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잊지 못할 사람
[연예이슈] 예상했던 대로 새드엔딩, SBC ‘나는 왕이로소이다’ 최종 시청률 21.7%
어차피 결말은 달라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역사가 스포일러였다. 벼랑에 떨어진 양순과 그를 무력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원범의 모습이 그려졌다.
- 후, 양순이 죽었을 때 꺼이꺼이 울다가 에필로그에서 방긋 웃음
└ ㅋㅋㅋㅋㅋ 나야?
└└ 맞아 ㅋㅋㅋㅋㅋㅋ 에필로그 생각도 못해서 ㅋㅋㅋㅋ
└└└ 나 똥꼬에 털 났다... ㅋ
새드엔딩이었지만, 따로 에필로그가 있었다.
이원범의 소원은 평범하게 사랑하다가 죽는 일이었다. 양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질리도록 사랑하고 싶었다.
에필로그는 그런 두 사람의 바람을 이루어 주었다. 다시 태어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났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든 남자가 앞서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여자에게 우산을 씌워 주며 끝이 났다. 두 사람의 사랑이 다음 생에 다시 시작되었다는 암시, 그것만으로도 지금까지 드라마를 따라왔던 시청자에게는 큰 선물이 되었다.
- 유수한 한복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아쉽다
└ 키 커서 한복 잘 어울리더라
└└ 유수한 한복짤 모아서 중국에 뿌리고 싶을 정도로 최고였음
└└└ 옷발 지림 ㅋㅋㅋㅋㅋ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한복을 원 없이 입었다. 물론 가장 많이 입었던 옷은 곤룡포였지만, 극이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다양한 한복을 입게 되었다. 여러 가지 좋은 경험을 했다. 사극이라 많이 걱정했는데, 막상 도전하고 나니 생각보다 할 만했다.
“저 왔습니다.”
드라마 종영 후 유수한은 하루를 푹 쉬었다. 밀린 잠을 자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사실 조금 더 쉬고 싶었지만, 이정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앉아요.”
오늘 이정우가 집에 찾아왔다.
이정우를 팔로우하는 카메라가 눈에 보였다. 예능 ‘캐스팅’이 촬영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이정우의 일상을 계속 팔로우하는 모양이었다. 유수한은 무뚝뚝하게 이정우를 반겼다가 카메라를 보는 순간,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이정우 방문 전에 촬영팀이 함께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지만, 피곤해서 잊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안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으니.
“내 준 과제는 다 했어요?”
“네.”
“한번 보죠.”
커피를 마시며 유수한은 이정우가 들고 온 과제를 확인했다. A4 용지 2장 분량이었고 글자 크기는 적당했다. 이 과제를 내 준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연기에 대한 자세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저 돈 때문에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는 건지,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얼마나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그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A4 2장의 분량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나았다. 사실 이렇게 과제를 정리해 올 거라 생각지 못했고 분량도 1장을 채 못 채울 거라 생각했었다.
“뭐, 좋아요.”
어느 정도 봐 줄 만했다. 분량도 적당했고 어느 정도 단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었지만.
“일단 기초부터 잡읍시다.”
지금 연기를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연기에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발성이었다. 일단 대사 전달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표정 연기도 중요했지만, 가장 먼저 잡아야 하는 건 발성과 발음이었다. 그렇기에 유수한은 발성이 얼마나 잡혔는지를 확인했다.
이정우는 나름 연기 수업을 열심히 받았는지, 처음 드라마 ‘EXIT’에서 만났던 것보다 발성이 나아졌다. 발음도 볼펜 물고 연습했다더니, 결과물이 꽤 괜찮았다.
“이건 제가 1차에서 할 연기거든요.”
“줘 봐요.”
주섬주섬.
이정우가 가방에서 프린트된 대본을 주었다. 유수한도 익히 아는 대본이었다. 폭발적인 감정이 중요한 연기였다. 말 그대로 감정이 중요했고 두 번째는 발성이었다.
“어려운데?”
“연기 선생님하고 고르고 고른 장면이에요.”
“다른 후보는요?”
하나하나 확인한다.
1차 예선에서는 자유 연기로 시작한다. 그다음부터는 조금씩 달라지는데, 자유 연기인 만큼 자신을 보여 줄 수 있는 연기를 선택해야 했다. 게다가 이걸 방송으로 볼 시청자도 생각해야 한다. 그만큼 임팩트가 있는 연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음.”
다른 후보를 보았지만, 왜 이걸 선택했는지 알 듯했다. 아직 연기 경험도 없고 실력도 없기 때문에 가장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장면이어야 했다. 이정우가 선택한 장면은 인물의 나이도 비슷했고 감정을 터트리는 연기라, 잘만 소화한다면 임팩트를 줄 수 있었다.
유수한은 잠시 집중해서 대본을 읽었다. 이정우의 연기를 확인할 겸, 대사를 맞춰 줘야 하기 때문에 짧게나마 내용을 숙지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번 해 보죠.”
이정우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장면 설명을 하자면 쌍둥이 형제의 대화였다. 유수한이 대사를 맡아 줄 역할은 쌍둥이 형이었고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였다. 머리도 좋고 외모도 뛰어나며 직업도 좋다.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진 형과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싸움밖에 없어서 늘 박탈감에 시달린 동생. 동생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터트리는 내용이었다. 아마 주말극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네가 할 줄 아는 게 뭔데.”
유수한은 자세를 고쳐 앉고 고개를 살짝 들어 이정우를 응시했다. 마치 못난 동생을 아래로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형.”
“허구한 날 사고만 치는 네가, 할 줄 아는 게 뭔데.”
“그렇게 말하지 마.”
“하고 싶은 게 고작 배달이야? 그래서 몸 갉아먹어 가며 배달을 뛰어? 돈 준다고 했잖아. 몇 년이 걸려도 상관없으니까, 공부해 보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고작 하는 일이 배달? 그거야?”
“그렇게 말하지 마!”
이정우가 감정을 실어 소리쳤다.
“형 돈 따위 받고 싶지 않아서 그래. 배달이 뭐 어때서? 잠 좀 포기하고 배달 뛰면 돈 제법 벌어. 그거 모아서 나 하고 싶은 일 할 거야. 그래서 그래. 형은 모든 걸 다 갖고 있지만, 나는…… 나는 아닌 거 알아. 근데, 형. 형은 내가 뭘 하든 마음에 안 들 거잖아.”
유수한이 미간을 좁힌다.
“어차피 형에게 아무것도 기대 안 해. 공부하라는 것도 그냥 날 숨기고 싶은 거잖아. 공무원 합격하는 게 그나마 지금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공부하라는 거잖아. 나 그거 싫어.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어. 나, 그렇게 살고 싶어.”
이정우 연기는 나름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딱히 잘하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건 1차 예선에 어울리지 않았다. 우선 형의 비중이 크다. 혼자 소화하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다른 장면을 찾아 보죠.”
어차피 이건 둘째 문제였다.
일주일 전에만 선택하면 될 일이었고 지금은 기본기를 다지는 게 몇 배는 중요했다.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 될 듯했다. 제작진 말대로 멘토 비중이 없다면 모를까,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하는 역할이라 벌써 머리가 아파 오는 듯했다.
“왜요? 별로였어요?”
“네. 무대에서 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어요. 우선 형과 싸우는 장면이라 두 사람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딱히 빛나지 않아서.”
이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수한을 선생님으로 모신 이상,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기로 했다. 예전부터 말했던 것처럼 유수한은 연기에 미친 새끼였기 때문에 연기로는 장난칠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대본을 내려놓은 유수한이 삐딱한 시선으로 이정우를 보았다.
“우리 계산할 게 있지 않나?”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유수한은 이정우에게 말을 놓았다. 지금까지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말을 높여서 대화했고, 지금은 사적으로 대화를 할 시간이었다.
“출연 협의 없이 커피차를 보내는 건 어디서 배운 못된 짓이야? 갑자기 말도 없이 멘토가 돼 달라니, 당황했잖아. 스케줄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만약에 내가 안 됐으면 어쩌려고. 그렇지?”
지금 유수한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카메라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 관리를 하는 것이다. 목소리 톤도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지만, 눈빛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살벌한 눈빛이었다. 이정우가 움찔하며 유수한의 시선을 피했다.
“아니요. 그게, 제가-”
“어쨌든.”
유수한이 짧게 한숨을 쉬고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내 이름도 걸려 있으니까 잘해.”
미리 유수한은 제작진에게서 참가자 영상을 보았다. 일반인부터 해서 여러 직종의 배우가 있었다. 하나하나 영상을 보는데 생각보다 수준이 높았다. 특히 놀랐던 건 일반인이었다. 여태껏 그 어디에도 노출되지 않았기에 하얀 도화지 같았다. 무슨 연기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물론 프로가 아니었기에 어색한 점도 발견되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정우보다는 나았다. 발전 가능성도 높았고 재능도 출중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며 이정우가 사과한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었다. 그 과정이 괘씸했지만, 이렇게 한배를 타게 된 이상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뭐, 그런다고 해도 우승은 힘들 것 같지만.
“1차 예선에서 할 작품은 나도 찾아 볼게.”
어차피 쉬는 동안 밀린 작품을 볼 생각이었다. 김대한 시절에는 드라마나 영화에 담을 쌓았기에, 아직도 보지 못한 명작이 많았다. 쉬면서 작품을 찾아 보고 그러면서 이정우가 연기할 장면을 고를 생각이었다. 그것도 나름 연기 공부였다.
“발성, 발음 확실히 잡고. 내가 예전부터 말했던 끝음 처리, 보완해서 와요.”
두 번째 과제를 던지고 세 시간가량 진행했던 첫 연습이 끝났다. 첫 수업은 일부러 가볍게 진행했다. 카메라 때문에 할 말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해야 할 것만 딱딱 끝냈다.
“다음 연습에는 카메라 없이 와.”
그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사늘하게 들리는 이정우였다.
* * *
유수한은 장발에서 벗어나 원래의 머리로 돌아왔다.
물론 에필로그를 찍을 때 머리를 잘랐는데, 그 순간 속이 시원했다. 장발은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목 뒤를 머리카락이 덮으니 더웠고, 머리칼이 바람이 흩날릴 때마다 얼굴을 가리는 게 귀찮았다. 그래서 계속 머리를 잘라 버리고 싶었던 유수한이었다.
오늘은 영화 ‘마지막 겨울’의 감독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라, 오랜만에 마음이 들뜨는 유수한이었다.
“안녕하세요. 주상혁입니다.”
목동에 위치한 오피스텔.
유수한이 유명한 배우였던지라, 미팅은 주상혁 감독의 개인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유수한이 손을 내미는 주상혁 감독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유수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주상혁 감독은 약간 무거운 분위기였다.
지금까지 만났던 감독들은 밝은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었는데, 주상혁은 그렇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눈 밑이 어둠으로 자욱했고, 밥도 제대로 안 먹는지 말랐다. 뭔가 영화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커피 마실래요?”
주상혁이 머그잔을 들고 유수한에게 물었다.
“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따뜻한 거?”
“네.”
주상혁은 커피를 내리며 하품을 했다.
작은 오피스텔에는 싱글 침대와 큰 책상에 눈에 띄었다. 책상에는 대본집이 가득했고 모니터가 두 개나 놓여 있었다. 하나 더 눈에 띄는 건 텔레비전에 몹시 컸다는 거였다. 아마 이 공간에서 여러 작품도 보고 많은 활동을 하는 듯했다.
“일단 고맙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주상혁이 말했다.
“그냥 한번 찔러본 건데, 될 줄 몰랐거든요.”
주상혁 입장에서 유수한은 이런 거였다.
“아, 이게 되네?”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기뻤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라서 정말 기쁜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유수한은 그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상혁 감독을 응시했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느껴지는 기가 보통이 아니다. 현장에서 깐깐할 감독일 가능성이 컸다. 물론 연기만 잘하면 그 꼬장을 피할 수 있다.
“그 드라마 ‘시간’ 잘 봤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지나도 한참 지난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 보면서 백이현을 발견했거든요. 유약하면서도 특권층의 거만함을 가지고 있어서……. 그대로 연기하면 문제가 있겠지만,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호록.
주상혁 감독이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요즘 주상혁은 커피가 주식이었다. 영화 작업을 시작하면 예민해져서 식사도 거르기 일쑤였고 잠도 잘 못 잔다. 오직 머리에 영화 생각뿐이었다.
“잊지 못할 사람.”
한 가지 확실한 건, 주상혁 감독은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한 사람이었다. 대화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다. 유수한은 주 감독을 파악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신만의 세상이 뚜렷한 사람은 늘 조심해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백이현을 잊지 못할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
주상혁 감독이 멍한 눈으로 유수한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