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20화 (120/175)

120. 발은 두 개

연예인은 보통 관심을 먹고 산다.

화면에 나오는 이미지가 좋은 연예인도 있고 좋지 않은 연예인도 있다. 물론 수많은 사건 사고를 일으키며 자신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했다.

이미지 관리.

연예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미지 관리가 필요했다. 카메라 앞에서는 자신의 모난 성격을 숨길 줄 알아야 하고 잘 웃는 연습도 해야 한다.

카메라가 꺼지면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구설수를 일으키지 않는 한, 카메라 밖의 연예인의 모습을 대중들은 거의 모른다.

“정우야. 힘들겠지만 잘하자. 응?”

뭐, 아이돌뿐만 아니라 모든 연예인이 그럴 것이다.

인기를 얻고 급이 올라가면 매니저가 쉽게 컨트롤하기 힘들어진다. 비위 하나하나 다 맞추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한다. 더군다나, 로드 매니저라면 더더욱 자세를 낮춘다.

겸손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연예인에게 겸손은 사람답게 구는 것이다. 모든 걸 다 회사가 해 주고 매번 매니저와 코디가 달라붙는다. 양말 하나도 제 손으로 신지 않는 연예인이 널렸다. 가만히 있으면 머리를 만져 주고 옷을 입혀 준다. 카메라 앞에서는 혼자 할지라도 그 외의 시간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니, 세상 물정을 몰라 사기 당하는 연예인도 부지기수였다.

인기는 한철이다.

연예계만큼 냉정한 곳도 없었다. 인기가 있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왕처럼 대해 준다. 귀족처럼 떵떵거리며 살다가 인기가 떨어지는 순간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오죽하면 연예계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조언이 ‘인기는 한때’라는 말일까.

“아, 진짜. 여긴 왜 와서 잔소리야?”

이정우는 지금 인기 절정의 아이돌그룹 멤버였다.

가장 돈을 잘 벌 때였고 항간에는 최근 강남에 있는 건물 한 채를 매입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대형 소속사 출신인 만큼 데뷔하자마자 인기를 얻었고 무명 기간 따윈 없었다. 그러니 더더욱 현실을 몰랐고 인기에 취해 있었다.

“대본은 좀 읽어 봤어?”

“어.”

이정우는 짧게 대답했다.

어제 밤새 클럽에서 놀았다는 사실은 쏙 숨기고 있었지만, 그의 몸에서 술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었기에 다들 눈치채고 있었다.

“너 연기 계속 하고 싶어 했잖아. 응?”

그렇다.

이정우는 계속 연기에 눈독 들이고 있었다. 같은 그룹의 멤버 하나가 재작년부터 배우 일을 시작했고 제법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이정우는 시기 질투가 많은 멤버였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 멤버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알아, 안다니까?”

지금 이정우는 배알이 꼴린다.

그 멤버는 주연으로 시작했다. 이정우는 나름 주연이었지만, 주연 느낌은 아니었다. 주요 배우라고 쳐도 조연에 가까운 주연이었다.

물론 이정우의 회사에서도 나름 신경 쓴 드라마였다. 낫플릭스 독점 제작일 뿐만 아니라, 출연진 역시도 좋았다.

요즘 한창 잘나가는 유수한이 주연이었고 선 굵은 연기력으로 신스틸러로 불리는 최한길에, 신인 걸그룹이지만 데뷔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1위를 찍은 걸그룹 멤버 주나가 무려 이정우의 상대역이었다.

나름 회사에서는 연기자로서의 첫 시작을 탁월하게 준비했다. 문제는 이정우의 꿈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었다.

“감독님 눈 밖에 나지 않게 조심하고. 응?”

“아, 진짜. 내가 뭘 잘못했길래 형까지 와서 이래?”

이정우는 잔뜩 뿔이 났다.

지각한 거? 실수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들어오자마자 죄송하다고 말했다. 늦게 일어났고 시간에 맞춰 출발하려고 생각했지만, 차가 생각보다 밀린 탓에 20분이나 늦고 말았다.

오늘은 공식적인 촬영 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대본 리딩이 있는 날도 아니었다. 고작 출연자 미팅이었고 서로 얼굴 보며 대화를 나누는 자리라고 들었다.

물론 작품에 관해서 대화를 주로 나눌 테니 준비가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이정우는 연기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거슬려, 진짜.”

투덜대며 담배를 피우던 이정우가 한숨을 푹 쉰다.

최한길에 이어서 유수한에게도 한 소리 들었다. 최한길은 나이가 있는 사람이니 참는다지만, 비슷한 또래였던 유수한은 참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갔다가는 그리 좋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이를 꽉 깨물고 참았다.

“텃세 오지네.”

지금 이정우는 유수한이나 최한길의 행동이 단순히 배우들이 부리는 ‘텃세’라고 생각했다. 인가를 얻으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못하게 된다.

첫 시작부터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 없었던 김승찬은 최한길을 달래고, 그다음 매니저를 호출했다. 직접 와서 알아서 자중시키라는 의미였다.

물론.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 * *

액션 스쿨.

유수한은 전체적인 액션 합을 맞추기 위해 일주일간 액션 스쿨을 다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정우를 만났다.

이정우와 자주 부딪히는 건 아니었지만, 같은 무술 감독이 진행하기 때문에 꼭 한 번은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유수한은 이정우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첫 미팅 때도 느꼈지만, 연기에 대한 자세가 글러 먹었다. 아이돌 하다보면 배우로 전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돌 수명이 짧았기에 나중을 위해 보험을 들어 놓는 식이었다.

물론 아이돌 멤버 중에도 연기를 사랑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경우도 분명 있겠지만, 이정우는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정우 씨.”

유수한은 개인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일에 있어서는 그랬다. 일은 일이었고 사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

“예, 안녕하세요.”

이정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목 인사를 했다.

출연자 미팅 때 이정우는 유수한에게 된통 당했다. 유수한은 쉴 틈 없이 이정우에게 질문을 쏟아 냈다. 캐릭터 해석은 어떻게 했는지, 연기 톤은 어떻게 맞추었는지,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별 질문을 다 쏟아 냈다.

이정우는 더듬더듬 질문에 대답을 하긴 했지만, 유수한에게는 시원찮은 대답이었고 스스로도 혼란에 빠질 정도로 엉망이었다.

결국, 마지막 유수한이 했던 말은.

[아무래도 연기 공부 더 하셔야겠어요.]

였다.

“정우 씨는 몸은 잘 쓰는 편이에요?”

서글서글.

유수한은 잘 웃는다. 요즘 낫플릭스 ‘EXIT’ 캐스팅 관련 보도가 나오고 있었고 유수한은 관련 반응을 찾아보고 있었다.

뭐라더라.

- 헐, 내 새끼 유수한이랑 같이 드라마 찍는다 ㅠㅠㅠㅠ

└ ㅠㅠㅠㅠ 완전완전 좋다 ㅠㅠㅠㅠㅠㅠ 유 배우님에게 많이 배웠으면♡

└└ 내가 애정하는 정우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수한님과 함께한다니 너무 좋자나♡♡♡

└└└ 캐스팅 대박이다 ㅋㅋㅋㅋㅋ 비주얼 쇼크가 두 배로 몰려오네~

라고 했지.

두 사람을 묶어서 찬양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럴 만도 하다. 두 사람은 꽤 붙는 장면이 많았다. 사람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갇힌 이은결을 구해 주는 사람이 이정우가 맡은 ‘강휘민’이었다. 강휘민이 가장 잘 따르던 상관이 이은결이었기에 두 사람은 꽤 자주 붙는다.

“아무래도 댄스 담당이니까 몸은 좀 쓰죠.”

이정우는 빠득빠득 이를 갈고 있었다.

연기로는 밀릴지 몰라도 몸 쓰는 건 자신 있다. 모 프로그램에서 탁월한 운동 신경을 보여 주었던 이정우였고 액션 스쿨에서도 몸 잘 쓴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렇기에 유수한보다 액션을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헐.”

유수한은 날아다녔다.

“서전트 점프가 무슨.”

혀를 찰 정도였다.

가볍게 서전트 점프를 뛰었는데, 탄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발을 쓰는 것도 익숙해 보였다. 날렵하게 회축을 차는 모습에 이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회축은 이정우도 찰 수 있지만, 유수한은 클래스가 달랐다.

“괴물인가?”

텀블링도 잘한다.

아니, 이제 보니 못하는 게 없었다. 이정우는 완전 기가 눌렸다. 사실 유수한의 실물을 보고 걱정하고 있었다. 얼굴도 작고 피부도 좋았다. 눈도 크고 머리를 밤톨처럼 잘랐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잘생겼다.

이정우는 한 화면에서 나란히 유수한과 같이 있으면 얼굴이 죽을까 걱정이었다. 더군다나, 군인 역할이었기에 짧게 머리를 잘라야 하는데, 그마저도 자신이 없다.

거기다 연기력?

아무리 지금 열심히 준비한다고 해도 유수한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러면 액션이라도 잘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유수한은 이정우를 압도하고 있었다.

“정우 씨, 몸 다 풀었어요?”

홀린 듯 유수한의 몸놀림을 지켜보던 이정우가 어깨를 움찔했다.

“아, 네…….”

죽을 맛이다.

자존심, 성질부리는 것도 상대에 따라 다르다. 유수한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보자 이정우는 오랜만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호오. 생각보다 몸은 좀 쓰네.”

유수한은 아이템발로 액션을 잘하게 된 터라, 이정우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저 정도면 진짜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었다.

“연기력은 영 꽝인데.”

제대로 연기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지만, 이미 출연자 미팅 때 다 알아본 유수한이었다. 우선 평소 말하는 발성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애초에 보컬 멤버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발성이 잡혔을 리도 없다. 더군다나, 캐릭터 이해도가 좋지 않았다.

아무리 액션물이라고 해도 본인이 연기할 캐릭터는 어느 정도 분석이 되어야 마땅했다. 이정우는 애초에 쉽게 보고 연기를 시작했을 것이고, 짧게 연기 수업을 받았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정우 씨.”

가만 두고 보다가는 작품에 악영향을 끼칠 것 같다.

“연기 연습은 잘 하고 있어요?”

물을 마시며 쉬고 있던 이정우가 미간을 좁혔다.

“대본 리딩 전에 연기 좀 봐 줄까요?”

“왜요?”

왜긴.

“음, 이정우 씨가 발 연기 한다고 소문날까 봐?”

“그게 뭐요. 내가 욕 먹는 건데.”

“그렇긴 한데, 작품에도 영향이 끼치니까.”

유수한은 빙긋 웃으며 이정우의 뼈를 때리고 있었다.

“적어도 정우 씨가 사람처럼 연기해야, 내 커리어에 흠집이 안 나니까.”

그 말에 이정우는 발끈했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이미 유수한에게 기를 잡힐 대로 잡힌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못 할 것 같은데.”

“…….”

“며칠만 시간 빼요. 정우 씨도 발 연기라고 욕먹는 것보단 나을 텐데.”

유수한은 이정우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동안 기를 확실히 눌러 놓을 생각이었다. 배우는 서로 호흡이 중요하다.

“하는 걸로 하고.”

따로 연락하죠.

* * *

집에 돌아온 유수한은 샤워를 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오늘은 ‘노예주점’ 8회가 하는 날이었다. 항상 시간만 된다면 본방송을 챙겨 본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에서도 어떻게 나오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유수한이었다.

[온에어/불판] 노예주점 8회 같이 달려요~ (૭ ᐕ)૭ +121

오 피디가 연출하는 ‘노예식당’은 유수한의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을 주었던 프로그램이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특성상,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드러났고 소탈한 유수한의 모습을 사람들은 좋아해 주었다.

- 유수한 보면 볼수록 스윗해 진심

- 노예주점 유수한 얼굴 열일하는 프로그램 ㅇㅈ?

└ ㅂㅂㅂㄱ

└└ ㅇㅈㅇㅈㅇㅈㅇㅈ 쌉인정

└└└ 맞아 ㅋㅋㅋㅋㅋ 얼굴 열일 오짐 ㅋㅋㅋㅋ

- 유수한 같은 남자 만나고 싶다... 어디 없나?

└ 얼굴에서 찾을 수 없음 ㅇㅇ

└└ 없어

└└└ 없지 잘생기고 피지컬 좋고 다정하고 돈 많은 남자가 흔하겠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예능 ‘노예 시리즈’는 앞으로 불러 주는 대로 계속 출연할 생각이었다. 유수한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화면을 보았다.

‘노예주점’이 시작되었다.

「돈 다 떨어졌다. 이제 어쩌지?」

컬러링북을 열심히 하고 음식을 열심히 팔았지만, 대만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였다. 숙박비를 매일 지불해야 했고 물가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그거 아세요?」

그리고.

윤지우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발은 두 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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