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전투 종료
남은 인원은 이제 10명.
몇 시간 만에 5명을 잃었다. 분위기는 적막했다. 함께하던 동료를 잃는 건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익숙해진 척했던 것뿐이다. 사람을 잃는 건 쉽게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죽지도 못하게 합니까!」
격렬한 내분.
「이렇게 마음 졸이며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게, 그게 더 낫습니다!」
이은결은 총을 들고 자살하겠다고 하는 병사와 그를 말리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 정상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지독한 공포에 시달리며, 살고자 하는 욕구를 마음에 끌어안으며 겨우 이 자리까지 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박승민 일병.」
자리에서 일어난 이은결이 권총을 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박승민에게 다가갔다.
「지금 그 자리에 왜 있다고 생각하나?」
이은결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박승민이 미간을 좁혔다.
「고작 1시간 전에 죽은 최태식 소령이 박승민 일병을 살렸지?」
「…….」
「이미 예전에 죽은 강휘민 하사에게도 도움을 받았다.」
「그건…….」
「살아. 지금 살아 있는 사람 모두 쉽게 목숨을 버릴 자격 없다.」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살아남았다.
이은결 역시도 혼자서는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은결은 박승민 손에 들린 총을 거두어 갔다.
「아직 시간이 필요해요.」
최유림이 전투 준비를 하는 이은결에게 다가가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 하사도 알고 있잖아요.」
「대체 언제까지 말입니까?」
「이은결 하사.」
「좀비가 코앞까지 달려오는 그 순간까지 기다릴까요?」
말투가 날카로웠다. 좀비가 뭉치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좀비는 달라지고 있었다. 이은결의 생각은 늘 같았다. 더 까다로운 존재가 되기 전에 정리해야만 한다.
「지금 시간이 필요한 건 이은결 하사도 마찬가지예요!」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머리에 열이 잔뜩 올라 있잖아요.」
최유림 말이 맞다. 지금 이은결은 제대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 살아남은 사람 중에 가장 숨을 돌리지 못한 사람이 이은결이었다. 이은결은 한시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제 손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쉬어.」
이은결의 손에 들린 소총을 뺏으며 최유림이 말했다.
「명령이야.」
결국, 이은결이 최유림의 말에 따른다.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잠이 턱없이 모자란 지금 상황에서는 눈을 감고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최유림은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병사들을 위로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일은 힘겹다. 따뜻한 차를 내린 최유림은 이은결에게도 모과차를 주었다.
「마셔요.」
따뜻한 차는 긴장으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다. 차를 마시는 순간에 침묵이 흘렀다. 최유림은 차를 마시며 둘러앉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총을 든 채 꾸벅꾸벅 조는 사람도 있고 벽에 기댄 채 골몰히 생각에 잠긴 사람도 있었다. 어느 누구는 바닥에 웅크려 있다.
좀비가 몰려오기 전에는 술 한 잔에 좋아하며 웃던 사람들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술 한 잔에 활기가 돌았었다. 그 순간이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충분히 기다렸습니다.」
이은결이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더 기다리면 위험해요.」
이제 더 이상 최유림도 말릴 수 없었다. 이은결은 더 이상 숨죽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적이 오는 것을 기다리다가 되레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이렇게 숨죽이고 있는 시간이 오히려 좀비에게 시간을 벌어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전략을 바꾼다.」
이은결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기다리는 건 무의미하니, 우리가 먼저 친다.」
결말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은결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존재는 몇이나 될까. 단언컨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의연함을 가장할 뿐, 그 누구도 삶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전쟁이나 다름없는 사투 앞에서 하나둘 쓰러진다. 이은결은 눈앞에서 쓰러지는 최유림을 보았다. 이은결의 후방을 최유림이 지키다가 다치고 말았다. 팔을 물린 최유림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찮다는 듯,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듯.
「뭘 그런 눈으로 보나?」
최유림이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염되려면 아직 시간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최유림은 강한 여자였다. 총을 든 최유림은 오히려 이은결을 달랬다. 항상 끝을 생각해 왔다. 만약 좀비에게 물린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계산했다.
「이은결 하사에게 내 목숨까지 끊어 달라고 할 생각 없어요.」
사실이었다.
항상 끝을 생각하면 이은결이 생각났지만, 그 후에는 고개를 저었다. 이은결은 이미 많은 사람의 목숨을 감당해 왔다. 그에게 최유림이라는 상관까지 떠넘겨 주고 싶지 않았다.
「군인답게.」
생각을 바꾸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부대 안에서 좀비를 말살하는 것이 자신이 임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라를 지키다 죽는 게 군인의 숙명이니까.」
최유림은 정신이 흐려질 때까지 좀비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같은 선수 출신이었기에, 다른 누구보다 공통점을 많이 느끼던 사람이었다.
이은결은 이를 악물었다.
쓰러져 가는 동료를 챙길 겨를도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지만, 목숨을 빚졌기에 살아야만 했다.
「전투 종료.」
타앙.
이은결은 눈을 감았다. 마지막까지 정신력으로 버틴 최유림이 끝을 보이고 있었기에.
* * *
[OKEN] ‘EXIT’ 시즌2 하나? …… 좋은 성적으로 시즌2 청신호
낫플릭스 ‘EXIT’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단순한 스토리라인을 탁월한 연출력으로 극복했다.
개인적으로 유수한은 시즌2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수한이 맡은 인물 ‘이은결’이 시즌2에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애초에 드라마 ‘EXIT’는 시즌제를 생각하지 않고 계획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부대 내에서 좀비와의 사투였다. 이 대결에서 인간은 졌다. 너무 늦은 대응 때문에 좀비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렸고 부대 내에서 갈등도 있었다. 이은결은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좀비에게 대항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인간은 좀비에게 졌다.
- 시즌2 이은결 살아 있어도 문제 아님?
└ ㅇㅈ
└└ 자살하려다가 그것도 못 해서 물어뜯기기 직전에 끝났잖음;;;
└└└ 이은결 살리면 개연성 중동 감
└└└└ 이은결이 살아도 문제야 걔 성격에 안 죽고 어떻게 배겨
물론 이은결이 죽는 결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설정을 이은결에게 부여해서 시즌2에 출연을 확정 지을 수 있지만, 유수한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 시즌2 하게 되면 아무래도 새로운 인물이 대거 등장할 듯...
└ 222 시즌1은 마무리 지은 것 같아
└└ 33333 이미 싹 죽었는데 새로운 인물이 나오는게 더 깔끔할 듯
└└└ 444 이은결 아쉽지만, 보내줘야지.. ㅠ
└└└└ 5555 이은결 나오면 감독 욕심임 ㅇㅇ
극을 이끌었던 주인공을 시즌2에서 배제한다는 건 연출자에게 큰 부담이었다. 기존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은 시즌1 인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면 아쉬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리수를 두면서 끌고 가는 것도 정답은 아니었다.
- 최유림은 살리지 매력적인 여캐였는데
└ ㅇㅈ 자기 몫 톡톡히 해내는 능동적인 여캐
└└ 항상 이은결이 누군가를 구해줬는데, 처음으로 이은결을 구한 여캐
└└└ 맞아 최유림 매력적이었어
사실 작가나 감독이나 흥행 여부를 예상할 수 없었기에 생각했던 대로 진행했을 것이다. 시즌2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주인공을 죽이지 않거나, 주요 인물 하나 정도는 남겨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뚝심 있게 진행했기에 반응이 좋은 걸 수도 있었다.
- 근데 원래 좀비물 하면 누가 죽을지 몰라 벌벌 떠는게 제맛이야
└ 맞아 주연도 정 주면 안 돼...
└└ 내 최애캐 최태식인데 기어코 죽이더라
└└└ 야, 최태식은 오래갔지 강휘민은 더 빨리 죽음 ㅇㅇ
└└└└ 다 죽은 마당에 순서가 무슨 소용이냐 제사나 지내줘라
요즘 대형 커뮤니티에는 드라마 ‘EXIT’ 이야기가 종종 올라왔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고 출연한 배우들 역시도 주가가 오르고 있었다. 가장 중점은 역시 계속 말했던 것처럼 시즌2 이야기였다.
[HOT] 드라마 주인공 이은결은 죽었을까? +1026
토론 글이 눈에 띄었다. 드라마가 잘된 만큼 시즌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주인공의 생사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아마 김승찬 감독은 일부러 이은결의 끝을 애매모호하게 보여 주었을 것이다. 숨이 끊어지는 직접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건 시즌2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둔 거나 다름없었다. 기획대로 연출을 하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를 한 것이다.
- 작감 입장에서는 이은결은 살리고 가고 싶겠지 근데 원래는 죽는게 맞는 듯
└ 드라마 분위기 자체가 희망따윈 개나 주는 수준이었음 ㅇㅇ
└└ 이은결이 지금까지 감염된 애들 다 죽였잖아 그래서 더 잔인한 최후를 맞이한 것 같아
└└└ 진심 작가 못 됐어 이은결이 죽이고 싶어서 죽었나 ㅠㅠㅠㅠ
└└└└ 맞아... 산 채로 물어뜯기는 거 너무 가혹하잖아...
└└└└└ 이은결 지켜 ㅠㅠㅠㅠㅠㅠㅠ
- 아무리 이은결을 끌고 가고 싶어도 시즌2에 이은결이 있으면 캐붕 수준임
└ ㅇㅇㅇㅇㅇㅇㅇ 다 죽었는데 혼자만 살았다? 진작 자살함
└└ 이게 맞아 이은결은 좀비 면역이 있어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끝까지 싸울 사람이야
└└└ ㅇㅈ 도망치는게 가장 안 어울리는 사람이 이은결...
- 다 됐고 난 이은결을 계속 보고 싶음
└ 22222 격공
└└ 333333333 이은결 존나 괴롭히고 싶게 생긴 사람이야
└└└ 4444 모든 상황이 이은결에게 가혹한데, 그게 또 찰떡임 ㅇㅇ
└└└└ 555555 피땀눈물이 잘 어울리는 남자 이은결 ㅠ
└└└└└ 666 오열 안됨 참다가 눈물 한줄기 주룩이어야 함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이은결을 계속 보고 싶다는 반응이 있었고 반대하는 반응도 역시 있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은 반응은.
- 시즌2 하지 마 지금이 딱 좋음
└ 2222 깔끔하게 세계 멸망 딱이야
└└ 333333 희망 따윈 없어서 더 좋았음
└└└ 4444444
└└└└ 5555 괜히 건드리다가 망할 듯
시즌2를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가끔 속편을 제작했다가 작품성을 꼬라박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기에 시즌2를 반대하는 듯했다.
유수한은 커뮤니티를 반응을 둘러보다가 짧게 생각에 잠겼다. 이은결이라는 사람이 되었던 그 순간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에 가장 처절했던 인물이 아닌가 싶었다. 두려운 마음을 숨기고 언제나 앞장서서 군인들을 이끌었다.
강휘민을 직접 죽여야 하는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최유림에게 빚을 졌을 때도 인상 깊었다. 마지막 결말은 충격적이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이은결다운 결말이라 생각했다.
감염된 사람을 하나하나 제 손으로 죽였던 이은결은 늘 마음에 언젠가는 벌을 받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혹한 최후에도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잘됐다는 듯이.
- 수한 씨, 지금 잠깐 통화 괜찮아요?
서서히 해가 지는 시간.
소파에 앉아 이은결에 대해 생각하던 유수한은 김승찬 감독에게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본능적으로 무슨 용건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딱 시즌2에 대해서 생각하던 시점이었다.
- 네, 전화 주세요.
이윽고.
김승찬 감독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