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58화 (158/175)

158. 뚝딱 커플

“카라 핀!”

연예대상에 입었던 의상은 넥타이가 없었다. 이번에는 올 블랙 수트에 넥타이가 있다. 포인트는 넥타이를 고정하는 카라 핀이었다. 반짝이는 금빛 카라 핀 끝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좋아요.”

지금 보라는 진심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유수한은 입히는 재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것도 있지만, 유수한이 잘해 주기 때문에 그만큼 잘하고 싶은 배우기도 했다.

유수한은 오늘은 머리를 올렸다. 포마드 스타일은 조금 더 진중한 느낌을 주었다. 오늘 유수한은 대상 후보였다. 첫 대상 후보였고 수상 가능성도 높았다. 그렇기에 의상은 물론 전체적으로 힘을 주었다.

“유수한 씨, 레드카펫 입장하실게요.”

대기실 문 옆에 붙어 있는 타임테이블을 보고 있던 유수한은 FD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유수한 헤메코 지렸다

- 아니, 유수한 코디 열일 했는데??

- 저거 뭐야 넥타이핀? 뭐야? 암튼 개 섹시해

- 꺄아아아아악 오늘 유수한 포마드 했어 ㅠㅠㅠㅠㅠ

└ 용안 무슨 일이야 ㅠㅠㅠㅠ

└└ 개존잘 ㅠㅠㅠㅠㅠㅠ

└└└ 심장 아픔 ㅠㅠㅠㅠㅠㅠ

- 오늘 유수한 대상각?

└ 대상 쌉가

└└ 2222 대상 쌉가능

└└└ 3333 말모 쌉가넝

└└└└ 4444 ㅇㅈㅇㅈ

유수한은 상에 대해서는 생각을 덜어 내려 하고 있다. 욕심은 나지만, 앞으로 기회는 충분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받지 못하더라도 잠깐 아쉬워하고 털어 낼 수 있다.

“초원 씨, 긴장했어요?”

오늘 레드카펫은 상대역이었던 한초원과 함께였다. 한초원은 시상식 경험이 별로 없었기에 긴장한 눈치였다. 물론 단막극 때 짧게 경험했다. 유수한과 함께 단막극 부문 상을 받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시상식에 초대받아 레드카펫을 걷는다.

“아, 네. 조금요.”

“좋은 날이니까, 긴장 풀어요. 근데 이런 말 해도 안 풀리죠?”

당연하다.

말 한마디에 풀릴 긴장이었으면 진작 풀리고도 남았다. 처음이라는 건 그렇다. 뭐든 처음은 어렵고 긴장을 집어먹게 된다. 그러다, 경험이 쌓이면 조금씩 나아진다. 그만큼 긴장이 풀리고 자연스러워지니까.

“좀 잡을게요.”

심호흡을 하던 한초원이 어정쩡하게 유수한의 팔을 잡았다. 사실 팔을 잡은 것도 아니고 옷을 살짝 손가락으로 잡은 수준이었다.

“그러지 말고 그냥 팔짱 껴요.”

유수한이 팔을 내밀었다.

“어차피 극중에서 커플이었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자연스럽게 유수한이 리드한다.

한초원이 머뭇거리다가 유수한의 팔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현장 진행의 신호를 받고 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카메라였다. 그다음은 양옆을 꽉 채운 팬들. 핸드폰을 내밀고 유수한을 찍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저기 초원 씨 팬 있네요.”

유수한은 눈으로 자신의 팬을 찾아내고 있었다. 어느새 손에는 편지가 들려 있었고, 그러다 한초원의 팬을 발견했다.

“아, 진짜요?”

“저기요. 저기, 여성분. 여기도 있어요.”

“와.”

그 순간, 한초원은 긴장이 한결 풀리는 걸 느꼈다.

한 명은 한초원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연극 무대를 설 때마다 공연을 보러 와 주는 팬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반가웠고 긴장이 풀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요즘 한초원은 매체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단막극을 찍으면서 연극을 보러 오는 팬이 늘어난 걸 느꼈고, 주인공을 하고 나니 전체적으로 대우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팬이 늘어난 건 물론, 목소리가 좋다며 라디오 DJ까지 섭외가 들어왔다.

“옆에도 있어요.”

“아, 네.”

“선물 제가 대신 받아 줄까요?”

“아, 그러면 감사하죠. 그럼 저도 저기 편지 갖다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진풍경이다.

팔짱을 낀 채로 서로 선물을 전해 주느라 정신이 없다. 유수한의 팬들은 이미 개인 선물은 받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편지만 전해 주고 있었다. 한초원 팬은 유수한에 비해 수는 적었지만, 선물이 꽤 많았다.

- 둘이 뭐해?

- 앜ㅋㅋㅋㅋㅋㅋ 둘이 졸귀야 ㅋㅋㅋㅋㅋㅋㅋㅋ

- 둘이 지금 걷고 있는 거 맞지? ㅋㅋㅋㅋㅋ

- 으악 ㅠㅠㅠㅠ 원양커플 사랑한다 ㅠㅠㅠㅠㅠㅠㅠ

- ㅋㅋㅋㅋㅋ 아니 둘이 레드카펫 걸으랬지, 누가 팬 선물 주고받으래? ㅋㅋㅋㅋㅋ

└ ㄱㅇㄱ ㅋㅋㅋㅋㅋㅋ

└└ 너무 웃기고 귀여움 ㅋㅋㅋㅋㅋㅋ

└└└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다 ㅠㅠㅠㅠㅠ

뒤늦게 정신 차린 유수한이 마지막 선물을 주며 말했다.

“우리 이제 걸어야 할 것 같아요.”

“아, 네.”

유수한은 한초원이 편지를 너무 많이 전해 줘서 한 손에 들고 가기 벅찰 정도였다. 그래서 수트 주머니에 편지를 넣었는데, 보라가 보면 기함할 모습이었다. 한초원은 더했다. 유수한은 작은 편지였지만, 한초원은 선물도 많았다. 그래서 유수한이 대신 들어 줄 정도였다.

- 혹시 둘이 사귀어?

└ ㅁ_ㅂ

└└ 나 방금 전에 이정우 생각했는데, 지금은 한초원이야 ㅁㅂ

└└└ 이게 망붕일까? 믿으면 사실이 되지 않을까?

└└└└ 데스패치 출동해라

└└└└└ 앜ㅋㅋㅋㅋㅋ 데스패치 ㅋㅋㅋㅋㅋㅋ

작은 해프닝이다. 그래도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한초원은 긴장을 털어 낸 듯했다. 얼굴 표정이 좋았다. 포토월에 들어가기 직전에 두 사람은 대기하고 있던 매니저에게 가지고 있는 편지와 선물을 모두 건네주었다.

이제야 비로소 자유가 된 두 사람은 한결 편안한 얼굴로 입장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카메라가 모두 담고 있었다.

- 매니저 어이없나 봐 ㅋㅋㅋㅋ 웃고 있네 ㅋㅋㅋ

- 보기 좋다 잘 어울린다 ㅁ_ㅂ

- 유수한 매너 무슨 일? 한초원 선물 자연스럽게 대신 들어 주네??

└ 맞아 무심하게 슥 가져가는게 멋있어...

└└ 내가 한초원이었으면 이미 짝사랑 시작했다

└└└ 손도 커 ㅠㅠㅠㅠㅠㅠ 한 손에 쇼핑백 몇 개를 드는 거야 ㅠㅠㅠㅠ

└└└└ 내가 다 심쿵 ㅠㅠㅠㅠㅠㅠ

사람들은 별거 아닌 일로 앓는다. 유수한에게는 별거 아닌 행동이었다. 그러나 여자가 한 손으로 들기에는 벅찼다.

- 팔짱을 풀면 되잖아 바보들아

└ 둘 다 댕청....

└└ 유수한 팔에 본드 발랐나 봐

└└└ 댕청해서 더 귀여움 ㅋㅋㅋㅋㅋㅋㅋ

└└└└ 아, 이것도 병인가? ㅁ_ㅂ

└└└└└ 병 아닌듯 나도 ㅁ_ㅂ

맞다.

팔짱을 풀면 된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팔짱을 끼고 들어갔으니, 계속 끼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손가락 하트 한 번만 해 주세요.”

유수한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이제는 눈부신 셔터 세례도 익숙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어느새 레드카펫 끝자락에 도착했다.

“네! 지금 원양 커플이 레드카펫을 밟은 지 무려 10분이 지나서야 여기 도착했습니다!”

그랬나.

그렇게 오래 걸렸나.

“안녕하세요. 황지선 아나운서입니다.”

레드카펫 끝자락에 따로 마련된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서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레드카펫을 걷는 모든 사람이 인터뷰를 진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수한과 한초원은 드라마 주인공이었기에, 당연히 인터뷰를 할 시간이 주어졌다.

“아니, 아까 보는데 무슨 선물을 열심히 받으시더라고요. 뭐 하신 거예요?”

이 질문을 할 줄 알았다. 생각해 보면 더 많이 선물을 챙겨 주려고 잠시 정신을 놓느라 잊고 있었다. 지금은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 레드카펫 행사 중이라는 걸.

“아, 초원 씨 팬이 보여서 선물을 전해 주려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초원 씨도 제 팬에게서 편지를 받아 주고요.”

황지선 아나운서가 두 사람을 흐뭇하게 보며 말했다.

“두 사람 사이가 좋네요?”

“네, 그럼요.”

유수한이 선선히 대답했다.

“그래서 계속 팔짱 끼고 계신 거죠?”

“아,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사실 잊고 있었다. 그래서 순간 흠칫 놀랐지만, 자연스럽게 표정을 바꾸었다. 한초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눈이 흔들렸다가 다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수한 씨는 대상 후보, 초원 씨는 신인상에 우수상까지 후보에 올랐는데 기분이 어때요?”

기분이랄 게 있나.

“영광이죠. 상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기분은 좋을 거 같아요. 하지만 욕심 나는 상은 하나 있어요.”

최근 유수한은 이정우와 받은 커플상이 그토록 싫었다. 오죽하면 트로피를 정리할 때, 그 상을 맨 뒤로 밀어 놓았을 정도였다.

“베스트 커플상이요.”

그걸 받아서 이정우와의 커플상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 * *

[HOT] 드덕들을 설레게 하는 유수한X한초원 케미 +339

그래, 이거지.

레드카펫 행사를 마치고 유수한은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긋지긋하던 이정우 망령을 떨쳐 낸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물론 노리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유수한은 애초에 뚝딱미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생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 둘이 분위기도 비슷하고 너무 잘 어울려

- 뚝딱커플

└ 222ㅋㅋㅋㅋㅋㅋ

└└ 뚝딱커플 딱이네 ㅋㅋㅋㅋㅋㅋ

└└└ 뚝딱뚝딱

- 묘하게 둘이 사적으로 붙으면 텐션이 있어 그게 날 막 미치게 함

└ 맞아 유수한 드라마 외에는 텐션 붙는 경우 거의 없는데 ㅇㅇ

└└ 그림체도 잘 맞고 성격도 잘 맞고 분위기도 잘 어울려

└└└ 응원하자 응원하면 사실이 된다

- 조심스럽게 데스패치 꺼내봅니다

└ ㅋㅋㅋㅋㅋ 데스패치는 유수한 못 건드린다니까 ㅋㅋㅋㅋㅋㅋ

└└ 데스패치는 유수한의 유만 들어도 지릴걸 ㅋ

반응이 재밌다.

이정우와 커플상을 받고 나서는 한동안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않던 유수한이었다. 게다가 보라나 김민수가 어찌나 놀리는지,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유수한이 이정우를 그리 탐탁지 않아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더욱 거세게 놀리던 두 사람이다. 그래서 유수한은 이제야 속이 시원했다.

“형, 커피요.”

“고맙다.”

오늘도 시상식은 최소 3시간이다. 그 이상을 넘길 확률이 높기 때문에 미리 카페인을 충전해야 옳았다.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을 본다. 반응을 살펴보고 오늘 코디가 괜찮았는지도 확인한다. 전체적으로 반응은 좋았다.

“신인상 시상하셔야 해서 따로 대기할게요.”

“아, 네.”

“축하 무대 끝나고 바로 진행하는 거라, 미리 리딩도 해야 해서요.”

유수한이 커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유수한은 신인상을 시상한다. 공교롭게도 한초원이 후보로 오른 부문이 신인상이었다.

“여기 큐카드 우선 읽어 보세요.”

유수한은 대본을 읽었다. 몇 줄 되지 않았지만 상대와의 호흡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감안해야 했다. 그리고 들어가기 직전, 수상카드가 은밀히 전달되었다.

“안녕하세요. 유수한입니다.”

입장하자마자, 마이크를 조절했다. 유수한은 키가 큰 편이었기에, 마이크를 좀 더 올려야 했다. 유수한이 입을 열기 무섭게 사방에서 까마귀 떼가 출몰했다.

씩, 미소를 짓는다. 화려한 조명,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유수한에게 집중하고 있다.

한때는 주목받는 게 불편했고 늘 사람 시선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김대한이었던 시절은 조금씩 퇴색된다.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금 더 당당하고 욕심이 생겼다. 주목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환한 빛이 쏟아지는 곳도 무섭지 않았다.

“생애 딱 한 번 받을 수 있는 신인상.”

유수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상을 시상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 그럼.

“신인상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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