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난 이 커플 응원 안 해
“네, 그냥 저는 열심히 축하하러 왔는데요. 이렇게 상, 네,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상을 받아서 기쁘긴 해야 하는데, 사실 받고 싶지 않아서 말을 더듬게 된다. 이정우는 트로피를 들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정우가 손을 흔들 때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 ㅋㅋㅋㅋㅋㅋ 유수한 받기 싫은 거 티나는데 그게 또 존맛 알지?
└ RGRG
└└ 말해 뭐해 ㅋㅋㅋㅋ 연상이 까칠하면 또 맛있거든 ㅋㅋㅋㅋㅋ
└└└ 너무 맛있어서 계속 집어 먹게 됨 ㅋㅋㅋㅋㅋ
└└└└ 이 집 잘해 맛집이야
유수한의 뜻하지 않은, 원하지 않은 베스트커플상은 반응이 뜨거웠다.
[HOT] 베스트커플상이 싫은 까칠연상과 그저 연상이 좋은 댕댕연하 +1015
벌써 방송 캡처와 클립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무리 브로맨스가 대세라고 하지만, 유수한과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특히 연기에 있어서 여주가 따로 있는데, 다른 남자와 엮이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싫다고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 이정우 뛰어올 때 진심 대형견인 줄 ㅋㅋㅋㅋㅋㅋ
- 대형견과 대형견 견주라, 캐해 완벽
- 유수한 입꼬리 굳은게 개웃겨 ㅋㅋㅋㅋㅋ
- 이 커플은 유수한을 놀리기 위해서 계속 존재해야 함 ㅋㅋㅋㅋ
└ ㅇㅈ ㅋㅋㅋㅋㅋㅋ
└└ 유수한 치 떠는게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
└└└ 더 놀려줘야지
└└└└ ㅋㅋㅋㅋ 맞아 정색하는게 웃겨서 더 엮게 돼 ㅋㅋㅋㅋ
└└└└└ 말해 뭐해 혐관에서 사랑되는게 존맛이거든요
- 날뛰는 대형견 눈치주는 대형견 견주 ㅋㅋㅋㅋㅋㅋㅋㅋ
└ 이정우 뛰어오니까 견주가 한숨 쉬잖아
└└ 사실은 다칠까 봐 그러는 거면?
└└└ 222 뭐, 그렇게 보이면 그런거지 ㅋㅋㅋㅋㅋ
1부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유수한은 화장실에 다녀와서 핸드폰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이 믿을 수 없는 반응에 지금 당장 눈알을 꺼내 물로 씻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빠, 축하해요.”
“뭐.”
“베스트 커플.”
보라의 말에 유수한은 이를 악물고 눈으로 욕했다. 김민수는 그저 눈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사실 본인만 싫을 뿐이지, 남은 그저 재밌었다.
“그래도 상이잖아요. 트로피도 주는.”
“됐다, 말해 뭐 하냐.”
상을 대기실에 두고 다시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무대 하단에 꾸며진 테이블과 객석은 거리가 제법 가깝다. 유수한이 객석을 향해 다가갔다. 팬들이 군데군데 보였고 유수한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오빠! 상 축하해요!”
이놈의 악령 같은 이정우는 아마 꽤 오래 따라붙을 것 같다.
* * *
생애 첫 연예대상은 우당탕탕 끝났다.
유수한에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짧게 팬들을 만나서 소통했고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은 연기대상이었다. 그곳에 팬들은 또 찾아올 것이고 방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또 추운 밖에서 기다릴 것이다.
“저 팬미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물론 그런 감은 있다. 하지만 첫 팬미팅을 하고 시간이 제법 흘렀다. 팬들은 유수한을 보기 위해서 고생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그게 미안하기도 했고 늦지 않게 자리를 마련해야 할 듯했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더 준비할 생각이다.
“이번에는 조금 크게 했으면 좋겠어요.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 있는 팬도 챙기고 싶어요.”
처음 팬미팅을 열었을 때를 생각한다.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배우로서 이미지가 엉망이었던 유수한은 드라마 ‘시간’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그렇기에 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었던 팬미팅이었다.
작은 무대였음에도 믿기 힘든 사랑을 받았다. 지금 유수한은 위치가 높아졌다. ‘톱’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가 되었고 해외 팬덤도 생겼다. 더 늦기 전에 유수한은 그 벅찬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 더 말해 봐.”
이성실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일단 서울, 부산, 광주, 원주, 대전 이 정도는 열고 싶어요.”
“그리고?”
“객석은 5천 명 정도 수용 가능한 공연장이면 좋겠고요.”
“가장 중요한 건, 티켓값은?”
“최대한 팬이 부담 안 되는 선에서요.”
쉽게 말하자면 어려운 조건이었다.
일부러 유수한이 객석은 5천 명 정도로 제한했을 것이다. 무대가 커질수록 대관료는 비싸지고 팬에게 전해지는 부담도 늘어간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또 다른 부작용도 존재했다. 유수한이 팬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성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과하다는 생각도 한다.
“너도 한 번 경험해서 알겠지만, 티켓값이 저렴하면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이성실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 갔다.
“첫 번째는 암표. 저렴하니까 수확하기도 편하겠지. 매크로 돌려서 싹 얻어 낸 티켓을 몇십 배로 불려서 팔 거다. 아니, 몇백 배도 될 거야. 두 번째는 진짜 팬이 못 올 수도 있다. 이건 이미 첫 번째 팬미팅에서 나왔던 문제야.”
이 대표는 항상 안 된다는 말을 하기 전에 여러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상대가 납득이 되어야 그다음 논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저렴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연예인 얼굴 보려고 오거든.”
“네.”
“티켓의 절반은 팬클럽 우선 선예매로 풀린다고 해도, 남은 절반은 팬이 못 올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니.”
“그렇군요.”
“마지막은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손해가 막심하다.”
팬미팅은 대관료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대관료가 시작이었다. 유수한이 무대만 빌리고 거기서 마이크만 든 채, 대화만 할 것도 아니다. 춤도 출 거고 노래도 부를 것이다. 그 시간을 채우려면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인건비는 물론, 무대 장치에도 돈이 든다. 그러니, 소속사 입장에서는 난색을 표할 만했다.
“그 손해는 제가 메꾸면 안 될까요?”
“그걸 네 팬이 원할까?”
이성실의 말에 유수한이 입을 다물었다.
“보기에는 좋지. 유수한이 팬을 끔찍하게 생각한다. 기사 타이틀 붙이기에도 좋아. 근데, 팬이 그걸 정말 원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니?”
유수한은 그저 팬이 돈 쓰는 게 싫었다. 그저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성실의 말대로 팬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유수한은 잠시 소파에 기대며 생각에 잠겼다.
“난 두 번째는 허투루 하고 싶지 않다.”
이성실은 주먹구구식 팬미팅이 아니라, 지금 유수한 위치에 맞는 팬미팅을 개최하고 싶었다. 첫 번째는 제대로 된 공식 굿즈도 없었고 소소한 팬미팅이었다. 물론 그때는 그게 맞았다. 유수한이 재기에 막 성공한 시기였기에, 팬에게 보답하는 팬미팅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지금은 아니었다.
유수한은 위치가 높아졌고 K엔터에서는 간판이었다. 그런 배우의 팬미팅을 주먹구구식으로 작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너 배우치고 팬덤 큰 편이야.”
“네.”
“지금은 아시아 팬덤도 제법 큰 편이지. 너는 모르겠지만, 너도 한류스타야. 알고 있니?”
그 부분은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다. 드라마 ‘EXIT’가 주목을 받으면서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인기가 높아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미국은 물론 유럽권에도 팬이 생길 정도였으니, 유수한은 확실히 지금 국내에서 독보적인 배우였다.
“그런 네가 5천 명으로 될 거 같아?”
이성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두 배, 최소 두 배는 필요하다. 전국 투어나 다름없으니까, 그 정도면 괜찮을 거야. 티켓값도 네가 생각하고 있는 금액은 버려.”
유수한은 할 말이 없었다. 뭔가 반박하려고 했지만, 구구절절 이성실의 말이 다 맞았다. 이성실은 다리를 꼬며 말했다.
“네가 그 값어치에 맞는 무대를 보여 주면 되는 거야.”
그 말이 유수한에게 깨달음을 준다.
팬은 얼마가 들어도 내 배우의 좋은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팬 상대로 장사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그 값에 맞는 모습을 보여 주는 일이었다.
“회의하지.”
“네.”
“제대로 준비해서 내년에 멋있게 여는 걸로.”
이성실의 말에 납득한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유수한은 딱히 스케줄이 없었다.
그렇기에 바로 팬미팅 준비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회사에서 회의를 진행했다. 팬미팅을 어떻게 진행할지가 주였고, 공연장 리스트를 미리 준비해 둔 터라 물 흐르듯이 진행됐다.
서울은 가장 큰 공연장을 픽했다. 만 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었고 그 외에도 교통이 좋았다. 경기도권에서 오는 팬들도 쉽게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대 장치를 세우기에도 용이했다.
지방은 서울만큼 인프라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은 공연장을 골라냈다. 수용 인원이 적어지는 만큼, 주말을 모두 할애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즉, 서울은 1회지만, 나머지 지역은 모두 2회 공연이었다.
돈을 생각한다면 서울에서 2회 공연하는 게 맞다. 하지만 유수한은 최대한 많은 팬을 만나는 게 목표였다. 그렇기에 치열한 회의 끝에 모든 것이 정해졌다.
“대관 계약 끝났다.”
이제 차례로 일을 진행한다.
팬미팅은 따뜻한 봄에 열린다. 4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고 지금부터 유수한은 공연장에서 보일 춤과 노래를 또 연습해야 했다.
그리고.
“증정 굿즈는 배지와 컵을 준비할 거고. 디자인은 뭐, 한 달이면 되니까.”
회사도 덩달아 바빠진다.
“무대 구성을 어떻게 할지, 일단 전문가 섭외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이번에는 말 그대로 모든 걸 보여 줄 생각이었다.
유수한은 자신의 1막은 끝났고 이제 2막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1막을 끝내기에는 젊은 나이였지만, 이미 본품 구매를 끝내고 완벽한 유수한이 되었을 때 2막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시작.
그리고 이제는 중간 점검을 할 때였다. 배우로서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것을, 팬들에게 보여 줄 생각이다.
“게스트 생각해 봐.”
“게스트요?”
“배우가 팬미팅에서 노래, 춤만 하면 되겠니.”
“아.”
“서온이는 내가 말해 볼 건데, 몇 명 더 있으면 좋겠어.”
“혹시 생각하시는 분 있어요?”
공연 시간은 2시간이 넘는다.
유수한은 2시간 30분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이성실은 당연히 반대했다. 무슨 콘서트도 아니고 팬미팅을 그렇게 오래 할 생각을 하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결국 유수한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니, 그 긴 시간을 메꿀 연예인도 필요하다.
“일단 너랑 작품 많이 했던 사람이 좋지.”
“음, 주민하는 가능할 것 같아요.”
“한초원 씨도 좋고.”
확실히 그 두 사람은 유수한과 작품을 많이 했다.
“주해원 씨도 괜찮다. 영화 홍보 하기 좋으니까.”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섭외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팬미팅의 의미가 사라진다. 사실 가장 편한 상대는 주민하였다. 서로 친남매처럼 지내는 사이라, 부탁하기에도 편했다. 한초원은 최근 같이 작품을 했으니, 생각해 볼 법했지만.
“정동인 선배에게 연락 한번 해 볼게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정동인이었다.
“그리고 저는 명서진 씨 초청하고 싶어요.”
“왜?”
“그냥, 시한부 아빠의 다른 이야기를 짧게 상상하고 싶어서요.”
“의미 있네.”
정동인은 입담이 좋은 사람이라 함께하면 즐거울 것 같았고, 명서진은 말 그대로 드라마의 다른 이야기를 짧게 보여 주고 싶었다. 물론 이것도 작가와 이야기를 해 봐야겠지만, 아마 흔쾌히 대본을 써 주든 도움을 줄 것이다.
“우선 공식 기사는 연기대상 받은 후에 터트리는 걸로 하자.”
이성실의 말을 끝으로 오늘의 짧은 회의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