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네가 인기 멤버라고?
[1회/선공개] 치열한 배우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캐스팅>
10월 초.
KBC ‘캐스팅’이 선공개 영상을 공개하며 그 시작을 알렸다. 1차 예선은 다음 주 녹화가 예정되어 있고 출연자를 추리는 과정을 중점으로 1화가 방송될 예정이었다.
“눈 너무 크게 뜨지 마.”
뭐든 쉬운 연기는 없겠지만, 잔잔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연기보다는 핏대를 세워 가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연기가 더 쉬울 것이다.
“넌 소리 지를 때 왜 콧구멍이 커지냐?”
1차 예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정우에게 더욱 강하게 연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사실 연기는 사실적이기만 하면 좋겠지만, 결국 카메라에 좋게 비쳐야 한다. 따라서 보통의 연기는 보기 좋게 한다. 우는 것도 처절하지만 예쁘게 운다. 말이 이상할 수 있지만, 결국 드라마든 영화든 가상의 이야기였다. 현실적인 건 충분히 현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어떨 때는 사실적으로 눈물, 콧물 뽑아내며 연기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극 분위기에 따라 연기는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었다.
“자, 봐.”
이정우는 멍한 눈으로 핸드폰을 보았다. 일주일간의 합숙을 마치고, 요즘은 오전 9시에 유수한 집을 찾았다. 합숙보다는 출퇴근이 나았다. 적어도 자는 그 순간만큼은 욕을 안 먹는다.
유수한은 항상 이정우보다 10분 일찍 일어났다. 이정우를 깨우면서 잔소리를 잊지 않았다. 발성 연습할 때는 제대로 하라며 뭐라 했고 발음 연습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허투루 하지 말고 정신 집중 하라는 말을 수천 번 들었다.
대본도 그랬다.
경험이 부족하니 대본을 많이 읽고 분석하라 했다. 그러면서 부족한 경험을 채울 수 있고 인간 본연의 감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본을 질리도록 읽었다. 캐릭터 분석도 수없이 했다. 대본을 외우는 건 이젠 조금씩 익숙해질 정도였다.
“네가 보기에도 못생기지 않았냐?”
이정우는 나름 아이돌이었다. 비주얼 멤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얼굴로 먹고 살았던 사람이다. 항상 수많은 팬들에게 잘생겼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그래서 자신이 잘생긴 줄 알았다. 처음 연습생만 해도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시술과 작은 성형수술을 하며 환골탈태했다. 이제 그룹 윅스의 멤버 이정우는 잘생겼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콧구멍 봐라. 너 아이돌 맞냐? 동전도 들어가겠다, 야. 이 얼굴로 연기하면 네 골수팬도 이건 좀, 쯧쯧 하며 탈덕하겠다.”
욕 하나 없지만, 이정우의 자존감을 손쉽게 박살 냈다. 생각지도 않은 예능에 나가게 된 거라, 유수한은 이정우를 잘근잘근 씹어 주고 있었다. 사실 이런 독설을 할 성격은 아니었는데, 강철수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화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정우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이정우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이었다. 약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부류였다. 그러니 더 잘근 밟았다. 혹시나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저 이러다가…….”
연습생 때는 여기저기 치이며 살았지만, 데뷔하면서 빠르게 인기를 얻으며 마치 왕처럼 굴었던 이정우였다. 그러니, 오랜만에 혹독한 평가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연습생 시절에는 별별 소리를 다 들으며 평가당했는데, 그때가 아득한 전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 이정우의 멘탈은 쉽게 부서지는 순두부 같았다.
“비인기 멤버 되면 어떡하죠?”
“응? 너 인기 멤버야?”
전혀 몰랐다는 듯 유수한이 말을 덧붙였다.
“아니, 연기할 때 너무 못생겨서 비인기인 줄.”
솔직히 거짓말은 안 했다.
유수한은 잘생겼다. 배우 중에서도 얼굴로는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잘생겼다. 심지어 배우 생활 하면서 보는 사람들이 모두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었다. 물론 가수 중에서도 배우처럼 잘생긴 사람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일부였고 대체로 배우가 더 얼굴이 준수했다. 그렇기에 유수한은 이정우의 얼굴이 잘생긴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연예인에 한정해서. 이정우는 일반인이라고 치면 잘생겼지만, 연예인이라 생각하면 평범했다. 그 사실을 스스로도 알 것이다. 물론 유명 아이돌 멤버였으니, 잘생긴 것과 별개로 자신감이 있겠지만, 얼굴로 치면 그리 잘난 편은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연기할 때의 이정우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무대 위에서는 끼를 발산했지만, 연기를 할 때는 끼가 꽉 막혔다. 심지어 얼굴 근육을 제대로 쓰지 못해 더 우스워졌다.
“사실 잘생긴 게 전부는 아니야.”
“네…….”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말 들어 봤지?”
배우에게 얼굴이 전부라면 잘생긴 사람이 모두 톱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배우에게 얼굴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너도 알잖아?”
“네…….”
“잘생기면 좋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배우에게 중요한 건 분위기 같아.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것도 결국 분위기거든. 코믹스러운 연기를 할 때는 코믹스러운 분위기, 즉 아우라를 뿜어내고. 잘생긴 역할을 할 때는 쉽게 말해서 멋있는 아우라를 뿜지. 그런 배우가 대성해. 나도 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
“네, 저는 그런 것도 없고 얼굴도 못생겼으니…… 글렀네요.”
“뭐, 그렇긴 한데.”
이정우의 자존감을 착실히 짓밟아 놓았다. 춤추고 노래 부르는 가수라면 자존감이 높아도 좋지만, 연기를 처음 시작하는 단계이니, 쓸데없는 자신감이 있는 건 오히려 독이었다. 적어도 연기할 때는 인기 아이돌이라는 프라이드는 없어야 한다. 지금 유수한은 이정우의 연기에 필요 없는 프라이드를 버리게끔 만들었다.
“노력하면 나아지겠지. 나도 처음에는 연기 못했어.”
이번에는 적당히 당근을 준다.
“나 원래 사고 자주 치던 또라이였던 건 알지?”
그 물음에 이정우가 고개를 신나게 끄덕였다. 이정우도 알고 있었다. 유수한, 지금은 이미지가 좋은 톱스타라지만, 예전에는 어땠는가. 병역 비리를 수습하기 위해 급하게 군 입대를 하고 그 이후에 폭행 사건도 있었으며, 나중에는 술 먹고 수영하다가 물에 빠진 일화까지 퍼지며 이미지가 추락했던 배우였다.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거라고 평가받던 유수한은 조금씩 달라지며 예전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간 배우가 되었다. 그것도 톱이라는 말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는 내 팬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
진심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엉망으로 살면 팬은 달아나. 인기는 거품이고 한순간이라는 말 들어 봤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조금이라도 엇나가고 연기력이 떨어지거나, 작품 선택을 잘못하면 팬도 달아나고 내 배우 경력에도 먹구름이 끼겠지.”
언제나 경계한다.
바른 생활로 사는 건 힘들지만, 그렇게 살아야 지금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롭게 얻은 생명이다. 만약 유수한이 다시 김대한으로 돌아간다면 예전의 그 거지같은 삶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김대한은 분명 악조건이었다. 돈 많은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잘생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머리가 똑똑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을 얻어 노력이라는 걸 처음 해 보며 깨달았다. 바닥에 머물러 있다고 한탄만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만약 다시 김대한이 된다면 노력하며 뭐라도 해 보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폐급 배우였던 유수한을 톱에 올린 것처럼. 물론 [체인지 라이프]의 도움이 있었지만, 노력하지 않고서는 이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네가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싶다면 노력해야 해. 너도 아이돌 되기 전에 노력이라는 걸 했을 거잖아?”
그렇다.
지금은 인기에 취해 팬에게 동태눈을 하고 ‘아, 정말요?’만 되풀이하는 이정우도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다. 미친 듯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 실력은 딱히 재능이 없어서 느는 속도가 느렸지만, 춤은 달랐다. 데뷔권이 아슬아슬하던 순간, 이정우는 가까스로 춤으로 윅스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의 환희를 기억한다. 데뷔하던 그 순간, 그 무대를 기억하고 팬이 처음으로 선물을 주던 때도 생각난다. 그때는 모든 것에 감사했는데, 늘 겸손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변하고 말았고 오만방자해져 버렸다.
“노력해.”
“네.”
“들어 보니 아이돌 계속하는 것도 아니라며? 너네 벌써 개인 활동 시작하고 그렇다며. 너도 솔직히 그룹 활동 끝나면 할 게 없으니까 배우 하려는 거 아니야?”
정곡을 찌르는 말에 이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만만치 않아. 지금은 인기발로 네게 배역이 와도, 끗발 떨어지면 끝이야. 조연? 그것도 감지덕지인 순간 올 거다.”
솔직히 이정우 연기력에 지금도 조연은 감지덕지였다.
“그러니까,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연습해라.”
당근은 여기까지.
“어제 준 대본 분석 다 했지?”
이제는 다시 채찍을 들고 숙제를 확인할 시간이었다.
* * *
“안녕하세요. 이정우 씨를 맡은 배우 유수한입니다.”
멘토라고 해서 거창한 촬영은 없을 줄 알았지만, 방송은 방송이었다. 새벽에 숍에 들러 메이크업을 받고 왔다. 머리도 힘준다.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길 원하는 유수한이었다.
“이정우 씨와는 드라마를 통해서 인연이 닿았고요. 동생이라, 편하게 대하는 사이입니다.”
가벼운 인터뷰.
유수한은 터틀넥 니트를 입고 예능 ‘캐스팅’ 사전 인터뷰에 참여했다. 개별 인터뷰를 진행한 후에 멘토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배우들을 모아 단체 인터뷰가 진행된다. 방송에도 나가는 인터뷰였지만, 따로 풀버전이 Y튜브에 공개될 예정이었다.
“사실 누군 가르친다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끼는 동생이 도움을 요청하는데, 외면할 수는 없죠. 하하.”
아끼긴 개뿔.
“솔직히 좀 당황하기는 했습니다. 저와 출연 협의가 없었거든요. 제가 부담스럽다고 거절하니까, 아주 사랑스럽게도 커피차를 보내더라고요. 정우 씨가 가끔 보면 참 용기 있다고 해야 하나? 그렇습니다.”
뒤끝은 오래간다.
사전 인터뷰에서도 이정우를 살살 돌려 까는 유수한이었다. 싱글벙글 웃고 있으니 기분 나쁘다는 티가 나지는 않지만, 잘 살펴보면 멋대로 출연을 하게끔 한 이정우를 돌려 까고 있었다.
“물론 제가 멘토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우 씨에게 조언을 주고 연기에 대해 알려 주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 배워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배움은 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수한의 인터뷰 스킬이 늘어간다. 언제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듣기 좋은 말을 한다. 겸손을 챙기면서도 연기에 대한 욕심까지 보여 주고 있었다.
“저도 이번 프로그램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자극이 된다고 할까요? 1차 예선 기대하고 있습니다.”
KBC ‘캐스팅’의 첫 방송은 2주 후.
1차 예선은 다음 주 촬영 예정이었다. 그 전에 2차 티저가 공개될 예정이었고 1차 예선은 2회에 방송된다. 사전 찍어 놓은 분량도 넉넉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 1회 방송 분량이 무려 1시간 50분이었다.
공중파에서 파격적인 편성이 가능했던 건.
“모두 수한 씨 덕분이죠!”
심사위원, 멘토 통틀어서 가장 인기가 좋은 유수한 덕분이었다. 당연히 유수한은 예능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화제성을 가져오려면 프로그램의 얼굴이 필요했다.
“선공개하고 저희 실시간 검색어 1위 한 거 아세요?”
그럴 만도 하다.
유수한의 집에 잠깐 왔던 매니저 김민수가 이정우가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찍어 공식 SNS에 올렸으니. 유수한의 출연 소식과 더불어 나름 인기 아이돌 멤버인 이정우와의 시너지까지 붙어 예능 ‘캐스팅’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 최이영 피디가 탐욕을 부리는 건 당연했다.
“어떻게 엠씨 안 될까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