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22화 (122/175)

122. 연기에 미친 새끼(feat.연미새)

이정우는 ‘EXIT’ 출연을 확정 짓고 짧게나마 연기 수업을 받았다.

그래 봤자 진지하게 임한 건 아니었다. 회사에서 하라고 해서 한 거지, 딱히 하고 싶어서 수업을 받은 건 아니었다.

이정우에게 연기는 딱 그 정도였다.

더 많은 인기를 얻어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연기를 만만하게 보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돌 개나 소나 다 연기를 한다. 같은 멤버도 연기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있나? 그런 생각도 했었다.

그렇기에.

“다시.”

지금 이정우는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이번엔 왜요?”

“끝음 처리가 구려요.”

피곤하지도 않은지 유수한은 대사 하나하나 모두 확인하고 있었다. 나름 이정우는 유수한에게 연기를 배운다는 부담감에 술집도 안 가고 집에서 대본을 읽었다.

나름대로 노력이란 걸 하고 왔기에 내심 자신만만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처음 유수한은 이정우의 연기를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다.

이정우의 연기에는 겉멋이 잔뜩 들었다. 그 겉멋이 얼마나 사람을 못나 보이게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발음은 흐리멍덩하고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 겉멋이 들어갈 만한 배역도 아니었는데.

“끝음이 자꾸 날리잖아요. 봐요.”

유수한은 직접 시범을 보였다.

어떻게 하면 단단하게 소리가 뻗어 나가는지 보여 주고, 그래도 이정우가 납득하지 못하면 직접 영상을 찍어 보여 주었다. 이건 강철수에게 배운 거다. 사람은 직접 눈으로 봐야 모자람을 쉽게 인정하게 된다. 그건 이정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내, 내가 이렇게 연기한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

상상과 현실은 늘 다른 법이었다. 스스로는 멋지게 연기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어색한 표정과 잔뜩 힘 들어간 목소리에 불분명한 발음까지 엉망진창이었다.

“현실 자각 됐어요?”

유수한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이정우를 보았다.

“본인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봤으면 생각이란 걸 하면서 연기합시다?”

말투도 강철수를 따라가는 걸까.

유수한은 아무나에게나 그러지 않지만, 벌써 이정우에게는 비꼬는 게 생활화되었다. 현실을 깨달은 이정우는 이제야 조금씩 고분고분해지고 있었다.

“발성 연습 좀 해요. 가수라면서 발성이 왜 이렇게 엉망이에요?”

유수한의 쓴소리에 이정우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야, 보컬 멤버가 아니었으니 춤이나 연습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배분된 노래 파트도 별로 없었고.

“지금 새벽 1시예요.”

“근데요.”

“저 여기 온 지 6시간이나 지났거든요?”

이제 그만 집에 좀 보내 달라는 말이었다.

“됐고요. 집에 가고 싶으면 사람답게 연기나 해요.”

유수한은 지치지도 않는다.

이정우는 그의 체력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이건 연기에 미친 새끼다. 같은 소속사도 아닌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연기를 가르쳐 준답시고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거다.

“저기요. 정상이세요?”

겨우 물 한 컵 마시며 이 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이정우가 결국 참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나 집에 가고 싶다고!”

하지만 그런 발악에도 연기에 미친 유수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정우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갈 거라고!”

배도 고프고 하도 대사를 읽어서 목도 아프다. 지금 당장 감옥 같은 이 집에서 벗어나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딜 가겠다고?”

유수한은 그의 앞을 막아서며 미소를 지었다. 애석하게도 이정우는 유수한을 이길 수가 없다. 액션스쿨에서 보았듯 유수한은 몸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었다.

‘이길 수 있을까?’

짧게 생각하던 이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코 저 새끼를 이길 수 없다. 스턴트맨보다 액션을 잘하는 유수한을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이정우는 절망에 찬 얼굴로 주저앉았다.

덥석.

유수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애절하게 말했다.

“집에, 집에 가고 싶어요.”

응, 안 돼.

* * *

“안녕하세요.”

드라마 ‘EXIT’ 대본 리딩 당일.

유수한은 늘 그렇듯 누구보다 빨리 대본 리딩 현장을 찾았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대본을 읽어 본다. 현장에 도착한 지 10분 정도 지나.

“저 왔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정우가 출석체크 했다.

출연자 미팅 때, 지각하며 가장 늦게 왔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정우는 유수한에게 대본 리딩에는 그 누구보다 일찍 오겠다고 약속했다. 약속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유수한의 집에서 탈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연미새 새끼.’

이정우가 자리를 찾아 앉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유수한의 집에서 연기를 공부하던 날, 이정우는 24시간도 모자라 48시간 가까이 그 집에 감금되었다. 물론 밥도 주었고 잠도 자게 해 주었지만,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에 보내 주질 않았다. 하필 스케줄도 없어서 도망갈 구멍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 하라는 대로 하고 잤어요?”

“네, 아무렴요.”

허.

그렇게 안 했으면 또 뭔 짓을 하려고.

“이따 두고 볼게요.”

그 말에 소름이 끼치는 이정우였다.

연미새. 이정우가 속으로 유수한을 부르는 별명이었다. 연기에 미친 새끼의 줄임말로, 그 별칭만큼 유수한에게 어울리는 말은 없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유수한 씨!”

이정우의 매니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유수한 역시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악수를 청한다. 이정우 회사에서는 유수한을 좋게 보고 있었다.

아이돌은 연차가 쌓여 갈수록 관리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이정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말 안 듣는 이정우를 한 번에 눌러 버린 유수한이었기에, 다들 두 손 들고 환영하고 있었다.

“우리 정우 예쁘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에 유수한이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네, 정우 씨가 연기만 잘 해 준다면 정말 예쁜 후배로 봐 줄 텐데요.”

“수한 씨 같은 훌륭한 배우 선배님 덕분에, 우리 정우가 그 길을 잘 따라갈 것 같습니다.”

이정우에게 붙은 매니저는 로드가 아니었다.

음악 방송이나 돌 때는 로드가 붙지만, 드라마 판은 조금 더 급이 높은 매니저가 따라 붙는다. 실장급이었으니, 이정우도 예전처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유수한에게 기 잡힌 상태라 더더욱 그럴 일은 없었다.

“아, 그럼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유수한이 힐끔 이정우를 보며 씩 웃었다.

“오늘 대본 리딩 보고 제 마음에 안 들면 이정우 씨, 좀 데려가도 될까요?”

그 순간, 이정우가 움찔했다.

“아니, 저 오늘 스, 스케줄 있어요. 그치? 형? 나 오늘 스케줄 있지? 예능 들어왔다고 하지 않았어?”

다급히 매니저를 붙잡는 이정우였다.

“아니? 너 드라마 때문에 지금 스케줄 없잖아.”

절망.

“아, 그렇습니까?”

유수한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참 잘 됐네요.”

오늘 어떻게든 대본 리딩을 잘 해야 한다.

저 연미새에게 또 감금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제대로 연기를 해야 한다. 지금 이정우는 절망에 물든 얼굴로 대본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디 한번 절 만족시켜 보시죠?”

저 연미새 새끼.

이정우가 투덜거리며 떨리는 눈으로 대본을 읽었다.

* * *

김승찬은 경계 대상 1호로 이정우를 찍었다.

원하지 않은 배우였지만, 인생사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는 없다. 이정우 역시도 끌고 가야 할 배우였다. 문제는 쉽게 길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거였지.

[맡겨 주세요. 제가 사람 만들 테니.]

아무리 유수한이라도 이정우를 단 시간에 조련하는 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웬걸. 지금 이정우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찍 도착한 건 물론이고 오는 사람마다 일어나서 공손히 인사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리에 앉아 대본에 눈을 떼지 않고 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역시 같은 망나니 출신이라 다루는 법을 잘 아는 걸까?

뭐든 좋은 일이다. 드라마든 영화든 감독이 제일 힘이 있다는 말도 옛말이다. 물론 스타 감독이라면 말이 다르겠지만, 점차 배우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감독 머리 위에 올라가려는 배우들이 늘었다.

심지어 마음에 안 든다며 촬영을 거부하거나 중간에 하차하면서 작품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문에 상처받은 작가가 몇 년간 작품을 쓰지 않고 잠적하는 경우도 있다.

이정우는 아이돌 출신이지만, 대형 기획사 소속이었고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였다. 마음만 먹으면 감독 머리 위에 올라갈 수도 있다. 기 싸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진다. 배우에게 한번 휘둘리면 모든 것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요즘은 배우 입맛 맞추는 게 보통이지.’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 맞춰 주는 게 보통이었다.

부지런히 대본 리딩 시작 전에 분위기를 살피던 김승찬이 숨을 고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이크를 든 김승찬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감독 김승찬입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드라마의 첫 시작을 알리는 날입니다. 이렇게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꽤 오랫동안 준비한 드라마고, 김승찬에게는 첫 드라마였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준비했다. 나름대로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이은결 역할을 맡은 유수한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사 이은결.

유수한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기존 캐릭터와 어떻게 차별화를 줄지 고민했다. 바로 직전에 찍었던 영화 서윤한과는 달라야 한다. 서윤한은 조금 더 딱딱한 이미지였고 이은결은 유들유들하면서도 철두철미한 면모가 섞여 있었다.

“사람이 아니다.”

갑자기 나타난 좀비로 인해 부대가 혼돈에 빠졌다.

이은결은 누구보다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침을 질질 흘리며 기괴한 움직임으로 걷는 좀비, 그 얼굴이 익숙할지언정 사람이 아니었다.

“시체를 파먹는 존재가 어떻게 인간일 수 있겠어!”

병사였던 존재는 순식간에 괴물이 되었다.

이은결은 순식간에 사람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괴물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도 모자라 숨이 멎은 시체를 뜯어 먹는다. 사람이 손톱으로 뱃가죽을 찢을 수 있던가? 내장을 헤집어 먹을 수 있던가? 그건 사람이 아니다.

타앙!

총소리가 울린다. 이은결은 깔끔하게 총을 쏴 사람이었던 괴물을 죽였다. 충격적인 상황을 관망하다가는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죽였어?”

“이 하사가 사람을 죽였다!”

항상 원하는 대로 상황이 움직여 주지는 않는다.

중죄를 저지를 범죄자를 사살해도 살인죄가 적용된다. 집에 강도가 무단 침입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실수로 사람을 죽여도 정당방위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억울합니다!”

무릎을 꿇은 채로 이은결이 소리친다.

“대대장님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수가 없었다는 걸, 대대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은결은 고작 하사.

거기에 젊다. 누군가의 명령이 아닌 스스로 판단해서 총을 든 것이 화근이었다. 군 내에서 총기를 소지했다는 오해까지 받았다. 일이 벌어지고 이은결은 바로 무기고로 향했다.

그 움직임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괴물이 된 장병은 이은결 역시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평소 그런 민첩한 움직임을 가진 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짧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급박한 상황에서 생각만 거듭하는 건 좋지 못했다.

“이 하사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나.

전혀 괜찮지 않다. 같은 계급이었지만, 먼저 부사관이 된 이은결은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말 그대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왜 갑자기 김 병장이 날뛰었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 심문했어야 한다며…….”

강휘민이 눈치를 살핀다.

여기까지 이은결을 찾아온 것도 용기를 낸 것이다. 그런 강휘민을 이해한다. 이은결은 한숨을 쉬고 작게 속삭였다.

“잘 들어. 내가 볼 땐 이번 일 심상치 않다. 세상에 그런 놈은 처음 봤어. 한순간에 눈이 뒤집히고 흰자만 보이는데 앞은 또 잘 걸어. 침은 또 질질 흘리고. 그리고 사람을 죽일 때, 누가 목덜미를 깨물어서 죽이냐? 목을 조르거나, 둔기로 머리를 세게 가격하거나 그러겠지. 짐승이나 목덜미를 물어 죽인다.”

이미 갇혔고 자유를 빼앗긴 마당에 할 수 있는 건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말입니다. 하사님이 그렇게 생각하셔도 다른 사람들은, 특히 윗분들은-”

“알아, 무슨 말 하고 싶은지.”

“…….”

“내 촉이 그래.”

생각을 거듭해도 나오는 결론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을 쉽게 떨쳐 낼 수가 없다. 결국 강휘민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몸조심해라.”

고작 이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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