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네 심장을 위해 쏴
서윤한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사격을 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뭐라고 했더라.
- 사격이 이렇게 멋있는 스포츠였나? 예술 작품 보는 줄
└ 2222222
└└ ㅇㅈ 사격하는 모습 수백 번 나와도 안 지루할 듯
└└└ 걸어다니는 조각상이더라
└└└└ 다리 길고 팔도 길어서 간지 쩔어;;; 침 나옴
└└└└└ 침이 왜 나옴? ㅋ
그랬다.
시크하게 총구를 겨누는 모습은 멋진 예술 작품 같았다. 영화 상영 내내 사격하는 모습만 나와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
이경민은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댓글을 떠올리고 있었다. 처음 추레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왔을 때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짧은 머리에 무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 모습은 왜 그가 달동네에서 유명해졌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얼굴이 개연성임
└ 2222 얼굴이 스토리의 허점을 모두 보강해줌
└└ 333 말모말모~
└└└ 4444 아, 저게 개연성 있나? 하는 순간 얼굴 보면 없던 개연성이 생김 ㅇㅇ
└└└└ 555555 ㅇㅈㅇㅈ
그 말이 정답이었다.
얼굴이 개연성. 물론 주인공을 지탱해 주는 이인태, 정동인의 연기력도 일품이었다. 초반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서는 적당히 무게감을 가지면서 코믹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점차 위기가 고조되는 장면에서는 서윤한을 버려야만 하는 자괴감에 물든 섬세한 감정 연기로 가볍던 흐름을 묵직하게 만들어 주었고, 이어서 서윤한에게 흐름을 건네주었다.
서윤한 역시도 그 흐름을 그대로 받아먹는다.
유수한의 연기력이 늘었다. 그건 정동인 효과였다. 정동인과 함께하며 연기를 배워 나가고 있었다. 감정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흐름에 따라서 감정을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표정은 어느 선에서 사용해야 하는지. 그런 세세한 것들에 대한 조언을 들어 가며 경험을 쌓아 가고 있었다.
「코치님.」
서윤한은 일주일 동안 국정원에 잡혀 있었다.
그 시간동안 고문을 당했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았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서윤한을 사람처럼 대했다.
사람으로 대했다.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북한에서 언제 사람대접 받으며 살아 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 보면 서윤한은 남한에 와서야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서윤한은 자유의 몸이 되자 바로 이인태를 찾았다.
바로 이인태의 집을 찾았지만, 그는 없었다. 그다음 찾은 곳은 사격 연습장이었다. 그곳에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움직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윤한은 이인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건 이인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포장마차였다.
집 근처에 있는 허름한 포장마차. 이인태는 종종 이곳을 찾아 술을 마셨다. 마음이 힘들거나 가족이 생각날 때 찾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서윤한과 찾던 곳이기도 했다.
「너…….」
이인태는 일주일 간 잠을 통 잘 수 없었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작 대회 한 번 나갔던 서윤한이었는데, 그를 제대로 지탱해 주지 못했다. 눈앞에 위기가 닥치자 살아남기 급급했다. 서윤한을 보는 그의 눈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이인태가 한 번만 봐주면 안 되냐고 무릎을 꿇더군요. 실력 좋다고, 재능 있다고, 이렇게 썩기에는 아깝다고. 북한에서는 꽃 피우지 못할 재능이지만, 지금은 가능하지 않느냐고. 제발 도와 달라고 그렇게 말하더군요.]
서윤한은 최지원이 했던 말을 곱씹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이란 걸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이것 역시도 성애적 감정이 아니라, 가족애나 다름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몰랐다.
「내가 취해서 헛것을 보는 거냐?」
허탈한 듯 이인태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그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처절했다. 서윤한은 그에게 무력감을 안겼다.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무릎은 백 번이라도 꿇을 수 있는데,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괴로웠다. 대한민국에 몇 년을 살았는데, 인터넷에 검색하면 이름도 나오는데, 국가대표를 몇 명이나 가르쳤는데, 왜 이렇게 무능할까.
「헛것 아닙니다.」
서윤한이 이인태 앞에 앉으며 소주병을 들었다.
잔에 소주를 따른다. 이인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허약해져 있었고 서윤한은 그대로였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다가 왔다. 처음 예민한 고양이처럼 잔뜩 긴장하던 서윤한은 최지원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놓였다.
그는 서윤한을 해치지 않는다.
이 상황을 극복할 만한 도움을 주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여기는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서윤한이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왜 아무것도 아닌 놈을 도와준답니까.」
그게 지금도 의문이었다.
북에서는 다들 살아남느라 바빴다. 같은 민족이기에 정이 많은 건 똑같을 텐데, 환경이 그 정을 앗아 갔다. 서윤한은 소주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내가 믿었던 조국도 날 버리는데.」
씁쓸함에 입술을 잘근 깨물던 서윤한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왜 여기는 나를 돕습니까.」
이해할 수 없다.
「왜 나 때문에 무릎을 꿇습니까?」
여전히 소주의 쓴맛이 혀에 맴돈다.
서윤한은 고개를 들어 이인태를 바라보았다. 이인태의 얼굴이 여전히 일그러져 있다. 눈물도 맺혀 있지 않으면서 왜 우는 것 같은 얼굴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그것뿐이지 않냐.」
이제 이인태는 눈 앞에 있는 서윤한이 환각 따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취기에 헛것을 보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그의 지독한 죄책감이 만들어 낸 허상이 아니었다.
「내가 허세를 부렸더라.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누가 누굴 책임지냐. 나름 모든 걸 버리고 네 손 계속 붙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야, 무섭더라. 내가 한순간에 범죄자가 돼서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래서 무릎 꿇었다.
「…….」
서윤한은 말없이 이인태를 바라본다.
이인태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담배를 참고 있었다. 이 답답한 속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면 담배라도 입에 물어야 할 것만 같다.
「내게는 과분했어요.」
서윤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 이상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충분했습니다.」
무릎을 꿇는다.
서윤한은 천천히 이인태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이걸로 그에게 받은 것을 모두 돌려줄 수는 없다. 이인태는 서윤한을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서윤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어떤 누가 나를 위해 무릎을 꿇을까.
「윤한아.」
처음으로 이인태의 입에서 이수원의 본명이 터져 나왔다.
「이제 그만 가죠.」
더 했다가는 이상한 소문 나겠습니다.
* * *
이인태는 서윤한의 이야기를 듣고 울었다.
계속 울지 않으려던 그는 결국 감격의 눈물을 쏟고 말았다. 서윤한을 끌어안는 건 덤이었다. 평소라면 질색하며 이인태를 밀쳐냈을 서윤한이었지만, 그날은 그냥 가만있었다.
[잘됐다. 정말…… 정말 잘됐다, 이 새끼야…….]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결국 내 전략이 먹힌 거네?」
이인태는 언제 울었냐는 듯 의기양양해졌다.
그 꼴이 갑자기 보기 싫어진 서윤한이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첩을 주시하고도 제대로 붙잡지 못했다.
물론 그게 원칙이었고 최지원으로서도 실수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사고에 가까웠지만, 일반 사람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그저 무능력한 국정원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거지?」
서윤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신분증이 생겼다. ‘이수원’이라는 가짜 신분은 버렸다. 서윤한이라는 이름은 리성렬이 직접 만들어 준 이름이었다.
사실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살아갈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과거가 있어야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다. 서윤한이라는 이름을 그렇기에 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수원으로 살면 작업도 편한데, 그 양반들이 많이 봐주긴 했네.」
그 말은 사실이다.
서윤한은 자아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서윤한으로 살았던 그 순간이 고통이라 할지라도 과거가 있어야만, 자아가 완성된다. 자아가 없었던 서윤한이었기에 이름은 더없이 소중했다.
「최지원 씨는 내가 탈북한 걸로 결론지었으면 하는 눈치야. 한겨울에 두만강을 건넜고 중국에서 신원 불명의 한국인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설정. 그 이후에는 국정원이 뒤를 봐줬다는 내용.」
「그럼 이름은?」
「수원이라는 이름은 한국 지역명이기도 하니까, 새로운 이름을 갖고 싶다고 둘러대래.」
「근데 왜 또 말이 짧아지냐?」
「예전에도 짧았는데…….」
「여전히 건방진 새끼.」
혀를 차며 이인태가 짧게 생각했다.
이런 스토리를 제대로 만드는 건 역시 방송만 한 게 없다.
「탈북민 소재로 하는 예능은 좀 그렇고.」
괜히 북측에 정보를 주는 꼴이다.
실제로 방송에 나와 유명세를 탔던 탈북민 하나가 중국에서 북한으로 잡혀갔다는 소문도 돌았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북한을 다룬 프로그램은 역시 위험하다.
「그러고 보니 방송 하나 들어왔는데.」
예전에 했던 방송과는 결이 다르다.
이번에는 오락성이 강한 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이 아니라 이것저것 따질 여력이 없다. 단순한 인터뷰보다는 방송이 확실히 낫다. 지금은 간첩 혐의를 벗어야 하니까.
「몸 쓰는 예능인데 괜찮냐?」
사실상 서윤한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 예능은 축구를 하는 예능이었다. 체력이 좋아서 공을 제법 잘 따라갔지만, 축구를 해 본 역사가 없는 서윤한이었다.
“귀여워.”
자기도 모르게 이경민은 입을 틀어막으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 감정은 다들 느끼는 모양이었다. 공을 쫓아가다가 넘어지고 공을 힘차게 차려는데 헛발질하고. 한동안 무거웠던 극을 다시 가볍게 만드는 효과를 주었다.
「근데 윤한 씨는 왜 이름 바꿨어요?」
이미 사전에 정보를 들은 MC가 물었다.
듣기로 작가와 피디들이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1회성 출연인데 화제성까지 끌고 왔다. 세상에, 이 잘생긴 사격 선수가 사실은-
「제가 사실 북한 사람이었거든요.」
탈북민이었다니!
물론 사실은 간첩이었지만.
「이수원이라는 이름은 버리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국위선양을 하고 싶었거든요.」
서윤한은 제법 뻔뻔했다.
사실상 대사를 정해 놓고 치는 수준이었는데,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분위기가 순간 착 가라앉았다.
「서윤한은 코치님이 지어 준 이름입니다.」
응, 아니다.
「높을 윤. 굳셀 한을 씁니다. 굳세게 높은 곳으로 가라는 뜻이래요.」
서윤한이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떻게 한국으로 왔는지, 그 허구의 이야기가 간혹 감정 이입이 되어서 생각보다 더 호소력 있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잘했다. 이제 보니 연기도 잘하겠다? 너 요즘 유수한 닮았다는 소리 있더라.」
「유수한이 누군데?」
「있어. 네가 발톱만큼 닮은 사람. 네가 무슨 유수한이냐? 유수한 엄청 잘생겼던데.」
서윤한이 미간을 좁힌다.
「묘하게 기분 나쁘면서 기분이 좋네.」
애드리브였다.
이인태가 먼저 시작한 애드리브를 유수한이 능숙하게 받아쳤다. 그 애드리브 덕분에 여기저기 작게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국민이 된 기분이 어떠냐?」
방송의 파급력은 컸다.
서윤한의 고백은 대한민국을 울렸다. 반은 거짓이었음에도 절반은 진실이었기에 진실성이 있었다. 이인태는 이제야 한시름 놓았다.
「이제야 조국을 되찾은 기분이야.」
서윤한은 맹목적으로 공화국에 충성했다.
그것 말고는 의미가 없었기에, 공화국에 충성하는 길이, 리성렬에게 충성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리성렬이 죽고 서윤한은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애초에 서윤한은 공화국에 버려진 사람이었다.
「이건 말로 할 수 없는 기분이야.」
이인태가 씩 웃고는 서윤한의 등을 툭 쳤다.
「이제는 네가 보여 줘야지.」
이제야 비로소 서윤한은 이름을 되찾았다.
국가대표 선발 포인트가 걸린 국내 대회. 처음 나갔던 대회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였다. 서윤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국을 위해 쏠게.」
그 말에 이인태가 미간을 팍 찌푸렸다.
「야, 뭔 개소리야?」
서윤한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이인태를 보았다. 이인태는 깊은 한숨을 쉬며 서윤한을 응시했다. 책임감? 그런 거 좋다. 책임감이나 애국심은 실력을 한층 발전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니까.
「너를 위해 쏴.」
하지만.
서윤한에게는 그런 무거움은 필요하지 않다. 아직도 서윤한은 자신을 챙길 줄 모른다. 늘 누구를 위해서 복종하며 살았던 그 세월들이 서윤한을 누르고 있었다.
「네 심장.」
이인태의 시선이 서윤한의 가슴에 닿아 있다.
「뛰고 있는 네 심장을 위해 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