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얼굴값
- ㅇㅈ 유수한 얼굴값 쌉인정
└ 얼굴값 너무 잘하지
└└ 얼굴값 해도 괜찮은 얼굴 ㅇㅇ
└└└ 얼굴값 해서 기부도 잘함 ㅋㅋㅋㅋ
민서온의 ‘얼굴값’ 발언에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 얼굴값 좋은 의민가?
└ 22
└└ 333 일단 들어봐야 알 듯
└└└ 근데 설마 팬미팅에서 안 좋은 소릴 할까?
└└└└ 222 맞아 여기 지금 유수한 팬미팅인데 설마 ㅋㅋㅋㅋ
유수한은 일단 웃었다.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일단은 감정을 숨기는 게 먼저였다. 민서온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눈빛엔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얼굴값 한다고 생각했어요.”
민서온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좋아하는 후배는 아니었어요.”
별로였어요.
뒤에 덧붙이는 말까지, 지금 민서온이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걸 보여 주고 있었다. 유수한은 쉽게 뭐라 말하지 못하고 그저 웃고 있었다. 살짝 억울하기는 했다. 그 별로였던 후배는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유수한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달라졌어요?”
조은희가 바로 진행을 이어 나갔다.
“네, 달라졌죠.”
그 대답에 유수한은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혹시나 안 좋은 말을 하면 어쩌나 마음 졸이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할 말은 없었다. 과거 유수한이 개차반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으니.
“어느 순간 확 달라져 있더라고요, 사람이.”
민서온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거든요. 처음이었어요. 수한 씨가 지금도 얼굴값을 하는데, 다른 의미가 됐거든요.”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객관적으로 들으면 좋은 말이었지만, 유수한에게는 조금 씁쓸한 말이기도 했다. 결국, 진실은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유수한의 몸에는 김대한의 영혼이 들어와 있었고 그렇기에 변할 수 있었다. 진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렇기에 유수한은 씁쓸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얘가 좀 이상하긴 했나 봐?”
가만 민서온의 말을 듣던 정동인이 농담을 던졌다. 웬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유수한이 예전에는 사건 사고를 끊임없이 치던 배우였다는 걸. 오죽하면 유수한 입덕의 가장 큰 장벽이 과거일 정도였다.
“네.”
민서온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유수한이 마이크를 들고 입을 열었다.
“저 좀 이상한 놈이었잖아요.”
이 토크는 자학 개그로 마무리 지었다. 더 이야기해 봤자 자기 무덤 파는 꼴이었다. 나머지 토크는 작품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조금씩 기억에서 잊히고 있었던 드라마 ‘시간’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즐거웠고, 영화 ‘내 심장을 향해 쏴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작품 모두 유수한에게는 의미가 깊은 작품이었다.
“벌써 1시간이 흘렀어요. 시간이 참 빠르죠?”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팬미팅이 마저 진행된다.
대기실로 돌아온 유수한은 물을 마시며 타임 테이블을 확인했다. 그리고 오늘 여기까지 와 준 정동인과 민서온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우선 정동인에게 달려가 인사를 건넸다. 가볍게 악수를 한 정동인은 유수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너 인기 많더라.”
정동인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 큰 공연장을 사람으로 꽉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내심 부럽기도 했다. 이런 거대한 팬덤은 정동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다고 해도 이번 생은 틀렸다.
“덕분에 나도 재밌었다.”
요즘 정동인은 영화 촬영을 마치고 휴식기를 갖고 있었다. 다작 하는 배우인 만큼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정동인이었다. 이렇게 유수한의 팬미팅에 올 수 있게 된 것도 타이밍이 좋았다. 만약 영화 촬영 중이었다면 오고 싶어도 오지 못했을 거다.
“선배,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유수한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민서온을 보며 말을 건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민서온은 마치 이은서 같았다. 이은서가 입을 법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맨투맨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평소 스케줄이 아니면 집에만 머무는 민서온이었기에, 더 고마움을 느끼는 유수한이었다.
“뭐.”
짧게 대답을 시작한 민서온이 골몰히 뭔가를 생각했다.
“오늘 와 보니, 나도 한번 해 볼까 해.”
“팬미팅이요?”
“응. 재밌어 보이네.”
짧은 소감이었다.
유수한은 민서온까지 보내고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쉬는 시간이 10분 주어지고 그 이후에는 10분 동안 경품 이벤트를 한다. 유수한이 광고로 활동하는 브랜드에서 모두 협찬 상품을 보내 주었기에, 생각보다 알찬 상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네! 코코 신제품! 밥솥의 주인이 될 사람은요!”
꽤 고가 제품인 코코가 나온 걸 보니, 이제 슬슬 시작할 차례가 되었다. 유수한은 인이어를 끼며 다시 무대에 등장할 준비를 했다. 이제 팬미팅은 40분가량 남았고 남은 시간, 팬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자, 스탠바이.”
준비가 끝났다.
유수한은 마이크를 든 채, 심호흡을 했다. 유수한은 리프트를 타고 무대에 나타났다. 흥겨운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팬들은 응원봉을 든 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두근거렸지. 누군가 나의 뒤를 쫓고 있었고.”
이번에는 종종 부르던 ‘겁쟁이’가 아니라 ‘하늘을 달리다’였다. 가사가 공감이 되었기에 유수한이 직접 선곡한 노래였다.
- 와, 명곡이다
- 크으 ㅋㅋㅋㅋ 이 노래 미쳤죠
- 근데 유수한 노래 잘하지 않냐? 사기캐야 ㅋㅋㅋㅋ
└ 2222 맞아
└└ 3333 노래 존잘
└└└ 44 막 가수처럼 화려한 기교는 없는데, 발성이 탄탄함 ㅇㅇ
└└└└ 555 담백하게 잘 불러
- 근데 이 노래 뭐예요? 이번에도 새로 만든 노래??
└ 222 처음 듣는데 신곡인듯!
└└ 와...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있구나
└└└ 할미는 슬프다...
└└└└ 잼민이들 이 명곡을 모르는구나...?
“마른하늘을 달려-”
유수한은 웃으며 무대 앞으로 달려갔다. 마치 아이돌 무대처럼, 온 무대를 뛰어다니며 누비고 있었다. 과감하게 손을 내미는 팬들의 손바닥을 터치하기도 했고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팬에게는 짧게 포즈도 잡아 주었다.
- 유수한 아이돌 다 됐네
- 부럽다 현장 진짜 재밌어 보여 ㅠㅠㅠㅠ
- 전국투어 티켓 하나 못 건진 내 죄 많은 손가락아...
- 팬미팅 티켓팅 성공한 팬이 진짜 성덕이다
└ 222 ...
└└ 3333 금손을 가진 자가 성덕이다...
└└└ 44444
└└└└ 555 손가락이 빠르지 못해 덕계못이 됨 ㅠ
“내 맘 그대 마음속으로-”
유수한은 귀에 들리는 환호성을 더 가까이 듣고 싶었다. 이제 노래가 끝나 가고 있었고, 그렇기에 슬그머니 인이어를 귀에서 뺐다.
“영원토록 달려갈 거야.”
눈앞에 응원봉 불빛이 보인다. 함성 소리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음치는 아니었지만, 유수한은 가수처럼 능숙하게 노래를 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팬들은 그런 유수한의 노래를 좋아해 주었다.
유수한이 웃으면 따라 웃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는 존재. 가족이 없었던 유수한이었기에 더더욱 그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모를 사랑이 벅찼다. 뭐라 해야 할지 모를, 김대한이었다면 몰랐을 감정이었다.
- 마른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유수한의 눈이 커진다.
여전히 멜로디가 흘러나왔지만, 마지막 가사가 지났기에 점차 소리가 멎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응원봉을 흔들며 떼창을 부르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유수한이 미소를 지었다.
-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유수한은 그 목소리를 듣는다.
- 영원토록 달려갈 거야.
유수한이 밝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두 번째 팬미팅은 시작부터 좋았다. 다음 공연이 손꼽아 기다려질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유수한은 그날 준비한 모든 걸 최선을 다해 보여 주었고, 팬미팅 투어 첫 시작부터 화제가 되었다.
* * *
[HOT] 드라마 <시간> 덕후들 미치게 만든 유수한X민서온 +688
첫 팬미팅에서 가장 화제가 된 건 역시 드라마 ‘시간’이었다. 민서온과 함께 꾸몄던 짧은 후일담은 ‘시간’을 사랑하던 사람들을 흥분케 하기 충분했다. 생중계가 된 만큼 다양한 루트로 유출이 되었고, 소속사에서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타협을 본 것이 풀영상 유출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예외를 두고 있었다.
- 둘이 잘 살고 있구나... 그걸로 됐어
- ㅠㅠㅠㅠㅠ 은서 엄마 됐어? 유환이 아빠 됐고? ㅠㅠㅠㅠㅠ
- 이게 즉흥 연기라니, 본체들이 이런 결말을 상상했다는 거 아니야 ㅠㅠㅠㅠ
└ 민서온이 이은서니까, 이게 오피셜이지 뭐야 ㅠㅠㅠㅠ
└└ ㅇㅈㅇㅈ 이은서가 엄마가 됐다잖아요 ㅠㅠㅠㅠㅠㅠ
└└└ 누굴 닮았을까? 첫애는 아빠를 닮는다던데.. 흑흑
└└└└ 과몰입 덕후는 죽었어요
유수한은 팬미팅을 마치고 다음 날, 심한 몸살에 걸렸다. 긴장을 심하게 한 탓이었다. 그동안 운동을 꾸준히 해서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았는데, 오늘은 달랐다. 마치 그동안 긴장하며 살아왔던 게 한꺼번에 몰려온 기분이었다.
- 팬미팅 퀄리티 진짜 미쳤다 이정우도 왔다던데?
└ ㅇㅇ 이정우 오프닝 때 튀어나옴
└└ 랩 신나게 하고 가심
└└└ 이정우 ㅋㅋㅋ 아이돌 짬바 오지더라 ㅋㅋㅋㅋㅋ
└└└└ 게스트가 몇 명이야 ㅋㅋㅋㅋ 내가 팬이어도 좋아서 죽었다
유수한이 처음으로 발매한 곡 ‘빛나’는 차트인에 성공했다. 유수한의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노래가 좋다며 조금씩 입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 팬송인데 중독성 무슨 일이야...? 계속 노래 흥얼거리고 있음;;
└ 222 카페에서 한 번 들었는데 귀에 맴돌아 ㅋ
└└ 3333 너는 누구보다 빛나 이 가사가 자꾸 들려 미쳤나 봄 ㅋㅋㅋㅋ
└└└ 이정우 랩도 쫄깃하고 유수한 목소리 존좋
└└└└ 명곡이더라
└└└└└ 22 명곡이더라
다음 팬미팅은 원주였다. 그리고 마지막 팬미팅은 부산이었다. 다들 티켓을 들고 차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소속사에서 직접 준비한 공식 굿즈도 화제였다. 물론 가장 화제였던 건.
[HOT] 손해가 막심할 것 같은 유수한 팬미팅 티켓 가격 +999
바로 팬미팅 티켓 가격이었다.
- 와 저기 되게 비싼데 아니냐?
- 저렇게 하면 대관비는 나와? 가격 미쳤는데
- 빕이 10만 원도 안 된다니... 대단...;;
- 이걸 승인해 준 성실이가 대단해 보여
└ 성실이... 저 가격인데도 굿즈까지 만들어 줌...
└└ 유리컵 심지어 두 개임...
└└└ 성실이... 자선사업가였어?
└└└└ 진짜 굿즈도 그렇고 무대 퀄리티, 팬송까지 나무랄데 없었어
- 진짜 싸다 거의 역조공이나 다름없는 듯
└ 2222 역조공 ㅇㅈ
└└ 333 소속사가 베푸는 역조공
└└└ 4444 회사까지 열일하는데, 어떻게 탈덕하냐?
└└└└ 55555 탈덕 불가능
반응이 좋았다.
감기약을 먹고 침대에 계속 누워 있던 유수한은 좀처럼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계속 이런저런 반응을 찾아보며 다음을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 유수한은 팬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우면서도 소중했다.
“팬미팅 하길 잘했네.”
뿌듯함을 뒤로 한 채, 핸드폰을 드디어 손에서 내려놓았다. 아픈 몸은 쉬어야 낫는다. 눈을 감은 유수한은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