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내 손으로 직접 보내 줄 테니까
팬사이트 ‘빛나는 유수한’ 이경민은 회의를 통해 매주 토요일 낫플릭스 ‘EXIT’ 단관회를 열었다. 드라마 ‘EXIT’는 총 8부작. 단관회라고 해도 8부작 모두 보는 건 역시 무리였다.
회원들과 소통한 결과, 2회씩 본 후에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그리하여, 단관회는 총 4회 열리며 중복으로 참여가 가능하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회비는 2만원.
이 금액은 단관회를 할 장소 대관과 드라마를 보면서 먹을 음료수와 가벼운 간식을 사는 데 사용했으며 더불어 기념 굿즈도 제작했다.
“와, 너무 예쁘다.”
사실 2만원으로 굿즈까지 만드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게 이왕 일을 할 거라면 제대로 멋지게 준비하고 싶었다.
“티켓 이거 언제 준비하신 거예요?”
시간 맞춰 단관회 장소에 도착한 팬들은 요즘 유행하는 오리지널 티켓을 보고 감동한 듯했다. 거기에 아크릴 키링까지. 가격으로 계산하면 얼마 되지 않지만, 이걸 만들기 위해 무수한 정성이 들어갔다.
“키링 너무 귀여워요!”
키링 역시도 반응이 좋았다.
총 들고 있는 이은결의 캐릭터를 그려서 만든 키링이었다. 덕질이란, 작은 것에도 마음이 들뜨는 법이다. 이경민은 자리에 앉아 굿즈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걸 준비하느라 그만큼 고생했지만, 결과물을 보고 나니 뿌듯했다.
“다들 준비되셨어요?”
단관회 시작은 1시였지만, 10분 늦게 상영을 시작한다. 미리 화장실도 다녀오고 집중할 시간을 주었다. 오늘 10분 전에 공개된 드라마 ‘EXIT’를 다들 처음 보는지라 하나같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불이 꺼지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던 최은주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작게 웅성거리던 소리가 잠시 멎었다. 물론 그것도 잠깐이었다. 오프닝이 나오자, 하나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존멋.”
어느새 자리에 앉은 이경민도 총을 들고 달려가는 유수한의 모습에 감탄을 터트렸다. 유수한 덕질은 늘 새롭다. 덕질을 시작하면서 유수한 필모 깨는 걸 먼저 시작했는데, 사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나마 영화 ‘어둠이 온다’가 가장 좋았고 그 외는 그냥 그랬다.
그렇기에 덕질을 시작해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작품 보는 눈이 그리 썩 좋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인성이 좋아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물론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나며 깨졌다. 유수한은 늘 새롭다.
맡는 역할마다 이유가 있었다. 작품이 흥행하는 건 물론이고 인물이 매력 있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력이 느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니, 덕심이 식을 이유가 없었다.
“헉!”
극 흐름이 아주 빨랐다.
정체불명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고 아수라장이 된 군대의 모습이 아주 빠르게 진행됐다. 그사이, 아무것도 모른 채 영창에 갇힌 이은결이 어서 나와 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 아니, 진심 윗대가리들이 문제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터진 문제 덮으면 끝남?
└ 2222 복잡할 것 같으니까 덮고 보는 거 극혐;;;
└└ 33333 이은결 잘못으로 돌리고 쉬쉬하는 거 존나 현실적 ㅋ
└└└ 44444 대대장인지 뭐시기부터 뒤졌으면
- 이은결 언제 나와? 진심 이은결만 사이다 같은데?
└ ㅇㅈ 아직 초반인데 밤고구마 백 개는 먹은 것 같음 ㅇㅇ
└└ 아, 사이다 없음 물이라도 달라
└└└ 이은결이 총으로 쏴 죽일 땐 진심 시원했는데 ㅋㅋㅋㅋㅋ
└└└└ 이은결 이 인간 사이다 같으니...
아직 1회 초반이지만, 유수한이 맡은 이은결의 포지션은 확실했다.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진행할 주인공. 판단력이 좋고 실행력 역시도 탁월한 답답하지 않은 주인공이었다.
「일단 나오십쇼.」
좀비에게 쫒기던 강휘민은 가장 먼저 이은결 하사를 구하러 왔다. 철컹,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응도 폭발했다.
- 아이돌 출신이라 아직 어색하지만, 강휘민 자네 합격일세
- 와, 이은결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하다
- 강휘민, 이은결 구해준 걸로 까방권 획득!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한까방권 줘라 ㅋㅋㅋㅋ
└└ 진심 구해줘서 다행이야...
└└└ 한순간이나마 널 의심한 걸 미안하다.. 버리고 갈 줄
이은결 측근인 강휘민은 악역이 아니다. 나름대로 이정우는 좋은 역할을 얻은 셈이었다. 주인공과 함께하니 분량도 많은 편이었다. 물론 그만큼 유수한은 속이 터졌다. 연기 초보자를 계속 끌고 갔어야 했으니.
「휘민아, 너 가지고 있는 거 없냐? 무기 될 만한 거. 총이면 저 새끼 쏴 버리고.」
있을 리가 없다.
강휘민은 벌벌 떨면서 좀비와 이은결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은결은 뒤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한다.
「별수 없네.」
「네?」
「가두자.」
생각은 짧게.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좀비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도망갈 구멍이 없었기에, 좀비 눈에는 이은결과 강휘민이 잘 차려진 밥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물리지 않게 조심해라!」
접근전은 위험하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 이은결은 물리지 않게 조심하며 좀비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생각을 짧게나마 할 수 있는 좀비라고 해도 이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순간 당황한 듯, 움찔하는 그 모습이 이은결에게 보였다.
타앗.
높게 점프한 이은결은 허리를 틀며 발등으로 좀비의 얼굴을 가격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좀비의 약점은 항상 머리였다. 그 사실이 현실에도 적용될지 모르겠지만, 얼굴을 맞는 순간 좀비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뛰어!」
바닥에 착지하며 뒤로 물러선 이은결의 외침에 재빠르게 강휘민이 달려 나갔다. 우선 이은결은 강휘민부터 구출하는 것에 신경 썼다. 강휘민이 아무리 훈련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맨몸으로 좀비를 상대하는 건 위험했다.
「자, 와라.」
강휘민이 문 밖으로 나가고, 얻어맞은 좀비의 약이 바짝 올랐다. 이은결은 손을 까딱이며 좀비를 유인했다.
「크르르르르르!」
최 소위 좀비가 달려든다.
그 움직임이 몹시 재빨랐다. 최 소위답지 않은 움직임. 좀비화가 되면 몸에도 변화가 오는 듯했다.
이은결은 매섭게 달려드는 좀비를 피했다. 손톱을 세워 이은결의 목덜미를 노리는 좀비의 움직임을 이리저리 피한다.
「잡아 봐, 이 좀비 새끼야!」
여유롭게 소리를 치고 있지만, 사실 등 뒤로 땀이 삐질 흐르고 있었다. 부웅, 머리 위를 가르는 손은 간담이 서늘하게 했다.
이은결은 계속 틈을 보고 있었다. 좀비가 팔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이은결의 허리를 붙잡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달려든다. 가까스로 그 움직임을 피한 이은결은 손톱 끝에 걸려 찢어진 군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괴물.」
그 소리와 함께 등을 보인 최 소위 좀비의 등을 걷어찼다. 영창 안에 밀려 들어간 좀비가 불쾌한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
콰앙!
일어나기 전에 문을 닫는다. 어느새 다가온 강휘민이 문을 걸어 잠그는 걸 도와주었다. 손을 벌벌 떨면서도 도망가지 않은 강휘민이 대견했다.
「가자.」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철문을 부술 듯 흔드는 좀비의 모습을 구경할 틈도 없다. 강휘민은 손을 뻗는 최 소위 좀비에 소름이 끼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 어디 가시게요?」
「무기고.」
「예?」
「지금 가장 중요한 곳은 거기다.」
이은결은 자신의 판단력을 믿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했다. 신체 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난 좀비에게서 벗어나려면 뭐라도 손에 쥐어야 한다.
「지금 대대장님은 행방이 묘연합니다. 좀비가 얼마나 퍼졌는지도 모르겠고요. 문제는 이게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동하며 짧게 상황 설명을 듣는다.
이은결 손에는 각목이 들려 있었다. 가다가 뭐라도 손에 들어야 해서 발견한 물건이었다. 강휘민은 조금 더 낫다. 야구 배트였다. 이은결보다 강휘민이 더 약한 존재였기에 조금 더 쓸 만한 무기를 쥐여 주었다. 혼자서 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보다 둘이 나으니까.
「이, 이 하사님…….」
중간중간 핸드폰으로 상황을 확인하던 강휘민의 목소리가 울 듯 기어들어 간다.
「왜?」
「저, 저희 어떡합니까?」
「빨리 말해. 들어 줄 시간 없어.」
「격리랍니다.」
「뭐?」
이은결이 얼굴을 구기며 강휘민을 보았다.
「이 시간부터 저희 부대, 격리한다고 속보 떴습니다.」
그 말에 이은결이 강휘민의 핸드폰을 빼앗았다. 화면을 본다. 속보였기에 긴 내용은 없었지만, 내용을 알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어.」
차분하게 이 상황을 대처하려는 이은결이었지만, 그의 가슴도 불안함에 조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내색할 수는 없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정신력마저 무너진다면 살아남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 현상이 좀비 바이러스 탓이라면.」
이를 악문다.
「전염병이 퍼진 곳은 격리되는 게 보통이니까.」
핸드폰을 다시 강휘민에게 주었다.
무기고까지 가는 그 과정도 지난하다. 몇 마리의 좀비를 만나고 가까스로 물리쳤는지 모른다. 각목은 이미 부러졌고 책상 다리를 부러뜨려 만든 무기를 들었다. 신경이 곤두서서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부쳤다.
「쉿!」
이은결이 눈을 굴리며 몸을 낮추었다. 어디선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사람일 수도 있고 좀비일 수도 있었다.
벽에 바짝 붙은 채, 숨을 죽이고 있던 그 순간.
「!」
타앙-!
격발음이 울렸다. 그 소리에 강휘민은 사람이 총을 들고 있다고 믿었다. 좀비는 총을 사용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은결은 조금 더 침착하게 상황을 살펴본다. 몸을 낮추고 고개를 내민다. 그러자 무릎을 꿇은 채 쓰러진 군인이 보였다.
「……자살?」
잠시 피를 흘리며 쓰러진 군인을 지켜보며 이은결이 생각했다. 그 역시도 강휘민과 생각이 같았다. 이미 수차례 좀비를 마주쳤다. 그들의 생각은 단순했다. 사람을 잡아먹는다. 그 생각밖에는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단순한 그들이었기에 체급 차이가 있더라도 상대하는 것에 애먹지 않았다.
「왜 자살하셨을까요?」
위험하지 않다는 걸 눈치챈 이은결은 시체에 다가갔다. 우선 손에 쥔 총부터 빼낸다. 다행히 총알이 장전되어 있었다.
「물렸으니까.」
「예?」
「조심해. 어떤 루트로 감염되는지 정확히 모르니까, 특히 혈액에 닿지 않도록.」
「네, 알겠습니다.」
총을 챙긴 이은결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체의 물어뜯긴 팔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무기고로 가는 길목이었고 그는 권총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직급은 대령, 어느 정도 위치가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총을 얻었지만, 팔이 뜯겼다.
그 말인즉슨.
「무기고에 좀비가 있다.」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다. 좀비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번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은결이 사살한 최초의 좀비는 많은 사람과 부딪혔다. 함께 식사를 하고 훈련을 받았으며 같이 잠을 잤다. 그리고 그에게서 번진 감염자가 또 어떤 루트로 누구와 부딪혔을지 미지수였다.
「부탁 하나 하자.」
그리고.
누구도 단정 지을 수 없다. 팔을 물어뜯기지 않았다고 해도 감염자와 어디서 어떻게 부딪힐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내가 감염된 기미가 보이면 날 죽여라.」
「그, 그런 무서운 말씀 마십쇼.」
「걱정 마.」
너도 감염된 기미가 보이면-
「내 손으로 직접 보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