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행운의 각성 (1) >
막 각성에 성공한 권영민은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들에, 사람이 죽었다는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밀려들어오는 기억은 흐릿했다. 온전하지 못하고 파편화되었으며 드문드문 이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을 수 없었다.
SS급의 능력자라니? 10등급 몬스터가 출현해 인류를 멸망한다니?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해 과거로 회귀를 했다고?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깔려 죽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으으윽!”
털썩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그가 쓰러진 다음에도 몸에서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작용을 했지만 폭발음을 듣고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영민이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킨 것은 그로부터 삼일 후였다. 영민이 자살에 실패하며 만들어낸 큰 충격파에 몰려온 사람들이 쓰러진 그를 구한 것이다.
“여기는‥.”
“총각, 정신이 들어?”
바로 옆 침상에 있던 아주머니가 영민을 아는 체 했다. 그가 누워있던 곳은 병원의 6인실이었다.
“제가 어떻게 된 거죠?”
“기억 안나, 총각? 공사장 아래에 쓰러져있던 것을 인부들이 발견해 데려왔다던데.”
“공사장이요? 아‥.”
영민은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생각에 잠겼다.
‘맞아. 난 자살을 하려고 했었지. 13층 난간에서 뛰어 내렸고. 그런데‥어떻게 살아난 거지?’
자살을 결심했고, 몰래 공사장에 들어갔으며 13층에서 뛰어내린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이 기억나지 않았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만 같은데‥.
“단기기억상실증인가 보구마잉. 쉬어, 쉬어. 그래도 축하혀. 의사랑이 이야기하는 거 봉께 헌터로 각성한 것 같더만.”
“예에? 헌터요?”
그 말에 영민이 또 한 번 화들짝 놀랐다. 뭐? 헌터라고?
‘떨어지던 중에‥하얀빛! 그게 각성이었구나!’
그제야 자신이 각성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빛이 뿜어지면서 추락의 충격이 상쇄됐었지. 그리고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병실에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친척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자살을 결심하며 신분을 증명할 그 무엇도 소지하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지갑도 집에 두고 나왔다. 병원비를 낼 수도 없을 것이 분명한 신원 미상의 남자를 병실로까지 데려다놓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끄응.”
“총각. 쉬어야 한다니까! 내가 간호사 불러줘?”
“괜찮습니다. 천천히 걸어보고 안 좋으면 다시 누울 게요.”
아주머니의 만류에 영민은 꾸벅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며 뿌리쳤다. 상황을 알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자신의 불운이 친절하신 아주머니께 옮을까 싶어서였다.
“저기‥.”
“어? 환자분. 일어나셨어요?”
“아, 예. 그런데 제가 어떻게 된 거죠?”
복도로 나가자 귀여운 얼굴의 간호사가 사근사근 웃으며 영민을 챙겼다. 이런 대접을 받아본 게 얼마만이더라‥?
묘한 감정에 움찔 몸을 떠는 영민을 보고 어디가 안 좋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지 간호사는 부산을 떨며 그를 부축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팔에 가슴을 부비자 영민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요.”
“헌터 각성을 하시면서 충격이 크셨나봐요.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지 뭐에요.”
간호사가 눈웃음을 치며 하는 말에 영민은 다시 한 번 어색함을 느꼈다. 자신이 헌터라니? 로또보다 당첨되기 어렵다는 각성을, 하필이면 자살하려던 그 순간에 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간호사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헌터라 하면 어지간한 ‘사’자 직업보다 고수입을 올리는 대한민국 1등 신랑감이니까. 물론 그것도 C+등급 이상일 경우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아직 등급 테스트도 받아보지 않은 각성자에게 한 다리 걸쳐놔서 나쁠 것은 없었다.
사실 간호사가 이미지가 좋아서 그렇지 3D 직업 중 하나가 아닌가.
게다가 상대가 영민 같은 얼굴을 했다면 더더욱 끼를 부리고 싶어질 터였다.
잘생겨서?
아니다. 그는 전형적인 ‘호구상’이었다.
“제가 진짜 헌터 각성을 한 건가요?”
“어머, 모르셨어요? 환자분을 데리고 오신 분들의 설명을 듣고 정신을 잃으신 동안 마나 민감도 검사를 해봤는데 각성자로 나타나셨어요. 정확한 등급이나 계열은 헌터 협회로 가셔서 능력 테스트를 받아보셔야겠지만요.”
마나 민감도 검사까지 마쳤다면 각성을 한 것은 확실 할 거다.
자신이 헌터라니? 영민은 묘한 흥분에 휩싸였다. 이제 좀 운이 트이려는 것일까? 아니, 운이 좋은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이 지독한 불운이 사라지기를, 평범한 정도의 운만 갖게 되기를 기원했다.
자신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행운을 얻게 되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그렇군요. 가,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흥분으로 얼굴이 새빨개진 영민은 이야기를 하며 계속해서 가슴을 부벼대는 간호사를 밀어내고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
“칫. 꼴에 각성자라고 튕기기는.”
그 뒤로 수작이 통하지 않은 간호사가 어이없다는 듯 콧바람을 뿜으며 쏘아보았다.
가지고 간 게 없으니 챙길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먼지 묻은 옷가지만 꺼내 갈아입고 즉시 퇴원수속을 밟았다.
“예? 기물파손이요?”
당장 수납을 할 돈도, 신분을 증명할 무언가도 없었지만 병원은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영민이 헌터인 게 확실하니 최대한 편의를 봐주었다. 일단 외상으로 처리를 하고, 일주일 안에만 돈을 가져오라는 것이다. 약 200만원에 가까운 큰 돈. 그러나 못낼 만큼은 아니니 영민도 그러겠노라 했다. 아깝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물려받은 유산으로도 충분히 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정말 자신이 헌터가 됐다면 어렵지 않게 벌 수 있는 돈이기도 했고.
대신 한 가지 소식을 전해주었다. 영민이 자살을 시도하며 만들어낸 충격파 때문에 파괴된 공사장의 기물들을 물어내야 할 것이라는 거다. 아마 따로 연락이 가겠지만,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지 말라는 차원의 배려였다.
‘아, 불운이 또….’
그 역시 큰 비용은 아니겠으나 영민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자살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병원비에, 손해배상까지 해야 한다니. 뭔가 억울하기도 했고, 역시 자신의 불운이 어디 갈까 싶었다.
결국 영민은 병원에 인적사항을 남기고 차비까지 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병원이 헌터인 영민의 신용을 높게 보고 차비를 넉넉하게 쥐어주었단 것이다.
덕분에 택시를 타고 편히 집으로 돌아온 영민은 자살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죽으려고 마음 먹었던 몸이긴 하지만 실제 죽음 직전까지 다녀오니 다시 시도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두려운 것과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는 주면 안 되지. 일단 빌린 돈은 갚고 생각해봐야겠다고 중얼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자신은 초짜 헌터였다. 아니 헌터인지 아닌지도 몰랐다. 던전에서 쪼그려 앉아 채집만 하고 있던 탓이다. 헌터 중에서도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E등급 헌터들이나 한다는 채집과 짐꾼 역할을 도맡아하며 호미를 들고 던전에서만 피는 꽃들을 채집하고 또 채집했다. 어디 그 뿐인가? 곡괭이를 들어 채광에 열중하기도 했다. 그러기를 한참, 약초와 광석을 어느 정도 모으자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큐브 같은 것에 그것들을 넣더니 칵테일을 섞듯 신나게 흔들기 시작했다.
5초정도 흔들자 들어갔던 것과 전혀 다른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바로 그 결과물은….
“으아아악!!”
영민이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이미 아침 10시가 넘은 시간.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이 오후 5시였으니 꼬박 16시간이 넘도록 잠만 잔 것이다.
몸이 찌뿌둥하고 등이 축축했다.
“아, 헌터협회.”
일어나봐야 딱히 할 일도, 약속도 없는데 하고 생각하던 영민은 자신의 각성사실을 떠올렸다. 그래. 어떤 능력을 각성했는지는 확인해봐야지.
즉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섰다.
가장 가까운 헌터협회 지부가 어디였더라? 아, 건대 근처에 있었지. 기억을 떠올리며 지부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한민국 헌터협회 건대지부입니다.”
친절한 인포메이션 센터 여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쭈뼛쭈볏 안으로 들어가자 평일인데도 꽤나 많은 인원이 있었다.
‘하긴, 헌터 각성을 했는데 평일이 무슨 상관이겠어.’
각성 한 것만 확실하고 등급만 잘 받으면 어차피 학교든 직장이든 때려치우게 될 테니 의미 없는 생각이 맞았다.
둘러보니 학생부터 직장인, 헬스 트레이너 같은 사람까지 생김생김도 다양했다. 꼭 근육질의 남자만 각성을 한다는 법이 없고, 외형과 각성 타입이 같지도 않으니 테스트 전까지는 아무것도 짐작 할 수 없었다.
“마나 민감도 검사를 받으실 분들은 왼쪽으로, 헌터 능력 테스트를 받으실 분들은 오른 쪽으로 서주십시오. 오른 쪽에 서시는 분들은 마나 민감도 검사증을 제출해주셔야 합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어 섰다. 영민이야 병원에서 이미 마나 민감도 검사를 받고 왔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와 검사부터 받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헌터의 각성이라는게 꼭 영민처럼 요란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각성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복권을 긁듯, 때마다 찾아와서 검사를 받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한 번 긁을 때마다 30만원씩 깨지는 복권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나마 헌터협회에서는 그 값이 싼 편이었다. 마나 민감도 검사를 위해서는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헌터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일반 병원에서는 불가능했고, 종합병원에 있는 헌터라면 그 귀하다는 회복계 헌터인 경우가 많았기에 값이 비쌀 수 밖에 없었다. 검사 한 번에 백만원 쯤이던가?
그렇기에 헌터협회에서 받는 마나 민감도 검사는 늘 예약이 가득 차있고, 순서가 밀려 있어서 검사를 받으면서 다시 예약을 잡는 사람도 허다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내야 할 돈이네.’
그나마 헌터라고 결과가 나왔기에 망정이지 병원에서 어쩌자고 그 비싼 검사를 했나 싶었다. 물론 목격자들에게 들은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다른 분들은 이쪽으로.”
영민이 선 오른쪽 줄은 더 안쪽으로 이동했다.
헌터 능력 테스트에 대해서 예전에 뭐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았다. 헌터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만큼 천운을 타고 나야만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기에 영민 자신과는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고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요호, 우리 친구는 언제 각성했나?”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꽤 길었다. 그만큼 보안이 요구되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지루한 이동 간에 뒤에 있던 몸 좋은 아저씨 하나가 영민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말을 걸었다.
강화계인가? 아니라면 운동을 꽤나 했을 것 같은 모습에 움찔 몸을 떨며 답했다.
“어제요.”
“오호, 각성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온 거로구만. 아니지, 오전 11시면 많이 참았네. 하하.”
꽤나 유쾌한 아저씨였다.
“아저씨는요?”
“나? 2시간 전에!”
유쾌한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웃어보였다. 나참, 어이가 없어서….
< 2화 - 행운의 각성 (1)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