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사랑은 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가
VIP 시사회 전체 분위기는 좋았다. 유수한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영화를 보았다. 느낌이 좋았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았고 흡입력도 좋았다.
시사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유수한은 계속 반응을 확인했다. 아직 제대로 영화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하나둘 기자들이 감상평을 올릴 때가 되었다.
[HOT] 오늘 공개된 영화 <마지막 겨울> VIP 시사회 감상평 +411
유수한은 진지한 눈으로 글을 읽었다.
[제이미 –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원톱 주연 주해원의 열연이 돋보인다.]
[오평화 – 원톱 주해원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특출 유수한, 두 사람의 조합은 놓치면 아깝지?]
[이다영 – 언젠가 이 겨울도 지나가겠지요.]
[강두나 –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거 많더라. 시대적 비극을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했다.]
전체적인 평가는 좋았다.
일제강점기 소재를 하는 만큼, 영화적 표현은 더 세밀하게 접근해야 했다. 그 어떤 소재보다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했다. 역사의 아픔이 가장 강하게 남은 시절이기 때문이었다.
- 솔직히 이런 영화는 잘돼야 함
- 천만 가자
- 언제 개봉하냐? 잘 만든 것 같은데... 궁금
- 해외 수출 좀 잘 됐으면 좋겠다 ㅋㅋㅋ 일본 찔리라고 ㅋㅋㅋㅋ
└ 22 주해원이나 유수한 둘 다 해외 파워 좀 있지 않나?
└└ 3333 서양 놈들 툭 하면 전범기 들고 다녀서 꼴보기 싫음
└└└ 444 양놈들 나치에는 바들바들 떨면서 전범기는 아무렇지도 않음 뻑킹
└└└└ 5555 전세계가 봐야 함
그렇기에 유수한도 더 완벽하게 연기하려 노력했다. 독립을 하지 못했다면, 계속 식민지 상태였다면 이렇게 평화로운 생활도 없었을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과거를 반성하지 않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사람답게 살아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수고했다. 조심히 들어가.”
“네, 형님도요.”
차에서 내린 유수한은 집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머리에는 영화 생각이 맴돌았다. 비극적인 시대가 배경이라, 영화를 본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웠다.
영화는 좋았다.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배우라는 직업에 익숙해질수록 욕심이 더 강해진다. 하지만 욕심만 가지고는 연기를 잘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경험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조금씩 조바심을 버리고 길게 봐야 한다.
유수한은 샤워를 하면서 조금씩 연기에 대한 아쉬움을 털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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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유/자유] 헉헉헉헉 드디어 개봉일! +8
[빛유/자유] 특출인데 분량 꽤 된다고 해서 설렘 ㄷㄷㄷㄷㄷ +11
팬미팅이 끝난 후, 이경민은 그날의 기억으로 하루를 살고 있었다. 전국 투어 팬미팅은 정말 꿀이었다. 서울 팬미팅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고 그다음은 모두 생중계로 보았다.
생중계 서비스는 3만 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직관은 유수한이 콩나물처럼 보였지만, 생중계는 좋은 화질로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현장감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미리 퇴근에 맞춰 영화를 예매했기 때문에 칼퇴근이 간절했다. 점심도 거르며 일에 집중했던 이경민은 6시가 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첫 영화는 M사에서 시작했다. 이유는 굿즈 때문이었다. 우선 M사에서 나오는 특별한 티켓을 손에 거머쥐어야 했다. 포스터 사진이 홀로그램으로 담겨 있는데, 유수한의 얼굴도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었다.
“아직 오리지널 티켓 있죠?”
예매권을 들고 바로 직원에게 다가가 굿즈를 확인했다.
“네, 아슬아슬하셨어요.”
“진짜요?”
“지금 10장도 안 남았거든요.”
“아, 다행이다.”
요즘 M사에서 나오는 오리지널 티켓은 핫했다. 그렇기에 이경민은 티켓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벅차오르고 있었다.
“와, 생각보다 더 예뻐.”
티켓은 확인한 이경민이 덕심이 벅차오르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덕심은 차오를 만큼 가득 차올랐다. 팬미팅에서 팬을 향한 유수한의 마음에 덕심은 불타올랐고 출근길에 팬송을 듣다 보면 다시 덕심이 차올랐다.
[빛유/자유] 오리지널 티켓 득템!!!! +33
당연히 자랑은 덤이었다.
이미 M사를 비롯해 L사, C사에서 나온 공식 굿즈를 자랑하는 글이 물밀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물론 이경민은 오늘 2차까지 달릴 생각이었다. C사에서는 대형 포스터와 배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유수한이 주연이 아니었기에, 대형포스터에서 비중이 작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일단 갖고 보는 게 먼저였다.
“으, 떨려.”
팝콘과 콜라를 사 들고 상영관에 들어온 이경민은 광고를 보며 떨리는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콜라 한 모금을 마시고 배고픔을 팝콘으로 때운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잘생겼을까.”
그 생각이 들고.
“또 얼마나 멋있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이경민이 입덕하고 나서 유수한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했다. 쫄딱 망한 작품이 없었고 언제나 평균치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배우 덕질 하다 보면 보기 힘든 필모가 있다고 했는데, 유수한은 그런 게 없었다. 작품 보는 눈이 탁월했고 그 사실이 팬에게도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시작한다.”
후우.
팝콘을 바닥에 내려놓은 이경민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벌써 눈이 빛나고 있었고 처음부터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초반부.
짧은 윤화진의 유년 시절이 지나가고 후에 유수한이 나왔을 때는 작게 탄성을 질렀다. 잘생긴 얼굴이 화면을 채울 때, 그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유수한이 연기하는 백이현은 새로운 느낌이었다. 윤화진의 대한 사랑이 안타까울 정도였지만, 친일을 하는 모습에는 혀를 차게 한다. 멋있어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지만, 잘생긴 얼굴은 숨길 수 없었다. 못된 짓을 할 때는 욕이 나오다가도, 윤화진 앞에서는 애절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조선은 침몰하고 있는 배.」
백이현은 윤화진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 직접적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하는 자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더불어 낮에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친다. 그 사실을 백이현이 알고 있었다.
「아니, 이미 침몰했죠.」
돌려 얘기한다.
「이미 산산조각이 되어 가라앉은 배를, 어떻게 끌어 올릴 수 있겠습니까.」
윤화진,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모두 쓸모없는 일이라고.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두라고. 그렇게 돌려 말하고 있지만, 이미 윤화진의 올곧은 눈은 흔들릴 줄 몰랐다. 그렇기에 백이현은 두려웠다. 이렇게 윤화진이 계속 자신과 다른 길을 걸어갈까 봐.
「조선은 배 따위가 아니니까.」
역시나.
윤화진은 백이현의 말을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즐거웠다. 한글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 아이들이 일본어를 먼저 배울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쓰렸다. 민족성은 언어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윤화진은 아이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미 조선은 끝났어요. 그걸 부정하는 겁니까?」
「끝났기를 바라는 거겠지.」
저 멀리, 지푸라기 따위를 들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윤화진이 말했다.
「강제로 나라를 빼앗고 민족성을 말살하며,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을 짓밟아 가며.」
윤화진이 고개를 돌려 백이현을 보았다.
「끝났다고. 조선이란 나라는 멸망했다고 그렇게 믿기를 바라고 있는 거겠지.」
「윤화진 씨.」
「내가 여기 살아 있고, 조선의 피가 흐르는 당신이 살아 있으며 저기 저 아이들이 존재하는데, 어찌 감히 끝을 입에 올려?」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건 당신에게나 무의미한 거겠지.」
윤화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문학을 알려 주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었다. 밤에는 몰래 집에서 나와 독립군을 만난다. 그들에게 있는 것을 내어 주고 나면 그 밤만큼은 제대로 잠들 수 있었다. 계속 부채감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이 마음에 가득 찼다.
「잘됐네.」
윤화진이 백이현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은 백이현의 손목에 닿아 있었다. 금시계, 누가 봐도 값이 제법 나가는 물건이었다. 윤화진은 말없이 백이현의 손목을 잡았다. 그 행동에 백이현이 흠칫 놀란다.
「오늘은 뭘 내놓아야 할지-」
툭.
백이현의 금시계를 풀며 윤화진이 말을 이었다.
「고민하던 참이었거든.」
백이현은 두렵다.
사랑하는 여인 윤화진이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약하게 움직였던 윤화진은 조금씩 본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늘 값비싼 것들로 치장하던 그녀였는데, 언제부턴가 조금씩 단출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백이현은 알고 있었다.
조선으로 돌아온 이유가 집안의 눈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백이현과 결혼을 약속하며 약혼한 이유도 모두 같았다. 그리고 백이현은 알고 있다. 언젠가, 윤화진은 직접 손에 피를 묻힐 거라는 걸.
「고마워.」
어느새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백이현의 손목을 어루만지며 윤화진이 말했다.
「다음에는 보석 같은 걸 들고 오면 더 좋겠네.」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날 사랑한다며.」
「…….」
「그러니, 더 치장하도록 해.」
날 위해.
백이현의 얼굴이 붉어진다. 윤화진이 그저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그의 심장이 매섭게 뛰고 있었다.
윤화진의 올곧은 눈은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 간다. 그의 눈빛은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담고 있었다.
백이현이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윤화진은 손을 거두고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백이현의 금시계를 든 채, 윤화진이 멀어진다.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한 채 백이현이 구두코로 바닥을 툭툭 쳤다.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백이현의 마음이 느껴졌다.
* * *
「아, 들켰네.」
사랑은 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가.
「그냥 악마를 죽였을 뿐이야.」
백이현은 놀란 마음을 수습도 하기 전에 윤화진의 손목을 잡아채 끌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총을 빼앗는다. 이윽고, 백이현은 윤화진을 곳간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바보 같은 짓을……!」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찼다.
백이현은 겉옷을 벗어 총을 숨겼다. 곳간 바닥에 던져 놓고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윤화진의 피 묻은 손을 닦으려 했다.
「젠장!」
그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터져 나온다.
「날 기다린 건가? 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저도 설마 담벼락에서 당신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참 아쉽네. 선택을 잘못했어, 내가.」
백이현은 바닥에 고인 빗물에 손수건을 적셨다. 그리고 윤화진의 손을 정신없이 닦는다. 윤화진은 그런 백이현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깝지.」
왜 사랑에 빠지면 이토록 바보가 되는 걸까.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는 하인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 순간, 백이현이 놀란 듯 경직된다.
윤화진은 누군가를 죽였을 것이고 그 흔적을 찾아 여기까지 쫓아 들어왔을 것이다. 만약 모든 사실이 들통난다면.
「무서우면 도망쳐도 되는데.」
비웃듯 윤화진이 말했다.
백이현이 미간을 좁힌다. 피 묻은 손수건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그는 초조한 듯 떨고 있었다. 순사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온다. 이윽고, 이 곳간에도 들어오리라.
「열어!」
그 목소리가 들려오기 무섭게 백이현이 윤화진의 얼굴을 붙잡고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