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채집꾼 (2)
던전 안으로 들어온 즉시 채집꾼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짊어진 배낭을 풀어놓고, 베이스 캠프를 꾸리는 것이다.
1레벨 던전의 경우, 빠르면 반나절 만에도 정리가 가능하지만 채집물까지 모조리 챙기려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버티고 대기할 필요가 있었다.
“자, 빨리 빨리 움직여!”
그러기 위해서는 식사도 하고, 잠도 잘 공간을 마련해놓는 것이 중요했다. 아무리 몬스터들을 다 정리해놓았다고는 해도 맨땅에 노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때문에 채집꾼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베이스 캠프를 만드는 작업부터 서두르는 것이다.
영민을 제외하곤 모두 유경험자들이라서인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일을 맡아 움직였다.
“신입, 뭐 할지 모르겠으면 저기 가서 불이나 피워봐.”
“킥킥.”
덕분에 멀뚱이 서있던 영민에게 임무가 떨어졌다. 바로 불 붙이기 미션이다. 라이터 같은 현대문물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던전 안이기에 불을 붙일 줄 안다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동시에 어려웠다.
영민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캠핑 스킬을 익히기 위해 꽤나 고생을 해야했을 만큼 힘과 순발력, 그리고 운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또 시작이군’이라는 둥, 키득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아무래도 신입들에게 으레 시키는 신고식 같은 건가 보다. 어찌할까 잠시 멈칫거린 영민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베이스 캠프의 중앙으로 가 나뭇가지들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불을 피우는 시늉을 했다. 시동어 한 번이면 당장 불을 붙일 수 있지만 처음부터 너무 시선을 끄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 동안 안철현은 신입인 D등급 헌터들을 데리고 주변을 돌았다. 주변을 먼저 정리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1레벨이라고는 하나 몬스터들을 직접 상대하기에 무리가 있는 E등급의 헌터, 채집꾼들이기에 D등급 헌터들이 사냥을 나간 동안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고등급의 헌터들 중에는 채집꾼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는 인간들도 많았지만 적어도 안철현은 예외였다. 특히 이런 저레벨의 던전 헌팅에서는 헌팅 수입보다 채집으로 인한 수입이 더 많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주변을 샅샅이 뒤져 위험요소를 제거했다.
“또 뭘 하면 될까요?”
“불 붙이라니까 벌써 포기…. 응?”
잠시 애를 쓰는 시늉을 하다가 ‘캠핑’스킬을 사용한 영민은 불씨를 살려두고 다시 김상식을 찾았다.
불 하나도 못 붙이냐고 장난처럼 타박하려다가 깜짝 놀란 그는 짐짓 영민을 다시보며 턱을 쓸었다.
“오, 제법 쓸만한 신입이 들어왔는데?”
“그러게 말이야. 흥수 자네는 3시간쯤 걸렸지?”
“2시간 40분이야! 그러는 너는 3시간 30분이나 걸렸잖아?!”
“어허, 그거야 다른 일을 같이 하느라….”
다른 채집꾼들도 와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같은 채집꾼이라 그런지 반응이 퍽 호의적이다.
“젊은 친구가 제법인데? 좋아. 그렇게 배우려는 자세는 언제나 환영이지. 저쪽가서 텐트 치는 것 좀 도와주게나.”
김상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고식을 너무 쉽게 통과한 것에 대한 반감보다는 다른 일을 도우려는 그 열의를 높게 가서 진짜 일감을 주었다.
텐트를 빠르게 치고, 누워도 등이 배기지 않게 정돈하는 것은 채집꾼의 기본이었다.
텐트를 치고, 깡통을 매단 실을 울타리 대신 주변에 매다는 일까지 마치자 안철현이 이끌고 갔던 헌터들이 다시 돌아왔다.
“주변에는 뭐가 없는 것 같군요.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탐색을 마친 안철현이 채집꾼의 조장이자 여기서 가장 경력이 많은 김상식에게 다가와 보고 아닌 보고를 했다. 그것이 못 마땅한지 D등급의 루키들은 입이 댓발이나 튀어나왔지만 안철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멋있는 사람이네.’
그 모습이 영민으로서도 꽤나 호감이 갔다. 힘이 있다고 으스대고 남을 무시하지 않는 모습. 사실 사람들이 헌터들에게 바라는 것도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닌가. 대부분의 헌터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지만.
“자, 곧장 안으로 진입한다. 두 팀이 번갈아가면서 앞장을 서게 될 테니 잘 해보도록.”
베이스 캠프가 정리된 것을 확인한 안철현은 곧장 루키들을 움직였다. 고작 1레벨 던전에서 시간을 끌 이유가 없으니까.
무려 열 명의 D등급 헌터. 더구나 아리랑 길드에서 능력을 가려 뽑은 인원들인 만큼 고유 능력 자체도 수준급일 테니 1레벨 던전에서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 우스웠다.
조금만 경험을 쌓는다면 2레벨 던전에서도 메인 자리를 맡을 수 있을 것이 그들이었다.
“자, 우리도 일을 시작해볼까? 신입은 수수료를 선택했지? 그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거야. 처음이면 눈에 잘 안 들어오거든.”
그들이 사라지자 김상식이 채집꾼들을 불러 모았다. 두 명은 짐을 지키기 위해 남기고 나머지 인원은 방향을 정해 채집을 시작하도록 지시했다.
신입은 영민에게는 조장인 그가 직접 붙었다.
번거로울 뿐이긴 했지만 영민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가 따라붙는 것이 어디까지나 호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채집꾼 일을 처음하면 의욕은 넘치는데 뭘 캐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 쉽지. 혹시 산에서 약초 같은 것 캐 본 적 있나?”
“아니오. 없습니다.”
“처음에는 쉬는 날 뒷산이라도 가서 쑥 캐는 연습이라도 해두는 게 좋을 거야. 촌에서 살았다면 모를까 도시생활 하던 사람들은 눈 앞에 약초를 두고도 지나치는 경우가 많거든. 익숙해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그러면서 김상식은 영민을 쓱 지나쳐 주저앉았다. 조심스럽게 약초를 캐기 시작했다.
“이런 거지.”
그가 캐낸 것은 던전에 흔하디 흔한 갈퀴풀이었다. 줄기가 갈퀴처럼 되어있어 잘못 만지면 낚시 바늘에 꿰인 듯 살을 파고드는 귀찮은 녀석. 하지만 잘만 사용하면 임시로 살을 꿰메고 지혈을 유도 할 수 있는 응급처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군요.”
김상식은 선물이라며 방금 캔 갈퀴풀을 영민의 배낭에 넣었다.
사실 영민의 눈에는 당장 캐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약초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빛나고 있었지만 김상식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하하, 뭐 대단한 거라고. 자, 그럼 나도 밥값은 해야하니 흩어져볼까? 안철현이 탐색을 했다고는 하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하고, 뭔가 나타나면 바로 내 쪽으로 도망치게.”
채집꾼을 한다는 것은 그도 전투능력이 없는 E등급이라는 것일 텐데, 어떻게든 책임져주겠다는 듯 가슴을 치는 그를보자 마음 한켠이 든든해졌다.
이런 대우를 받은 게 얼마만인지…. 주책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영민은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숲속으로 들어갔다. 당장 주변에도 김상식이 알지 못하는 채집물들이 적잖았지만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편리하긴 진짜 편리하네.”
숲속에 홀로 남겨진 영민은 [약초 감지] 스킬로 표시되는 빛무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직 숙련도도 낮고 요령도 없어서 채집에 실패하거나 상처를 입히게 될 수도 있지만 상관없었다. 그만큼 많이 뽑으면 그만이니까.
가장 가까이에서 보이는 빛무리로 다가간 영민은 조심히 호미를 꺼내 슥슥 주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약초 채집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약초 채집 스킬 숙련도가 0.1% 상승했습니다.]
[약초 채집 스킬 숙련도가….]
숙련도의 상승은 순전히 운이다. 어떤 행동을 한 번 해서 오를 수도 있고, 백번을 해도 제자리일 수가 있었다. 숙련도가 낮을 때는 비교적 상승할 확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너무’라고 할 만큼 영민의 숙련도는 빠르게 상승했다.
극에 달한 운 수치가 작용한 덕이다.
마치 원래 그러는 것이라는 듯 약초 채집 숙련도는 한 번, 또는 두 번에 한 번씩 상승 알림을 울렸고 영민은 귀를 닫고 싶다는 행복한 투정을 부리며 약초를 배낭과 인벤토리에 쓸어 담았다.
정확히는 모두 인벤토리에 들어갔지만, 주로 판매되는 약초들만 골라 배낭에 옮겨 담은 것이었다.
신입인 만큼 별로 건지지 못한 척 돌아갈 수도 있지만 어차피 독점 판매 계약이 된 이상, 다른 곳에서 몰래 팔아치우기도 어려웠다. 던전 아이템의 거래는 국가에서도 엄격하게 제한하기 때문이다. 물론 암시장이라는 것이 없지는 않지만, 대단히 희귀한 물품도 아닌 이상에야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응? 여기가 어디지?”
그렇게 숙련도가 오르는 재미에, 인벤토리에 채집물이 쌓이는 재미에 한참을 집중해서 풀과 열매 등을 쓸어담던 영민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어디지? 얼마나 멀리 온 거지?
빛무리 만을 따라 왔더니 얼마나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심지어 방향까지도.
“너무 멀리왔나….”
난처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까지 돌아가야 하는지도 못들었는데‥.
초조하게 발을 구르던 영민은 결국 최후의 수단을 썼다.
“선배님! 조장님! 어디 계세요!!”
그 자리에서 목 놓아 그들을 부르는 것이다. 조난 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니 구조 요청도 동일하겠지.
그러나 영민의 생각과 달리 그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험한 산이라도 위험한 야생 동물이 많지 않지만, 이곳은 던전이었다. 나타나는 모든 생명체가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괴수인 곳.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영민은 계속해서 소리 높여 김상식과 다른 선배 채집꾼들을 불러댔다.
“크르르르.”
그리고 마침내 응답이 왔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생각지도 못한 존재에게서.
“그, 그레이 울프?!”
날카로운 울음을 흘려내는 회색의 늑대였다. 코볼트 따위는 단박에 목덜미를 물어뜯어 숨통을 끊어 놓을 강력한 개체. D등급의 헌터라도 제대로 장비를 갖추지 않고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녀석의 등장에 영민은 식은 땀이 흐르고 온몸의 털이 삐쭉삐쭉 서는 것을 느꼈다.
“어‥어‥.”
강태성의 기억이 일어나며 놈을 상대할 방법들을 쏟아내었지만 그 위압적인 모습에 몸이 굳은 영민은 마땅히 대응하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등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놈은 영민과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걸어왔고, 영민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긴장하며 뒤로 물러섰다.
“캐, 캠핑.”
그리고 인벤토리에 넣어둔 나뭇가지를 꺼내 불을 붙였다. 짐승들이 불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 만큼 처음 떠올린 것도 그것이었다.
“훠이, 훠이!”
그것을 좌우로 흔들며 그레이 울프를 쫓기 위해 애를 썼다.
“크르르릉‥.”
그러나 놈은 전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영민이 휘두르는 불을 경계하기는 했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 모습. 일반 짐승이 아닌, 몬스터에 속하는 놈이었기에 불에 대한 공포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물러설수록 더욱 가까워지는 놈을 보며 영민은 이걸론 어림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는,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장착!”
인벤토리에 잠자고 있던 무기며 방어구를 장착한 것이다. 채집꾼으로 온 터라 꺼내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싸워야만 살 수 있는 순간이다.
“커헝!”
그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였는지 그레이 울프가 놈을 날려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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