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내 집 안 던전 (1)
“저기, 등록을 하려고 왔는데요.”
“네. 반갑습니다. 성함이?”
“권영민입니다.”
“권영민. 권영···. 아, 여기 있네요. 추천을 받아 들어오셨군요.”
딱 봐도 낙하산이 분명한데 접수계의 여자 직원은 싫은 내색하나 없이 그의 등록을 도왔다.
‘아니, 낙하산이라 더 잘해주는 건가?’
시작부터 B등급에 육박하는 힐러라면 꽤나 유력한 인사였다. 그렇다면 그럴 만도 하지.
다른 곳이 아닌 아리랑 길드이니 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한 인물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었다.
“채집꾼 일정표는 여기 있구요. 여기 있는 아이디로 접속하시면 온라인으로 참가신청 하실 수 있어요. 물론 등급 제한은 있어요. 채집꾼의 경우 숙련도에 따라 참가 가능한 던전 레벨이 달라지니 꼭 숙련도가 오르면 10단위로 보고해주시구요.”
“아, 예.”
“그럼 또 궁금하신 점 있으신가요?”
“아··니요. 된 것 같습니다. 일단은요.”
“예. 그 아이디로 접속하시면 온라인으로 기본 교육을 받으실 수 있으니까 일단 그것부터 보시고 모르시거나 궁금한 점 있으시면 물어봐주세요.”
영민은 끝까지 상냥한 여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일단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한 쪽 구석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여직원이 알려준 인터넷 주소에 접속해 아이디를 입력했다.
“오,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영민은 그게 그렇게 기뻤다. 평소의 자신 같으면 서버가 다운되거나, 계정에 문제가 생겼을 텐데··.
“어디보자··. 내일? 그래. 해보자.”
내친김에 채집 일정도 잡았다. 마침 당장 내일 1레벨 던전에 자리가 있었다. 가장 약한 몬스터와 환경이 제공되는 1레벨 던전의 경우 채집 가능한 최소 숙련도가 낮은 것들이 많아서 영민 같은 초짜들도 참여가 가능했다.
무리하면 2레벨 던전까지도 지원은 가능했지만, 안전을 고려해 1레벨로 신청했다.
‘정말 된 건가?’
혹시나 싶어 몇 번이고 다시 봤지만 ‘참여 완료’라고 적힌 글자는 선명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도 이제 평범해질 수 있는 걸까?”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을 보며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확실히 예전만큼의 불운은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날 그냥 넘어갈 수 없지.”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D등급 이상의 헌터는 아니기에 거창한 축하까진 할 수 없겠지만, 이런 날 혼자만의 소소한 자축 정도는 해줘야지.
영민은 큰 맘 먹고 집까지 택시를 타고, 근처에서 내려 통닭을 두 마리나 샀다. 하나는 후라이드, 하나는 양념. 평소라면 반반을 주문했겠지만 오늘은 각자 한 마리씩을 튀기는 사치를 부렸다. 거기에 맥주와 콜라까지.
양손 무겁게 드는 것만으로 흐뭇해지는 조합이었다.
아참, 가게를 나서기 전 슬쩍 열어 닭다리의 수도 확인했다. 저번에는 닭다리가 없고 웬 날개가 4개에 목이 8개나 들어있었지. 결국 먹을 것 하나 없어 쪽쪽 빨기만 하다 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아싸!’
심지어 오늘은 닭다리가 3개였다. 한 쪽에는 정상적으로 2개가 들어 도합 5개. 사장님이 숫자를 잘못 세셨나보다.
영민은 그걸 굳이 밝히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체크카드도 정상적으로 긁혀서 결제가 됐고, 공사중인 길도 없었다.
남들에겐 평범한 일이겠지만 영민에겐 말도 안 되도록 특별한 날이다.
“다녀왔습니··.”
아무도 없는 집의 문을 기분 좋게 열어젖히는 순간, 영민의 얼굴이 굳어졌다.
기묘한 감각과 함께 그의 원룸이,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뀌었다.
“이게 무슨··?!”
열었던 문도, 막혀있어야 할 벽도 없었다. 사라졌다.
대신 울창한 숲이 영민을 맞이했다.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기분. 아니, 실제 공기부터가 달라졌다.
“던전!”
영민이 상황을 파악했다. 비명 같은 외침을 내질렀다.
그의 집이, 하필이면 그 순간에 던전으로 변해버렸던 것. 던전이 어디에나 생길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집일 줄은, 그 상황에서일 줄은 영민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킁? 킁? 크그킁.”
“어? 어?”
게다가 그의 외침이 주변에 머물던 생명체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털옷 같은 녹색 피부에 붉은 갈기를 하고 있는 괴생명체가 코를 킁킁 거리며 다가오게 만들었다.
“헙!”
그 모습을 보고 영민이 뒤늦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지만 이미 늦었다. 놈들은 영민을 확실히 인지했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코볼트!’
개처럼 몸을 납작 엎드리고 다가오는 놈들의 정체는 영민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인간을 닮은 개’라고 불리는 코볼트.
힘이며 흉폭성이 대단해서 웬만한 성인 남성들도 일대일로 싸워 이기기 쉽지 않다는 놈이다.
“쉬! 쉬! 저리가!”
“크르르르-.”
영민이 팔을 휘저으며 놈들을 쫓아내려 했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다. 침을 흘리고, 혀를 핥으며 흉폭성을 드러내기만 할 뿐 도망갈 생각 따위는 전혀 없어 보였다.
점점 다가오는 두 마리의 코볼트들.
“으, 으, 으아아악!!!”
영민은 손에 든 치킨을 내팽겨 치고 달아났다. 코볼트는 고작해야 1레벨 던전에서나 나타나는 몬스터. D등급만 되도 여유롭게 잡을 수 있다고 알려졌지만 영민은 F등급이었다.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마나에, 계열 분류에서도 흑색이 떠서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 도망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컹! 컹!”
쫓을까, 말까.
코볼트들은 순간 고민했다.
원래대로라면 등을 보인 사냥감을 쫓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그러기에는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가 너무 강렬했다.
“크릉? 크릉!”
아찔한 치킨의 유혹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헙, 헙, 헙.”
영민을 쫓기를 포기한 두 마리의 코볼트는 각각 치킨이 들어있는 봉지 하나씩에 얼굴을 묻고 허겁지겁, 뼈째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헉, 헉, 헉.”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민은 온 힘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처음 몬스터를 만난 충격에,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여유도 없었다.
한참을 달리던 영민이 겨우 멈춰서게 된 것은 뜻밖의 알림 때문이었다.
[코볼트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코볼트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응?!”
스킬북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난 알림창에 영민이 황당해하며 멈춰 섰다. 다행히 뒤쫓아오는 소리는 안 들리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코볼트를 사냥했다고? 누가??
“내가? 코볼트를?”
영민은 의미불명의 알림에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이 한 거라곤 죽어라 도망친 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코볼트를 죽인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무시하려다가 또 다른 알림을 슬쩍 터치해보았다.
“레벨 업?”
현실이 게임도 아니고 레벨 업은 또 왠 말인가? 혼란이 극에 달하려는 그때, 터치에 반응해 또 다른 창이 나타났다.
알림창과 비슷했지만, 크기나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다.
[권영민]
레벨 : 3 고유능력 : 드레인, 게이머
타이틀 : 천운초월자 성향 : 중립
Hit Point : 50 Mana Point : 50
힘 : 7
민첩 : 5
체력 : 5
마력 : 5
정신력 : 5
행운 : Max
보너스 포인트 : 2
“이건··!”
마치 RPG 게임에서 보던 상태창 같지 않은가? 영민은 혼란스러웠지만 간신히 정신을 바로 잡았다.
“이게 다 뭐야··.”
익숙하면서도 낯선 문자들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정말 레벨이 올랐단 말이야? 대체 왜? 그리고 고유 능력이 2개라고? 호칭은 또 뭐야?
이해 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였다.
“후우, 하나씩 생각해 보자.”
그러나 언제까지 혼란스러워 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던전이니까. 코볼트가 출몰하는 것으로 봐서는 다행히 1레벨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반인에게는, E등급의 헌터에게는 위협적이었다.
“알림대로면 나를 쫓아오던 코볼트들이 죽었다는 말인데··.”
미심쩍은 눈길로 자신이 달려온 길을 쳐다보았다. 당장이라도 코볼트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덤벼올 것만 같은 기분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알림은 분명 놈들의 죽음을 알렸고, 레벨도 올라있다. 만약 중간에 다른 포식자가 나타나 놈들을 잡아먹은 거라면 레벨이 올라있지 않겠지.
“이건 확인해볼 수밖에 없겠네.”
두려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집을 찾아오기 전까지는 이 던전이 생겨났는지조차 모를 테고 자신의 집을 찾아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도망치기만 해서는 답이 안 나왔다.
“그리고 고유 능력.”
보통 헌터들이 각성하는 고유 능력은 하나다. 스킬이 여러 가지 일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고유 능력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일 뿐, 근원이 되는 능력은 오직 하나 뿐이다.
그런데 자신은 두 가지나 나왔다.
하나는 드레인, 하나는 게이머. 이건 도대체 무슨 능력일까? 무슨 능력이길래 계열 측정에서 검은색이 나온 것일까?
“이렇게 능력을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거라면··.”
그래. 그럴 수 있지. 그걸 구현화계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조작계나 변화계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니까.
그럼 드레인은 대체 뭐지?
“자신이 죽인 대상의 능력 중 일부를 랜덤하게 흡수 할 수 있다··?”
드레인이라 적힌 공간을 터치하자 능력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경험치를 말하는 건가?”
그것을 영민은 제멋대로 해석해버렸다. 게이머와 드레인이라는 두 개의 능력이 결국은 한 쌍을 이루는 능력이라고.
“그럼 랜덤이라는 말은 왜 붙어 있는거지?”
그러나 영민이 만약 진실을 알았다면 놀라다 못해 까무러치고 기절을 했을 터였다.
게이머의 능력은 바로 어제, 영민이 자살시도를 하며 깔아뭉개 죽인 존재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랜덤하게 자신이 죽인 대상의 능력을 흡수하는 ‘드레인’이 그의 고유 능력인 ‘게이머’를 흡수했다.
그렇기에 알림을 들을 수 있고, 상태창을 열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레벨을 올려 능력을 상승 시킬 수도 있는 것이고.
세상을 구하고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라며 동료들이 희생하여 회귀시킨 강태성의 고유능력이 지금 영민에게서 발휘되고 있었다.
“알 수가 없군.”
그것을 알 턱이 없는 영민은 제멋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항목을 터치했다.
바로 타이틀, 천운초월자.
“이게··말이 돼?”
그 설명을 읽은 영민은 그 어떤 것보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타이틀 ‘천운초월자’]
인간이 감당 할 수 없는 ‘하늘이 내린 불운’을 뛰어넘은 존재에게 부여되는 타이틀. 그 동안의 모든 불운을 행운으로 바꾸어준다.
- ‘하늘이 내린 행운’ 획득
- 행운 수치가 최고치로 고정
- 타이틀 보유 시 자동 적용된다.
자신이 행운이라니?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정말로 행운 수치가 Max로 표기되어 있었다. 몇이 최고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면 모두 사실이었다.
“내가 최고의 행운을 가졌다니··.”
얼떨떨했지만 떠올려보니 꽤 운이 있기는 했다. 능력 평가에서 F등급이 나온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덕에 지한의 도움을 받아 국내 톱10에 들어가는 길드의 직속라인에 들어가지 않았나? 닭다리도 하나 더 들어 있었고.
“좋아. 가보자.”
영민은 결심했다. 용기를 내어 한발 한발 되돌아갔다. 정말 레벨 업 알림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그렇게나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 됐다면 고작 1레벨 던전에서 어찌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어차피 이대로는 고립되어 죽을 판이다.
그렇게 한참을 되짚어가자 알림에 나타났던 코볼트의 시체가 보였다.
“이건 설마··.”
깜짝 놀라 다가가 살피니 두 마리의 코볼트는 정말로 죽어 있었다. 서로 다툰 것도 아닌 모양이다. 두 녀석 모두 외관상으로는 상처하나 없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심장마비? 뇌출혈? 아니다. 놈들을 살핀 영민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닭 뼈가 목을 찌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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