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39화 (139/175)

139. 다 죽어 버려

무기고를 탈환했지만, 상황은 좋지 못했다.

이 부대 안에는 사람보다 좀비가 더 많았다. 모든 것이 불리한 조건이었다. 좀비는 감정이 없었고 신체 능력 역시도 좋다. 무슨 이유로 좀비가 되면 신체 능력이 좋아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사람은 총에 맞으면 타격이 온다. 하지만 좀비는 그런 것이 없었다. 머리에 총을 맞지 않는 한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건 당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기가 떨어진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였다. 첫 번째는 동료가 죽어 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 역시도 한때는 동료였다는 것. 마지막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좀비는 감정이 없다는 것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술?」

무기고를 탈환하고 그다음 진행한 일은 식량 보급이었다. PX팀을 따로 꾸려 보냈고 이은결은 무기고에 남아 다음 일을 생각했다.

「모두 살아 돌아왔으니 뭐라 하지 않겠지만, 술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PX에는 술을 판다. 면세였기 때문에 고급 위스키도 인기가 좋았다. 이 일이 터지기 전에는 이은결 역시도 술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고된 훈련을 끝낸 뒤 목 넘김이 찌르르한 독주 한잔을 하고 샤워를 하는 것이 그의 작은 취미였다.

「딱 한 병인데 괜찮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 술은 딱 한 병이었다.

「딱 한 잔, 그것도 안 되겠습니까?」

이은결은 하사였지만, 지금 분위기는 하사라는 직급 그 이상이었다. 이은결의 말을 따를 이유는 없지만, 그가 보여 준 능력으로 인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은결을 신뢰했다.

「한 잔…….」

위스키를 보며 작게 중얼거리던 이은결이 씩 웃었다.

「술 못 먹는 사람은 안 됩니다. 오늘 보초 서야 할 인원도 제외, 딱 한 잔씩만 하세요.」

허락이 떨어졌다.

지금 남은 인원이 적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원이 줄고 있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감 앞에서 적당한 술은 도움이 될 것이다.

「좀 남겨 주시면 안 됩니까? 오늘 야간 보초 서고 저도 한 잔 마시고 싶습니다.」

사람이 술을 찾는 이유는 감정적인 요인이 컸다. 마음이 괴로울 때 술을 찾고 기쁠 때도 술을 찾는다. 술을 마시면 위로받는 듯한 착각이 생기고 기분 역시도 좋아진다.

「오늘 보초병 전원, 술 마십니까?」

이은결이 물었다.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걸 보니, 다들 술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보초병이 마실 술을 남겨 두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결론지었다.

지금 남은 사람은 열다섯. 무기고를 탈환하고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래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까지 좀비들은 단체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무기고 탈환을 성공할 수 있었다. 좀비가 모래알처럼 흩어진 지금이 적기였다.

「꼭 술 남겨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해 뜨면 교대하겠습니다.」

이은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걸 보니, 정말 술 한 잔이 간절해 보였다. 그만큼 의지할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언제 추락할지 몰랐고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어쩌면 운이었다.

「한 잔 해요.」

최유림이 종이컵을 내밀었다. 딱 한 입에 털어 넣을 수 있는 양이었다.

「괜찮습니다.」

「마셔. 술 좋아하잖아.」

「…….」

이은결은 마지못해 술을 받았다. 킁킁, 냄새를 맡아 본다. 진한 오크 향이 느껴졌다. 오늘 이은결은 술을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다. 무기고를 탈환했고 좀비에 대항할 무기가 생겼지만, 남은 인원수가 너무 적었다. 그렇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맛있다.」

어느새 술을 털어 마신 최유림이 미간을 좁혔다. 살면서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최유림이었지만, 술을 다시는 마시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위스키가 달게 느껴졌다.

이은결은 그런 최유림을 보다가 천천히 술잔을 기울였다. 혀끝에 위스키가 닿자 자기도 모르게 슬몃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맛있네요.」

원래도 독주를 좋아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위스키 한 잔을 딱 마시고 잔다.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도 즐겼다. 한 잔을 마시고 침대에 누우면 그 어느 때보다 잠이 잘 왔고 그렇기에 이은결은 독한 술을 즐겼다.

「모든 게 꿈이면 좋겠다.」

치직치직-

최유림의 말은 무전기 소리에 묻혔다. 꿈일 리가 없었다. 무전기에서 계속 잡음이 들리고 있다. 이은결은 술을 정리하는 병사들을 보다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 있습니까?」

무전기를 대고 말을 건넨다.

「무슨 일 있습니까?」

차분한 목소리.

이은결은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소총을 챙기고 있었다.

- 지, 지원 요청…….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은결은 무전기를 든 채로 잠시 얼어붙었다. 지원 요청이라는 것은 좀비가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적은 수였다면 좀비와의 전투에 익숙해진 정찰병이 알아서 처리했을 것이다.

- 지원 요청! 아악, 좀비가 몰려오고 있, 있습……!

몰려오고 있다.

그 말에 이은결의 얼어붙은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전기 소리를 들은 건 이은결만이 아니었다. 최유림은 굳은 얼굴로 전투에 나설 준비를 했다.

「전원 전투 준비!」

최유림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잠시 눈을 붙일 생각을 하던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원 가겠다. 조금만 버텨라.」

간절한 목소리.

무전기를 내린 이은결이 결연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 아니, 이제 좀 숨 쉬려나 했더니 또 시작이냐고요 ㅠㅠㅠㅠㅠ

└ 좀비들은 잠도 안 자나 봄 ㅋ

└└ K좀비 답다

└└└ 쉬지도 않고 움직이는 K좀비 ㅠㅠㅠㅠㅠㅠ

장면이 바뀌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좀비 떼의 모습은 전의를 상실하게 만든다. 이 자리에 있는 보초병은 고작 3명. 수류탄을 던지지만, 폭발에도 좀비 떼는 달음질을 멈추지 않는다.

「계속 던져!」

좀비를 상대할 때, 수류탄은 아주 좋은 무기였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항상 수류탄을 소지하고 있었다.

「마지막 수류탄입니다!」

가장 앞에 선 병사가 수류탄을 받았다. 안전핀을 뽑고 지체 없이 멀리 집어 던진다. 폭발음이 울리고 살이 타는 지독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개인 활동을 하던 좀비가 뭉치기 시작했다. 수류탄 파편에 다리를 잃은 좀비들은 입을 쩍쩍 벌리며 두 팔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보초병들이 움찔한다.

「사격 준비!」

보초병을 지휘하는 사람은 소령 최태식이었다.

이은결보다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았지만, 이은결의 지휘력을 인정했다. 최태식은 그 누구보다 솔선수범했고 보초병으로 나설 때도 어린 병사들을 다독였다.

「사격!」

소총을 들고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는 자연스럽게 좀비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달려오던 좀비들이 총에 머리를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물러서!」

1차 사격을 마치고 좀비와 거리를 둔다. 다시 총알을 장전하고 2차 사격을 시작했다. 수류탄 덕분에 좀비의 수는 적어졌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다시금 격발음이 울렸다.

「뒤, 뒤에도 옵니다!」

그 말에 최태식의 얼굴이 구겨졌다.

갑자기 나타난 좀비 떼에 놀랐지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류탄이 있었기에 빠르게 접근하는 좀비들을 막아 낼 수 있었고 총알은 충분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빠른 지원 요청으로 무기고에 있는 인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마라!」

다른 방향에서 좀비 떼가 나타났다.

그 방향에는 또 다른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최태식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또 다른 좀비 떼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 방향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모두 죽었다는 뜻이었다.

「사격!」

최태식은 방아쇠를 당겼다.

어느새 가까워진 좀비들의 모습이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제는 근접전이었다. 총알이 바닥난 소총을 바닥에 두고 근접전에 유리한 권총을 들었다.

우습게도 이 순간에 최태식 머리에는 가족 생각이 들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체절명의 상황, 가족들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기에 그 누구보다 더 살아남고 싶었다.

「어, 엄마……!」

가까워진 좀비.

최태식을 제외한 병사들은 아직 어리다. 자연스럽게 공포에 젖은 그들의 입에서는 가장 믿는 존재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엄마를 찾으며 총을 드는 그들의 손은 벌벌 떨고 있었다.

「정신 차려!」

최태식은 엄마를 부르던 병사에게 달려드는 좀비를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엄마 보고 싶으면 살아야 할 것 아니냐!」

그 말은 최태식, 본인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아들, 그리고 사랑하는 강아지를 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도하며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에게 불효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

사방을 둘러싼 좀비.

도망갈 구멍도 보이지 않는다. 끊임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지만, 그 수가 줄지 않았다. 최태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총은 좀비가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향하고 있었다. 달려오는 좀비들을 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겨서 술이라도 마시고 올걸.

눈을 감은 최태식이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 * *

최태식은 항상 가슴에 가족사진을 품고 다녔다. 가족사진을 가지고 다닌다는 설정은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죽을 거라는 걸 예상했지만, 예상했었기에 슬픈 최후였다.

이은결은 무기고를 지킬 인원을 제외하고 전부 이끌고 지원을 나왔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멀리서 좀비 떼가 뭉쳐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시체를 두고 아웅다웅 다투고 있었다. 팔 하나를 들고 뜯어 먹고 있는 좀비도 보인다. 그 모습에 어느 누구는 충격받아 토악질을 했다.

피가 들끓는다.

좀비를 보고 또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충격이었다.

「이은결 하사.」

이은결은 손에 수류탄을 들었다.

「안 됩니다. 지금은 물러서야-」

하지만 이은결은 수류탄을 든 채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최유림은 그를 차마 막지 못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막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최유림은 충격받은 병사들을 다독이고 이은결의 뒤를 따랐다.

최유림 역시도 심장이 뛰고 있었다. 죽은 사람을 잔혹하게 뜯어 먹는 좀비의 모습이 두렵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은결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이은결이 수류탄 안전핀을 뽑았다. 최유림 역시도 수류탄을 준비한다. 좀비들은 여전히 뒤엉켜 있었다. 탐욕을 부리는 그들은 이은결을 아주 늦게 발견했다.

「다 죽어 버려.」

분노에 찬 이은결이 수류탄을 던졌다. 폭발음이 울린다. 한곳에 뭉쳐 있던 좀비들이 순식간에 수류탄에 휘말렸다. 최유림은 이를 악물고 수류탄을 던졌다. 이은결 역시도 지체하지 않고 다시 수류탄을 준비했다.

「죽어.」

늘 의연하던 그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상황은 끝없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은결은 그 누구보다 동료애가 깊은 사람이었다. 강휘민을 잃었고 최태식을 잃었다. 그리고 수많은 병사들을 잃었다. 붉어진 눈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또 던진다.

「이제 그만해요…….」

최유림이 이은결을 막았다.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최유림 역시도 참담함을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은결이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이은결을 어떻게든 지탱해야 했다. 덜덜 떨리는 이은결의 손을 잡으며 최유림이 말했다.

「진정해요…….」

이은결은 살아야 한다. 이은결이 무너진다면 그건 곧 패배였다. 최유림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은결을 지킬 생각이었다. 그래야 남은 사람들이 살 수 있다. 살 수 있는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이은결이 있어야만 0.1%라도 확률이 생긴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이은결의 물기 어린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린다. 눈을 감은 이은결은 잠시 숨을 참고 있었다. 냉정을 잃으면 안 된다고 자신에게 누차 말한다. 냉정하게 모든 일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괜한 감정은 쓸모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더 일찍 왔더라면…….」

그는 결국 감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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