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내 집 안 던전 (2)
놈의 입속 깊숙한 곳에서 출혈이 발견 되었다. 혹시나 싶어 입을 더 크게, 찢을 듯이 벌리자 무언가 이물질이 보였다.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하던 영민은 찝찝함을 무릅쓰고 깊숙이 손을 넣어 그것을 만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닭의 뼈. 과격하게 씹어 먹다 날카롭게 부러진 그것이 놈의 숨통을 찌른 것이다.
“개도 아니고··. 아니, 개가 맞나?”
개한테 닭 뼈를 줬다가 목에 걸려 죽었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코볼트가 치킨을 먹다가 닭뼈에 찔려 죽었다는 소리는 또 처음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개그치냐며 피식 웃음을 지을 이야기.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코볼트의 민첩함을 흡수합니다.]
[코볼트의 민첩함을 흡수합니다.]
“어?”
영민이 코볼트의 시체를 살피고 있을 때, 저도 모르게 또 다른 능력이 발휘됐다.
확인해보니 민첩 수치가 올라 있었다. 그것도 무려 2씩이나. 2레벨을 올리고 얻은 보너스 포인트가 2인데, 그저 시체를 만진 것만으로도 2가 올랐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혹시 드레인이··?”
그제서야 영민은 자신의 고유능력에 쓰여있던 정보를 다시 생각했다.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정말로 2개의 고유 능력을 가진 것이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움찔 몸이 떨렸다. 짜릿한 쾌감이 정수리를 타고 흘렀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강해 질 수 있다.”
누구보다도.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 영민이지만 이번만큼은 황홀한 생각에 부풀었다. 게임과 같은 능력인 만큼 ‘만렙’이 있을 수 있고, 드레인에도 한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D등급 이상으로는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노력여하에 따라, 운이 따라준다면 어쩌면 B급, A급이나 그 이상으로도 성장할 수 있을지 몰랐다.
“가만, 몬스터가 죽었다면··.”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해던 영민이 돌연 자세를 낮추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던전에서 몬스터가 죽었을 때, 일정 확률로 나타난다는 아이템을 찾는 것이다.
“으음, 없는 건가?”
시체를 뒤집어 봤지만 아이템의 흔적은 없었다. 역시 이것까지 바라는 건 무리였던 걸까?
“아, 설마.”
포기하려던 순간,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게이머의 능력이라면 당연히 인벤토리도 있지 않겠나? 어쩌면 아이템이 인벤토리로 바로 들어왔을지 모를 일이다.
“인벤토리.”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외치자 정말로 인벤토리, 아이템 창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한 켠에 두 개의 아이템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마리의 코볼트를 잡고 아이템 두 개 라니, 던전의 레벨이 낮다고 드랍률이 크게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때, 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망치와 신발?”
그것도 꽤 좋은 부위만 떨어졌다. 당장 이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아이템. 무기와 신발.
공격력과 이동속도 상승 능력이 기본으로 붙어있는 아이템의 등장에 영민은 큰 용기를 얻었다.
[코볼트의 조잡한 망치][매직]
코볼트들이 사용하는 조잡한 망치.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몬스터를 대상으로 특별히 강한 위력을 자랑한다.
- 공격력 : 10 ~15
- 내구도 : 100 / 100
-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몬스터를 공격할 시 150%의 데미지
[코볼트의 낡은 장화][레어]
코볼트들이 사용하는 낡은 장화. 걸음걸이를 빠르게 만들어주며 도망치는 적을 추격할 때 빛을 발한다.
- 내구도 : 100 / 100
- 민첩 + 1
- 기본 이동속도 10% 상승
- 도망치는 적을 추격할 시 이동속도 30% 상승
“헐.”
심지어 보통 아이템이 아니었다. 무려 매직과 레어 등급의 아이템. 등급이 높아질수록 드랍률이 낮아지는 것을 생각할 때, 두 개나 동시에 고등급 아이템이 드랍된다는 것은 보통 운이 좋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정말 운이 엄청나게 좋아진 건가, 나?”
생각해보니 1레벨 던전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 등급의 아이템이 레어라고 했던 것 같다.
두 개의 아이템을 손에 들고도 자신의 운을 실감하지 못한 영민은 한참이나 그대로 멍하니 서있다가 엉뚱한 이유로 정신을 차렸다.
“가만, 이거 아이템도 확인 되는 거였어?”
현실에서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능력이니 아이템 정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영민이 갑자기 눈을 껌벅였다.
아이템 정보 확인은 ‘감지 계열’의 능력이 아니던가? 더구나 이정도 자세한 정보라면 감지 계열 중에서도 상위에 속할 법한 능력이었다.
“이거 엄청나잖아.”
까면 깔수록 자신이 각성한 고유능력의 활용은 무궁무진했다. 앞으로는 어떤 능력들이 선보일까 기대가 될 정도.
영민은 들뜬 마음을 간신히 부여 잡고 정신을 차렸다.
“그래. 아직 아니야.”
아직 던전은 끝이 난 게 아니다. 언제든 코볼트나 그보다 더한 몬스터가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저주한 ‘불운의 신’의 계략일 수 있었다. 인생 최고의 순간에 올려놓았다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그런 비슷한 일들을 수도 없이 당해온 영민은 헤롱대려는 자신을 다잡았다.
“싸우려면 무기를 들어야겠지?”
일단은 무장을 하는 것이 먼저다. 어떻게 꺼내야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리저리 인벤토리를 만져 무기와 신발을 꺼내고 직접 착용했다.
“이거 명령어로도 되려나?”
그러다 문득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실험을 해보니 예상이 적중했다. 아이템 명 뒤에 착용이라고 말을 하면 자동으로 무기가 손에 쥐어지고, 해당 부위에 방어구가 착용 되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했다.
아예 슬롯을 정해 한 번에 세팅을 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지만 당장 발견하지는 못했기에 미뤄두었다.
“이제 보너스 포인트를 써야지.”
매직 등급의 무기를 들고나니 당장이라도 코볼트의 골통을 부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지만 여럿이 몰리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자신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상태창을 열고 잠시 고민한 영민은 일단 포너스 포인트 두 개를 모두 힘에 투자했다.
7에서 9로 올랐을 뿐이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약 30%만큼 힘 수치가 늘어난 것. 그렇다면 정말로 그에 비례해 힘이 강해졌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손에 쥔 코볼트의 조잡한 망치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 정도로까지 강해졌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는 각 능력치가 ‘추가’적인 능력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각성과 함께 영민의 힘이 추가로 증가했을 뿐이기에 완전히 비례하지 않은 것이다.
아직 그렇게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조금은 강해진 기분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방향은··이쪽이다.”
처음 코볼트들이 나타났던 방향으로 점찍었다. 어차피 던전의 지리를 모르니 어디로 가나 똑같았다.
과연 몇 마리나 더 있을까? 코볼트가 전부일까? 어차피 1레벨 던전이라면 몬스터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겠지.
여러 가지 잡생각이 떠올랐다. 긴장감에 전신이 뻣뻣해졌다.
1레벨 던전에서 최저로 나타난 몬스터의 수는 1이니 이미 그 두 마리로 이 던전의 몬스터가 끝일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경계하며 걸었다.
“컹! 컹!”
“왔구나.”
다행히 이번에는 한 마리였다. 이제는 치킨도 없다. 맞서 싸워야만 했다.
직선으로 덤벼드는 놈을 피하기 위해 횡으로 걸음을 옮기며 빈틈을 찾았다.
“크르릉!”
타앗
놈이 네발로 도약했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영민을 덮쳐왔다.
“으아앗!!”
동시에 영민도 힘을 발휘했다. 잔뜩 끌어모은 힘을 그대로 망치에 담아 놈을 후려쳤다.
[크리티컬!]
퍼억
후두두둑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망치가 코볼트의 입에 틀어박혔다. 전투에 익숙하지 못한 탓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고, 그 탓에 정수리가 아닌 입안에 망치가 쳐박힌 것이다. 이 또한 운이라면 운이었다.
그리고 나타난 알림음!
치명타 효과가 터지며 데미지가 증폭되었다. 거기에 무기의 특수 능력이 더해졌다.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대상에게 150%의 공격력을 발휘한다!
잘쳐줘야 중형견 사이즈인 코볼트이기에 효과는 당연히 적용됐다.
“히잉···.”
일격에 죽지는 않았지만 코볼트의 이빨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가장 강력한 공격 수단이 사라져버렸다. 예리한 손톱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빨을 모두 뭉개고도 아직 건재한 망치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헝!”
영민이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이빨이 모두 나간 코볼트가 뒷걸음질을 쳤다. 살고자 도망쳤다.
“그렇게는 안 되지!”
그것을 영민이 놓치지 않고 따라붙었다. 그 순간 신발의 특수 능력이 발동해서, 평소보다 빠른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퍼억!
결국 도망치던 코볼트의 골통을 깨놓고서야 멈춰섰다.
[코볼트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코볼트의 민첩함을 흡수합니다.]
이번에도 레벨 업! 혹시나 싶어 시체에 손을 올리니 이번에도 능력이 흡수되었다. 보너스 포인트는 이번에도 힘에 투자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추가 능력치가 부여 될 뿐 아니라 한 가지 능력이 1만큼 상승하는 것이다.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인지, 랜덤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레벨이 오를 때마다 상승한다면 상당한 능력의 강화를 만들어낼 터였다.
“질긴 가죽 손목 보호대라.”
인벤토리를 열어보니 아이템이 또 들어왔다. 이번엔 손목 보호대. 매직 등급은 아니지만 체력과 민첩성을 올려주는 기능이 붙어 있는 놈이었다. 더구나 방어력도 제법이라 코볼트가 달려들면 일부러 손목을 물려주고 망치고 골통을 부숴놓는 것도 방법이겠다 싶었다.
“마을이라도있는 건가?”
이후로 세 마리의 코볼트를 더 상대한 영민은 놈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방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생의 코볼트가 한 방향에, 이토록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혹시 코볼트 마을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낯빛이 어두워졌다.
“셋 이상은 무리인데.”
코볼트가 경험치를 많이 주는 것인지, 자신의 레벨이 워낙 낮았던 탓인지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1레벨 씩 오른 덕분에 벌써 레벨은 7, 스텟은 힘 15에 민첩 12, 체력이 7이나 되었고 장비도 두 개나 더 얻었지만 셋 이상의 코볼트가 덤빈다면 무사할 자신이 없었다.
“포션 같은 건 안 나오나.”
그렇다면 어떻게든 서너 마리까지는 비벼 볼 텐데.
불만 아닌 불만을 투덜거리며 더 깊숙이 걸음을 옮겼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10분쯤 더 걸었을까? 코볼트가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때쯤,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울타리의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로 보이는 곳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코볼트의 모습도.
“킁, 킁.”
“이크!”
바람을 타고 날아온 영민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놈이 코를 킁킁거리는 모습에 멀리 있던 영민이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놈을 관찰했다.
“휴, 다행이다.”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몇 번 컹컹거리며 냄새를 맡던 녀석은 다시 안으로 사라졌고, 영민은 더 이상 접근하기를 멈췄다. 대신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 올라 안을 훔쳐보려는 것이다.
“말도 안돼··.”
마을 안쪽을 살핀 영민은 다시금 자신의 운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다산을 하는 종족답게 너무나 많은 코볼트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어림잡아도 스물은 족히 되어 보이니, 뭔가를 해볼 엄두가 안 났다.
그때, 시선을 잡아끄는 알림이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