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채집꾼 (1)
“스킬북이라.”
추가로 획득한 재료들을 통해 몇 개나 되는 [꿈망울 환]을 더 만들어내던 영민은 [스킬창]의 존재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금술의 숙련도는 0부터 시작을 했는데, 약초 채집의 숙련도는 벌써 20%를 넘기고 있었다. 약초 채집만이 아니라 채광과 무두질의 숙련도 역시 마찬가지로 15%를 찍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스킬북을 사용한 덕이다. 굳이 스킬북을 사용하지 않아도 그 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구현해낼 수 있다면 스킬로 등록 할 수 있지만, 스킬북을 사용할 경우 단번에 스킬을 얻을 수 있는데다 기본적으로 15% 내외의 숙련도를 가지고 시작할 수 있었다.
어차피 당장에는 비싸서 스킬북을 구할 수도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나중에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
강태성의 기억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 모든 스킬들을 재현해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생각됐으니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어느 새 코볼트 마을 근처에 도착했다.
영민은 주변을 살핀 뒤, 아까 올라갔던 나무를 다시 타고 올라갔다. 높이, 더 높이. 안이 훤히 내려다보일 때가 되자 캠핑 스킬을 이용해 준비해둔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고, 꿈망울 환을 꺼냈다.
미리 만들어둔 심지에 불을 붙이자 뿌연 연기가 피어올라 몽롱한 기분을 만들었다.
그대로 있다간 나무에서 떨어져 머리 박고 죽을 판. 영민은 숨을 참고 불이 붙은 꿈망울 환을 마을 안으로 던져넣었다. 하나, 둘, 셋, 넷. 총 다섯 개나 되는 환이 마을 안으로 떨어지자 금세 마을이 연기로 뒤덮였다.
영민은 바람의 방향을 파악하며 마을 안을 살폈다.
처음에는 잠시 저항하려던 코볼트들이 금방 잠잠해지며 멍한 기분에 취했다. 정신을 잃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안의 모든 코볼트들이 대자로 뻗은 것이 보였지만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지금 잘못 들어갔다간 자신 역시 기절해버릴지 모르니까.
“으음. 어렵겠는데.”
꿈망울 환 자체는 5분만에 모두 타버렸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연기는 계속해서 마을 안에 머물렀다.
놈들이 기절한 사이 접근해 망치로 머리통을 부숴놓으려던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연기의 기절 지속시간은 단 몇 분에 불과했기에, 연기가 완전히 사라진 다음 진입하자니 리스크가 큰 것이다.
그래서 영민은 생각의 방향을 바꾸었다.
꼭 직접 내리쳐 죽여야만 놈들이 죽는 것은 아니지 않나?
“캠핑.”
모아둔 나뭇가지에 불을 마구 붙여 던지기 시작했다. 코볼트들이 만든 어설픈 울타리며 움막에 불이 붙자 맹렬히 타올랐다. 재료들이 하나 같이 마른 나뭇가지나 나뭇잎인 까닭에 마을 전체로 빠르게 불이 옮겨간 것이다.
[코볼트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코볼트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
[타이틀 ‘방화범’을 얻으셨습니다.]
영민의 예상대로, 기절한 코볼트들은 속수무책으로 불에 타죽었다. 세기도 어려울 만큼의 레벨 업 알림이 들리고, 불은 주변으로까지 번져갔다.
영민도 몸을 피해야 할 판.
보스 몬스터인 코볼트 전사가 가지고 있는 귀환석을 챙기러 갔다가는 불에 타죽을 상황이지만 귀환을 하지 못할 걱정 따위는 없었다.
“귀환.”
코볼트들이 죽으며 남긴 아이템들은 게이머 특성에 따라 이미 인벤토리에 모두 들어와 있으니까.
불이 더 번지기 전에 멀찍이 떨어진 영민은 시동어를 외쳐 귀환석을 사용했다.
그러자 포털이 열리고, 영민의 몸이 빨려들어갔다. 던전에 들어왔던 것과는 반대로, 현실에 돌아왔다.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뒤따라오던 불길은 침범하지 못했다. 경계와도 같은 어떠한 막에 걸려, 현실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휘유.”
시야를 회복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음을 확인한 영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1레벨의 던전이었기 망정이지, 1레벨 중에서도 하급 레벨에 속하는 코볼트 던전이었기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하다못해 기절한 채 타죽은 코볼트 전사만 하더라도 지금의 자신이라면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형편없이 깨지고 박살이 났겠지.
“상태창.”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상태를 확인했다.
[권영민]
레벨 : 25 고유능력 : 드레인, 게이머
타이틀 : 천운초월자 성향 : 중립
Hit Point : 90 Mana Point : 50
힘 : 23
민첩 : 20 (+5)
체력 : 9 (+1)
마력 : 5
정신력 : 5
운 : Max
보너스 포인트 : 18
코볼트 마을을 몰살시키며 무려 18레벨이나 올라있었다.
이걸 어떻게 배분하지? 강태성의 기억을 뒤졌다.
그가 하려고 했던 것들. 초반의 성장에 대한 부분을 떠올린 영민은 그것을 토대로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권영민]
레벨 : 25 고유능력 : 드레인, 게이머
타이틀 : 천운초월자 성향 : 중립
Hit Point : 150 Mana Point : 50
힘 : 30
민첩 : 25 (+5)
체력 : 15 (+1)
마력 : 5
정신력 : 5
운 : Max
보너스 포인트 : 0
힘을 30까지 맞추고 민첩과 체력에 분배한 것이다.
초반에 유용한 마법이나 회복 스킬을 얻지 못한 이상 힘, 민첩, 체력을 고루 높이는 것이 안정적이지만 이미 전투에 통달한 강태성으로서는 조금 위험성이 있더라도 힘과 민첩을 높여 공격력을 올리는 쪽을 선택하려 했다.
그러나 당장 전투라고는 조금 전의 던전에서가 전부인 영민에게는 무리. 민첩을 올려 도주가 쉽게 하고 버틸 수 있는 체력을 높여 안정성을 확보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드레인과 아이템 효과로 강태성이 계획한 능력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능력치 스텟을 공짜로 올려주는 드레인이라는 능력을 가지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음‥.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귀환석을 이용해 탈출했지만 던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게이트가 문 안쪽에 생겨난 탓에 집에 들어가려면 창문을 넘어야 했는데 건물의 구조상 그조차 어려웠다.
게이트가 10회 더 공략되고 사라지기 전까지는 꼼짝 없이 집을 잃게 된 상황. 국가나 길드에 신고를 하고, 던전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면 적지 않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갈 곳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강태성의 기억이 절대 양도해서는 안 된다고.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어차피 개인의 집안에 생겨난 던전이다. 가족도, 친구도 없으니 영민이 알리기 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 더구나 1레벨 던전 중 가장 약하다는 코볼트 던전이라면 혼자서 해먹는 게 무조건 이득이라고 설득했다.
“찜질방이라도 가야하나.”
어차피 당장 재진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피로도 쌓였고, 기억을 뒤져 자신이 가진 것. 그리고 가질 수 있을 것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었다.
결국 고민하던 영민은 지갑을 털어 근처의 호텔방을 잡았다. 찜질방은 너무 정신 없고, 모텔 방은 너무 시끄러웠다. 더구나 소리가 소리인 만큼 정신을 집중할 여건이 안 될 확률이 높았다.
관광호텔 수준이라 시설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조용하니, 잠시 묵기에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리고 밤 늦게까지 기억을 문서화했다.
지금은 선명히 떠오르는 기억들이지만 언제 뒤섞이고 희미해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
최소한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 딱 4시간을 자고 일어난 영민은 집이 아닌, 아리랑 길드의 본사로 곧장 출근을 했다.
오늘은 채집꾼으로서 처음으로 활동하는 날이다.
“다들 모였나?”
다시 코볼트 던전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일정을 펑크 내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차후 레벨을 올려서 채집꾼이 아닌 정식 헌터 활동을 한다해도 마찬가지였다. 채집꾼일 때의 기록부터 데이터가 쌓여서 헌터 활동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테니까.
능력이 조금 부족한 헌터는 용서가 되도, 신용이 없는 헌터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 바닥의 상식이었다.
“예!”
선임 헌터의 물음에 신입들이 당차게 소리쳤다.
영민 같은 채집꾼들은 예외였다. 헌터이기는 하나, 헌터로서의 전투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그들은 던전 헌팅의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니까. 아니, 조연도 허락되지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머릿수를 채우는 엑스트라라고나 할까.
“오늘 헌팅 성적에 따라 팀 배치가 된다는 건 알고들 있겠지? 지켜볼 테니 분발하도록.”
“옙!!”
도우미이자 평가자로 함께 나선 C등급의 헌터는 그들을 맡은 것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지만 정작 이번 던전 헌팅의 주인공인 D등급의 헌터들은 열의에 찬 눈동자로, 당장 몬스터를 두 동강 낼 기세를 뿜어냈다.
“처음부터 힘들 빼는 군. 이번 헌팅도 쉽지 않겠어.”
“뭐, 그래도 안철현이 따라가니까. 적당히 몸 사리면 위험할 일은 없겠지.”
그것을 뒤쪽에서 지켜보던 채집꾼들이 혀를 차며 보이지 않게 비웃었다. 등급은 낮지만 던전 진입에는 베테랑들인 터라 첫 헌팅에 나서는 그들이 우습게만 보인 것이다.
“권영민이라고 했나? 자네, 첫 헌팅이지?”
“네? 아, 네.”
“이쪽으로 와서 사인 좀 하게. 일당으로 할 건지 수수료로 할 건지 정하지 않았더군.”
“아…. 네.”
자신을 채집꾼 조장으로 밝힌 김상식이 내민 서류를 받아든 영민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수수료’ 방식에 체크를 했다.
아리랑 길드의 산하 지원팀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채집꾼들의 경우 헌팅시마다 급료를 받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얼마나 되는 채집물을 습득하든 모조리 뱉어내고 일당을 지급받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일당과 같은 고정된 비용이 없는 대신 알아서 채집물을 습득하고 일정한 수수료를 내는 것이다. 이 경우 자칫 채집물이 적을 경우 적자를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혹여나 희귀한 채집물을 획득할 경우 대박을 노려볼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후자의 경우 채집물에 대한 우선 매입권을 아리랑 길드에서 가져간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정가보다 약간 저렴한 가격으로 채집물을 판매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도 했다.
거기에 매월 내야하는 ‘회비’까지 더하면 상당히 빠듯할 수 있어서 많은 이들이 안정적인 일당 방식을 선택하곤 했다.
하지만 김상식은 영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서류를 회수했다.
“처음에는 다들 비슷한 선택을 하지. 이번 헌팅에서 잘 생각해보게, 장기적으로 어떤 것이 이득일지.”
보통 처음 채집꾼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대부분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일당이라고 해봐야 몇 십만원이 고작. 더구나 이번처럼 1레벨 던전에 들어갈 때는 10~20만원 정도나 받을까 말까였다. 보통이 10만원 대 중후반의 돈을 받고, 채집물이 많을 경우 보너스조로 20만원을 조금 넘기는 정도랄까.
그러니 그것이 적다고 여기고 수수료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던전에 진입할 때 오히려 입장료를 내야하니 수지가 안 맞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상식은 영민도 같은 부류로 보고, 말리는 대신 한 마디 조언을 남겼다. 어차피 지금 말려봐야 원망 밖에 듣지 않는다는 것을 다년간의 경험으로 파악하고 있는 탓이다.
“자, 그럼 들어가볼까?”
그 사이 던전 진입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 채집꾼들은 각자의 도구들 이외에 준비된 배낭을 하나씩 짊어졌고 영민도 마찬가지로 준비를 마쳤다.
인솔자인 C등급의 헌터, 안철현을 선두로 모두가 1레벨 던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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