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천상예술대상
단관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오늘 처음 공개된 드라마는 기대 이상이었다. 빠르게 전개되는 내용에 액션도 화려했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았다.
“오늘 아무래도 밤새워서 다 보고 잘 것 같아요.”
드라마 볼 때는 손이 가지 않던 간식을 먹는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3회를 보고 마지막까지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도 즐겁다. 대화의 주제는 유수한이었다. 드라마에서 본 유수한의 모습에 열변을 토하며 대화를 나눈다.
핸드폰을 보며 반응도 확인했다. 전체적인 반응은 좋았다. 아직 공개된 지 얼마 안 된지라 완결 회차까지 본 사람은 없었지만, 초반 평가가 좋았다.
“다들 배고프죠?”
점심을 먹고 온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늦게 일어나서 빈속에 단관회를 찾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가벼운 주전부리를 준비했지만, 그걸로는 모자랐을 것이다. 드라마를 보고 짧게 감상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끝날 예정이었는데.
“피자 왔습니다!”
유수한이 어떻게 알고 피자 배달을 시켰다. 뜻하지 않은 피자에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게 회비로 다 돼요?”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나 운영진이 따로 사비를 쓴 건 아닌지 걱정하는 투였다. 이경민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저희가 산 거 아니에요.”
회비로는 D브랜드 피자 신제품을 준비할 수 없다.
“수한 오빠가 준비한 거예요.”
물론 이경민도 모르고 있었다. 피자 배달이 오기 30분 전에 매니저에게 문자를 받았다. 단관회 장소로 피자를 보냈으니 맛있게 먹으라는 메시지였다. 단관회는 팬 이벤트였다. 함께 모여 드라마를 보고 가벼운 친목을 다지는 자리였다. 유수한이 팬에게 잘하는 배우라는 걸 알고 있지만, 항상 새삼스럽게 놀랍다. 늘 한결같아서.
“와. 진짜요?”
“대박, 천사야, 뭐야.”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보낸 피자인데, 놀라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피자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거 유수한이 보냈다고 하니까, 아까워요.”
당연하다.
팬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배우가 준 모든 걸 간직하고 싶어진다. 그저 돈만 쓰고 피자는 다른 사람이 만들고 배달 왔다고 해도 아깝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먹으래요.”
이경민이 담담하게 말을 던졌다.
“식기 전에 수한 오빠가 꼭 먹으라던데요?”
“아, 진짜요?”
“네.”
다들 하나둘 피자를 먹는다. 시간도 없었다. 이제 대관 시간은 30분 남짓 남았으니, 못 먹느니 뭐라니 할 여유도 없다.
“아, 오늘 피자 먹은 거 비밀이에요.”
이경민이 말했다.
“오빠 성격에 이번만 보낼 사람이 아니라서, 미리 알면 재미없으니까 꼭 비밀 지켜 주세요.”
단관회를 갔는데, 내 배우가 보낸 피자가 왔다. 당연히 입이 드릉드릉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서 참아야 한다. 모르고 받아야 그 감동이 배가 되는 거니까.
“오늘 진짜 재밌었어요.”
“저도요!”
단관회가 끝났다. 피자도 남지 않았고 깔끔하게 행사가 끝났다. 이상한 팬도 없었고 다들 성격이 좋았다. 예전 사생팬이었던 최지영을 생각하면 다행이었다. 한 명이라도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미꾸라지처럼 물을 흐리기 마련이었다.
[빛유/후기] 첫 단관회 후기! +22
[빛유/후기] 이게 뭐야. 키링 너모 감동이자나 ㅠㅠㅠㅠㅠ +59
[빛유/후기] 단관회는 갈 수 있을 때 가자 +34
후기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드라마 ‘EXIT’ 공개 기념으로 만든 굿즈는 비밀이 아니었다. 굿즈가 올라오자 앓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하는 팬들은 배 아파 했고 앞으로 갈 예정인 팬들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아, 이제 하나 끝났다.”
정리를 끝내고 제일 마지막에 단관회 장소를 벗어난 최은주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우리 진짜 일 좀 키우지 맙시다.”
말이 쉽지, 단관회 여는 일은 쉽지 않다. 각자 개인 일이 있는 상황에서 준비를 해야 하니 당연히 정신없다. 몸이 힘든 건 둘째 치고 결국 사람을 대하는 일이었다. 사람 대하는 일은 힘들다. 결국은 또 다른 일이었다. 돈 안 나오는 일.
“맞아요. 이번 단관회 하고 제발 일 만들지 않기!”
말만 그렇게 하고 계속 일을 벌일 그들이었다. 덕심이 식는다면 모를까, 지금은 조금만 시간이 생기면 일을 키우고 싶다. 늘 그랬다. 내 배우가 지나치게 열심히 일해서 덕심이 식을 틈이 없다.
“집 가서 뭐 할 거예요?”
“맥주 먹으면서 드라마 달려야죠.”
“나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팬은 다 똑같다. 떡밥이 터져 나오면 배가 터지도록 주워 먹기 바빴다.
“그럼 담 주에 봐요.”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이경민은 핸드폰으로 반응을 확인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단관회에서 본 드라마 ‘EXIT’는 너무 재밌었다. 마침 주말이니 치킨 한 마리 시키고 맥주를 마시며 남은 분량을 모두 볼 생각이었다.
* * *
유수한은 광고 촬영 현장에 와 있었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 손에는 S사 신제품 ‘지니어스’가 들려 있었다.
이미 잘생겼지만, 더 잘생긴 척을 한다. 핸드폰을 보는 그의 눈빛이 그윽했다. 늘 쉬는 틈이 생기면 광고 촬영을 진행한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밀린 광고 일정을 소화하고 가끔 화보도 찍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흘러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을 끝나고 옷을 갈아입은 유수한은 핸드폰을 찾았다. 어느새 핸드폰이 바뀌었다. S사 핸드폰 모델이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기종을 옮기게 되었다. 핸드폰을 들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역시 반응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낫플릭스 ‘EXIT’가 공개된 지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지났다. 이쯤 되니 전체적인 반응을 대강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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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글이 올라와 있었고 가장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었다.
요즘 한류가 심상치 않다. 하지만 유수한은 해외 진출에는 관심이 없었다. 국내 활동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다고 해외에서 인지도 없는 배우는 아니었다. 아시아권에서는 나름 이름이 있는 배우였다.
- 토마토 지수 돌았음 얘네 지금 K-좀비 맛에 중독된 듯 ㅇㅇ
- 아니, 오늘 공개했는데 탁톡 조회수 무슨 일이야? ㅋㅋㅋㅋㅋ
└ 탁톡에 외국인들 EXIT 겁나 올림.. ㅋㅋㅋ
└└ K좀비 무섭다고 난리던데 ㅋㅋㅋㅋㅋㅋ
- 이거 재밌음?
└ ㅇㅇ 존잼
└└ 아직 보는 중인데 개존잼임 ㄹㅇ
전체적인 반응은 좋다.
김승찬 감독이 오랫동안 준비한 만큼 좋은 퀄리티를 보여 주었다. 주연 배우 유수한에 대한 관심도도 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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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업글이 대형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이번 드라마는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까지 드라마의 성적표는 주로 시청률로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청률이 아니라 조회수였다. 말 그대로 관심도가 중요했다. 지금 ‘EXIT’는 공개하자마자 낫플릭스 순위권에 올랐다.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었다.
- 유수한 연기도 잘하고 몸도 잘 쓰고 진짜 약점이 없음
- 저거 보는데 좀비 때려잡는 유수한 개잘생김 ㄹㅇ
- 몸 진짜 잘 써 미친 것 같아 유수한 액션 보면 사이다 마시는 기분 ㅇㅇㅇㅇㅇㅇ
└ 이번에도 대역 없이 액션 소화했다는데, 찐으로 대단함
└└ 진심 얼굴도 잘생겼는데 못하는게 뭐냐;;;
└└└ 일도 안 쉬더라 ㅋㅋㅋㅋ 끊임없이 작품하는데 그게 다 잘돼;; 괴물임?ㅋㅋㅋ
아직 초반이라 전체적인 성적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광고 촬영장에서 나온 유수한은 바로 집으로 이동했다. 낫플릭스 ‘EXIT’가 공개되었고 이제 남은 건 드라마 ‘나는 왕이로소이다’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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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유/자유] 아, 왜 내가 떨림? 상은 유수한이 받을텐데. +11
유수한은 오늘 영화제 참석을 할 예정이었다.
영화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최종 스코어가 800만 명을 넘겼고 첫 영화 주연으로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니, 국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르는 건 당연했다. 스케줄이 밀려들어 와서 여의치 않았지만, 영화제는 최대한 참석을 할 생각이었다.
- 오늘 유수한 수상각?
└ ㅇㅇ 후보 오를 때부터 각이었음
└└ 유수한 아니면 없지
└└└ 성적으로 보나, 인기로 보나, 연기로 보나 그냥 유수한이야
└└└└ 유수한이 남우주연상에 침 바른 격
이미 유수한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릴 때부터 그의 수상에는 이견이 없었다. 아마 받지 못한다면 꽤 큰 후폭풍이 올라올 정도로 남우주연상 수상이 점쳐지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겸손은 중요하다.
“오빠, 수상 소감은 생각했어요?”
“응.”
옷을 입고 거울을 보던 유수한은 선선한 대답을 보였다. 여기서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미 모든 사람이 유수한이 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는데, 아니라고 하는 건 거짓말이나 다름없었다.
“어, 수한이 오랜만이네.”
대기실에서 나온 유수한은 저 멀리 서 있는 정동인을 발견했다. 오늘 정동인은 남우조연상 후보였다. 같은 주연이었지만, 조연으로 분류가 되었다. 정동인의 수상 가능성도 몹시 높은 편이었다. 정동인은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전에는 상복이 없는 배우였다. 이번 영화 성적이 좋았으니 올해만큼은 정동인이 조연상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고 있었다.
“네,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레드카펫 근처로 가니, 고운영 감독이 보였다. 고 감독은 항상 털털한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한결 정돈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영화제다 보니, 머리에도 신경 쓴 모습이 티가 났다.
“감독님이 가운데 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오늘 ‘내 심장을 향해 쏴라’ 팀은 감독 포함 세 사람만 참여했다. 여자인 고운영 감독을 가운데에 두고 함께 레드카펫을 걸었다. 유수한이나 정동인은 카메라 세례에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고 감독은 익숙지 않았다. 눈부신 듯, 계속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아, 이것도 못할 짓이네요.”
이제야 겨우 빠져 나온 고운영은 눈을 비비며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수한은 말없이 웃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시상식은 꽤 오래 진행한다. 처음 시작은 아이돌 그룹의 축하 무대였고 차례로 시상을 진행했다. 유수한은 진중한 얼굴로 시상식을 지켜보았다.
이미 모든 사람이 입 모아 유수한이 남우주연상을 받을 거라 말했다. 그리고 유수한 스스로도 상을 받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시상식 참여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영화제로는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남우주연상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큰 상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 상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아직은 와닿지 않았다.
“다음은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천상예술대상은 영화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서 그 어느 때보다 시상식이 길었다. 유수한은 자세를 고치며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후보 영상이 흘러나온다.
「더 바라면 욕심일 테니까. 좋은 꿈 꾸었다고 생각할 테니…….」
유수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날 버려도 됩니다.」
심장이 기분 좋게 뛰었다.
옆에 앉은 고운영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유수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동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도 힐끔힐끔 유수한을 보고 있다.
“네, 이제 발표하겠습니다.”
유수한은 초조한 듯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꽤 오래 기다린지라 떨리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그 시간이 찾아오자 손이 조금 떨렸다.
“수상자는-”
말꼬리를 늘인 시상자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유수한 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