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23화 (123/175)

123. 큰.일.났.습.니-다!

“어, 어떠셨습니까?”

굽신굽신.

“제 연기가 괜찮으셨습니까?”

톱 아이돌 그룹 멤버 이정우가 두 손을 파리처럼 비비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정우는 후회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연기를 하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을 후회했고 두 번째는 유수한의 집에 찾아간 것을 후회했다.

유수한 따위가 내두르는 혀에 넘어가지 말아야 했다. 그 입에서 터져 나오는 촌철살인 같은 말에 욱해서 넘어가지 말아야 했다.

연기?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좀만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냉정했다.

“생각보다 나아지기는 했는데.”

“네.”

고분고분.

그 행동을 모든 사람들이 놀랍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이정우의 강렬한 첫 만남을 기억했고, 이정우의 소문을 들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이 상황에 놀라울 수밖에.

유수한은 다리를 꼬고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고 이정우는 두 손을 싹싹 비비고 있었다. 마치 조선시대 내시 같은 모양새다.

“끝음 처리가 여전히 좋지 않고 발음도 구려.”

“아, 네. 그러셨습니까.”

이 더러운 연미새.

“그래도 노력 좀 한 것 같긴 한데, 더 잘하는 모습이 보고 싶네요?”

이 개같은 연미새.

겉은 실실 웃으며 공손하게 굴고 있지만, 속은 전혀 딴판이다. 이정우는 어떻게든 유수한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했다. 이미 덜미를 잡힌 상태였다. 소속사까지 쌍수 들고 환영한다. 이미 이정우가 유수한의 집에 찾아가 연기를 배우던 그 순간, 판이 뒤집혔다.

“쇠뿔도 단김에 빼자고.”

아, 불길하다.

“오늘 집에 오시죠.”

좆같은 새끼.

* * *

유수한은 작품을 시작할 때, 그 누구보다 철두철미하게 준비한다. 역할에 따라 살을 빼야 한다면 운동을 철저히 하며 체지방은 줄이고 근육을 키운다. 이번 역할은 군인이기에 당연히 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

대본?

한 번 읽고 끝나는 일이 없다. 최소한 3회독. 처음에는 속독하며 내용을 파악하고 두 번째는 대사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는다. 세 번째는 캐릭터 파악을 하며 읽었고 그 과정을 마친 후에는 대사를 암기했다.

말은 3회독이었지만, 대사가 입에 붙을 때까지 읽고 또 읽으니 결국 기본 10회독이었다.

“누가 벌벌 떨고 무서운데, 그렇게 무게 잡아?”

어느새 유수한은 이정우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이정우를 연기로 쥐 잡듯이 잡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철수 생각을 하게 된다. 왜 그가 그렇게 혹독하게 굴었는지, 얄밉게 굴었는지 알 법도 했다.

회사 내에서 폐급으로 불리던 유수한이었고 사사건건 사고를 일으키며 예의도 밥 말아 먹었던 배우였다. 그런 배우를 가르쳐야 했으니, 짜증이 날 법도 했다.

그래서였나.

지금 유수한도 건방지다 못해 예의를 밥 말아 먹은 망나니 이정우를 혹독하게 잡고 있었다.

“너 아직도 모르겠냐?”

“뭐가요.”

아직도 말본새가 별로지만, 처음처럼 눈을 치켜뜬다거나 성질을 부리려 하진 않는다.

“너 멋있는 캐릭터 아니야.”

“…….”

“강휘민은 불쌍한 캐릭터야. 네 캐릭터는 마지막에 탁 터트려야 한다고.”

“그럼 형은요?”

그 물음에 유수한이 대답했다.

“난 멋진 캐릭터지. 주인공이잖아.”

어디서 이렇게 속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항상 유수한은 선배 앞에서는 예의 바른 후배였다. 이정우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 후배였기에 가감 없이 성격을 보여 주며 꽉 누르고 있었다.

저런 성격일수록 빈틈없이 계속 압박을 줘야 한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고개를 내밀며 다시 고집을 부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이었다.

“꼬우면 너도 주인공 해.”

못 하겠지만.

“아무튼, 네 캐릭터만의 매력을 살려.”

이정우 연기를 봐 주면서 유수한은 틈틈이 이은결이라는 캐릭터를 잡아 가고 있었다. 이정우가 맡은 강휘민이 이은결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기에, 대사를 맞추기에도 용이했다.

이렇게 된 거, 미리 리허설 한다고 생각하고 연기 합을 미리 맞춰야겠다. 좀비물이다 보니 서로의 호흡이 중요하다. 동선도 미리 맞추면 좋을 테고.

그러니.

“자고 가라?”

역시 이게 낫겠지.

* * *

군복을 입었다.

세트장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언제나 첫 촬영은 그렇다. 처음 호흡을 맞추는 자리, 정신없고 어수선한 건 당연했다.

“동선은 이렇게.”

“아, 네.”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공 이은결의 등장 장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 등장에 힘을 준다. 군인이라는 설정을 보여 주고 걸어오는 모습을 다각도로 찍었다.

“자, 촬영 시작합니다.”

대사가 없는 장면일수록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한다.

처음 연기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노숙자 역할을 맡아 단순히 걷는 장면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카메라 울렁증이 도졌고 연기를 처음 하는지라 모든 것에 서툴렀다. 지금은, 경험이 쌓인 지금은 전혀 다른 배우가 되었다.

유수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여유롭게, 항상 잘 웃는다는 이은결의 설정에 맞게 미소를 지으며 걷는다.

“컷!”

여러 번 반복해서 걸었다. 인서트 컷까지 찍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EXIT’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실감났다.

좀비물답게 엑스트라가 많다. 분장실이 사람으로 꽉 들어찼다. 몸을 잘 쓰는 현대무용수가 참여했고 리얼한 좀비를 만들기 위해 비중에 따라 스턴트맨도 참여했다.

초반이라 그나마 좀비 수가 적었다. 하나둘,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가 생겨나고 잠복기를 거쳐 전염병이 창궐한다.

“너 긴장했냐?”

그렇게 갖은 허세를 다 부리던 이정우는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건 아니었다. 가수 생활을 하면서 카메라는 질리도록 보았다. 문제는 습관이었다. 배우는 카메라를 외면해야 하는 직업이고 가수는 카메라를 찾아 보아야 하는 직업이다.

“긴장? 아니요?”

솔직히 긴장된다.

연기는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색했다. 분장실에서 이미 완성된 좀비를 보는 순간, 이게 뮤직비디오 찍는 것처럼 소규모가 아니구나, 진짜 정극이구나, 그 생각이 확 들었다.

혼자 벌벌 떨고 있는 이정우를 보며 유수한이 짧게 혀를 찼다. 순간 이정우는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 좋게 유수한과 함께하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으니까. 적어도 지금의 유수한은 연기 초보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실력과 여유가 있었다.

“힘 풀어. 원래 처음은 다 힘든 거야.”

이정우를 다독이고 철창에 들어가 리허설을 진행한다.

“이.하.사.님!”

얼씨구?

“큰.일.났.습.니-다!”

이게 사람이야, 로봇이야?

“야, 정우야.”

마치 옛날 연기 초짜였던 유수한을 보는 것 같다. 물론 저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유수한은 사람이었다. 지금 이정우는 영혼이 없는 사람 같았다. 물론 그 평가도 나름대로 후하게 쳐준 셈이었다.

“연습하던 대로만 해. 어?”

나름대로 연습을 혹독하게 시켰는데도 이 지경이니 할 말을 잃게 하는 수준이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배우 도전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심장이 막 벌렁벌렁 뛰어서…….”

어떤 상태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일단 침착해. 너 리허설인데 이러면 본 촬영은 어쩌려고.”

이정우는 물을 마시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유수한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첫 만남 때 이정우가 뭐라고 했던가.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라고 말했다.

물론 바로 받아치긴 했지만, 이정우는 자신감 있는 얼굴이었기에 이렇게 촬영을 앞두고 빌빌거릴 줄은 몰랐다.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던 것이다.

“잠깐 눈 감고 심호흡해. 마인드 컨트롤도 하고.”

뭐.

“여차하면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생각해 보든지.”

이정우는 유수한 집을 극도로 싫어한다. 혹독하게 연기 수업을 받았기에 그 어느 곳보다 싫어하는 곳이 유수한의 집이 되었다. 그 근처만 가도 소름이 끼치고 유수한을 만나게 될까 경계하게 된다.

“으.”

생각만 해도 싫은지 이정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정우는 차츰 평정심을 찾아 갔다. 여기서 연기를 제대로 못 하면 유수한은 빙그레 웃으며 멱살을 잡고 끌고 갈 것이다. 아마 잠도 안 재우고 연기 연습을 시킬 테다. 무슨 체력이 무한으로 생성되는지, 유수한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지치는 건 오직 이정우뿐이었다.

하긴, 그러니 연미새겠지.

“아마 괜찮아질 거예요.”

유수한은 김승찬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촬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구석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는 이정우 이야기도 했다. 김승찬은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이정우도 그렇고 주나도 연기 초짜였다. 그들의 배역은 비중이 작지 않았다.

주나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가장 걱정했던 이정우도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 이정우는 깽판이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수준이라 더 안도했다.

“대본 리딩만큼만 해 주면 좋을 텐데요.”

“될 거예요. 저 녀석, 우리 집 가는 거 진짜 싫어해서 어떻게든 극복할 겁니다.”

유수한은 낙관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돌로 정상에 올랐던 녀석이다. 운이든, 실력이든 정상에 올랐으니 그만큼 경험이 쌓였을 것이다. 아무리 무명 없이 톱이 되었다고 해도 우여곡절 하나 없을까. 그러니 알아서 극복할 거라고 믿었다.

“아무튼 제가 잘 다독일게요.”

유수한은 이정우를 이용하여 자신의 평판을 올리고 있었다.

첫 미팅 때부터 깽판을 쳤던 이정우를 챙기고 사람답게 만드는 좋은 선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행동들이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정우.”

유수한이 눈 감고 있는 이정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네가 그나마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니까, 다들 이렇게 봐주는 거야. 네가 아무것도 아닌 신인이었으면 이렇게 기다려 주는 사람 없어.”

지금까지 사탕을 던져 주며 달래 줬다면 지금은 채찍을 들 차례였다. 이정우는 입술이 댓 발 나오면서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유수한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어쩌면 무명 배우의 귀중한 역할을 빼앗은 걸지도 몰라.”

“…….”

“책임감 갖고 임해. 네가 정말 절박하면 울렁증도 오다가 도망가.”

“네…….”

유수한의 말이 어느 정도 먹혔는지, 이정우의 댓 발 나온 입술이 슬그머니 쏙 들어간다. 이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 하사님!”

이제야 로봇 같았던 억양이 고쳐졌다.

“큰일 났습니다!”

영창에 갇혀 있던 이은결이 고개를 들었다.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뭐든 결론이 나왔어야 마땅하니까.

“지금, 바, 밖에 좀비들이……!”

좀비?

“그게 무슨 소리야?”

바깥 상황을 전혀 모르는 이한결이 강휘민에게 다가갔다.

“일단 나오십쇼.”

사색이 된 강휘민의 얼굴을 보자, 이한결은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다. 좀비,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곱씹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은결이 죽였던 그 병사도 마치 좀비 같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좀비와 비슷하지만, 행동이 재빠르고 생각도 할 줄 아는 듯한.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최악이군.”

철컹.

문이 열리고 이제야 자유가 된 이은결은 한숨을 쉬며 강휘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

그리고.

문틈 사이로 힘줄이 툭 불거져 나온 손 하나가 튀어나온다. 엄청난 힘이었다. 단순히 문을 잡은 것뿐인데, 그 문이 우그러지고 있었다.

“강휘민!”

이은결은 앞에 서 있던 강휘민을 옆으로 밀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 맨몸으로 저 좀비를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크르르르르르…….”

침을 질질 흘리며 좀비가 다가오고 있었다.

“네 말이 맞나 보다. 이번엔 최 소위 좀비냐.”

한때는 상관이었던 자가 부하들을 죽이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에는 무기로 삼을 만한 게 없다.

“휘민아, 너 가지고 있는 거 없냐? 무기 될 만한 거. 총이면 저 새끼 쏴 버리고.”

“없습니다. 저도 급하게 도망치느라…….”

“됐다. 여기서 꺼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강휘민은 이대로 도망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여기로 달려온 건 이은결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이은결은 코앞까지 다가온 좀비를 보며 머리를 굴렸다.

뒤를 본다.

방금 전까지 갇혀 있던 영창이었다.

“별 수 없네.”

가두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