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행운의 각성 (2) >
“헌터 동기끼리 통성명이나 하지. 난 지한이야. 성은 진. 진지한.”
“매칭은··안 되네요. 권영민입니다.”
누군가와 말을 섞고, 어울리는 것이 어색한 영민이지만 워낙 그가 유쾌하게 다가오기도 했고, 명색이 헌터씩이나 되는 사람이니 조금은 불운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악수를 받았다.
“어때, 무슨 등급이 나올 것 같애? 혹시 어떤 타입 능력인지 확인해봤어?”
“글쎄요··. E등급만 아니면 다행이겠죠.”
꼭 헌터 능력 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대략 자신의 능력과 타입을 확인하는 경우도 많았다. 가령 힘이 세지거나, 몸이 단단해지거나, 불꽃을 조종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그러나 영민은 아직까지 그런 자각 증상은 느끼지 못했다. 적어도 몸을 쓰는 강화계는 아니라는 소리. 불운 때문에라도 몬스터를 상대하다 자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니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하하. 젊은 친구가 소심하기는. 꿈은 크게 가져야지!”
“아저씨는요?”
“에이, 형이라고 불러. 나는··. 요거!”
“헐··.”
그의 손에서 나타난 것은 연한 초록 빛의 은은한 빛무리. 보는 것만으로 따스한 위로가 되는 것이, 그 효과가 분명했다.
“와, 귀족이시네요. 축하드려요!”
영민 뿐 아니라 함께 이동하던 모두가 깜짝 놀라 부러워했다. 근육질의 호남인 그의 외형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귀하디귀한 지원계열, 힐러의 능력을 얻은 것이다.
몇몇은 질투가 나고 입맛이 썼는지 표정이 안 좋았지만 영민은 진심으로 그를 축하해주었다. 다른 이들이야 ‘저 능력을 내가 가졌어야 하는데··.’하고 생각을 하지만 어차피 불운한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것이다.
“나처럼 섬세한 사람한테 딱 어울리는 능력이지? 하하하. 운이 좋았어.”
진지한은 과하게 으스대지도, 너무 겸손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잘난 척을 하면 재수가 없는 법이지만 잘난 사람이 잘난 것을 아는 것은 간혹 멋있어 보이기까지 하는 법이니까.
“내가 보기엔 자네도 결과가 좋을 것 같은데? 빈말이 아니라 내 촉이 그래! 내가 촉이 굉장히 좋은 편이거든.”
‘그럴 리가요··.’
진지한의 덕담에 영민은 어색하게 웃어 넘겼다.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어허, 진짜래도? 내 촉을 믿어봐!”
“하하··. 예. 그랬으면 좋겠네요.”
“거기. 잡담은 거기까지.”
“헛, 넵.”
진지한이 영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장난을 걸고 있을 때, 그들을 인솔하던 헌터가 슬쩍 째려보며 제지했다.
금세 자세를 바로 잡는 두 사람.
“거참, 깐깐하네. 그지?”
그러나 진지한은 포기하지 않고 소곤소곤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재미있는 형이네.’
그렇게 잡다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헌터협회의 가장 깊은 곳, 헌터의 기본 능력을 측정하는 두 가지 측정기가 있는 장소였다.
“자, 이쪽부터 한 줄로 서서 진행합니다. 새치기하거나 시끄럽게 굴면 맨 뒤로 보내버릴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그러면서 살짝 째려보는 것이 진지한의 투덜거림을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어떤 계열이든 헌터라면 기본적으로 일반인들보다 우월한 신체 능력을 가지게 되니까.
상대는 최소 C등급의 헌터. 감히 반항할 생각은 못하고, 모두가 차례차례 측정을 위해 얌전히 줄을 섰다.
측정은 체내 마나량을 확인하는 등급 평가와 능력의 종류를 확인하는 계열 평가로 이루어졌다. 둘 다 측정기에 손을 올리는 것만으로 확인이 가능한 간단한 일이지만 이 또한 회당 백만원이나 받아먹었다. 도합 이백만원. 손 한 번씩 올리게 하는 것치고는 무척이나 비싼 금액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미 마나를 가진 예비 헌터들인 만큼 나중에 갚아도 된다는 것이다. C급 헌터만 되도 억대 연봉은 우스운데 꼴랑 이백만원을 떼어먹겠나.
만약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갚지 않는 자가 있으면 협회 측에서 강제로 임무를 부여하는 식으로 비용을 처리하게 했다. 물론 이자까지 감안해서 이백만원보다는 비싼 임무로 퉁을 친다.
임무까지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헌터협회에서 제명된다.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헌터는 던전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하고 능력을 이용해 수입을 벌어들이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헌터질을 계속하려면 갚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설사 해외로 도피를 해도 마찬가지다. 헌터협회라는 것이 대한민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본부가 있고, 각 지역에 지부를 두는 방식이기에 타국으로 망명한다 해도 자격박탈은 여전하다.
헌터 중에서도 최약체인 E등급 헌터만 되어도 잘만하면 월 200~300만원 쯤은 수월히 벌 수 있으니 사실 이 정도까지 오는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마나량 512. D등급!”
“마나량 607. D등급!”
“마나량 389. E등급!”
측정이 시작되자 한 사람 한 사람, 등급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측정기에 나타나는 마나량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이 마나량과 등급은 능력의 성장에 따라 변화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좀처럼 등급이 올랐다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그만큼 초기의 측정결과가 중요했다.
그렇기에 순간순간 발표되는 사람들의 얼굴에 희비가 교차했다. 어쩌면 인생이 결정되고, 바뀔지 모르는 결과인 만큼 수능시험 결과발표 때보다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결과가 좋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민도 은근히 긴장이 됐다. 괜시리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것이 떠올랐다.
‘진짜 E등급이 나와서 채집꾼이나 하는 건 아니겠지?’
초조함에 몸을 떨자 진지한이 걱정 말라며, 자신의 촉을 믿으라며 큰 소리를 쳤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 저기 스카우터 아니야?”
한창 측정이 진행되던 중, 누군가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작지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로 조금 전까지 못 보던 인물들이 와있었다.
각 길드의 스카우터들. 초기부터 높은 등급을 받거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유망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가끔씩 들른다는 이들이었다.
“스카우터들이 벌써 왔다고?”
때문에 스카우터가 능력 측정장에 나타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측정을 시작하자마자 몇 명이나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은 고등급의 루키가 나타나거나 특이 능력자가 나타났을 경우 협회의 연락을 받고 나타나니까.
헌터들과의 협상 우선권은 협회측에 있다지만 협회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인재에 대해 인색한 편인 만큼 길드에 가입하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이때 먼저 측정장에 도착을 한다면 친밀도를 쌓든 말로 구워 삶든 접촉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지기에 소식이 들리면 서둘러 오기는 했지만 오늘은 좀 이상했다. 아직까지 C등급 이상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아, 지한이형 때문인가?’
의아해하던 영민은 옆에서 너스레를 떨고 있는 지한을 쳐다봤다. 힐러라면 그럴만 하지. 생각해보니 힐러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가 ‘빠른 능력의 구현력’이라고 했던 것 같다. 등급에 따라 얼마나 빠르게 회복 주문을 캐스팅할 수 있는 지가 다르다고.
아까 보여줬던 지한의 속도라면 제법 등급이 높지 않을까?
그렇다고 벌써 알려졌다는 것이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는 저들이 와있을 이유가 딱히 없었다.
“다음!”
그러는 사이 측정 순서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현재까지 최고로 높게 나온 등급은 C급. 나머지 대부분이 D급이었고 간혹 E급을 받은 이들도 있었다. 억울한 표정으로 구석에서 울고 있는 자들이다.
이게 보통이었다. 시작부터 B등급 이상인 경우는 정말로 드물었으니까.
“다음!”
드디어 영민의 차례가 되었다.
심장이 뛰는 것이 손 끝으로 느껴졌다.
긴장한 탓에 잠시 멈칫거리는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귀찮다는 듯 인솔했던 헌터가 찡긋 인상을 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측정기에 손을 올렸다.
“영민 동생 파이팅!”
뒤에서는 진지한이 방방 뛰며 응원을 했다.
꼴깍!
마나량 1, 3, 5, 7, 10··.
천천히 숫자를 바꾸어가는 측정기.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지며 올라가는 수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마나량 50! E등급··아니, F등급? 뭐야 이거?”
곧이어 나타난 결과치에 영민보다 측정기를 조작하던 헌터가 더 놀랐다. 마나량이 50이라고? 처음보는 수치였다. F등급이라는 건 기준표에만 있고 실제로 나타난 적 없는 것이 아니든가?
일반인이 가진 마나량이 1~10이고,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마나량을 보유한 헌터가 100이었다. 벌써 몇 년 동안 확인되고 검증되어 온 일. 그래서 등급 기준표에 나와있는 E등급의 마지노선도 100 마나까지였다.
그런데 50 마나라니? 들어본 적도 없고, 등급표에도 나와있지 않은 수치다.
E등급보다 아래니 굳이 표현하자면 F등급이라고 해야할까?
기묘하게 일그러지는 헌터의 표정과 달리 이제 영민의 표정은 평온을 찾은 뒤였다.
‘아, 역시. 그럼 그렇지.’
그 어렵다는 헌터 각성까지 했다길래 한가닥 희망을 걸어봤는데 역시나 자신은 자신이었다.
하다못해 D등급이라도 받기를 바랬지만 불운의 신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헌터계의 쓰레기라고 불리는 E등급보다 더 낮은 등급이라니? 역시 그래야 자신이지.
거짓말이라며, 잘못 측정된거라며 난리를 피우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으으음··. 다음!”
혹시나하는 마음에 측정을 잠시 멈추고 정상작동여부를 파악한 헌터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머뭇거리다가 검사 재개를 선언했다.
마나량 50이라니. 그 자체로 협회와 학계에 보고가 될 일이지만 일단은 영민의 인적 사항만 체크해두고 측정을 이어갔다.
“마나량 4585, C등급!”
곧 진지한의 측정 결과가 나왔다. 무려 C등급. 그것도 B등급으로 올라서기 직전의 C등급이었다. C등급의 기준이 4999까지이고 5000부터가 B등급이니까.
거기다 힐러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더욱 높았다. 단순히 회복 능력만을 가진 것인지, 버프 능력까지 갖춘 것인지는 천천히 확인하고 개발해봐야 알겠지만 힐러는 그 자체로 한 등급 높게 쳐주기 때문이다. C등급이라면 B등급 대우를, B등급이라면 A등급 대우까지도 받을 수 있었다.
역시나, 발표와 동시에 스카우터들이 벽에 기대고 있던 자세를 바로잡고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거참 이상하네. 촉이 분명 했는데··. 영민 동생, 너무 실망 하지 마. 등급을 올리는 게 불가능 한 건 아니니까.”
그러나 정작 진지한은 자신의 등급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자신의 설레발 때문에 영민이 더 상처를 받은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다독여주기 위해 다가왔다.
“괜찮아요. 형. 제가 좀···운이 없거든요.”
그러면서 힘 없이 웃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진지한은 주먹을 꽉 쥐며 선언했다.
“에이,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좋아. 내가 한 말이 있으니까, 내가 우리 영민 동생 키워준다! 못해도 D등급까지는 어떻게든 키워줄 테니까 걱정 하지마!”
“하하. 말이라도 고맙네요.”
그의 호언장담에도 영민은 웃을 뿐이었다.
< 3화 - 행운의 각성 (2)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