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국가대표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마음이었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총을 들었다. 사격은 서윤한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예전 서윤한이 총을 들었을 때는 항상 타인을 위해서였다. 그게 마치 조국을 위한 것처럼 세뇌를 당한 채 살아왔다.
지금은 달랐다.
[뛰고 있는 네 심장을 위해 쏴.]
나를 위해 총을 들었다.
이인태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방아쇠를 당겼다.
「사실 서윤한 선수는 애초 구상한 그림에는 없던 선수잖아요?」
「맞습니다. 말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이죠. 하지만 실력만큼은 신인이라고 할 수 없는 선수입니다. 어떻게 말하면 정확할까요? 흔들림이 없어요. 경험도 별로 없을 텐데, 늘 일정한 기록을 보여 줍니다. 앞으로 이 선수가 얼마나 성장할지 궁금할 정도예요.」
해설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격 판을 흔들며 새롭게 등장한 신인 선수는 이미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서윤한은 기록을 확인하며 다음 사격을 준비했다.
공기권총의 묵직한 무게를 느낀다. 조준을 하고 다시금 방아쇠를 당겼다. 흔들림 없이 방아쇠를 당긴 후에도 총이 흔들리지 않도록 무게감을 유지한다.
「10.8!」
「서윤한 선수가 흔들림 없이 우승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두 번째 대회.
서윤한은 마지막 사격을 마치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총을 내려놓았다. 최선을 다한 경기였고 경기 결과는 역시 이변은 없었다.
「서윤한 선수가 국가대표로 향하는 귀중한 포인트를 얻습니다!」
「지금 서윤한 선수가 나타나면서 국가대표 선발전이 재밌어졌어요. 후발 주자지만, 차근차근 포인트를 쌓고 있는데 이인태 감독이 서윤한 선수를 어떻게 가르칠지 궁금합니다.」
「네, 맞습니다. 이대로라면 서윤한 선수의 국가대표 합류는 확실시되는 걸로 보이는데요. 기존 그렸던 구상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선수라 앞으로 남자 사격계가 어떻게 변할지 정말 궁금합니다!」
흥분한 해설의 목소리.
이인태는 팔짱을 끼고 서윤한의 경기를 진지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기록을 확인한다. 최고점은 10.9였으며 평균 점수는 10.3의 고득점이었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점수가 상승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물건이군.」
그 말이 절로 나온다.
서윤한은 지켜볼수록 욕심이 나는 선수였다. 아시안 게임은 물론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볼 법한 선수였다.
「수고했다.」
「재밌었어요.」
솔직하게 서윤한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 했다.
한 발 한 발 쏘는 게 희열이었다. 모든 짐을 털어 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총을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벼웠다.
「잘했다.」
이인태가 씩 웃으며 서윤한의 어깨를 두드리고 앞서 걸어갔다.
* * *
서윤한은 괴물처럼 국가대표 선발전에 필요한 포인트를 집어 삼켰다. 국가대표 선발전 역시 어려울 것 없이 돌파했다. 이변이 없다면 서윤한이 국가대표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중국은 위험합니다.」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이번 아시안 게임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다. 중국은 북한 사람에게 위험한 나라였다. 목숨을 걸고 탈북에 성공해도 중국에서 공안에게 잡히면 꼼짝없이 북한으로 끌려간다.
심지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어도 예외가 없었다. 그렇기에 최지원은 아무리 아시안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에 가는 것을 우려했다.
「가고 싶습니다.」
「분명 북한이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탈북자가 한국 국가대표가 되었다는 걸 그들이 반길 거라 생각합니까?」
「그래도.」
가고 싶습니다.
서윤한은 흔들림이 없었다.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위험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위험 때문에 중국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를 포기하는 건 선수로서 리스크가 컸다.
「되게 고집 센 거 알아요?」
최지원이 못마땅한 눈치로 말했다.
「사람 말 더럽게 안 듣는 것도 알고 있고?」
「알고 있습니다.」
이인태는 묵묵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최지원의 말도 이해가 되었고 서윤한의 고집도 이해가 된다. 선수로서 국가대표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북한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국민이 된 서윤한에게는 더 큰 의미일 것이다. 서윤한은 사격 선수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 주고 싶었다.
국가대표로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었고 그 이후에 올림픽 무대에도 서고 싶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절 누가 믿겠습니까?」
서윤한이 최지원을 보며 말했다.
「북한 사람이 국가대표가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국가대표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널렸는데, 여기서 제가 국가대표를 포기하면 누가 절 믿습니까?」
분명 서윤한의 실력은 독보적이다.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그의 실력은 사격 판을 뒤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달라붙었다.
어떤 누군가는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격 선수로 보았지만, 어떤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못된 사람으로 보았다.
국가대표 선발전은 늘 치열했다.
아주 오랫동안 사격 선수로서 실력을 갈고 닦았던 사람들은 새로운 바람을 원하지 않는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데, 한 사람이 더 달라붙는 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이기기 쉽지 않은 상대가. 그러니 시기 질투가 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고 싶습니다. 선수로서 도망가고 싶지 않아요.」
서윤한의 의지는 굳건했다.
「말 더럽게 안 듣네…….」
최지원이 한숨을 쉬었다.
말린다고 될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국가대표 신분으로 중국에 가는 거니 북한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북한이 어떤 나라인가?
그리고 또 중국이 어떤 나라인가?
앞서 열렸던 올림픽에서 말도 안 되는 편파 판정을 하며 전 세계 축제를 들었다 놨다 하던 답 없는 국가가 아닌가?
「따로 경호할 사람을 붙이겠지만,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건 알아 두세요.」
「네.」
「저도 웬만하면 좋은 결말이었으면 합니다.」
최지원이 돌아가고 이인태는 말없이 술을 꺼냈다.
항상 소주나 맥주만 마시던 이인태였는데, 무슨 일인지 양주였다. 선반에 고이고이 모셔 두었던, 미국에 갔을 때 와이프가 사 주었던 값비싼 양주였다.
「한잔하자.」
서로 마음이 복잡하니 술이 제격이었다.
안주는 집에 있는 소시지를 굽고 계란을 꺼내 프라이를 했다. 그걸로도 모자라면 짭짤한 과자도 꺼내 안주 삼았다. 비싼 양주에 어울리지 않는 안주였지만, 딱히 중요하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가는 게 참 힘들지?」
「예상했으니까.」
서윤한은 위스키를 한 모금 머금었다.
그러다 그의 눈이 찌푸려진다. 처음 먹어 보는 위스키였다. 향은 좋은 것 같은데, 도수가 높아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너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 아냐?」
「…….」
「그렇게 맛없게 먹으라고 꺼내 준 거 아니야, 인마. 얼음이나 가져와.」
서윤한은 말없이 얼음을 가져왔다.
유리컵에 얼음을 넣고 위스키를 붓는다. 얼음이 녹으며 독한 술이 한결 중화되었다.
「마셔.」
말없이 술을 마신다.
조금씩 취기가 올라갈 즈음에 이인태의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어, 딸!」
이인태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딸에게 전화가 왔는데, 무슨 일인지 영상 통화였다.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딸의 얼굴에 이인태는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했다.
[아빠!]
「어, 딸. 무슨 일이야?」
이인태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서윤한 선수는?]
「뭐, 누구?」
[서윤한 선수도 거기 있어?]
「있는데, 갑자기 왜?」
[보여 줘!]
딸이 다른 사람을 찾는다.
이인태가 비싼 위스키를 꺼낸 건 서윤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딸이 아빠보다 서윤한을 찾으니 괜히 질투가 난다.
[잘생긴 서윤한 선수 보여 줘!]
하지만 어쩌겠는가.
「야, 인사해라. 내 딸이다.」
딸이 그러고 싶다는데.
서윤한은 어색하게 핸드폰을 들고 딸과 인사를 한다. 짧게 대화하는 그 모습을 이인태가 지켜보고 있었다.
최지원이 찾아오고 이인태는 두 가지 감정이 찾아왔다.
사격 선수로서 서윤한의 눈부신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는 감정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동시에 찾아왔다. 서윤한이 노리는 것은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었다. 그건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이제 단체전이 폐지되어 단 하나의 금메달을 노리고 출전하는 것이지만, 서윤한이라면 충분히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도 아니고 아시안 게임에 위험을 감수하는 건 망설이게 된다. 차라리 다음 올림픽까지 기다리자고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서윤한 선수! 아시안 게임 기대할게요!]
하지만 딸의 목소리를 들으니 생각이 흔들린다.
서윤한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선수로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선수로서 국가대표는 큰 영광이었고 아시안 게임 역시도 큰 무대였다.
작은 물보다 큰물에서 뛰어놀고 싶은 건 당연하다. 이인태 역시도 선수였기에 그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국가대표 시작부터 포기하면 되겠냐.」
결국.
이번에도 이인태는 서윤한에게 동화되었다.
「가 보자.」
항저우.
* * *
항저우 아시안 게임.
선수들은 자유롭게 선수촌을 오가며 움직이지만, 서윤한은 오직 선수촌에만 박혀 있었다. 괜히 밖을 나다니다가 괜한 문제가 생길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최지원 역시도 항저우에 들어와 선수촌 근처에 머무르며 서윤한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서윤한이 출전하는 공기권총 10M 티켓이 있었다.
서윤한은 합의했던 대로 공기권총 10M 출전이 끝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윤한아. 라면 먹자.」
밖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선수들과 달리 서윤한은 항상 선수촌에 박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중국이 준비한 음식은 최악이었다.
「여기 음식 맛없어서 사 왔어.」
옹기종기 모여 라면을 끓인다. 햄도 넣고 계란에 떡도 넣는다. 서윤한은 팔팔 끓는 라면을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요즘 세상 참 좋아졌어. 마트에 김치도 팔더라.」
「그거 지네 음식이라고 우기려고 파는 거 아니에요?」
「아, 이거 한국에서 나온 거야. 한국산!」
「하여튼 개막식 봤어요? 이젠 한복 입는 것도 자연스럽더라, 걔네.」
자연스럽게 개막식 이야기가 나왔다.
중국은 올림픽에서 보여 주었던 것처럼 한국의 문화를 강탈하려 했다. 서윤한은 선수들과 함께 개막식에 참여했다. 권위 있는 전국 대회는 나갔지만, 아시안 게임처럼 큰 무대는 처음이었다. 당연히 개막식도 처음. 긴장도 했지만, 국가대표라는 사실에 모든 것이 의연해졌다.
「라면 맛있네요.」
서윤한은 라면에 집중했다.
이제 한국 사람이 다 됐다. 옛날 북에 살 때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는데, 지금은 맛을 가리게 됐다.
「같이 나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말에 서윤한은 그저 웃었다.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중국이라서 더더욱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나중에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비로소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제한된 자유였다. 중국에 오게 된 것도 많은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기에 서윤한은 지금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서윤한은 눈앞에 둔 경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 선수촌에 있을 때는 헬스장에서 가볍게 운동했다. 팔 근육을 키우고 사격 자세를 유지하는 연습을 주로 했는데, 오늘은 다른 선수들과 어울리며 식사를 했다.
방은 어둠이 가득했다.
함께 방을 쓰는 선수는 기념품을 구경하러 간다고 나간 상태였다. 일부러 독방이 아니라 함께 숙소를 사용한다. 그게 더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탁.
불을 켜는 그 순간.
「!」
어둠에 숨죽이며 있던 괴한이 칼을 든 채 서윤한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