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세트 아이템 (1)
그 동안 채집꾼들은 베이스 캠프를 더 강화하는데 힘을 쏟았다. 안철현들이 주변의 몬스터를 모두 잡아 죽이기 전에는 주변이 안전하지 못하니 채집물 탐색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그들이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따끈한 식사와 편안한 휴식을 할 수 있도록 채비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고마운 줄 모르고 누리기만 하겠지만 그들이 몬스터들을 소탕함으로서 도움을 받는 것은 채집꾼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모두 맡은 바 역할에 충실했다.
“자네도 미리 배워두면 도움이 될 거야.”
인원을 반으로 나눠 채집과 베이스 캠프 강화를 지시한 김상식은 수수료 방식을 택한 영민에게 미안했는지 하나라도 더 채집꾼의 일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영민은 진심으로, 기쁘게 그것을 배우고 받아들였다.
[캠핑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캠핑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캠핑 스킬 숙련도가‥‥.]
불을 붙이는 것 뿐 아니라 베이스 캠프를 세우고, 강화하기 위한 모든 행동들이 캠핑 스킬의 숙련도 상승으로 이어진 까닭이다.
[캠핑][숙련도 : 10.3%]
임시 야영지를 건설하여 사용자의 회복을 돕는다.
* 임시 야영지 구축 완료 시(비전투)
- 피로 회복 속도 상승
- 체력 회복 속도 상승,
- 마나 회복 속도 상승
비전투시라는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체력과 마나의 회복은 물론 피로도까지 낮춰주는 꿀 같은 효과였다.
숙련도 자체가 낮아서인지 상승 알림은 끝도 없이 울려댔고, 숨만 쉬어도 숙련도가 오른다고 할 만큼 빠르게 요령이 붙었다. 그 재미에 영민도 신이 나서 일을 찾아 배우고 베이스 캠프 건설에 대한 기본을 익혔다. 한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숙련도가 오르면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관련 정보들이 머릿속에 박힌다는 것이다.
안철현과 함께 떠난 사냥팀이 돌아온 것은 어스름이 찾아 올 때쯤이었다. 밤 사냥은 위험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가장 문제가 되는 보스 몬스터를 잡아낸 덕이기도 했다.
어떤 아이템이 드랍 됐을지 궁금했지만 구경도 할 수 없었다. 고가에 거래되는 만큼 아이템의 관리는 엄격하게 이루어졌으니까. 영민은 대신 그레이 울프들의 시체를 벗겨내는 모습이나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레이 울프의 민첩함을 흡수합니다.]
‘역시!’
그레이 울프를 직접 해체할 수는 없어도 채집꾼 선배들의 호감을 이용해 가까이에서 구경 할 수 있던 영민은 그들이 칼을 가는 사이 슬쩍 그레이 울프의 시체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직접 잡았을 때처럼 흡수되는 능력.
꼭 자신이 잡은 몬스터가 아니라도 능력을 흡수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아까는 왜 흡수하지 못했던 것일까? 영민은 '시간'을 이유로 판단했다. 죽고 나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가. 일정 시간을 기준으로 그 전에 만지면 흡수할 수 있고, 더 지나면 흡수가 불가능 한 것이다. 아직은 샘플이 부족해 추측일 뿐이지만 아마도 확실하지 않을까 생각이 됐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 영민은 약초 채집에 매진하기보다 주변적인 일들을 더 배우려고 노력했다. 약초 감지 스킬 덕에 여유를 부려도 남들보다 더 많은 양을 채집할 수 있으니 캠핑 스킬 숙련도도 올릴 겸 채집꾼의 일들에 대해 더 배우려는 것이다. 그 모습을 어여삐 여겼는지 선배 채집꾼들도 열성적으로 그를 가르쳤다.
그러다 사냥팀이 돌아오면 쪼르르 달려가 시체를 해체하는 것을 구경하고, 슬쩍 능력을 흡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1레벨 던전 답게 이후 던전 클리어는 수월히 진행됐다. D등급 헌터 10명에 C등급 헌터까지 들어갔으니 사실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물론 영민이 위험에 빠진 일이 있긴 했었지만 어디까지나 탐색 범위 이상까지 채집에 나서면서 발생한 문제였지 가이드만 제대로 지켰다면 있을 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던전을 나와 약초를 판매해 정산 받으니 영민의 손에 무려 90만원에 가까운 돈이 손에 쥐어졌다. 일당식으로 받은 이들이 하루에 약 20만원씩, 50~60만원을 손에 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김상식과 같은 베테랑들이나 가능할 법한 성과. 하지만 선배 채집꾼들은 질투하기보다 신입의 행운을 축하해줬다.
그리고 신고식 겸 술자리를 제안했다.
“신입, 껍데기에 쏘주 한잔 어때?”
“죄송합니다. 다음에 제가 살게요.”
친절하게, 진심으로 대해준 그들이기에 마음이 동하기는 했지만 영민은 정중히 거절하고 돌아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들이 불행해질까 두려운 것이다.
천운초월자라는 타이틀이 붙을 만큼, 자신의 운명이 뒤바뀌었다는 것은 알지만 지난 26년간의 경험이 아직은 완전히 믿기 힘들게 만들었다.
또한 실험해보고 싶은 것들이 잔뜩 있는 탓이기도 했다.
영민은 돌아가는 길에 신세를 졌던 병원에 들러 병원비와 빌린 돈을 갚은 뒤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왔다.
장이라고는 하지만 평범한 짐은 아니었다. 간이 텐트며 일주일 이상은 너끈히 먹을 식재료와 장기보관식품 등 캠핑용품이 상당수였다.
꽤나 많은 양을 구입하느라 이번에 번 돈을 모두 써버렸지만 그리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당장 암시장에 그레이울프의 가죽과 이빨만 내다팔더라도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을 테니까. 여차하면 두 개나 있는 무기 중 하나만 내다팔아도 되고.
누가보면 피난이라도 가냐고 물었을 물품들을 구입한 영민이지만 겉으로 그렇게 티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인벤토리에 모두 넣은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오는 길에 치킨을 두 마리 더 산 영민은 오랜만에 자신의 집으로 들어섰다.
“장착.”
던전 안으로 들어선 영민은 곧장 장비부터 착용했다. 양손에 망치와 단검을 들고 가죽 갑옷을 군데군데 장착한 모습이 영락없는 초보 헌터의 그것이었다.
그 사이 던전이 사라졌다 다시 생겼을 리도 없을 테니 나와봐야 코볼트일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방심하지 않았다. 육체능력은 꽤나 올랐지만 아직 강화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공격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한 두 마리의 코볼트는 아이템의 성능으로라도 어떻게든 되겠지만 여러 마리가 몰린다면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통닭도 준비한 것이고.
통닭의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냄새가 유사시 지난 번처럼 놈들을 잠시 떨어뜨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일단 주변부터 돌아보고 나서‥.”
처음 던전에 들어왔을 때는 재수 없게 곧장 코볼트들을 만나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주변에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곧장 베이스캠프를 설치할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안전하게 가기로 했다.
주변부터 수색, 정리하고 난 뒤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려는 것이다. 지형이 지난 번과 완전히 같지도 않았고, 사실 같다해도 그 정신 없던 때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리였으므로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역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영민이었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타팅 지점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쪽을 택했다. 점점 범위를 넓혀가자 느껴지는 기척. 코볼트였다.
‘그럼 그렇지. 조금만 방심해도 안 된다니까.’
이 또한 불운이 작용한 것이 분명하다고 중얼거리며 영민으 놈의 앞으로 나섰다. 하나만 맞으라는 생각으로 망치와 단검을 재빨리 휘둘렀다.
“깨갱!”
힘 스텟에 투자를 제법 한 덕분인지 놈이 피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했다. 망치에 다리를 맞아 절뚝거렸고, 단검에는 빗맞았지만 비스듬이 베인 덕분에 상처는 더 크게 벌어져 출혈이 상당했다. 가만히 둬도 과다출혈로 죽지 않을까 싶을 만큼.
“윽, 이게 아닌가.”
무기의 공격력에 힘입은 놀라운 성과.
만족할만한 일이었지만 영민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힘이 강해지기는 했어도 두 무기의 균형이 맞지 않은 탓에 원하는 타이밍에 공격을 적중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쓰러진 코볼트를 앞에 두고 몇 번이나 연습을 해보인 뒤 끝장을 냈다.
[무두질 스킬 숙련도가 0.1% 올랐습니다.]
무두질을 통해 가죽을 벗겨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민은 내친 김에 주변을 더 돌았다. 어차피 어설프게 정리했다가는 피 냄새를 맡고 온 코볼트 떼에게 습격을 받을지도 몰랐다. 한 마리, 또 한 마리. 다섯 마리 째의 코볼트를 격살했을 때 의외의 알림이 나타났다.
[이도류 마스터리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아!”
반복 사용에 따른 스킬 습득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원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기억에 따르면 이도류를 통한 공격력 증강과 특수효과 사용은 초반 강력한 공격력을 갖추는데 꽤 괜찮은 방법이었으니까.
특히 코볼트처럼 약한 몬스터를 때려잡는데에는 아주 좋았다. 어지간하면 첫 공격에 빈사 상태로 만들어 버릴 수 있으니까.
무기가 안 좋았다면 생각해볼 일이었으나 지금의 영민에게는 해당 없는 얘기였다.
주변을 정리하고, 코볼트의 가죽이며 아이템을 알뜰히 챙긴 영민은 홀로 베이스 캠프를 꾸렸다. 혼자서 사용 할 것이기에 거창할 것도 없었다.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우고, 주변에 알람용으로 쓸 깡통 울타리를 치면 기본은 끝난다. 거기서 추가적으로 편의 요소를 더 넣는 것은 선택사항. 선배 채집꾼들에게 배우고, 어깨 너머로 본 것들을 하나하나 실습해보자 캠핑 스킬이 쭉쭉 올랐다. 이렇게 잘 올라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 그럼 시작해볼까?”
정리를 마친 영민은 쉬지 않고 다음 계획을 실행했다. 베이스 캠프를 차리면서도 틈틈이 모은 약초들. 거기에 아리랑 길드에서 구입하지 않는 약초들을 꺼내놓은 뒤 조합의 큐브를 소환한 것이다.
그리고 강태성의 기억에 따라 분류하고 조합했다. 일부는 알려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 알려지지 않은 조합식이었다. 적어도 영민이 아는 선에서는 그랬다.
[꿈망울 환을 제작했습니다.]
[벌레퇴치 액을 제작했습니다.]
[씹는 해독제를 제작했습니다.]
[매운 연기풀을 제작‥‥.]
재료가 바닥이 나도록 쉴새 없이 무언가를 찍어낸 영민은 약초가 모두 동나자 약초 대신 착용하고 있던 가죽 손목 보호대와 그레이 울프의 가죽을 집어넣었다.
[돌발 퀘스트. 가죽 세공의 기초]
조합의 큐브를 이용해 서로 다른 가죽 제품을 하나로 조합하라. 배우거나 스스로 찾아낸 조합법은 조합식에 기록되어 언제든 활용할 수 있다.
- 보상 : 가죽세공 스킬 획득
그러자 연금술을 얻었을 때와 같은 돌발 퀘스트가 나타났다. 강태성의 기억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주저없이 큐브를 잡고 흔들자 두 가지 아이템이 합쳐져 새로운 아이템이 나타났다.
[강화 가죽 손목 보호대]
그레이울프의 가죽을 덧대 강화한 손목 보호대. 그레이울프의 질긴 가죽이 작은 충격쯤은 흡수해줄 것 같다.
- 방어력 : 30
- 내구도 : 170/170
- 체력 + 5
- 민첩 + 5
- 5이하의 데미지 무효화
기존의 질긴 가죽 손목 보호대가 그레이울프의 가죽으로 한층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전반적인 능력이 강화되었을 뿐 아니라 작은 데미지를 무효화시키는 기능까지 생겼다.
혹시 다른 장비들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즉시 실행에 옮겼다. 부츠와 바지, 장갑과 어깨 보호대까지. 코볼트들을 추가로 잡으며 얻은 아이템들을 모두 꺼내놓자 그 수가 꽤 많았다.
“아이템이 원래 이렇게 잘 나오는 건가?”
아이템은 저급한 것이라도 아주 비싸다고 들었는데, 자신이 착용한 것들이 싸구려라서 잘 나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할 정도였다.
그거야 나중에 마켓에서 확인해보면 될 일. 일단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가지고 있던 그레이울프 가죽을 이용해 네 개의 아이템을 더 강화하고 착용하자 뜻하지 않은 소득이 있었다.
“세트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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