.”

복권방 주인 아저씨가 이건 또 뭐하는 백수인가 싶어 슬쩍 훑어보았지만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복권 10만원어치씩 사는 사람이야 널리고 널렸다.

천원짜리 즉석복권 100장. 영민은 그것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구석진 자리로 조용히 옮겨갔다.

그리고 백원짜리 하나를 꺼내 긁기 시작했다.

‘····!!’

첫 장부터 당첨이었다. 금액은 10만원. 한 번에 원금을 회복한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장을 긁었다. 천원. 오천원··.

꽝보다 당첨이 많을 정도로 연속해서 당첨이 나왔다. 그래봐야 천원짜리는 본전치기에 불과하지만 괜시리 기분이 업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헉··.”

“····?”

그러다 어느 한 장에서 멈칫 몸이 떨렸다.

‘2, 2천만원··.’

거액에 당첨된 것이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 엉겹결에 헛바람을 집어삼킨 영민은 빠르게 눈치를 살피고 별 것 아닌 척 다음 복권을 긁기 시작했다.

드드득

그러면서 슬쩍 2천만원에 당첨된 복권을 뜯어 따로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법 자연스러운 연기에 주변 사람들도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영민이 다 긁은 복권을 정리하며 10만원짜리 당첨복권을 내밀자 그것 때문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이건 은행으로 가셔야 하는데··.”

결국 10만원짜리도 은행에서 바꿔야한다며 돌려받기는 했지만 덕분에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와, 여기 명당이었네.”

“뭔 10만원짜리, 5천원짜리가 저렇게 많아?”

대신 부러워하기는 했다. 그리고 앞다투어 즉석복권을 구매했다. 이렇게 연속으로 나올 수도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당첨된 복권의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추첨식 복권을 사던 사람들까지 몰려든 덕에 주인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고, 영민은 그 혼란한 틈을 타 밖으로 나왔다.

그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영민이 명당의 기운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라며 욕을 해댔지만 이미 영민은 은행에 도착해 돈으로 바꾸고 있는 상태이니 귀만 조금 가려울 뿐이었다.

‘이게 진짜 되네··.’

세금을 떼고도 1천 500만원이 넘게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며 영민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통장으로 바로 돈을 넣었기에 빼앗길 일도 없었다. 복권 당첨금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 것. 그제야 자신이 행운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아빠, 엄마, 할아버지··.’

그 동안의 설움이 생각나 울컥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삐빅-

그때 휴대폰으로 알림 하나가 떠올랐다. 발신자는 아리랑 길드. 정확히는 지원부서였다.

던전 입장 후 4일이 지났으며 앞으로 6일 이내에 재입장을 하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헌터로서든 채집꾼으로서든 처음 던전에 입장을 하고 나서 정신적인 충격이나 탈력감에 빠지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세워진 규칙.

헌터들은 몬스터라고는 하나,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인다는 두려움이 생기고, 채집꾼은 실컷 각성까지 해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무력감이 생기는 까닭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스스로 이겨내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랑 길드의 경우, 헌터든 채집꾼이든 초기에는 10일 이내에 무조건 던전에 재입장을 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워두고 있었다. 물론 영민도 예외가 아니다.

“6일이라··.”

서두르면 2번은 더 던전에 드나들 수 있는 시간이다. 그것도 숙련도 노가다를 충분히 하면서.

숙련도가 오를수록 상승폭과 빈도는 줄어들겠지만 베이스 캠프의 설치라든가 약초 채집, 무두질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되겠지.”

영민은 즉시 스마트폰을 조작해 던전 입장에 예약을 걸었다. 물론 채집꾼으로서였다.

정확히 6일 뒤. 입장 제한 시간의 마지노선에 걸쳐있는 날이었다.

그 동안 할 일은 정해져있다.

코볼트 던전을 최소 2회 이상 클리어 하는 것. 그 안에 최대한 숙련도를 올려두고 약초 등도 미리 모아둘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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