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63화 (163/175)

163. Shining

유수한의 두 번째 팬미팅은 열리기 무섭게 좌석이 팔려 나갔다. 다행히 팬클럽 우선 선예매가 진행되었고, 회의를 통해 첫 번째보다 그 비율을 높였다. 무려 총 좌석의 70%가 팬클럽 선예매였다.

“저 사실 공연장 보고 자신만만했거든요?”

서울 팬미팅은 토요일 오후 4시에 열린다. 그 전에 이경민은 공연장 근처 카페에서 운영진들을 만났다.

“와, 무슨 어디서 다 숨어 있었던 거예요?”

“그니까요. 우리 회원 수가 많기는 하지만, 인증 절차가 까다로워서 정회원 되기 어렵잖아요.”

“완전요. 진짜 식겁함.”

유수한 팬사이트는 단순 가입은 쉽지만, 활동은 어렵다. 글 보는 것도 정회원이 되어야 가능했고 팬 인증은 필수였다. 물론 가벼운 수준이었지만, 그조차도 어렵다고 등업을 하지 않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괜한 어그로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었고 생각보다 효과적이었다.

“눈팅하던 사람들 다 튀어나온 거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 보면 활동하는 회원 수는 적어 보이지만, 서포트 진행할 때는 없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곤 했다. 회의를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튀어나와 활발하게 의견을 교류했다.

“저 어제 잠 못 잤어요. 진짜.”

“저도요.”

다들 설렘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티켓팅에 성공한 모든 팬들이 그랬다. 첫 번째 팬미팅은 소소했다. 작고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면 두 번째는 공연장부터가 달랐다.

한마디로 쉽게 말하자면.

“돈 냄새가 나잖아요.”

돈을 처바른 냄새가 난다.

K엔터는 대형 기획사였다. 돈을 바르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바를 거라는 뜻이었다. 공연장이 공개되고 당연히 티켓값이 비쌀 거라고 생각했다. 첫 팬미팅 때는 거의 거저였다. 소속사에서 대는 비용이 압도적이었는데, 이번 스케일은 소속사가 전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수준이었다.

“진짜 말이 안 돼요.”

“뭐가요?”

“티켓값이요. VIP가 고작 6만 9천원이라니.”

“그니까요. R석은 5만 9천원, 나머지는 4만원대잖아요.”

“미쳤죠. 저 예전에 콘서트 보러 왔었거든요? VIP석이 13만원이 넘었어요.”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지방 팬미팅 같은 경우는 가격이 더 내려간다. 말 그대로 이번에도 소속사에서 손해를 본 셈이었다.

“진짜 우리 입덕 잘한 것 같아요.”

이경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유수한의 덕질은 평화롭다. 종종 터지던 병크도 요즘은 없었다. 내 배우가 열심히 일하고 기부도 열심히 한다. 일 하나가 끝나거나 광고를 찍고 나면 그 수익의 일부를 꼬박꼬박 기부하고 있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배우였다.

“저 처음에 입덕할 때는 사고 칠까 봐 주저했거든요.”

“그거 다 그럴걸요?”

“맞아요. 근데 입덕하고 나니까, 이런 천사가 없음.”

팬들은 다 같은 마음이었다. 입덕할 때, 가장 주저했던 것은 당연히 유수한의 과거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건 유수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수한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성공하고 나면 사고를 칠 거라는 우려와 다르게 유수한은 늘 한결같았다. 그렇기에 팬덤이 더 굳건하게 뭉칠 수 있었다.

“이제 시간 다 됐어요.”

“지금 가면 딱 맞겠네요.”

공연은 4시였지만, 3시부터 할 일이 있었다. 이벤트는 매 공연마다 있지만 총괄하는 사람은 달랐다. 이경민과 운영진은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서울 팬미팅에만 갈 수 있었다. 유수한이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지역은 양보하라며 따로 당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말을 지키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운영진으로서 내 배우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와, 디자인 너무 잘 나왔어요!”

“실물로 보니까 더 예쁘죠?”

처음 팬미팅 소식이 전해지고 팬사이트 운영진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응원봉’ 제작이었다. 응원봉 손잡이에는 ‘YSH’ 유수한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고, 가장 중요한 디자인은 ‘빛’이었다. 빛나는 유수한이라는 사이트 이름에 맞게 전체적으로 노란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디자인이었다.

“닉네임 뭐예요? 핸드폰 뒷자리도 말해 주세요.”

응원봉은 제작해서 배송까지 마쳤지만, 서울 팬미팅을 보러 오는 몇몇 팬들은 현장 수령을 선택했다. 조금 번거롭지만, 일반인 코스프레를 해야 하는 직장인들을 배려해서 서울만 현장 수령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와, 디자인 미쳤다.”

응원봉 상단에 빛이 뿜어져 나오는 원형 안에는 블랙 왕관이 들어가 있었다. 유수한이 대상을 받은 만큼, 그 어느 장식보다 왕관이 가장 어울렸다.

보통 응원봉은 소속사에서 만들어 파는 게 정석이지만, 배우에게는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경민은 총대 메고 응원봉 제작을 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팬미팅이기에 그 누구보다 더 절실히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응원봉을 모두 나눠 주고 이경민은 시작하기 전에 매니저를 따로 만났다. 응원봉은 유수한에게 보여 주는 특별한 이벤트였기에, 아직은 비밀이었다. 하지만 매니저에게 미리 응원봉을 챙겨 줄 생각이었다.

“이거 넉넉하게 응원봉 5개 가져왔는데, 모자랄까요?”

“아뇨. 이거 비싼 거잖아요. 충분하죠!”

사실이다.

응원봉 디자인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응원봉을 신청했고 그 수량을 감당하느라, 따로 사람을 더 구했을 정도였다. 3차에 나누어서 제작을 하고 발송을 했던 이경민은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모두 팬심으로 진행했던 일이지만, 그 4개월 동안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배우님께는 비밀인 거 아시죠?”

“네. 그럼 형한테는 언제 드릴까요?”

“팬미팅 시작하고 나서요!”

“그럼 따로 현장 진행 스태프에게 말해 놓을게요.”

대화가 원활하게 진행된다. 김민수는 종이백을 들여다보았다. 상자에 소중히 담겨 있는 응원봉을 보니 팬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주변에는 다들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보안이 철저해서 유수한에게 보이면 안 되지만, 지금 유수한은 대기실에서 준비 중이라 들킬 위험은 없었다.

“이거 대표님이 좋아하시겠어요.”

“대표님이요?”

“네, 아닌 척하면서 수한 형 되게 챙기거든요.”

그 말에 이경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배우를 누군가가 예뻐하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김민수가 이경민에게 목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수량이 5개였으니, 유수한에게 하나 주고 나머지는 나눠 가질 계획이었다. 당연히 김민수와 코디 보라 몫은 챙겨 둔다. 남은 건 대표님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티켓도 무지하게 예뻐요.”

어느새 이경민의 손에도 팬미팅 티켓이 들려 있었다.

[유수한 팬미팅 - “Shining”]

티켓에는 유수한이 있다. 부제도 마음에 들었다. 딱 팬덤 이름과 어울리는 부제였다. 벌써부터 설렌다. 티켓을 들고 줄을 선 이경민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려 노력했다.

“와, 대박이다.”

입장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했더니, 티켓 확인 후에 굿즈를 나눠 주고 있었다. 굿즈는 유리컵 2세트와 금속 배지였다. 티켓값이 저렴해서 공식 굿즈는 생각도 안 했는데, 이번에 각 잡고 준비한 티가 났다.

“이러다 K엔터 빚더미에 앉는 거 아니에요?”

“설마요. K엔터 대형이잖아요.”

“그, 그렇죠.”

이경민은 선물을 받고 여전히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당장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이제 친한 운영진들과는 헤어져야 한다. 자리를 찾아 앉은 이경민은 가장 먼저 배지를 확인했다. 작은 상자를 여니, 유수한 실루엣을 따서 만든 금속 배지가 눈에 보였다.

찌르르.

순간 심장이 울린다. 티켓값이 저렴한 만큼, 완성도가 떨어져도 감사히 받을 생각이었다. 공식 굿즈라는 상징성이 있으니까, 이런 걸 준비한 것만으로도 충분했었다. 하지만 디테일이 살아 있었고 꽤 퀄리티가 좋아서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미쳤다.”

감탄하며 다음 굿즈를 확인했다. 다음은 유리컵이었다. 하나도 아닌 두 개여서 혀를 차게 된다. 대체 얼마나 손해를 보면서 이렇게 준비했는지, 그 마음이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미친!”

욕 나올 정도로 깔끔하면서도 예쁜 유리컵이었다. 선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여러 캐릭터가 전체를 둘러싸며 새겨져 있었다. 단순한 선 그림이지만, 어떤 캐릭터인지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유수한이 연기했던 배역들이었다.

“그래서 두 개였구나.”

전체 다 그리려니 모자라서 컵 하나를 추가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세심할 수가 있는지, 이경민은 팬미팅을 관람하기도 전에 감격에 몸을 떨었다.

찰칵.

여기저기서 셔터음 소리가 들렸다. 하나 같이 뜻하지 않은 공식 굿즈에 정신이 팔린 게 눈에 보였다. 이경민도 질세라 핸드폰을 꺼내 굿즈 사진을 찍었다.

“하아. 심장아, 나대지 마.”

굿즈를 정리해서 바닥에 내려놓은 이경민은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진정하려 노력했다. 첫 팬미팅보다 규모가 3배 이상 컸다. 친구들을 동원해서 VIP석 티켓팅에 도전한 이경민은 가까스로 티켓 한 장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친구 10명을 동원해서 딱 1장 성공했다. 자리는 중앙, VIP치고 거리는 멀었지만,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아직 10분 넘게 남았네.”

오늘따라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그리고 팬미팅이 시작하면 마치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갈 게 분명했다.

이경민은 자주 들어가 활동하는 대형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오늘 유수한의 팬미팅이 열리는 만큼 다른 소식 없나 구경할 생각으로.

[유수한/불판] 티켓팅 광탈한 얘들아? 생중계라도 같이 달리자 (ง ᵕᴗᵕ)ว +297

시작도 전에 불판이 열려 있었고 다들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N사에서 결제를 하면 유수한 팬미팅 생중계를 볼 수 있었고 반응은 좋았다.

- 난 전국투어라길래, 내 자리 하나는 있을 줄 알았지 ㅋ 내가 여기 있을 줄이야 ㅋ

└ 너두? 야 나도 ㅋ

└└ 여기 다 광탈한 애들이지 뭐

└└└ 나도 팬미팅 가서 새우젓 하고 싶었다 ㅋ

- 그래도 생중계 해서 다행.... 나만 못 본다고 하면 눈물 나 ㅠ

└ 222 나도 볼 수 있다.. 팬미팅...

└└ 3333 현장감은 없지만, 그래도 나도 유수한 볼 수 있어...

└└└ 444444 ㄹㅇ 이게 어디냐?

└└└└ 555 지금 현장 인증 올라오는데 배 아파 뒤져

전국 투어로 계획된 팬미팅이었음에도, 선예매가 있었어도 티켓팅에 실패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유수한 입김이 들어간 저렴한 티켓값으로는 대관료도 제대로 지불하기 어려웠기에 생중계를 시작했지만,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 솔직히 3만원 좀 비싸다 ㅋ

└ 맞아 A석이 3만 9천원이잖아

└└ 야, 불만 ㄴㄴ 티켓값이 지나치게 저렴한 거야

└└└ 2222 불만 갖지마 이러면 다음에는 국물도 없어

└└└└ 333 이 정도면 회사에서도 존나 신경 쓴 건데 불만이 나오냐?

└└└└└ 44 잘해주니까 양심 없어지는 거 보소 ㅋ

온라인 티켓값에 대한 불만도 실시간으로 패는 팬들 덕분에 분위기는 바로 좋아졌다. K엔터는 소속 배우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다들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지나치게 저렴한 티켓값은 모두 유수한 때문이라는 걸. 그의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에 회사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 시작한다 존나 떨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오후 4시가 되었다.

이경민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 두고는 응원봉을 들었다. 팬미팅이 시작하는 순간, 동시에 응원봉을 켤 생각이었다.

“아, 떨려…….”

조명이 모두 꺼지고 어둠이 눈앞에 짙게 깔린다. 어디선가,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자 웅성거리던 분위기가 한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너는 누구보다 빛나!”

짧은 랩과 함께 아무것도 없던 무대에 유수한이 높이 점프하며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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