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채집꾼 (3)
“으악!!”
영민도 반사적으로 망치를 휘둘렀다. 어떻게 휘둘렀는지도 모를 몸부림. 운 좋게도, 그것이 그레이 울프의 턱을 후려쳤다.
[크리티컬!]
“끼잉!”
치명타까지 터지며 상당한 데미지가 놈에게 쏟아졌다. 사람만한 몸집이 바닥에 패대기쳐지고, 흉광 넘치던 울부짖음이 앓는 소리로 바뀌었다.
“어? 어?”
본인이 해놓고도 스스로 놀란 영민은 녀석과 망치를 번갈아 보다가 자신감을 얻었다.
“에잇!”
쿠웅!
덮치듯 몸을 날린 영민의 망치가 빈 땅을 때렸다. 그레이 울프가 훌쩍 몸을 날려 자리를 이탈한 것. 영민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 속도만 봐도 그레이 울프는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망했다····.”
차라리 그 틈에 도망칠 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조금만 시간이 있었으면 채집한 약초들을 조합해 쓸만한 무언가라도 만들어 봤을 텐데!
멍청한 자신의 행동이 바보 같았지만 이제와 후회해봤자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였다.
“하··하··. 착하지?”
다시금 살광을 빛내는 그레이 울프를 보며 뒷걸음을 치는 영민. 그러나 이번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녀석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은 잔뜩 끌어냈다.
“크아앙!!”
“어어!!”
그 매서운 기세에 영민의 다리가 풀렸다. 무게중심이 뒤편으로 쏠리고, 몸이 기울어졌다.
빠각!
버둥거림과 함께 휘둘러진 망치가 그레이 울프의 턱을 아래에서 위로, 강타했다. 하필이면 아까 맞은 그 자리였다.
“낑!”
부들부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그레이 울프는 일어나지 못했다. 죽은 것은 아니지만, 전투불능에 해당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이다.
“죽어!!”
영민은 본능적으로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바닥을 구르며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상태로 놈에게 달라붙어 때린 곳을 또 때렸다.
놈이 몸부림을 치며 날카로운 발톱들이 날아들었지만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때리고 물러서고, 때리고 물러서기를 반복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이내 기분 좋은 알림음이 들려오며 피로가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레벨이 오른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나.
코볼트 마을을 몰살시키고 단번에 올린 레벨이 여러 개이긴 하지만 단 한 마리를 잡아서 이렇게 많은 레벨이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어렵고, 위험한 몬스터라는 소리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으니 기분도 좋았다.
[그레이 울프의 민첩함을 흡수합니다.]
놈의 시체를 만지자 코볼트보다 강하기 때문인지 보다 많은 수치가 상승했다.
“오, 칼이다!”
행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또 다시 무기를 ‘득템’ 한 것. [숲지기의 단검]이라는 이름의 레어 등급 아이템이었다.
[숲지기의 단검][레어]
숲지기가 사용하던 짧은 검. 맹수와 침략자들로부터 숲을 지켜내기 위해 벼려진 이 검은, 오래된 숲지기의 영혼이 깃들어 숲에서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
- 공격력 : 23 ~ 26
- 내구도 : 150 / 150
- 숲 지형에 있을 시 이동 속도 10% 상승
- 숲 지형에 있을 시 공격 속도 10% 상승
- 맹수를 대상으로 170% 데미지
- 민첩 +7
검신을 포함해 1미터 남짓의 단검이었지만 공격력과 옵션은 둔기인 코볼트의 조잡한 망치를 상회했다. 등급도 무려 레어. 좀처럼 얻기도 힘들고, 가격도 대단할 게 분명했다.
“일단은 챙겨놔야겠다.”
무게중심이 안 맞아서라도 두 개의 무기를 동시에 사용 할 수는 없을 테니 하나를 팔아치울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무리 1레벨 던전에서나 통할 법한 D등급 헌터용 아이템이라고는 해도 몇 백쯤은 너끈히 받을 테니까.
그러나 일단은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두기로 했다. 코볼트의 조잡한 망치이든, 숲지기의 단검이든 각자의 특성이 명확한 만큼 상황에 따라 교차해서 사용 할 수 있겠다 싶은 것이다.
당장 통장에 잔고가 바닥까지는 아니니 조금 상황을 보다가 결정을 해도 늦지 않을 터였다.
“무두질.”
생각을 정리한 영민은 숲지기의 단검을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 몬스터의 가죽을 벗기는 무두질. 스킬을 발동하자 몸이 저절로 움직여 그레이 울프의 가죽을 벗겼다.
[무두질 스킬 숙련도가 0.5%만큼 상승했습니다.]
“헛!”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조금 전까지 살아있던 존재의 가죽을 통으로 벗겨내는, 비위가 약한 사람은 구역질이 나올 만큼 잔인한 작업이었지만 영민은 그보다 크게 상승한 무두질 스킬 숙련도에 깜짝 놀랐다.
숙련도보다 수준이 높은 몬스터 시체를 이용했다지만 숙련도 상승의 최대 폭이라는 0.5%가 나올 줄이야?
뿐만 아니라 놈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 가죽이며 이빨 같은 부산물들이 수북히 쌓였다.
“처치 곤란이긴 하지만··.”
문제는 팔기가 난감하다는 것이다. 불법적으로 얻은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E등급도 아닌, F등급의 채집꾼이 D등급 헌터도 잡기 어려운 그레이 울프를 혼자 잡았다? 의심을 사기 딱 좋은 일이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이며 장비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할텐데, 그랬다가는 집안에 생겨난 던전에 대해서도 밝혀야 했고 여러모로 피곤해 질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망치’를 무기로 삼았기에 피가 많이 튀지 않았다는 것. 흙먼지에 뒤집어 쓴 것 쯤이야 넘어졌다고 둘러대면 될 일이었다.
“돌아가야지.”
자리를 정리한 영민은 서둘러 늑대가 나타난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맞는 방향인지는 모르지만 그에 가까울 것이라는 짐작이었다.
다행히도 그 예상이 어느 정도는 맞아 떨어졌는지,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며 만들어 둔 실 울타리가 나타났다.
“신입?”
다른 채집꾼 선배도 함께였다.
“하하. 길을 잃은 게로구만?”
영민의 행색을 쓱 훑어본 그는 알았다는 듯 너털 웃음을 지었다. 신입이 약초 채집에 너무도 몰두한 나머지 이상한 곳에서 발견되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였으니까.
“저쪽이 베이스 캠프니까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어차피 1차 채집은 짧게 하니까.”
“네? 아, 네.”
영민은 두말 없이 그의 지시를 따라 베이스 캠프로 돌아갔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베이스 캠프를 거쳐 다시 할당된 지역으로 향하는 것이 좋겠지만, 혹여나 또 길을 잃을까 싶어 대기하게 한 것이다.
영민도 그 뜻을 헤아리고 베이스 캠프에 얌전히 기다렸다. 에이스인줄 알았는데 허당이었다는 둥, 짐을 지키던 다른 채집꾼 선배들의 놀림을 받아야하긴 했지만 머리를 긁적이며 웃어넘기자 곧 흩어졌던 채집꾼들이 돌아왔다.
“그래. 처녀 채집은 어땠나, 신입?”
“그게··. 정신이 없네요.”
“하하하. 그럴만도 하지. 채집에 정신이 팔리다보면 몬스터가 나타나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래서, 첫 수확은 어때? 좀 캤나?”
“여기··.”
견물생심이라고, 정산을 하기 전까지는 채집물에 대해 드러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그런 것을 알 턱이 없는 영민은 순진하게 배낭 안의 약초들을 꺼내보였다.
“오, 꽤 많이 모았는데? 이러니 정신이 없던 게로군.”
“신입이 눈이 밝구만. 이거 같이 다니면 다 뺏겨서 할당량도 못 채우겠는데?”
주로 판매되는 기본 약초들이고, 나머지는 인벤토리 안에 고이 모셔져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배낭은 제법 채워져 있었다.
그 모습에 의외라는 듯 선배 채집꾼들도 놀라워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는 하지만 저 정도 양을 모으려면 자신들도 운이 좋은 날 꽤나 집중을 해야 가능했으니까.
“다음부터는 함부로 배낭을 열지 말게. 사람이 궁할 때는 무슨 생각이든 할 수 있는 거니까 말이야. 던전에 들어온 다음 배낭을 여는 것은, 채집물을 넣을 때와 정산 할 때면 족해.”
김상식이 씨익 웃으며 배낭의 지퍼를 다시 잠그며 충고를 해주었다.
“자, 10분간 휴식하고 2차 채집에 나간다. 휴식!”
이어 휴식이 주어졌다. 이렇게 집결 없이 계속 채집만 하다보면 영민처럼 거리와 방향도 잊고 몰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너무 멀리 가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는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잘 보고 있어야 겠군.”
곧 2차 채집이 시작되었다. 2차 채집까지는 갔던 길을 되짚어 가며 놓친 것들을 채집하거나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혹시 영민이 또 길을 잃을지 모른다며 김상식이 웃으면서 그를 따라붙었다.
‘적당히 해야겠네.’
덕분에 처음과 같은 속도로 채집을 하지도 못했고, 인벤토리로 들어간 약초를 다시 꺼내 배낭에 담는 수고를 해야했지만 그 호의가 싫지만은 않았다.
김상식의 가이드가 있으니 확실히 거리와 방향에 대한 감이 잡혔다. 딱히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김상식을 따라 대충 어느 정도 속도로 움직여야하고, 어느 정도 시간 동안 나아가면 되는지 파악을 하니 훨씬 안정적인 채집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빛의 위치를 따라 마구잡이로 캐내던 약초가 어떤 장소에 많이 있는지 천천히 살피게 되니 예상치 않게 알게 되는 것들이 제법 많았다.
“돌아가지.”
2차 채집이 끝났건만 3차 채집은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몇 분간 휴식’이라는 개념이 없이 각자 자리를 깔고 앉아 시간을 죽였다.
“저기 오는 군.”
누워 잠이라도 잘듯하던 김상식이 몸을 일으킨 것은 안철현과 루키들이 사냥을 마치고 돌아올 때였다.
루키들은 피칠갑을 한 어깨 위로 한 마리씩의 그레이 울프를 짊어지고 있었고 그 수가 무려 넷에 달했다.
“가서 받아.”
“아, 네!”
그의 지시에 따라 영민을 비롯한 채집꾼 여럿이 달려가 그레이 울프의 시체를 받았다. 묵직한 느낌만으로도 놈들의 강함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왜 흡수가 안 되지?'
육중한 시체를 낑낑대며 받아든 영민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분명 시체를 만졌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직접 죽이지 않아서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쪽으로 쌓아.”
지정한 위치에 시체들을 쌓자 한 쪽에서 칼을 갈던 채집꾼 둘이 나서서 해체를 시작했다. 무두질 스킬은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숙련도가 높을수록 더 질 좋고 많은 양의 가죽이 나오기 때문에 가장 숙련도가 높은 채집꾼들이 전담하는 것이다.
물론 고블린이나 코볼트처럼 그런 것이 크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작고 약한, 그리고 수가 많은 녀석들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레이 울프 정도면 1레벨 던전에 등장하는 몬스터 중에서도 수준급인데다 가죽이며 이빨이 장비로 가공할 수 있어서 영민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이봐, 물!”
영민이 그것을 구경하고 있자 루키들 중 하나가 짜증스레 소리쳤다. 그레이 울프를 사냥한 것도 자신들인데 피를 뒤집어 쓰며 들고 오기까지 한 것이 불만인 모양. 안철현의 눈 때문에 대놓고 행패를 부리지는 못했지만 짜증이 가득하니 행동이 거칠었다.
“헤헤, 신입이라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참으십시오.”
영민을 대신해서 물을 가져다주는 채집꾼을 신경질적으로 밀친 녀석은 머리며 온 몸에 물을 뿌리며 잘 지워지지 않는 핏물을 씻어냈다.
“아버지뻘 되는 사람을··.”
자신을 대신해 아들 같은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는 그를 보니 울컥 감정이 치밀었지만 덤벼들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힘이 없으면 숙여야 한다. 그 지랄 맞은 진리를 누구보다 일찍 깨달은 영민이었기에 표정을 감추고, 감정을 삭이며 그들의 수발을 들었다. 지금은.
“그레이 울프라, 꽤 어려운 놈이군요.”
“예. 완전히 정리하자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안철현과 김상식은 대화를 나누며 던전의 정보를 공유했다. 아직 보스 몬스터를 발견하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후각에 민감한 늑대 타입이기에 쫓는 것도 쉽지가 않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반대로 김상식은 채집꾼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채집물의 종류와 양을 가늠하여 그에게 보고했고 둘은 합의하에 던전 클리어 시간을 정했다.
“이틀 뒤로 하죠.”
서두르면 하루만에도 정리가 가능하겠지만 안철현은 안전을 생각해서 여유 있게 기한을 잡았다. 다행히 제법 채집할 거리들이 많다고 하니 무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안철현은 루키들에게까지 여유를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늘 중으로 보스 몬스터까지 잡아 귀환석을 확보하고, 둘째날까지 완전한 안전을 확보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덕분에 첫 헌팅으로 몸이 굳은 루키들은 불만이 가득해졌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는 인솔자이자 시험관이었으니까. 자신들은 아리랑 길드에 가입 후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테스트를 치르는 중이었고.
잠시간의 정비를 마친 안철현은 다시 루키들을 이끌고 숲의 서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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