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44화 (144/175)

144. 키스장인

[HOT] 키스장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유수한 +666

키스장인.

유수한에게는 의미 있는 말이었다. 처음 키스신에 서툴러서 무한 NG를 냈던 기억이 선명했다. 결국 경험이 답이었다. 여전히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연기 경력이 쌓이면서 어렴풋이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실전에서는 똑같이 뚝딱거리겠지만.

- 진심 쫄깃하게 키스 잘하더라 ㄷㄷ

- 흑흑 우리 전하가 드디어 키스를... ㅠㅠㅠㅠ

- 근데 둘이 잘 어울리지 않음? 사궈라

└ 2222222 사궈라

└└ 3333 사궈라

└└└ 4444444 당장 사궈

이어서 공개된 키스신 비하인드 메이킹 영상은 커플 화력을 더 불태우고 있었다. 이원범과 양순의 커플명은 원양커플이었다. 누구는 원앙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두 사람의 사랑의 결말을 아는 누군가는 슬퍼하기도 했다.

- 감독님 잘알 ㅋㅋㅋㅋㅋ 양순이가 손에 힘 풀려서 옷깃 잡는 거 좋았어

└ ㅇㅈㅇㅈ 감독 키스신 잘알

└└ 맞아 손 너무 좋았어 ㅠㅠㅠㅠ 양순이 감정이 다 느껴져 ㅠㅠㅠㅠㅠㅠ

└└└ 역사가 걸림돌인 원양 커플... 행복하면 안 되냐고

- 아, 보면 볼수록 망붕 지려 둘이 사귀면 진짜 나 두 손 들고 만세함

└ 2222 너무 잘 어울림

└└ 333333 둘이 키스하고 동시에 뚝딱대는 거 너모 커여움

└└└ 444 유수한 키스하고 나서 입술 만지는 거 뭐야 존나 치여

└└└└ 맞아 입술 벅벅 닦는게 아니라, 툭 문지르는데 졸라 발림 ㅇㅇㅇㅇ

참 사람들은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도 입술을 부딪히고 또 부딪혀서 나중에는 해탈했다. 두 시간 넘게 키스신을 찍었고 이렇게 이거에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지만 반응을 보니 감독이 왜 그랬는지 이해도 되었다.

- 데스패치 뭐해?

└ ㅋㅋㅋㅋㅋㅋ 유수한 데스패치 존나 싫어함 ㅋㅋㅋㅋㅋㅋ

└└ 데스패치 유수한은 못 건드려 ㅋㅋㅋㅋㅋㅋ

└└└ 데스패치 ㅋㅋㅋㅋ 유수한 건드렸다가 골로 간 거 모름? ㅋㅋㅋㅋㅋ

└└└└ 이 댓을 데스패치가 싫어합니다 ㅋㅋㅋㅋㅋ

└└└└└ 데스패치 드립 개웃기네 ㅋㅋㅋㅋ

데스패치는 유수한의 엄마에게 탈탈 털렸다. 유명 로펌의 대표에게 찍혀 문을 닫을 뻔했으니, 다시는 유수한에게 허튼짓을 못 할 듯했다.

드라마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순항 중이었다. 시청률 10% 벽을 부쉈고 서서히 대중 반응도 올라오고 있었다.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금빛 대본답게 시청률 20%는 넘어설 것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지연 작가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유수한입니다.”

유수한은 직접 촬영장까지 찾아온 예능 작가 김지연을 보았다. 순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서울도 아닌, 멀리 떨어진 지방이었다. 유수한이 한창 드라마 촬영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었고 그렇기에 작가와 피디가 찾아온 것이다.

“지금 메인 피디님은 주차 중이라, 바로 오실 거예요.”

“아, 네.”

결국, 이정우의 계략에 넘어갔다.

커피차 문구가 문제였다. 이정우가 주연 배우를 발탁하는 오디션에 참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그다음 유수한이 주목받았다. 유수한은 무관한 내용이었지만, 사람들은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 지금 오셨네요.”

뒤늦게 도착한 피디 최이영이 웃으며 대기실에 들어왔다. 남자 피디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여자 피디였다. 요즘 방송국에는 여자 피디가 늘고 있었다.

“일단 기획안 가져왔으니까, 읽어 보세요.”

유수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획안을 받았다.

[캐스팅(가제) - 연출 최이영 작가 김지연]

예능 프로그램의 기획은 보통 작가가 한다. 가끔 기획안을 도둑맞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어느 방송사 피디와 함께하기로 했는데, 그 피디가 기획안만 가져가고 기획한 작가를 날려 버리는 방식이었다. 분명 문제 될 일이지만, 실제로 피디가 타격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공론화한 작가만 피해를 보는 일이 허다했다.

“지금 다방면으로 섭외를 하고 있어요. 일반인 출연자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저희가 직접 멘토를 붙여 주고요. 무명 배우는 물론 가수 출신, 개그맨까지도 폭넓게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보통 오디션 프로그램은 참가자의 경쟁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피디와 작가가 1차로 구성을 한다. 쉽게 말하자면 본선에 오를 참가자를 미리 골라 놓는 건데, 방송 도중에 반응이 좋지 않다면 날리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편집으로 구성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서사는 중요했다. 서사가 없는 참가자는 분량이 없다는 뜻이고 원하는 반응을 이끌 수 없기 때문에, 저조한 투표율로 떨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오디션이라고 해서 모든 참가자가 공정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 악조건을 뚫고 튀어나오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사실 제가 출연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유수한은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제가 여기 출연한다면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요.”

자신의 소신이기도 했다.

“사람의 간절한 꿈을 갖고 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은 최대한 공정하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의미였다. 처음 유수한이 되었던 김대한은 연예계에 대해 잘 몰랐다. 방송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어떤 식으로 촬영이 이루어지고 방송이 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은 이 바닥에 있다 보니 조금씩 듣고 보는 게 있었다. 예능도 출연해 보았고 얼마나 그 안에서 많은 구성이 들어가는지 잘 알고 있다. 유수한은 사람의 꿈은 함부로 짓밟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최대한 공정했으면 했다. 순수한 경쟁이었으면 했다.

“KBC는 공영 방송이잖아요.”

말을 마친 유수한이 미소를 지었다.

최이영 피디는 유수한이 쉬운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치던 유수한이었다. 그때의 그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유수한은 톱스타였다. 그만큼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파급력이 있는 배우였다. 예능 프로그램의 수장은 피디였지만, 유수한 같은 급의 배우는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즉,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럼요. 그런 치졸한 짓은 케이블에서나 하는 거죠.”

재작년, 크게 성공했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메인 피디가 구속되었다. 이유는 투표 조작이었다. 그 이후,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더욱 조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물론 악편이나 일부 출연자에게만 서사를 몰아주는 편집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누구도 다시는 투표 조작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와 별개로 최이영 피디는 무리하게 악편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예능은 재밌어야 한다. 그 근본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편성은 10월 말이에요. 토요일 확정됐고요.”

“네. 근데 제가 특출로 확정지은 작품이 있어서요.”

“네네. 걱정 마세요. 스케줄 다 맞춰 드릴 거고요. 촬영 자체도 주 1회 정도거든요.”

유수한에게 주어진 롤은 멘토였다.

이정우를 담당하는 멘토. 유수한은 뭘 하면 허투루 하지 않는다. 막상 이정우를 가르치게 되니 강철수처럼 계획을 짜고 있었다. 요즘 새삼 강철수에게 연기를 배웠던 날이 생각났다. 지금은 작품 고르고 나서 의견을 듣는 정도로만 교류하고 있었지만, 예전에는 참 혹독했다. 강철수 성격이 말을 밉게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출연료 같은 부분은 회사와 의논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된 거 이정우를 잘근잘근 씹어 먹어야겠다. 괘씸한 만큼 혹독하게 교육할 생각이었다.

“저 여기까지 왔는데 몇 가지 물어봐도 돼요?”

김지연 작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송을 하려면 출연자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구성 짜기도 편하고 에피소드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우선 김 작가가 가장 궁금한 건, 유수한과 이정우의 관계성이었다. 한 사람은 배우였고 한 사람은 아이돌이었다.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친해졌는지 가장 궁금했다.

“네, 말씀하세요.”

유수한이 선선하게 말했다.

“정우 씨와는 어떻게 친해졌어요?”

이런 비슷한 질문을 요즘 많이 받고 있다. 팬들도 궁금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유수한이 친했던 배우가 없었기 때문에 더 궁금해하고 있었다.

“같이 한 작품을 끝낸 동료 사이니까요.”

솔직히 친하지 않기 때문에 솔직히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김지연 작가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질문을 이어 갔다.

“이정우 씨를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 건가요?”

지금 김 작가는 출연진의 멘토들을 만나고 있었다. 일반인 출연자는 이미 정리된 상태였고 하나둘, 적합한 멘토를 섭외하고 있었다. 사람 성향에 따라 방식이 달라진다. 어느 누구는 연기는 혼자 하는 거라 우선 지켜보겠다고 말했고, 어느 누구는 발성부터 잡아 놓을 거라 말했다.

“스파르타죠.”

“아.”

“정우 씨는 고칠 게 많아요.”

많아도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일단 발성, 발음부터 잡아야 하고요. 가끔 그 쪼라고 하죠? 그게 심해요. 그 쪼가 좋은 방향일 때도 있는데, 정우 씨는 나쁜 방향이거든요. 쉽게 말하면 겉멋이에요. 사실 발성, 발음 보다 더 큰 문제가 그 겉멋 같아요. 그거부터 싹 빼야죠. 세탁기 돌리듯이.”

유수한은 이정우와 촬영하는 내내, 그 겉멋을 싹 빼고 싶었다. 눈앞에서 겉멋 부리는데, 뒤통수를 딱 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어차피 이번 작품이 끝나면 안 볼 사이라고 생각했기에 애써 잊었는데, 이렇게 또 연결되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탈탈 털어 볼 생각이었다.

“그렇군요.”

의외였다.

두 사람이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기에 부드럽게 교육을 진행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혹독한 멘토가 될 듯했다. 김지연 작가는 머리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유수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건 물론, 꽤 재밌는 그림이 나올 듯했다.

“아.”

잠시 조용했던 최이영 피디가 입을 열었다.

“원래 저희 1순위 섭외가 있었어요.”

유수한이 갑자기 그 말을 하는 이유를 몰라 최 피디를 보았다.

“설마 저요?”

“아니요. 수한 씨는 이미 여기저기서 모시려고 경쟁 붙는 배우잖아요.”

“아, 네.”

“초원 씨요.”

“아.”

여기서 한초원 이야기가 나온다.

“1순위였어요. 왜 초원 씨 보면 그런 생각 들잖아요. 물꼬만 트면 딱 터질 것 같은 사람. 드라마국에도 의견을 받았는데, 다들 한초원 씨 이야기 하더라고요.”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초원이 이 프로그램에 나왔다면 우승도 노려 볼 만했다. 다양한 연극 무대를 경험했고 매체 연기도 늘어 가고 있었다.

외모도 매력적이었다. 눈에 딱 띄는 외모는 아니지만, 기억에 잔잔히 남는 외모. 유수한이 마치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봄 같은 외모라면 한초원은 낙엽이 떨어지는 아련한 가을 같은 외모였다.

“근데 포기했죠.”

섭외 시도는 했었다.

“갑자기 주인공 캐스팅이 딱 됐는데, 그것도 상대역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분인데, 어떻게 출연 요청을 해요.”

사실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화제를 일으킬 출연자가 지금 딱 떠오르지 않았다. 한초원은 그런 롤이었다. 짧은 연기 하나로 이슈를 일으키고 조회수를 폭발하게 하는,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관심이 가게 하는 출연자.

“그래도 좋은 배우들 많아요.”

최이영 피디는 자신감이 있었다.

의외로 일반인 출연자 중에서 보석이 될 수도 있는 원석을 발견했다. 한초원을 놓친 건 아쉽지만, 그만큼 좋은 재목을 찾았다.

“아마 놀랄 거예요.”

유수한도 부디 그러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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