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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 MAX-7화 (7/177)

7화 - 내 집 안 던전 (3)

[약초 탐지가 발동합니다.]

“응?”

시야에서 어떠한 지점들이 반짝 거리며 빛났다.

“열매?”

나뭇가지에 매달린 열매에서 비롯된 것.

영민은 경계하면서도 조심히 손을 뻗어 열매를 따냈다.

[스피키 열매]

달콤한 향이 나는 스피키 나무 열매. 그 달콤한 향기에 취하면 기분 좋은 단잠을 잘 수 있다. 단, 달콤한 향과 달리 과육은 떫은 맛이 난다.

“난 또‥.”

별 내용 없는 설명에 실망하려던 찰나, 나무 아래에서도 같은 빛이 나타났다.

[물방울 꽃]

물방울 모양을 한 신비의 풀. 어여쁜 모습과 다르게 아무런 향도, 맛도 나지 않는다.

나무를 타고 내려간 영민이 조심스레 풀을 캐봤지만 이번에도 꽝이다. 꽃이 물방울처럼 생겼다는 게 특이했지만 그것 뿐이었다.

“괜히 기대했네.”

그저 약초 채집 스킬이 발동한 것 뿐이었군.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또 하나의 알림이 들려왔다.

[돌발 퀘스트. 연금술의 기초]

조합의 큐브를 이용해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약초를 조합하라. 배우거나 스스로 찾아낸 조합법은 조합식에 기록되어 언제든 활용할 수 있다.

- 보상 : 연금술 스킬 획득

“연금술?”

연금술이라면 스킬북을 써서 얻을 수 있는 생산계열 상위 스킬이 아니든가? 그걸 공짜로 얻을 수 있다고?

“조합의 큐브!”

흥분해서 외치자 정말로 정사각형의 자그마한 상자가 나타났다. 어? 이거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아, 꿈!”

조합의 큐브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던 영민은 지난 밤 꿈을 기억해냈다. 이 조합의 큐브를 신나게 흔들던 자신을.

“어? 그게 나였나?”

꿈이라서일까. 기억이 어느새 희미했다. 그게 정말 자신이었나? 자신의 꿈이어서 그렇다고 기억하고 있을 뿐이 아닐까?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그렇다.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무엇을 넣어볼까? 일단 가장 만만한, 채집물 두 개를 꺼냈다. 스피키 열매와 물방울 꽃. 잡템 중의 잡템으로 여겨지는 두 가지를 넣고 입구가 닫힌 큐브를 쉐킷쉐킷 흔들었다.

“나와라!”

토옹

그렇게 한참을 흔들다가 다시 큐브의 문이 열린 것을 보고 기울이자 동그랗게 말린 정체불명의 풀 한 덩이가 떨어졌다.

“이게 뭐지?”

[꿈망울 환]

두 가지 풀과 열매를 빻고 뭉쳐서 만든 작은 환. 크기는 작지만 불을 붙여 태울 경우 정신을 잃게 만드는 연기를 만들어낸다. 후각이 예민할수록 효과가 크다.

[연금술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꿈망울 환?”

이상했다. 처음보는 것이 분명한데, 본 적 있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친숙했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뭐지? 이 기억은?”

그것은 기억이었다. 잊고 있던 기억. 분명 자신의 것은 아닌데, 그럼 대체 누구의 기억이란 말인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곧 정체를 파악했다.

“강태성‥.”

잠시 잊고 있었던 이름이 떠올랐다.

자살 시도 후, 병원으로 옮겨지기 전의 일들이 생각났다.

“꿈이 아니었구나.”

그때의 일도, 어젯밤의 꿈도,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은 기억이 불완전해서 온전히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거짓말처럼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당장 ‘약초학’이라 해도 좋을 만큼 풍부한 정보들이 떠올랐고, 그에 따른 조합법들이 떠올랐다. 그 중에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종류의 것들도 제법 섞여 있었다.

더불어 앞으로 일어날 일들까지.

“우욱!”

망막을 타고 흐르는 어떤 영상 같은 것에, 그 참상에 영민이 헛구역질을 내뱉었다.

참혹했다. 자신이 겪었던 그 어떤 일들과도 비교를 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고, 잔혹했다.

살아있는 자들이 죽음에게 엎드려 안식을 갈구하고, 스스로의 심장을 꺼내 바치며 죽음을 하사받았다.

죽음이 인간의 위에 서고, 시체의 산이 거리마다 쌓였다.

모든 문명이 파괴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으으으으‥.”

그 순간 어떠한 힘이 작용해 정신을 보호했다. 충격을 완화할 뿐 아니라 정신 자체에 작용하여 약간의 변형을 일으켰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과 기억을 보존하고도 자신으로 남을 수 있도록 방어기제를 만들고 작동시켰다.

[게이머의 정신(패시브)을 획득하셨습니다.]

“이럴 수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영민은 떨리는 눈동자로 상황을 정리했다.

“앞으로 10년 후에 세상이 멸망한다고?”

멸망의 원인은 던전이었다. 처음에는 혼란을 가져왔지만 이제는 유전과 같은 중요 자원이 된 던전이, 몬스터가 문제였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 던전과 몬스터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 어느 순간 인간이 감당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존재들이 등장하면서 ‘광산’ 또는 ‘농장’과도 같던 던전이 인간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9레벨, 10레벨 던전이라니‥.”

특히나 막바지에 등장한 9레벨, 10레벨 던전이 압권이었다.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는 그야말로 전율이었다. 가까스로 버티고 유지해가던 인간들의 저지선을 단번에 붕괴시킨 존재들. 지금보다도 크게 성장한 인간들의 전력을 압도하는 그 위용은 꿈 같은 기억에서 보았을 뿐이지만 선명하게 뇌리에 남았다.

이걸 이길 수 있을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났지만 기억 속의 존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악착 같이 달려들어 9레벨 던전에서 나타난 다섯 군주 중 하나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얻어낸 희망.

단 한 명의 헌터를 과거로 돌려보내 이 비극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오로지 단 한 번의 기회만이 주어지고, 회귀 후에는 다시 얻을 수 없는 소모형 아이템. [타임리프의 모래시계].

그것을 얻고 나서 인류는 고민에 빠졌다.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돌아가야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을 이끌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논의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끝에 한 사람이 결정됐다. 바로 강태성. 성장형 능력인 [게이머]를 고유 능력으로 각성한 그가 유일한 대안으로 꼽혔다.

보통의 헌터들이야 능력이 크게 상승할 여지가 별로 없으니 제외되고, 성장형 능력을 가진 이들 중 가장 큰 성장폭과 활약을 보인 강태성이 낙점된 것이다. 다섯 군주 중 하나인 용제를 잡을 때도 가장 활약했던 이들 중 하나이기도 한 그였다.

또한 그가 초반에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마지막 몇 년 사이 급격한 성장을 보인 것에 주목하기도 했다.

낮은 레벨 때문에 제대로 된 헌팅에도 껴보지 못하고 채집꾼으로 전전하느라 초반 레벨 업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 이유라고 했지만 자신의 능력에 대해 완벽히 깨친 지금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지금의 기억과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것들을 이용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용병을 구해서라도 초반 레벨 업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더 빠르게 성장하고, 지금보다 더 강해져서 단신으로도 다섯 군주를 사냥할 정도가 된다면, 직접 마주해본 적조차 없는 ‘그’를 상대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인류는 구원 받을 수 있을지 몰랐다.

“맙소사‥.”

그런 그가 사라지다니.

자신 때문에 회귀한 순간 죽음을 맞이하게 되다니.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버렸다.

“회귀면 기억만 가지고 깨어나야 하는 거 아니야?”

타임리프의 모래시계를 사용하는 순간, 그가 돌아가는 장소가 원래 그 시간대에 있어야 할 위치에서 몇 km정도 오차가 생기는 탓이다.

하필이면 그 위치가 영민이 자살을 위해 뛰어내리던 공사장의 아래였고, 그 다음은‥. 알고 있는 대로였다.

“인류의 희망을 내 손으로 죽이다니.”

아니, 손은 아닌가? 어쨌든.

“그럼 이제 인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기억 속에서 봤던, 그 고통을 또 다시 반복해야 하는 건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상황일 수도 있다. 강태성이 이룬 것들도 적지 않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누군가가 그를 대신해야하지 않겠나.

“가만, 대신이라고?”

강태성의 능력을 온전히 이어받았다면 그의 역할을 자신이 대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어째서인지 그의 기억까지 흡수한데다, 자신의 고유 능력인 드레인까지 있으니 오히려 유리한 입장일 수 있었다.

“그를 대신한다라‥.”

물론 자신은 없다. 평생 불운 때문에 웅크리고 살기만 했으니 나서서 세상을 구한다는 일에 자신이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강태성의 기억에서 엿본 참상과, 기억을 타고 흘러드는 그의 감정을 읽은 터라 쉽게 포기 할 수도 없었다. 그런 큰 인물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까지 밀려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영민은 그 자리에서 주변의 상황도 잊고 한참을 고뇌에 빠졌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하는데 까지는 해보자.”

하고자 한다고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강태성이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아니 희박한 성공 확률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러니 너무 고민할 것도, 애를 쓸 것도 없었다.

그의 사명을 잊지 않고 최대한 노력하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사실 지금까지 뭔가가 되본 적이 없는 영민으로서는 성공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것이 어색했다.

“일단은 저것들부터 어떻게 해야겠지?”

현실로 눈을 돌리니 여전히 마을 안에는 코볼트들이 득실거렸다.

두렵지는 않았다. 놈들을 상대할 방법이 머릿속에서 마구 솟구치고 있으니까.

일단 마을 주변을 벗어난 영민은 마른 잎과 나뭇가지를 모았다. 근처에 물가라도 있었다면 물방울 돋보기를 만들었겠지만 아쉽게도 물소리가 들리지는 않아서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마른 나뭇가지들을 비벼 불을 붙이는 것!

순간적인 마찰력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방식으로, 건장한 성인 남성들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영민에게는 두 가지 커다란 이점이 있었다.

바로 힘 스텟과 운 스텟.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지니 불은 의외로 금방 붙었다.

[캠핑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동시에 스킬로 등록되기까지 했다. 이제 마른 나뭇가지만 있으면 힘들게 비비지 않아도 불을 붙일 수 있었다.

“편리하네.”

고유 능력 [게이머]가 가진 장점 중 하나였다.

많은 행동들을 스킬화 시킬 수 있고, 많은 종류의 능력들을 스킬로 체득할 수 있는 것. 클래스가 딱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샌드박스형 게임이 모티브이기라도 한 것인지 스킬을 익히는 것에 제한도 없다.

전사이며 마법사이자 사제이고 도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시간만 충분하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실제 강태성 역시 회귀 전에 다양한 클래스의 스킬들을 복합적으로 익혀 시너지를 내기도 했으니까.

“이제 가볼까?”

원하던 스킬을 익혀낸 영민은 약초 채집 스킬의 부가 능력인 약초 탐지를 사용하며 천천히 코볼트 마을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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