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이 인간부터 잡아 와
지금 서윤한은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언제나 서윤한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삶을 살았다. 가족도 없이 북에서 살았던 서윤한은 곁에 있던 동지들을 떠올렸다.
[버텨라.]
딱 한 마디였다.
이제 고작 열 살 남짓 된 아이들은 산에 버려졌다. 혹독한 추위가 몸을 떨게 했다. 산에 어둠이 찾아오자 함께 찾아오는 건 공포였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 산에 쌓여 녹지 않는 눈을 집어 먹어 갈증을 해소하고 멧돼지나 고라니를 잡아먹는 한이 있어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버텨라.]
그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다.
하나둘 극심한 추위와 두려움에 휩싸인 채 쓰러졌다. 애초에 삶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던 아이들부터 쓰러졌고 어린 나이에 목도한 타인의 죽음은 정신력을 갉아 먹었다.
죽나?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더 나은 삶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집착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너밖에 없나.]
버티라고 하던 그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초주검 직전이던 서윤한은 몸을 일으킬 기운조차 없었다. 지독한 허기짐, 지독한 추위에 얼어붙은 그에게 주어진 건 감자 하나였다.
데구르르.
굴러오는 감자를 움켜쥔다. 그 어떤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궁지에 몰렸던 어린 서윤한이 감자를 허겁지겁 먹는 그 순간.
「일어났냐?」
이인태의 목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서윤한은 멍한 눈으로 이인태를 보았다. 남한에 와서 서윤한은 때때로 과거를 회상하듯 꿈을 꾼다. 그에게 유년기는 지우고 싶은 과거이자 지울 수 없는 기억이었다.
「뭘 미적거려? 일어나. 할 일 많다.」
이인태는 요즘 잠이 부족하다.
서윤한을 만나고 나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이인태는 혼자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쉽게 말해 기러기 아빠였다.
어릴 때 영어를 배우는 게 좋다는 아내의 의견에 고민을 했지만, 결국 미국으로 보내 주었다. 딸의 나이가 13살이 될 때까지만 미국에 있다가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딸이 방학이 되어야만 한국에 올 수 있었고 여의치 않으면 이인태가 시간을 내서 미국에 갔다.
멀리 떨어지면 애달프다고 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딸은 가끔 보는 아빠를 어색해하지 않았다.
「알지? 오늘 방송 나가는 거.」
언제나 숨어 살았던 서윤한이 얼굴을 드러낸다.
서윤한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았다. 오늘 아침은 된장찌개에 계란프라이였다.
「고기는?」
「고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서윤한은 음식에 집착을 보였다.
생각해 보면 그 시작은 이인태였다. 이인태에게 정체를 밝히고 나니, 식욕이 생겼다. 처음 혼자 남한에 왔을 때는 허기를 채우는 정도로 음식을 탐했다.
여유가 생겼나?
그건 아니었다. 지금도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며 살고 있었고 여전히 외줄 타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곁에 다른 이가 생겼다는 거였다. 늘 혼자였던 서윤한이었기에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일이 생소했다.
「그냥 해 본 말이야.」
서윤한이 볼멘소리를 내며 젓가락을 들었다.
말 그대로 그냥 해 본 말이었다. 북에 있을 때는 고기는커녕, 계란조차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렇게 흰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넌 옛날부터 고기를 좋아했냐?」
이인태가 수저를 들며 물었다.
「그럴 리가.」
서윤한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여기 와서 처음 먹어 봤어.」
「진짜로?」
「쌀밥도 처음 먹어 봤으니까.」
「근데 왜 맨날 고기 타령이야? 주는 대로 처먹지, 좀.」
이인태는 크게 밥 한술을 떴다. 입에 욱여넣고 김치를 입에 넣는다. 사실 이인태는 혼자 있을 때면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않았다.
음식은 누군가와 함께 먹어야 더 맛있다. 집에 있을 때는 대충 끼니를 때웠고 보통 일할 때나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요즘은 서윤한 때문에 집에서 밥을 먹는 횟수가 늘었다. 서윤한은 밥 못 먹어서 굶은 귀신이 붙은 것처럼 음식에 집착을 보였다.
「못 먹어 봤으니까.」
서윤한이 계란프라이를 반으로 쪼개며 말했다.
「처음 먹어 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집착하게 되는 거야. 왜 나는 북에서는 이런 음식을 못 먹었나. 여기는 맛있는 음식이 널렸는데, 먹기 싫으면 쓰레기통에 음식을 처박는 일도 빈번한데. 왜 나는 못 먹어 봤나, 억울해서.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남한에 와서 서민 음식이라는 라면을 사 먹었을 때도 충격이었다. 남한에서는 그리 쳐주지 않는 이 값싼 인스턴트 라면이 북에서 먹던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행운이었을까.」
물을 마시며 서윤한이 말했다.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죽었을 테니까.」
* * *
유명세.
늘 숨어 살던 서윤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서윤한은 머리를 정리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오늘 서윤한은 인터뷰가 있었다. 이인태의 뜻대로 그는 잘생긴 외모로 유명해졌다.
아직 무명이나 다름없는 사격 선수였지만, 대회 첫 출전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거기다가 사격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력이 그를 더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뉴스 인터뷰에 이어서 유명 개그맨이 진행하는 토크쇼까지 나갔다. 카메라 앞에서 서윤한은 많은 생각을 했다. 아직도 별나라에 있는 듯했다.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 마치 환상과 희망이 둥둥 떠다니는 별나라 같았다.
「사격을 좀 늦은 나이에 시작하셨는데, 예전부터 사격에 관심이 있었나요?」
짧은 인터뷰.
서윤한에게는 스토리가 필요했다. 이인태와 머리를 맞대서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작위적인 스토리는 위험했다.
언젠가 ‘이수원’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다.
아무리 비밀을 지킨다고 해도 언젠가 진실은 밝혀진다. 그렇기에 그 순간을 대비해야 했다.
「사격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우연히 동네 꼬마가 사격으로 인형을 따 달라고 해서 그거 하다가 코치님 만나게 된 겁니다.」
그러니 사실 그대로를 말한다.
이인태 눈에 발견된 그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다. 실제로 사격 선수가 될 생각이 없었고 모든 것은 우연이었다.
「와. 엄청나네요? 그럼 이제 사격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대회에 출전하고 우승을 하신 거군요?」
방송국에서 좋아할 만한 스토리였다.
잘생긴 얼굴에 재능까지 출중한 청년. 사격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단숨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아무것도 없던 청년에게 관심이 쏟아진다.
「방송은 그만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서윤한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
「왜?」
「부담스러워서.」
「그래. 앞으로 사격에 집중한다고 하고 거절하면 되니까.」
짧은 시간 동안 서윤한은 잠재력을 보여 주었다.
이인태는 다음 플랜을 준비하고 있었다. 언제 들킬지 모르지만, 사격 선수로서 입지를 다지려면 실적이 필요했다.
대외적으로 서윤한은 이인태가 직접 발굴한 인재였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보여 준 것이 없기 때문에 대회 실적이 중요했다.
이인태가 이끌고 있는 ‘주원시청’ 소속 선수가 되려면 어떻게든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 다행히 전국 대회에서 서윤한은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었다.
운 좋게 잘생긴 외모까지 주목받으며 스타성 있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운동만 잘한다고 전부는 아니었다. 때때로 실력에 비해 외모 덕을 보며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스타성이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걸지도 몰랐다.
압도적인 실력을 가졌거나, 출중한 실력에 외적인 매력까지 갖춘 선수. 서윤한은 전자도 될 수 있고 후자도 될 수 있었다.
「지금 넌 포인트 쌓는 게 가장 중요해.」
늦게 시작한 만큼 가야할 길도 아득하게 멀다.
머리로 계획을 세우면서도 이인태는 두려움이 몰려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지금 간첩을 사격 선수로 만들고, 국가대표까지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게 맞는 길인가?
계속 그 질문을 던지고 있었지만, 뚜렷한 답은 없었다. 서윤한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졌다. 어쩌면 사격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유명해지자.」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수원시보다 네가 더 유명해지자.」
사격을 하면서 환하게 웃는 서윤한의 모습에 그를 돕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단순히 간첩을 떠올리면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득했다.
처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총을 겨누었을 때는 당황스러웠고,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지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뭐냐?」
「상금 들어와서.」
서윤한의 손에는 소고기가 들려 있었다. 직접 정육점에서 한우를 사고 함께 먹을 술도 준비했다. 이인태는 복잡한 얼굴로 서윤한을 보고 있었다.
「남한에는 스승의 날이란 게 있다고 해서.」
「그래서?」
「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쪽이 내 스승이기는 하니까.」
간첩이라는 선입견을 지우고 보면 서윤한은 그저 평범한 사람 같았다. 그게 그를 혼란스럽게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간첩을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나라를 위해 신고해야 마땅하다. 서윤한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무슨 이유로 한국에 왔는지 그 어떤 것도 이인태는 모른다.
그렇기에 여기서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도 알면서도 저 해맑은 미소에 모든 걸 주저하게 된다.
「요즘 널 순수 청년이라고 하대?」
서윤한은 말없이 불판에 고기를 턱 올렸다.
방송 출연 이후에 알 수 없는 팬덤이 생겼다. 소속 팀에 꽃다발이나 선물을 두고 가는 팬이 늘었고 알아보는 사람도 늘었다. 이제 겨우 첫 발을 내디딘 사격 선수에게는 꽤나 큰 유명세였다.
「난 가끔 네가 나 죽인다며 총 겨누던 때가 생각나거든.」
「…….」
「내가 아무리 너보다 평탄하게 살았어도 살의는 느끼거든?」
이인태가 술잔을 비우며 한숨을 쉬었다.
「눈이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있는 눈인 거야.」
살아온 세월이 있다.
그 시간 동안 체득한 경험은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이인태는 늘 마음이 복잡했다. 긴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머리가 복잡하다.
「그래서 큰일 났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지? 그 생각을 했단 말이지. 내가.」
서윤한은 말없이 이인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나 너 신고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아무리 너여도 나를 24시간 내내 감시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서윤한은 빈 잔에 소주를 따랐다.
서로 원치 않는 동거를 시작했지만, 이인태가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눈치 보며 살아왔던 서윤한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기민한 촉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왜 난 널 고발하지 못할까.」
「…….」
「이미 한배를 탔어. 널 사격 대회에 내보낸 이상, 내가 네 스승이 된 이상 같은 배에 탄 거나 다름없지 않냐?」
탁.
다시금 소주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베팅했다.」
마음이 복잡해도 결국 이인태는 서윤한의 손을 놓지 못했다.
이따금씩 서윤한은 무표정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얼굴을 할 때가 있었다. 대회에 나가 줄곧 2위를 달리다가 감을 잡으며 고득점을 하던 그 순간. 선두에 올라서던 그 순간. 미묘하게 달라지던 표정과 빛나던 눈빛.
「너에게 베팅했으니까, 잘해 봐.」
진짜 이게 맞나.
「나도 모르겠다, 이젠.」
* * *
국가정보원 직원 최지원.
그는 주로 탈북민을 관리하는 요원으로,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한낱 월급쟁이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대단한 애국심도 없었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귀찮고 피곤한 일은 최대한 기피하던 최지원은 요즘 그 기피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뭐 하자는 거지.」
요즘 최지원은 탈북민이 아닌 간첩의 행적을 쫓고 있었다.
남파 공작원들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쉽게 믿는다. 물론 그렇게 믿도록 유도를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왜 남한에 왔는지, 어떤 지령을 받았는지, 북에서 공작금은 얼마나 받고 있는지 등 정보를 얻어 내는 것이 중점이었다.
「포섭해야 할 상대가 사격 코치인가?」
최지원이 서윤한을 쫓기 시작한 건 이제 1년 남짓이었다.
처음에는 서윤한은 ‘잠자는 공작원’처럼 보였다. 별다른 활동이 없었고 그저 먹고살기 위해 간간이 막노동을 하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공작금을 받는 듯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재개발 지역이었기에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갑자기 왜 방송에 나와?」
서윤한에 대해 알면 알수록 미궁에 빠졌다.
남파 공작원이 존재를 드러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예 전향을 한 거라면 모를까. 게다가 아직도 신분이 간첩인 상태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최지원은 끝없이 물음표가 머리에 가득 찼다.
「설마 여기에 북에 보내는 메시지가 있나?」
서윤한이 나온 방송을 끝없이 돌려 보았다.
그러면서도 서윤한에게 접근하는 다른 누군가가 없는지도 면밀히 살펴보았다. 우습게도 서윤한은 사격 선수로서 충실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활동이었다.
「어떡할까요?」
최지원은 결국 상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강승완 대북실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정리한 서류와 사진을 살펴보고 있었다. 간첩인데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도 나오는 유명인이라니, 확실히 뭔가 이상하기는 했다.
「어떡하긴.」
확실히 행보가 여타 간첩과는 다르다.
북에서 엘리트였던 집단은 빠르게 한국에 적응한다. 정보력도 있고 배운 것도 있기 때문에 전향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서윤한은 아무것도 없는 남자였다. 보아하니, 북에서도 따로 공작금도 오지 않는 모양이다.
「얘 자체는 뭐가 없어 보이기는 한데…….」
조심스럽다.
방송까지 탔던 인물에다가 사격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니, 정체가 밝혀졌을 때 여파가 심각할 것이었다.
「근데 넌 뭐 했냐?」
강승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예?」
「얘가 방송까지 나올 동안 뭐 했냐고. 간첩이 사격 선수를 하는데 그걸 가만두고 봤냐? 네가 신입이야? 이제 5년 차 됐으면 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냐?」
「아, 그게 우선 지켜보는 것이 원칙이라서…….」
「원칙이고 나발이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일이 커지면 어떡하려고? 전국 대회 우승한 사격 선수가, 방송에도 나온 사격 선수가 간첩이란다. 이 소문 퍼지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거 같냐? 나 목 날아간다. 어?」
할 말이 없다.
어느 날 이인태라는 인물이 서윤한에게 접촉했다. 별다른 인맥이 없던 서윤한이었기에, 최지원은 이인태의 존재에 집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의 실마리를 잡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린 것이다.
「일단.」
강승완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이 인간부터 잡아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