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52화 (152/175)

152. 마지막 탈락자는

「와, 이게 무슨 일인가요?」

민서온이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올 캐스팅입니다.」

버튼이 모두 눌렸다. 물론 첫 올 캐스팅은 아니었다.

2차 예선은 혼자 이끌어 가는 연기가 아니었기에, 분위기를 휘어잡기가 더 좋았다. 독백 연기가 아닌, 서로를 보며 티키타카 할 수 있는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2차 예선이 끝나면 본선이 시작된다. 본선으로 진출할 수 있는 참가자 인원은 정해져 있었기에 이대로라면 올 캐스팅을 얻고도 떨어질 수 있었다.

「놀랍네요.」

될까?

심사를 들으며 유수한은 이정우가 살아남을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었다.

「이은설 양은 무슨 역할을 해도 자기만의 색이 확실하네요. 사실 1차에서는 나이에 맞는 연기를 보여 줘서,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요.」

일단 이은설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 어린 것이 큰 장점이었다. 본선에 다양한 캐릭터가 있어야 하는데, 이은설은 흔치 않은 캐릭터였다. 거기다 연기도 잘했다. 본선은 물론 그보다 더 높은 곳을 노려도 될 정도였다.

「이정우 씨는 사실 1차에서 저는 캐스팅을 안 했거든요, 기본기가 부족해서. 근데 생각보다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이어 가네요.」

이정우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는 떨지 않고 연습대로 해냈다. 몸 연기도 어색하지 않았다. 밤을 새워서 몸을 컨트롤하는 연습을 시킨 보람이 있었다.

「신기하네요. 단시간에 이렇게 발전하다니.」

이때만 해도 유수한은 합격을 기대했다.

「대체 유수한 씨가 무슨 마법을 건 거죠?」

난데없이 멘토의 이름이 불렸을 때, 어쩌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트라이트는 공연한 사람에게 모두 돌아가야 한다. 그 순간만큼은 무대 뒤에 있는 사람과는 무관해야 했는데, 이정우를 칭찬하면서도 유수한을 언급했다. 심사하는 사람들의 머리에 유수한이라는 존재가 그만큼 크다는 증거였다. 이정우가 연기를 잘했지만, 그 덕분은 유수한 때문이라는 생각.

- 이정우 합격하겠지?

└ 아직 모름

└└ 오늘 쩔긴 했는데, 올캐스팅이 너무 많음

└└└ 2222 오늘 캐스팅 남발 심했어;;;

└└└└ 1차까지 종합해서 결과 내면 이정우 떨어질 수도

타 오디션도 마찬가지였다.

만장일치 합격자가 많아야 흥미가 생긴다. 그리고 그 후에 공정치 않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자극적으로 참가자를 떨어뜨렸다. 이정우는 대기실에서 이미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이은설은.

「멘토님!」

마치 자신을 가르친 최경호에게 달려가는 것처럼 하다가, 유수한에게 답삭 안겼다. 팔을 벌렸던 최경호가 멋쩍은 듯 웃는 얼굴을 굳이 클로즈업하며 개그컷을 만들어 냈다.

「고생했어요.」

유수한은 웃으며 이은설을 다독였다.

이은설은 아직 어렸고, 그래서 참가자보다는 한참 어린 동생 같았다. 이은설은 유수한에게 안긴 채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 어린 건 정말 대단한 무기구나

└ 222 ㅋㅋㅋㅋㅋㅋ

└└ 3333 그치그치 나라도 유수한에게 달려가지

└└└ 44444444

└└└└ 555 크게 될 아이야..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최경호 당황한 거 대유잼 ㅋㅋㅋㅋㅋ

└ 이정우도 아직 유수한에게 못 갔는데 ㅋㅋㅋㅋㅋㅋ

└└ 어리면 순발력도 좋아 ㅋㅋㅋㅋㅋㅋ

└└└ 하긴 유수한에게 안길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 ㅋㅋㅋㅋ

└└└└ 이은설이 왜 이정우를 골랐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ㅋㅋㅋㅋㅋ

└└└└└ 앜ㅋㅋㅋㅋㅋ ㄱㅇㄱ ㅋㅋㅋㅋㅋ

그날, 처음으로 유수한은 이정우에게 긍정적인 말을 했다.

「잘했어.」

짧지만 강한 임팩트였다.

여기서 떨어져도 괜찮을 만큼 좋은 연기를 보였다. 처음으로 아이돌 이정우가 아니라 연기자 이정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탈락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예능 ‘캐스팅’의 3회가 끝나 가고 있었다.

「마지막 탈락자는.」

발표를 끝까지 질질 끌었다.

현재 탈락자 후보에는 이정우가 있었다. 3명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이정우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1차와 다르게 아쉬울 것 없는 연기를 보였기 때문에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물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다면 좋겠지만, 못 한다고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이정우입니다.」

끝났다.

이정우의 도전은 여기서 끝났다. 그리고 유수한도 마찬가지였다. 이정우와 한배를 탔으니, 유수한의 도전도 여기서 멈추게 되었다. 여러모로 의외의 결과였다. 제작진은 어떻게든 이정우를 조금 더 오래 끌고 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심사위원이 내린 결과를 번복할 수는 없었다.

이미 중간 쉬는 시간에 분위기를 파악했다. 이정우를 끌고 가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기서 떨어뜨리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결과를 듣던 최 피디가 아쉬운 듯 눈을 질끈 감았다.

- 이럴거면 올캐스팅이 필요가 있음? 올캐에서 2명이나 떨어짐 ㅋㅋㅋㅋㅋ

└ 개에바

└└ 진심 존나 잔인함

└└└ 올캐스팅은 붙여줘야 하는게 맞는 거 아니냐

└└└└ 이게 나라냐?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화제성이 높게 치솟았다. 참가자의 연기가 좋아야 그 프로그램이 뜬다. 우승감이 있어야 하고, 흥미를 가져다줄 빌런도 있어야 한다. 예능 ‘캐스팅’은 모든 것이 적절했다. 욕심이 과해서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참가자도 있었고 아마추어답지 않은 연기를 보여 주는 출연자도 있었다. 거기에 유명 아이돌이 2차에서 떨어지니, 화제성이 뒤따라 왔다.

[OKEN] KBC ‘캐스팅’ 일냈다! 가파른 상승세 이어가며 3회 시청률 9.7% 기록!

동 시간대 1위는 물론, 이대로라면 예능 종합 시청률 1위도 꿈은 아니었다.

[연예이슈] KBC ‘캐스팅’ 존재감 있는 멘토 유수한의 부재, 극복할 수 있을까?

유수한에게도 이번 예능 출연은 득으로 다가왔다. 유수한은 누가 봐도 발연기를 하는 이정우를 끌고 가는 멘토 역할을 했다. 이정우는 1차에서는 그리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2차에서는 환골탈태했다. 그 드라마틱한 변화 뒤에는 유수한이 있었다.

초반 예능 ‘캐스팅’은 유수한에게 기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정우에게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는데, 2회까지 이정우는 말 그대로 빌런이었다. 시청자들은 연기 못하는 유명 아이돌이 1차 예선에 통과한 것을 싫어했다.

욕을 먹던 이정우는 2차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며 장렬히 퇴장했다. 신나게 이정우를 욕하던 시청자들이 태도를 바꾸었다.

- 패자부활전 없음? 이정우 살려

└ 2222

└└ 33333

└└└ 44444

└└└└ 55555

- 떨어뜨릴거면 1차에 떨어뜨리든가, 왜 2차에서 떨어뜨려서 한 처먹게 하냐?

└ 22 이정우 팬도 아닌데, 내가 지금 왜 한 처먹었냐고

└└ 33333 제작진 놈들 이 악마같은 새끼들

└└└ 4444444 아, 유수한 더 보고 싶다고요

└└└└ 555 개짜증나 못할 때 떨어뜨리지...

- 이정우 욕 존나 했는데 나만 지금 나쁜 사람 됐죠?

└ 2222 ㅋㅋㅋㅋㅋㅋㅋ

└└ 333333 아 솔직히 1차 존못이긴 했잖아

└└└ 4444 욕 존나 하다가 머쓱해짐

└└└└ 555 누가 알았냐? 유수한이 발연기를 살릴 줄?

└└└└└ 66666 이게 다 유수한 때문이다 ㅋ

- 다 됐고 심사위원 탓이야 올캐스팅 남발만 안했어도

└ 222 ㅇㅈ

└└ 33333 다 받음

└└└ 444 올캐스팅 남발하더니 ㅉㅉ

└└└└ 55555

오디션 프로그램은 말이 많아야 뜬다. 물론 그 선을 잘 지켜야 한다. 떨어질 이유가 없는 매력적인 출연자가 떨어지면, 그걸 계기로 시청률이 뚝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정우는 사실 떨어뜨리는 게 더 매력적인 출연자였다. 2차를 잘했다고 해도 다음 본선에서도 잘한다는 보장이 없는 출연자였다. 그렇기에 제작진도 아쉬움을 뒤로했다.

- 근데 이정우는 여기서 떨어지는게 맞긴 해 ㅋㅋㅋㅋ

└ ㅇㅇ 2차가 인생연기였을걸

└└ 맞아.. ㅋㅋㅋㅋ

└└└ 만약 본선에서 못했다? 다시 악귀들이 붙어서 욕함

└└└└ ㅇㅈㅇㅈ 유수한도 욕 존나 먹었을 듯 ㅋㅋㅋㅋ

그 말이 맞다.

유수한은 차라리 여기서 끝내는 게 나았다. 아쉽더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게 가장 좋은 결말이었다. 유수한은 멘토로서 존재감을 보여 주었고 이정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아쉬움을 남길 만큼 좋은 연기를 선보였고 이미지도 회복했다.

유명 아이돌인 만큼 오디션은 여기서 정리하는 게 맞다. 애초에 다른 참가자와 출발선이 달랐다. 그렇기에 이미 유명한 연예인은 여기서 빠져 주는 게 나았다.

“끝났네.”

속이 시원하다.

방송이 끝나고 다음 날이 되니, 지긋지긋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이정우가 끝났으니 유수한의 출연도 끝났다. 이제는 배우로서 연기만 열심히 하면 된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화 ‘마지막 겨울’ 대본 리딩이 있는 날이었다.

이미 현장에는 제작진은 물론 배우들도 몇 명 도착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가운데에 앉은 주해원이었다. 영화 준비를 하면서 유수한은 주해원의 필모를 살펴보았다. 연기 스타일이 어떤지, 톤은 어떻게 잡는지, 분위기는 어떤지 확인했다.

“수한 씨, 앞으로 잘 부탁해요.”

물론 연기를 하며 보여 주는 분위기와 실제는 다르다. 주해원은 잘 웃었고 생각보다 키가 컸다. 주해원이 키가 큰 남배우를 선호한다더니, 그 이유를 알 법했다. 유수한은 키가 큰 배우였고 벌크업을 해서 체구도 건장했다. 그렇기에 주해원은 유수한이 흡족했다. 상대 배우가 키가 작으면 주해원이 말랐어도 체구가 커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유수한은 어깨도 넓었고 키도 컸기 때문에 주해원이 조금 더 가녀려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주해원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와, 키 진짜 크시네요?”

유수한의 키는 186cm.

구두를 신으면 조금 더 높아진다. 주해원은 지금 편한 운동화를 신은 채 유수한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아, 이번에 좀 높은 거 신을 수 있겠다.”

그리고 진심으로 좋아했다.

지금까지 상대 배우에게 맞춰서 낮은 굽만 신었던 주해원이었기에 더더욱. 그래서 주해원은 상대 배우의 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케미스트리도 거기서 나오기 때문에.

“아, 그거 잘 봤어요. 캐스팅.”

지금 주해원은 텐션이 높았다.

유수한이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쾌재를 불렀다. 어차피 특별출연이었기에 다 필요 없고 키만 챙겨 달라고 말했던 주해원이었다. 그렇기에, 톱배우가 캐스팅되는 순간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쉽더라고요. 본선 진출 할 줄 알았는데.”

“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사실 전혀 아쉽지 않았다.

이정우가 본선에 진출했다면 그만큼 시간을 뺏긴다. 좋은 타이밍에 떨어진 덕분에 이렇게 새로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조선에 돌아가는 건 아주 오랜만입니다.”

대본 리딩이 시작됐다.

유수한의 분량은 20분 정도로 특별출연치고 적지 않다. 나중에 영화가 개봉되면 주연 이름 다음에 ‘그리고’를 붙인 후 ‘유수한’의 이름이 따라올 예정이다. 즉, 특별출연이지만 그 이상으로 존재감이 있는 배역이라는 뜻이었다.

“그대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갈 생각 하니-”

주해원을 바라보며 유수한이 대사를 이어 갔다.

“설렙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