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61화 (161/175)

161. 배우가 서포트 금지하면 생기는 일

결국,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수한은 대상을 거머쥔 것도 모자라 PD상까지 독식했다. 덕분에 같은 후보였던 안정석은 PD상도 얻지 못한 채 빈손으로 떠나야 했고, 그 뒷모습이 씁쓸해 보였다.

그리고.

[연예이슈] 짧고 굵은 수상소감, 유수한 대상 받고 큰절 올려

유수한의 수상소감이 화제였다. 관련 기사가 물밀듯이 쏟아지고 대형 커뮤니티에서도 화제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감사한 마음을 무슨 말을 하든, 모두 표현할 수가 없었기에.

- 유수한 큰절 하는데 마음이 뭉클하더라

- 큰절 임팩트 오졌어;;; 기억에 남음

- 아, 나 이러다가 입덕하겠어ㅠㅠ 절할 때 왜 내가 눈물 나 ㅠㅠㅠㅠ

└ 유수한 입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 유수한 입덕은 후회 안 해 ㅋㅋㅋㅋ

└└└ ㅇㅈ 부작용은 한번 입덕하면 탈덕하기 쉽지 않음.. ㅋㅋㅋㅋㅋㅋ

유수한은 대상 수상자였기에 뒤풀이를 무조건 참석해야 했다. 보통 대상 받은 사람이 회식 자리를 모두 쏘는 게 관행이었기에, 기분 좋게 한턱 크게 냈다. 회식 장소는 보통 고정이었다. 매년 가는 곳에 간다.

미리 연기대상 제작진이 전체 대관을 해 둔 호프집에서 진행하는데, 유명 연예인이 술을 마실 것 같지 않은 평범한 곳이었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았다.

유수한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대상 받은 입장이라, 건배사를 해야 해서 맥주 딱 한 잔을 마시고 그 이후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연예인은 술을 마셔서 좋을 게 없었다. 그렇기에 딱 1차만 참석하고 그 이후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대상을 가운데에.”

유수한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트로피를 정리했다. 지금까지 가장 앞줄, 가운데에 놓여 있었던 트로피는 ‘남우주연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는 ‘대상’의 자리였다. 열심히 트로피를 정리하고 장식장 문을 닫았다. 하나둘, 상이 늘어 갈 때마다 마음이 뿌듯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그때, 이성실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 축하한다.

이성실 대표는 그 누구보다 유수한의 대상에 기뻐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늘 속만 썩이던 자식이 성공했을 때, 더 큰 기쁨이 찾아온다. 이성실에게 유수한이 그랬다. 늘 사고만 치던 자식이 뒤늦게 정신 차리고 성공한 기분이었다.

“다 대표님 덕분이죠.”

- 말은 잘하는구나.

“진심입니다. 대표님.”

새해였다.

오늘 K엔터는 모두 쉬는 날이었고 이성실은 직접 축하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특별히 할 말은 그것뿐이었다. 어차피 다음 날에는 회의가 있었고 그때 유수한을 또 보게 된다. 그러니 오늘은 짧게 축하를 전하고 끊을 생각이었다.

- 아, 팬사이트 들어가 봤니?

“아니요. 아직.”

- 들어가 보렴. 선물이 준비되어 있더구나.

선물?

어제 대상을 받은 후에 팬사이트에 들어갔지만, 오늘은 들어가지 못했다. 유수한은 전화를 끊고 바로 핸드폰을 찾아 팬사이트에 접속했다.

[빛유/서포트] 빛나는 유수한 대상 기념 지하철 전광판 이벤트!

전광판?

유수한은 놀란 눈으로 글을 확인했다.

[배우 몰래 오랫동안 준비한 빅 이벤트! 대상 기념 첫 지하철 광고를 소개합니다!]

이경민은 6개월 전부터 지하철 광고 이벤트를 준비했다.

[과연 광고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서 지금 가서 찾아 보세요!]

회원들과 함께 몰래 일을 진행했고 대상을 받을 거라는 확신으로 ‘대상’ 이벤트를 진행했다. 돈은 많이 쌓여 제일 먼저 광고판 계약부터 진행했기에, 어떻게든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 하지만 어제 연기대상에서 이경민은 한순간 좌절했다.

유수한이 PD상을 받는 순간, 대상을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모든 일이 무너지는 상상을 했다. 끔찍했다. 돈을 한두 푼 쓴 게 아니다. 이 일이 어그러지면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비밀이었기에 다행히 팬사이트에는 글이 몇 올라오지 않았고 즉각 삭제 처리할 수 있는 정도였다. 만약 대피소에서 일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공식 팬사이트가 난리가 날 뻔했다.

그렇기에.

[빛유/대피소] 정말 다행이에요. 어제 현장에서 PD상 받는 순간, 저 울 뻔했잖아요 +11

[빛유/대피소] 오늘 아침에 눈 뜨고 대상 확인했음 ㅋ 와, 진심 개식겁 +26

[빛유/대피소] 우여곡절 끝에 광고 첫 서포트 성공했네요 ㅠ 이따 보러 갈 거예요 +32

[빛유/대피소] 빛유 클라스 이게 머선일이고?? 진짜 부심 돋음 ㅋㅋㅋㅋㅋ +19

이런 글이 계속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광고는 정상적으로 1월 1일 오전 9시에 걸렸다. 유수한의 첫 대상을 기념하는 광고였고 위치는 K엔터테인먼트 소속사 인근 지하철이었다. 전광판을 걸 지하철역 위치를 정하는 것도 일이었다. 유수한이 살고 있는 곳으로 할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치가 좋을지,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고 결론은 소속사였다.

K엔터는 강남권이었고 그만큼 유동인구가 많았다. 유수한이 살고 있는 지역도 좋지만, 듣기로 인적이 드문 동네라고 들었다. 게다가 유수한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이었고 지하철역에 갈 사람이 아니다.

그럴 바에는 소속사 인근 역이 더 메리트 있다는 판단이었다. 유수한이 K엔터에 자주 드나들고 회사에서 역이 도보로 3분이기 때문에 구경하기도 좋았다.

[빛유/대피소] 지금 광고 보러 왔는데, 진짜 너무 예뻐요 ㅠㅠㅠㅠ 인증샷! +41

[빛유/대피소] 이제 팬사이트 가서 인증해도 되죠? 저 지금 갑니다! +16

지하철 광고판 이벤트는 유수한을 위한 일이지만, 팬들도 좋아했다. 내 배우를 현실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오늘이 휴일인 만큼 많은 팬들이 광고판을 보러 지하철로 향하고 있었다.

“나도 가 볼까.”

어제 연기대상을 방청하고 온 터라, 이경민은 온 삭신이 쑤셨다. 하지만 몸이 피로해도 덕심은 죽지 않았다. 이미 팬사이트 운영진과 약속을 잡은 상태였다.

“아, 운 좋게 유수한 보면 좋겠다.”

덕후라서 그런 달콤한 상상은 보너스였다.

* * *

뜻하지 않은 외출, 유수한은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누군가 알아볼 수도 있기 때문에 마스크를 따로 챙긴다.

차에 올라탄 유수한은 우선 K엔터로 향했다. 강남은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회사에 주차하고 지하철로 가는 게 더 나았다.

“아니, 돈 쓰지 말라니까 참.”

운전하면서 계속 투덜거린다. 하지만 유수한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팬이 진행하는 광고 이벤트를 유수한도 알고 있었다. 유수한 정도라면 당연히 광고 이벤트가 걸리고도 남았지만, 배우 자체가 팬이 돈 쓰는 걸 싫어하는 성향이라 다들 자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상이었다. 어떻게 대상을 참을까.

“날씨 좋네.”

어느새 시간은 오후 3시.

날씨는 여전히 추웠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은 다른 때와 다르게 설렘이 가득했다.

“허.”

그러고 보니.

팬사이트 이벤트 공지에는 몇 번 출구에 광고가 걸렸는지 따로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철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화려한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움직이는 LED 광고판. 지하철에 도착해서 어디에 걸렸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문득 광고를 하나만 건 게 아니라는 직감이 든다.

[빛나는 유수한♡]

[SBC 연기대상 축하해요!]

유수한이 꽃을 들고 웃고 있는 사진이 움직인다. 아니, 사진이 아니라 영상이었다. 계단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걸린 LED 광고판이 유수한 얼굴로 꽉 차 있었다.

찰칵.

홀린 듯 광고판을 보던 유수한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지하철역이라 온전히 광고판을 찍는 건 쉽지 않았지만, 기념사진을 남기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유수한인가?”

“진짜?”

한곳에 오래 머무르니,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유수한은 뒤늦게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들켰다가는 끝장이었다. 하지만 예리한 눈치를 가진 사람 몇몇이 유수한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내부에 들어온 유수한은 또다시 보이는 자신의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이번엔 움직이는 LED 광고가 아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전광판 광고였고 곤룡포를 입은 ‘이원범’이 크게 걸려 있었다.

[전하! 연기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옵니다!]

문구도 달랐다. 유수한이 황당한 듯 웃는다.

“대체 몇 개를 건 거야?”

유수한은 몰랐다.

팬들이 얼마나 벼르고 있었는지. 내내 서포트 하고 싶다며 팬사이트 운영진을 괴롭혔고 돈을 보내지 말라고 해도 이경민 계좌에 계속 돈이 들어왔다. 심심풀이로 천 원씩 소액을 매일 보내는 팬이 많을 정도였다. 한동안 서포트를 하지 못했기에 지하철 광고판에 돈지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금액이 쌓였다.

[HOT] 배우가 서포트 금지하면 생기는 일(feat.폭주한유수한팬들) +715

말 그대로 폭주였다. 유수한 팬들은 서포트에 굶주려서 결국 자제력을 잃고 폭주하고 말았다. 지하철역 하나를 점령한 수준이었다. 어딜 가나 유수한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죄다 디자인이 달랐다. 돈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배우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 와;; 서포트 수준 머선일이고???

- ㅋㅋㅋㅋ 얼마나 유수한이 서포트 가지고 뭐라 했으면 폭주하냐 ㅋㅋㅋㅋㅋㅋ

- 미쳤닼ㅋㅋㅋㅋ 너무 웃곀ㅋㅋㅋㅋ 못하게 해서 폭주했댘ㅋㅋㅋㅋ

- 나 오늘 저기 갔는뎈ㅋㅋㅋㅋ 머글인데도 눈 호강함 ㅋㅋㅋㅋㅋㅋ

- 그래서 지금 광고 몇 개야? 세기도 힘들다 ㄷㄷㄷㄷㄷ

└ 10개 넘음;;

└└ 10개는 확실히 넘고 숨겨진 광고도 있대 ㅋㅋㅋㅋ 미친 듯 ㅋㅋㅋ

└└└ 와, 팬들 노빠꾸 지리네;;

└└└└ 팬들 폭주한게 이렇게 웃길 일이냨ㅋㅋㅋㅋㅋㅋ

└└└└└ 대체 얼마를 쓴곀ㅋㅋㅋㅋㅋㅋㅋ

유수한은 조금 억울했다. 그저 팬을 위해서 생각했을 뿐이다. 물론 유수한은 이성실의 말대로 진짜 팬이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 돈을 쓰지 않기를 원했다.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 팬들 너무 사랑스럽다 ㅎㅎ 내 배우 자랑하고 싶은데, 서포트 하지 말라고 하니까 꾹꾹 참다가 이제야 폭발한 거잖아 ㅋㅋㅋ

음, 그런가.

유수한은 광고판을 사진으로 남기며 골몰히 생각했다. 누군가의 팬이 돼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마음인지는 사실 잘 모른다. 처음으로 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듯했다.

“저기…….”

다른 생각에 잠겨 주변에 사람이 많아졌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유수한은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은 여자 한 명이 유수한을 빛나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수, 수한 오빠 맞죠?!”

그 목소리를 시작으로 사람이 순식간에 몰리기 시작했다. 유수한은 이제 고작 딱 2개의 광고판을 확인했다. 10개가 넘는다는 대상 축하 광고를 다 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쫓기는 입장이 되었다.

“아닙니다!”

짧게 소리치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기다가, 이내 달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 행동에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남자가 유수한이라는 걸 깨달았다.

꺄아아아아악!

까마귀 소리가 지하철 내에 울려 퍼진다. 달음질을 치던 유수한은 눈에 보이는 광고판을 눈에 담았다. 제대로 감상할 수 없어서 아쉽다. 방금 스쳐본 광고판은 총을 든 이은결 하사였다.

문구는.

[이 하사님!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충성!]

이었다.

유수한의 필모를 응용한 광고판이었다. 나가는 길, 화장실 옆에 있는 전광판에는 오랜만에 보는 정유환이 있었다. 그는 정유환답게 셔츠를 풀어 헤치고 탄탄한 복근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픈 손가락, 유환아. 대상 축하해!]

가슴이 뭉클하다. 정유환은 유수한에게도 뜻깊은 배역이었다. 이보다 더 많은 광고판이 곳곳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출구를 찾아 나온 유수한은 눈에 보이는 LED 광고를 눈에 담았다.

[빛나는 유수한♡]

[당신의 꽃길을 빛유가 늘 함께할게요!]

이번에는 드라마 배역이 아닌, 팬들이 말하는 ‘본체’였다. 유수한은 지금 꽃길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뒤로는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있지만, 행복했다. 언제, 어디서 이렇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을까.

“헉, 허억, 와, 죽겠다.”

운동을 열심히 하길 잘했다. 가까스로 따라붙은 인파를 뚫고 K엔터까지 달려온 유수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휴, 다음에는 새벽에 와야겠다.”

추운 날에도 맺힌 땀을 손으로 닦으며 유수한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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