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사망플래그
1회는 무기고에 도착한 이은결과 강휘민의 모습에서 끝났다. 그 사이사이 다른 인물의 이야기도 펼쳐졌지만, 주는 무기고로 향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 와, 첫 회부터 강휘민 사망플래그 너무 세게 박는 거 아니냐?
└ 2222 죽기 딱 좋은 캐릭터이긴 함
└└ 33333 내 말이 ㅠㅠㅠㅠ 내 샛기 무능하지만, 열심히 하는데 살려주라 ㅠㅠㅠㅠ
└└└ 4444444 누가 봐도 사망플래그;;
└└└└ 5555555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낫플릭스 공개 이후에 정주행을 달리는 분위기가 느껴졌고 하나둘 감상평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단관회 중이었던 유수한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이거 되게 기 빨리네요.”
“그니까요. 좀비 뭐야. 갑툭튀 오져요.”
1회가 끝나고 잠시 숨 돌릴 시간을 가졌다.
다들 빠르게 감상평을 쏟아 냈다. 첫 단관회는 그럴 수밖에 없다. 유수한이 나온다는 정보 외에는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드라마를 봤으니, 더 날것의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진짜.”
역시 주 감상은.
“존잘이에요.”
얼굴이었다.
유수한은 잘생겼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한국에서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얼굴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었다.
“잘생긴 건 늘 새롭다니까요.”
그 이유 덕분이었다.
잘생긴 얼굴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헤어스타일에 따라서 달라지는 외모는 늘 새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이번 유수한 주연 드라마 ‘EXIT’가 그랬다. 군인답게 짧게 자른 머리는 기존 유수한의 이미지와 달랐다.
“맞죠. 잘생긴 건 안 질리죠.”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앞으로 전개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좋은 드라마가 될 것 같았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2회를 틀었다. 다시 분위기가 조용해진다.
드라마는 자극적이고 잔인했다. 평소 고어물을 못 보는 사람은 보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했지만, 다들 개의치 않아 했다.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사람 내장을 뜯어 먹고 갑자기 총알이 머리에 박히고 하는데, 충분히 놀랄 만했다.
「대대장님!」
무기고에 있던 사람은 대대장이었다. 이은결을 가둬 두었던 사람. 행방이 묘연하다더니, 믿을 만한 사람들을 데리고 무기고로 달려간 모양이었다. 무기고에 오는 길에 자살했던 군인은 감염된 게 확실하게 보이니 내친 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렇게 아무 의지 없이 목숨을 버렸겠지.
「여기서 이렇게 숨어 있으면 뭐가 됩니까? 더 번지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대대장은 저항을 하지 말라 했다.
「그럼 자네는 나가게.」
「대대장님!」
「항명하는 건가?」
「이 상황에서도 그런 소리가 나오십니까?」
「그럼 달려 나가서 뭘 할 겐가? 나가서 직접 고깃덩어리라도 되겠다 이 말인가? 말리지는 않겠네. 나는 저 괴물들이 굶어 죽을 때까지 여기서 버틸 생각이니.」
극한 이기주의.
지금도 부대 내에는 감염되지 않은 병사들이 있었다. 이은결이 무기고에 온 것은 살아남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사람을 이끌고 좀비들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대대장은 이 많은 무기를 독식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말로는 전략이라면서 좀비들이 굶어 죽을 때까지,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이었으니, 사실은 개소리였다.
「그럼 아직 감염되지 않은 병사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다 감염되면? 그땐 그 여파를 어떻게 감당하려 이러시는 겁니까!」
이미 대대장은 이은결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누군가와 소통을 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에 이은결은 분통이 터진다.
「그땐.」
대대장이 고개를 든다.
「아군을 구분할 필요 없이 싹 쓸어 내면 되겠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그 말에 이은결은 숨통이 조여드는 듯했다. 처음으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대대장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본다. 하나같이 계급이 높은 군인들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총, 어느 누구는 이은결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참담합니다.」
군인으로서 일말의 책임감도 갖고 있지 않다.
「알량한 목숨 하나 지키겠다고, 죄 없는 어린 생명 저버리는 거. 그게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전 처음으로 군인이 된 걸 후회합니다. 이렇게 책임감도 없는 집단인 걸 알았다면 군인 따위 되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리 이은결이 신체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총을 든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강휘민 역시 몸을 사리고 있다. 눈치를 살피는 것이 이은결 눈에도 보였다.
「날 따라올 필요 없어.」
이은결은 고개를 돌려 강휘민을 보았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물끄러미 강휘민이 들고 있는 핸드폰을 보았다. 마음만 먹으면 소통은 할 수 있다. 둘이 동시에 나가는 것보다 한 사람은 여기에 있는 것이 낫다.
수신호를 보낸다.
귀를 살짝 툭툭 두드리니 강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이은결은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귀를 두드리는 것으로 대신했었다.
「몸조심하십시오.」
「너도.」
짧게 말을 주고받고 등을 돌렸다. 대대장과 함께 가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 모습을 보던 대대장은 혀를 찬다. 어리석다는 의미였다. 이대로 나가면 개죽음이라는 듯, 딱하게 바라보고 있다.
- 대대장 죽여
- 진심 빌런 존나 싫다 ㅅㅂ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대장 언제 죽어???
└ 진정해 아직 2회야
└└ 확실한 건 죽으려면 멀었어 ㅋㅋㅋㅋㅋ
- 직업군인 아닌 이상, 다들 20대 초반인데 저 핏덩이들을 사지로 몬다고?
└ 2222 이건 진짜 아니지..
└└ 333333 만약 저기 무기고에 병사들이 수백 명이었으면 말 달라졌을걸 ㅇㅇ
└└└ 444 ㅇㅈ 늙은이들만 있으니까 몸 사리는 거야...
└└└└ 5555 지들만 살겠다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무기고 간 거 극혐...
이은결에게 주어진 건 총 한 자루에 강휘민에게 받은 야구 배트였다. 이은결은 강휘민과 연락할 수단을 찾았다. 무기고에 사람은 고작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퍼지면 퍼질수록 무기고에 있는 사람들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떼로 몰려들면 무기고 뭐고 다 소용이 없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심에 망각한 건지, 아니면 소수로도 무기만 있다면 좀비를 모두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 어떤 것도 미지수였다.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이은결은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날카로운 날붙이를 챙겼다. 그 안에도 좀비가 있었고 굶주림에 지쳐 숨은 군인도 있었다. 그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건 식당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들이었다. 죽은 사람도 있고 좀비가 된 사람도 있었다.
「옷 벗어.」
「예?」
「감염됐는지 확인해야 하니, 벗어.」
「갑, 갑자기.」
이은결은 철두철미하다.
구해 준 병사가 감염된 건 아닌지 철저히 확인한다. 입고 있던 상의를 벗게 하고 상처가 없는지 확인한다.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이상 없다는 걸 알고 난 후에야 경계를 풀었다.
핸드폰은 주워 쓴다. 보통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서 무용지물, 풀어 보려고 했지만 허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식당에 있던 구형 스마트폰은 보안이 걸려 있지 않았다. 아마 나이 든 식당 아주머니가 쓰던 핸드폰이라 그런 듯했다.
「이제 어떡합니까? 저 집에 갈 수는 있습니까?」
「몰라.」
방금 좀비에게서 구해 준 병사가 불안해 한다는 걸 알지만, 이은결은 딱히 뭘 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따라올 거냐?」
「예…….」
「널 지켜 주겠다고 말해 줄 수는 없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하겠다.」
사람은 사람과 뭉쳐야 한다.
대대장 같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 사람다운 사람과 함께 뭉쳐야 한다. 좀비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수가 늘어 가고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감염이 되기 전에 데리고 와야 했다.
하나둘, 이은결과 함께 하는 인원이 늘어간다. 하나 같이 엉성한 무기를 들고 살아남기 위해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사, 살려 주세요! 제, 제발……. 저 이거 물린 거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제, 제발…….」
이은결은 감염된 자를 처리해야 했다.
「미안하다.」
타앙-!
이은결은 눈물 한번 흘리지 않고 이를 악물며 방아쇠를 당겼다. 어느 누구는 인간미 없는 모습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은결로서는 죽음을 맞이할 상대를 최대한 배려한 것이다.
그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총을 쓰지 않았던 건, 감염된 누군가를 보낼 때 최대한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총알이 떨어질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어느 순간에는 직접 칼을 들고 숨을 끊어야 할 상황이 올 거라는 걸 직감하기에.
- 이은결 맴찢 ㅠㅠㅠㅠㅠ
- 선역인데 악역도 도맡아 하려니까 얼마나 애잔해 ㅠㅠㅠㅠ
- 와, 나 보면서 왜 총 안 쓰지? 존나 고답이라고 깠던 나를 매우 친다 시바ㅠㅠㅠㅠ
└ 그니까 ㅠㅠㅠ 총 좀 써라 했는데 이유가 있었어 ㅠㅠㅠㅠㅠㅠ
└└ 진심 총 두고 왜 저렇게 고생하나 했다 ㅠㅠㅠㅠ
└└└ 아니 죽게 생겼는데 총알 아낄 때냐 욕 했는데 ㅠㅠㅠㅠㅠ 미안하다!!!
- 죽고 싶지 않다고 우는 거 진짜 마음 아프더라... 제발 연기 살살해 ㅠㅠㅠㅠ
└ 감염된 거 끝까지 숨기는데 왜 내가 눈물나냐 ㅠㅠㅠ
└└ 잘못했다고 물려서 잘못했다고 비는데 와...
└└└ 그걸 보면서도 죽여야 하는 이은결은 또 어떻고요 ㅠㅠㅠㅠㅠ
└└└└ 진짜 뭐야 ㅠㅠㅠㅠ 신파 ㅇㅈㄹ 했는데 존나 왜 울어 나 ㅠㅠㅠㅠ
살아남기 위한 사투는 처절했고 반응 역시도 정직했다. 그 누구보다 앳된 얼굴의 병사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이은결은 강한 듯 보였지만, 남몰래 속으로 울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고 힘없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그의 슬픔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 하사님. 지금 무기고에도 좀비가 하나둘 몰려오고 있습니다. 대대장님은 상황을 낙관하는 것 같지만, 제 생각에는 조만간 일이 터질 것 같습니다.]
그 좁은 곳에 갇혀 있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좀비의 수는 점차 늘어 가고 가지 못할 곳은 없다. 강휘민에게 듣기로 무기고에 있는 무리들은 술에 취해 산다고 한다. 식량을 숨겨 놓고 하나하나 꺼내 먹으며 말 그대로 버러지처럼 살아남고 있었다.
「가자.」
소식을 간간히 전해 들으며 이은결은 준비하고 있었다.
「무기고로.」
이은결이 구출한 군인의 수는 스무 명 남짓. 인원을 셋으로 나누어 움직인다. 이은결은 강휘민이 따로 빼놓은 무기를 가지러 갈 생각이었다.
아직 무기고를 탈환할 시기는 아니었다. 그들이 밀려드는 좀비를 컨트롤 할 수 없는 그 순간, 이은결은 그 순간에 무기고를 점령할 생각이었다.
무기가 생겼다고 해서 낙관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은결은 감염되지 않은 사람을 구출하여 몸집을 키우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 아니었다. 군인으로서 군 밖에 좀비가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먼저였다. 핸드폰으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는다. 조금씩 인터넷이 느려지고 먹통이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 말은 부대 밖에서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뜻이었다.
「허,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타앙-!
이은결은 또 다른 장애물을 만났다. 무기고에 좀비가 들이치는 순간을 기다렸다. 술에 취한 대대장 무리들이 우왕좌왕할 때, 그들을 억누르고 좀비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좀비가 총을 쏴?」
2화 마지막.
좀비가 서서히 진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