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35화 (135/175)

135. 고고하신 배우 나으리들

시상식에서 이름이 불렸다. 이미 수상을 예상했음에도 마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놀라게 된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호성이 들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수한의 수상을 축하하고 있었다. 유수한은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 위에 올라갔다. 트로피를 손에 쥐는 순간,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감사합니다.”

트로피에서 시선을 떼고 한 마디 내뱉었다. 생각했던 수상 소감이 머리에 스치고 지나간다. 유수한은 말없이 객석을 바라보았다. 트로피의 묵직함이 느껴지고 소리를 지르는 팬들의 목소리도 귀에 맴돌았다.

“이렇게 상을 받게 되니 기분이 좋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소감으로 말했다.

“같이 후보에 오른 배우님들도 다 훌륭하신 분이라, 제가 이 상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 자리까지 오는 데 노력도 했지만, 운도 좋았다. 지금은 없지만, [라이프 체인지] 시스템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었다.

“이 상에 어울리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상을 받는 건 기분이 좋다. 인정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트로피를 들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지금도 심장이 기분 좋게 뛰고 있었다.

- 역시 남우주연상은 유수한이네?

- 유수한 존나 잘나가네 ㅋㅋㅋㅋㅋㅋ

- 상 탈 만했어 연기도 잘했고 흥행도 됨 ㅇㅇ

└ 맞아 얼굴도 잘함

└└ 얼굴 맛집임

유수한이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도 없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유수한은 뒤풀이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저 연출상을 받은 고운영 감독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고 남우조연상을 받은 정동인과는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를 대신했다.

드라마 ‘나는 왕이로소이다’ 촬영이 곧 시작된다. 뒤풀이에 참석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 유수한은 시끄럽고 사람 많은 장소를 좋아하지 않았다. 컨디션 조절도 할 겸 집에서 쉬는 것이 더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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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작은 논란이 일어났다. 오늘 시상식에서 배우들 태도를 꼬집는 기사가 올라왔고 커뮤니티 여론도 썩 좋지 못했다.

- 와, 몇 명이나 일어났냐? 다리 부러졌냐? 일어나는게 그렇게 어려움?

└ 웃긴게, 그 다음 영화부문 대상에는 잘도 일어나더라

└└ 다리가 부러졌다가 10분 만에 싹 나았습니다 ㅋㅋㅋㅋㅋ

└└└ 어이없음 ㅋㅋㅋㅋㅋ 배우만 사람으로 취급한다 이거지?

- 아니, TV 대상 받은 이원욱이 몇 년차인데 무시를 하냐?

└ 웃긴게 이원욱보다 커리어 좋은 애 별로 없음 ㅋ

└└ 배우병 오짐;;;

└└└ 커리어으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ㅋㅋㅋ 이원욱 이길 수 있는 사람 거의 없어

└└└└ 배우 부심 오져따리 ㅋ

- 이원욱 받을 때 일어난 배우 몇이나 됨? 일단 유수한은 의외로 일어났네

└ 유수한은 웬만하면 일어나서 축하해주더라

└└ 유수한 이번에 다시 봄 ㅋㅋㅋㅋ

└└└ 유수한, 서인혁, 최은민? 이 정도만 일어난 듯

└└└└ 진심 손에 꼽는게 말이 되냐? 중견 배우면 몰라 존나 어린 애들이;;

의외의 논란이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유수한은 누가 받든 자리에서 일어나 호응했는데, 그게 또 좋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칭찬받으려고 한 행동도 아니었고 칭찬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 솔직히 배우들 이번이 처음도 아니잖아 ㅋㅋ 존나 귀족처럼 고고하신 분들이야

└ ㅇㅈ 축하공연 온 가수들 보면서 표정 썩은 거 할말하않

└└ 급 나누는 거 투명 ㅋㅋㅋ 저럴 때마다 존나 싫음

└└└ 아니, 박수 좀 치면 손 부러진대? 좀 웃으면 얼굴에 마비온대? 정뚝떨

- 이래서 내 돌이 시상식 공연 하러 가는 거 싫어 고고하신 배우 나으리들 표정 보면 토 나와

└ 격공 ㅋㅋㅋㅋㅋㅋ 광대 취급 오짐 ㅇㅇㅇㅇㅇㅇ

└└ 팔짱 끼고 다리 꼬고 뚱한 얼굴 보는 순간, 돈 내고 보라고 하고 싶음

└└└ ㅇㄱㄹㅇ 축.하.공.연 하러 간건데 뭔데 광대 취급이죠??

└└└└ 욕 좀 먹더니 요즘은 나름 달라졌다고 생각했거든? 개뿔. 배우병 유구하죠~

연예계에서도 직종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분위기는 유수한도 그리 좋게 보지는 않는다. 유수한도 연예계에 익숙해지며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같은 배우여도 영화를 주로 하는 배우와 드라마를 주로 하는 배우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연기를 하는 같은 배우끼리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개그맨이나 가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뭐든 똑같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기를 얻기 위해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사랑받는 것으로 돈을 번다. 다 똑같은데 왜 거기서 계급을 따로 나누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빠, 기사 봤어요?”

이런 정보에 그 누구보다 빠른 보라가 핸드폰을 들고 재잘거렸다.

“응, 봤어.”

그리고 매니저는 운전하느라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궁금한 듯, 백미러를 보는 모습이 애잔하다.

“지금 안 일어난 사람들 리스트 만들고 있대요.”

“아, 그래?”

“엄청 욕먹을 듯.”

“먹든지 말든지.”

관심 없는 투로 유수한이 말했다.

사실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번 일로 배우 모두가 욕을 먹어도 할 말 없었다. 다른 상도 아니고 대상인데, 같은 자리에 있는 입장으로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박수를 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왜요? 뭔데요? 나도 좀 알려 줘요.”

결국, 운전하던 매니저가 궁금하다며 성화였다.

“그냥 이원욱 상 받을 때, 배우들 병 걸려서 가만있었잖아요. 그거 욕먹어요. 태도 논란.”

“아.”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좀 심하긴 하더라고요. 작년에는 배우가 TV부문 대상 받았잖아요? 그때랑 분위기가 다르긴 하더라.”

매니저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김민수도 배우들의 인성을 아주 잘 알았다. 안 그런 배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은 매니저에게 막 대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예인병 자체가 배우에게만 있는 건 아니지만, 김민수는 그 누구보다 배우라는 집단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뭐, 욕먹고 고치면 좋은 일이지.”

유수한에게는 별 해프닝도 아니었다. 같은 배우로서 이번 일은 욕먹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지라, 그저 관심을 끊고 일이나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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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천상예술대상은 시상식이 끝난 후에 수상자 단체 사진을 찍는다. 대상을 받은 사람이 가운데에 서는 것이 당연했다. 그다음은 눈치였다. 유수한은 나이에 맞게 알아서 사이드로 빠지며 눈치를 살폈다.

앞줄은 전부 배우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유수한은 이상하다는 듯 뒤를 쳐다보았다. 그 때 눈에 들어온 사람이 이원욱이었고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자리로 자리를 권했고 그게 끝이었다.

- 와, 이원욱 대상 받았는데 뒤에 서 있었구나

- 앞줄 배우만 선 거 투명하죠??

└ 진심 탐욕스러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인간적으로 신인상, 조연상, 특별상 같은 애들은 좀 뒤로 빠지면 안 됨?

└└└ 배우라서 뒤에 서면 병 걸려 죽는대 ㅋ

비하인드 영상이 공개되면서 배우들의 태도 논란과 더불어 일이 커지고 있었다. 이럴 때마다 유수한은 항상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작은 거라도 충분히 부풀려져서 욕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유수한 자리 바꿔 주는 거 멋지다 가운데로 가라고 권해주는데, 이원욱이 사양하네 ㅜㅜ

└ 대상이나 받았는데 왜 눈치보냐 이원욱 ㅠㅠㅠㅠ

└└ 눈치 보며 웃는 거 맴찢이야 ㅅㅂ

└└└ 아, 진짜 배우혐오증 걸릴 것 같음

- 아니, 솔직히 천상 예능인 홀대 장난 아니잖아. 이럴거면 배우들 시상식으로 바꾸라고 해 ㅋ

└ ㅇㅈ 상도 영화, 드라마 위주고 예능은 흩뿌리는 수준임 ㅇㅇ

└└ 맞아 드라마, 영화는 홍보영상 만들었는데, 예능은 없음 ㅋㅋㅋㅋㅋㅋㅋ

└└└ 이럴거면 예능인은 왜 부르냐

└└└└ 배우들만의 리그 ㅋ 개투명 ㅋ

- 나 유수한 입덕할 것 같음

└ 22222

└└ 3333333 진심 보면 볼수록 호감이야

└└└ 44 과거는 찝찝하지만, 사람이 변했다는게 느껴져 ㅇㅇ

└└└└ 555 맞아 사람이 달라짐

└└└└└ 66666

반응을 찾아보던 유수한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런 일로 칭찬받는 것도 웃기네.”

창찬받으려 했던 행동이 아니었다. 경력으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받은 상의 무게로 보나, 이원욱이 뒤에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했을 뿐이었다. 어차피 눈치를 살피며 뒷줄로 옮길 생각이었기에, 칭찬 받기 위해 계산한 행동도 아니었다.

“그만 보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드라마 ‘나는 왕이로소이다’ 촬영이 임박했고 요즘 자잘한 스케줄 때문에 집에 박혀 있을 시간이 없었다.

며칠 동안 집에 있을 때 주로 했던 일은 역시 낫플릭스 ‘EXIT’ 모니터링이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 점차 반응이 쌓여 가고 있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유수한이 얻은 것은 역시 인지도였다. 한국에서 유수한의 인지도는 충분히 쌓인 상태다. 하지만 해외는 아시아권을 제외하면 무명이었다. 낫플릭스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서구권 인지도가 생겼다.

물론 유수한은 여전히 해외 진출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한국에서 배우 생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연예뉴스] 낫플릭스 ‘EXIT’ 성공으로 싱글벙글 …… 유수한 최대 수혜자?

낫플릭스는 한국에 잘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유수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보통 미국 드라마는 회차 제작비로 100억 원은 기본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는 그보다 더 적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가성비 있는 시장이라는 소리도 듣고 있었다.

이번 ‘EXIT’는 반응이 좋았다. 좀비물답게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여 주었고 킬링 타임 드라마로 제격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유수한은 말없이 낫플릭스에 들어갔다. 요즘 일 때문에 제대로 모니터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드라마 시작하기 전에 ‘EXIT’ 모니터링을 끝내야 했다.

“4화까지 봤지.”

유수한은 마우스를 움직여 ‘EXIT’ 6화를 켰다.

「우리 살 수는 있는 거예요?」

지난 회차에서 질기게 살아남아 빌런 짓을 하던 대대장이 드디어 죽었다. 애초에 좀비들은 인간보다 신체 능력이 월등했기에 밀리는 싸움이었다.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기를 사용하는 일이었다.

「점점 똑똑해진다고요!」

점점 좀비는 진화하고 있다.

「…….」

절망이 찾아온다.

이은결은 말없이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사람은 점점 줄어가고 좀비의 수는 늘어간다. 암담한 상황, 이은결도 절망에 빠져 목숨을 끊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은.」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아직은 아니야.」

확실히 좀비들은 진화하고 있다. 조금씩 머리를 쓰고 있었고 도구를 사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모자라다. 총기를 사용하는 것도 허술했고 수류탄은 사용법을 몰라, 안전핀을 뽑은 후에 우왕좌왕하다가 자폭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무기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아직은 우리가 더 지능이 높아.」

그러니 지금은 움직여야 한다.

두려움에 휩싸여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민간인도 아닌 군인이었다. 군인이라면 전장에서 달아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가자.」

이은결은 숨을 가다듬으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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