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더러운 노숙자였던 나를
유수한은, 쉽게 말해서 진짜 유수한은 혼이 소멸되는 것을 거부했다. 인생을 더럽게 살았기에 환생은커녕, 사라지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지만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수영장에 갇혔다. 온전한 혼도 아니었다. 갈기갈기 찢긴 영혼은 흩어져서 사라졌고 티끌만 한 영혼만이 수영장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자신의 몸에 들어간 그 영혼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차가운 물에 갇힌 신세가 서러웠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거침없이 살아갔던 그였기에 더더욱 서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여기 있는데…….]
그는 점차 악심을 품기 시작했다. 애초에 영혼 자체가 투명한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성정이 악한 사람이었기에 악귀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왜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해?]
영혼은 힘이 없었다. 악귀가 되었다고 해도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 없었다. 그저 알아듣기 힘든 음울한 목소리를 내뱉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기다렸다.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해서 가짜 유수한이 여기에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살아 있던 순간이 너무나 달콤했다. 원하는 걸 쉽게 얻을 수 있는 그 달콤한 삶을 버리기에는 그는 욕심이 지나치게 많았다.
[나 여기 있어…….]
유수한은 항상 주목받으며 살았다. 잘생긴 외모만 가지고 있어도 주목받을 삶인데, 돈 많은 집안은 물론 키도 컸다. 관심을 갈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관심이 따라왔다. 어딜 가나, 그는 주인공이었다.
[내가 여기 있다고……!]
그렇기에, 처음으로 관심을 구걸했다. 누군가가 돌아봐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물속에 가라앉은 그를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반가워.]
탁한 존재, 유수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눈빛이 날카로웠다.
[…….]
김대한은 그런 유수한을 바라보았다. 정신이 들고 나니, 사방이 어둠으로 둘러싸인 물속이었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수습하고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유수한이 있었다. 그는 작고 탁한 존재였다.
[이제 내 몸을 내놔.]
명령조.
김대한은 그의 말투에서 유수한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었다. 물론 이미 알고 있었다. 서울역 뒷골목에서 유수한을 만났을 때, 이미 보았던 모습이었으니까.
그날, 유수한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빛나 보였다. 인성과 별개로 그는 잘생겼으며 가진 것이 많았다. 아무것도 없던 김대한에게는 그런 유수한이 빛나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그는 익숙해진 유수한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 볼품없던 김대한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진짜 유수한의 앞에 있어도 두렵지 않았다.
[작아.]
지금 김대한은 자신의 몸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기는 현실 세계가 아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물속. 아마 진짜 유수한의 죽음의 빌미를 제공한 그 장소, 수영장일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비현실적이라고 쉽게 믿지 못했겠지만, 김대한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 번 죽어서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되어 살아가지 않았는가.
그 시간 동안 김대한은 많은 것을 경험했다.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며 경험했던 모든 것은 김대한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기에.
[그쪽 영혼은 빈약하기 짝이 없군.]
김대한의 영혼은 유수한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컸다. 유수한의 영혼은 탁하다. 게다가 크기마저 볼품없었다. 김대한이 발로 짓밟으면 없앨 수 있을 만큼 몹시 작았다.
[쓸데없는 소리!]
유수한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그만 내 몸을 내놔!]
우습게도 꿈에서 이런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이 되어 살고 있다 보니, 악몽처럼 진짜 유수한을 마주했던 김대한이었다. 그때마다 김대한은 속절없이 진짜 유수한에게 몸을 빼앗겼다. 항상 몸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으면서도 그랬다.
“형! 수한이 형!”
“어떡해, 오빠! 어어엉, 왜 눈을 안 떠요!”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김대한이 몸을 틀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김대한의 목소리와 보라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려오고 있다.
“아들,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 주세요…….”
엄마 목소리.
김대한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미간을 좁혔다. 정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유수한의 부모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진짜 가족처럼 느껴졌다.
[미안한데.]
김대한이 고개를 돌려 유수한을 마주했다.
[당신은 이미 죽었어.]
* * *
[연예뉴스][단독] 유수한 의식 불명 상태 …… 사고로 물에 빠져
유수한은 수영장 물에 빠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에 빠지며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것도 아니었고, 바로 구조되었기에 이렇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하루가 꼬박 지났는데, 왜 안 일어나는 거예요. 네?”
유수한의 모친은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한 번도 아니었고 벌써 두 번째였다. 유수한이 이렇게 수영장에 빠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원인은 트라우마 때문이 아닌지, 예상하고 있습니다.”
“트, 트라우마요?”
“예전에도 환자가 수영장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물에 빠지면서 그때의 충격이 떠올랐기 때문에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비슷한 사고가 터졌지만,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예전 유수한은 음주 수영 파문으로 욕을 먹었지만, 지금은 결이 비슷한 사고였음에도 반응이 달랐다.
[빛유/자유] 오빠, 제발 어서 일어나요 +33
[빛유/자유] 하루종일 울어서 힘이 없어... +16
[빛유/자유] 일어날 거예요. 큰 사고 아니라고 하니까, 우리 조금만 힘내요. +41
팬들이 유수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대한은 그동안 기존 유수한의 폐급 배우 이미지를 모두 벗었다. 인성을 갖춘 실력 있는 배우가 되었고, 그렇기에 배우로서도 팬덤이 탄탄했다.
[HOT] 유수한 의식불명 상태, 원인은 과거 트라우마 탓?
커뮤니티 반응도 어서 유수한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사람에 떠밀려서 물에 빠졌다는데, 너무 걱정된다
- 유수한 빨리 깨어나라...
- 옛날에는 싫었는데, 지금은 너무 응원하는 배우라 걱정돼 ㅜㅜㅜㅜㅜ
- 옛날에 수영하다가 물에 빠져서 트라우마 생긴 거지?
└ 못 일어나는 원인이 그것밖에 없대...
└└ 맞아 지금 외상도 없어서 원인 불명이라더라고
└└└ 맞다 유수한 이런 사고 또 있었지...
└└└└ 나 그때 욕했는데 너무 미안해 ㅜㅜ 이래서 사람이 말을 조심해야 하나 봐
이제 예전에 사고만 치던 망나니 유수한은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지금의 유수한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유수한을 안타깝게 생각했고 어서 일어나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러니.
[네가 아니야.]
의식을 차려야 하는 사람은 기존 유수한이 아니라, 지금의 유수한. 즉, 김대한이었다.
[사람들은 날 찾아. 날 원해. 네가 아니라 나를.]
김대한은 유수한이 되어 자신의 흔적을 찾았었다. 김대한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사람 같았다. 아무리 흔적을 찾아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 사실에 오히려 안도했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에 걸림돌이 없어지는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진짜 유수한을 대면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김대한은 당황하지 않고 유수한을 마주할 수 있었다.
[웃기지 마! 모든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 더러운 노숙자가 아니라, 나를!]
유수한이 발작하듯 소리친다.
[그래서? 네 이름이라고 한들, 널 찾는 게 아니잖아?]
[내 이름을 부르니까, 날 찾는 거야!]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친다.
[아니. 지금 네가 증명하고 있잖아. 작고 보잘것없는 네 영혼이.]
사람은 겉모습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 없다. 지금 유수한의 영혼은 탁하고 볼품없다. 금세 사라질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위기감을 느꼈기에 유수한은 온몸을 다해 소리치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다시는 이 더러운 수영장에 갇혀 있지 않겠어. 내 몸이야. 내 몸을 되찾고 원래의 나로 돌아갈 거야. 더러운 노숙자 따위가, 내 몸을 지배하게 두지 않겠어!]
그랬다.
유수한의 몸은 원래 유수한의 것이었다. 그건 당연했다. 하지만 김대한은 알고 있다. 유수한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갈기갈기 찢긴 영혼은 사라졌고 아주 티끌만 한 혼이 여기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걸 사람들은 귀신이라 불렀다.
[그래서 나를 밀어내고 몸을 온전히 찾을 수 있겠어?]
김대한이 물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사라질 듯한 그 비루한 혼으로? 그것도 이미 죽은 네가?]
[난 죽지 않았어.]
[영혼은 죽었잖아.]
[너라고 다를 게 있나? 그래서 넌? 너라는 사람을 기억하는 이가 있나? 아무도 없지 않나. 그래서 내가 여기에 남아 있는 거야. 너 역시도 살아 있다고 증명할 수 없으니까!]
그 말에 김대한이 입을 다물었다. 유수한의 말은 김대한의 약점을 건드렸다. 사실 김대한이 자신의 흔적을 찾으려 노력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속에 숨겨 두었지만,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유였다.
유수한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해냈지만, 정작 김대한이라는 사람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김대한으로서 살아갔던 그 시간이 모두 헛되게 느껴졌다. 평생 모았던 돈을 들고 튀었던 그놈도 지금은 잊고 살아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죄를 지은 사람은, 가해자는 불리한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니까.
[거봐.]
유수한의 영혼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너도 네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잖아.]
반대로 김대한의 영혼은 작아졌다.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크기가 비슷해져 있었다.
김대한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험한 일을 해서 뭉툭하고 굳은살이 배긴 제 손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술살이 덕지덕지 붙은 자신의 몸을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몸이 한순간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은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갈기갈기 찢겨서 티끌만 한 혼을 끌고 있던 유수한은 흔들리는 김대한을 보자,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몸을 향한 탐욕이 득실거리는 눈빛으로 미소를 짓는다.
김대한이 점차 작아지고 있을 그즈음.
“아저씨.”
아직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가 저 만나기 싫다고 한 거 아는데, 제가 고집부렸어요. 그러니까, 나중에 매니저 아저씨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
김대한은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노숙자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던 때, 그 순간에 만났던 작은 인연이었다. 아직 어린 남매였고 그 아이들에게 밥을 양보한 적이 있었다. 그날, 김대한은 굶었지만, 마음만큼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오늘 유수한을 찾아온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작아지고 있는 김대한은 아직 어린 아이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었다.
“아저씨가, 옛날에 그 노숙자 아저씨 같다는 그런 생각이요.”
점차 작아지던 김대한의 눈이 커졌다.
“이상하죠? 진짜 다르게 생겼는데.”
누군가가.
“근데, 아저씨랑 그 노숙자 아저씨랑 닮았어요.”
나를 기억한다.
“눈빛이요.”
보잘것없었던 더러운 노숙자였던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