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12화 (112/175)

112. 사람들은 잘생긴 거 좋아해

영화 <내 심장을 향해 쏴라>가 개봉되었다.

영화가 개봉되면 여러 가지 스케줄이 밀려온다. 첫 번째는 예능이었다. 유수한은 예능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계속 피할 수는 없었다.

뭐, 다행히 고정 예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노예주점’에서 몇 번 영화를 언급했고 오 피디가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 주었다.

예능이 아니더라도 처음으로 라디오 게스트로 참여했고 그렇게 영화 흥행을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오늘은 강남 쭉 돌고 수원 찍고 돌아와서 목동에서 마무리예요.”

무대 인사 일정이었다.

주로 서울, 경기도권 위주로 돌며 버스를 타고 움직인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 진행하기도 했다.

“정신없겠네.”

처음 하는 무대 인사.

지금까지 계속 드라마만 해 왔기 때문에 아직은 생소했다. 무대 인사는 시간이 중요했다. 타이트한 일정이기 때문에 강남권에서 시작하면 그 부근 영화관을 최소 두 곳은 들른다. 경기도권까지 도는 일정이기 때문에 조금만 늦어져도 일에 차질을 빚었다.

[빛유/자유] 압구정 무대 인사 5열 정도면 잘 보이겠죠? +11

[빛유/자유] 수원 무대 인사 갑니다! 전 3열이에요! +14

[빛유/자유] 압구정, 청담 연달아 갈 생각인데 시간 괜찮겠죠 ㄷㄷㄷ +18

자연스럽게 팬들도 바빠졌다.

무대 인사는 보통 주말에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회사 다니는 팬도 충분히 무대 인사를 갈 만한 시간이 생겼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무대 인사를 진행하면 얼굴을 본 후에 바로 상영관을 빠져나와 그다음 영화관으로 움직인다. 여의치 않아서 끝나고 진행하는 무대 인사라면 영화를 보며 기다리기도 했다.

[빛유/공지] <내 심장을 향해 쏴라> 무대 인사 주의점!

공지가 올라왔다.

「무대 인사에서도 <개인 선물> 금지입니다. 단! 편지는 괜찮습니다! 그 외에는 모두 금지! 주의해주세요.」

무대 인사를 진행하게 되면 팬들은 여러 가지 욕심이 생긴다.

아이돌과 다르게 배우는 얼굴을 볼 기회가 적었다. 아이돌은 공방을 뛰면 되지만, 배우는 그런 것도 없으니 무대 인사를 하게 되면 다들 정신이 없어진다. 그러다 보니, 그 짧은 시간에 선물을 전달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한다.

‘빛나는 유수한’ 팬사이트가 생기면서 가장 먼저 세웠던 규칙은 ‘선물 금지’였다.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함이었고 배우에게 따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

“어? 차 있었어요?”

“아니요? 제 차 아니에요. 아빠 차 빌렸어요.”

“아, 진짜요?”

“오늘을 위해 빌렸죠. 수원까지 가야 하니까.”

시간이 많으면 무대 인사 일정을 모두 따라 가겠지만, 이제는 학생이 아닌 직장인이었다. 금요일은 일하느라 바쁘고 일요일은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쉬느라 바쁘다. 결국 남은 시간은 토요일이었다.

“커피 한잔 빨고 시작할까요?”

이경민은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으며 물었다.

“네, 좋죠.”

“가는 길에 드라이브 스루 있어요.”

“오케요.”

오늘도 팬사이트 운영진과 함께였다. 요즘은 친구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것 같다. 물론 이렇다 할 일이 없으면 만나지 않지만, 개인 메신저로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카페인 들어오니까 좀 살겠다.”

다들 직장인이었다.

한창 회사에서 눈치 보고 사는 사회 초년생.

“저 어제 야근했거든요. 오늘 아침에 눈뜨기 진짜 힘들더라고요.”

“헐, 금요일인데 야근했어요?”

“네. 요즘 좀 일이 많아서…….”

다들 잠시 커피를 마신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은 이경민은 피곤하면서도 들뜬 얼굴이었다. 운영진의 입장이 아니라 개인 덕질을 위해 움직이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진짜 영화가 최고다.”

이경민이 운전을 하면서 말했다.

“무대 인사 최고.”

“인정, 인정. 이렇게 얼굴 볼 기회 흔치 않아요.”

마음 같아서는 무대 인사 전부 돌고 싶지만, 참는다. 덕질이 중요한 만큼 현생도 중요했다. 오늘 일정은 압구정에서 시작해서 수원을 간 후에 바로 목동에 온다.

목동에서는 영화가 끝난 후에 무대 인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겸사겸사 영화도 함께 볼 생각이었다.

촤라라라라라라락!

이경민은 오랜만에 큰 카메라를 들고 왔다. 유수한을 카메라에 담는 손길에 거침이 없었다. 유수한은 군데군데 보이는 팬들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수한입니다.”

그 목소리에 객석에서 까마귀 소리가 들려왔다. 유수한은 잠시 마이크를 든 채로 말을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네, 이렇게 영화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하고요.”

유수한은 편지를 들고 흔드는 팬들에게 다가갔다. 하나하나, 편지를 받던 유수한은 플래카드를 크게 들고 있는 팬을 보고 작게 미소를 지었다.

“영화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수한은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어제 무대 인사 일정을 돌던 유수한은 팬들이 찾아오는 것이 신기했다. 분명 은평구에 있었는데, 이동해서 홍대에 오니 그 영화관에 또 팬이 와 있다. 그리고 다음 장소에도 또 와 있었다. 오직 유수한을 보기 위해서 길을 돌고 도는 것이다.

“편지 잘 읽을게요. 고마워요.”

유수한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영화관을 빠져 나가는 그 길에도 팬들이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어차피 다른 영화관에서도 또 볼 얼굴이라 인사를 가볍게 주고받았다.

“그럼 이따 봐요.”

유수한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 * *

「진짜 너 여기서 살 생각이냐?」

큰 스크린.

이경민은 두 번이나 봤던 영화를 또 흥미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오늘 무대 인사 일정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차를 끌고 왔지만, 적당히 따라다닐 생각이었다. 너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따라다니면 극성팬 같으니까 한두 개 정도는 건너뛰어 준다.

덕분에 지금 영화를 볼 시간이 생겼다. 마지막 무대 일정은 목동이었고 영화가 끝난 후에 무대 인사를 진행하니까.

「야, 너 집 있잖아. 왜 불편하게 이래?」

이인태는 두려운 눈으로 서윤한을 보았다.

아직도 그가 간첩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눈빛이나 하는 행동을 보아 거짓은 아닌 듯했다.

「못 믿겠으니까.」

「뭘?」

「날 간첩이라고 신고할 것 같아서.」

뜨끔.

사실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계속 핸드폰을 만지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으니까. 신고할 생각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신고할 생각이었는데.

「그래서 같이 살자고?」

그 물음에 서윤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인태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깊은 한숨을 쉰다. 어쩌다가 똥을 밟았나. 그런 생각을 했지만,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먼저 서윤한에게 접근한 건 이인태였으니까.

「자냐?」

어두운 밤.

두 사람은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다. 서윤한은 꾸역꾸역 이인태의 방에 들어왔다. 다른 방에서 자라고 해도 그 말을 듣지 않는 서윤한이었다.

「네가 재능을 타고난 건 맞아. 그 사실은 확실해.」

침대에 누운 이인태는 생각이 많았다.

아무리 간첩이고 총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재능이 남달랐다. 남한에 태어나서 총을 잡았다면 사격을 시작했다면 올림픽에도 출전해서 메달을 따 올 수 있는 실력이었다.

「사실 간첩은 사격 선수 못 해. 감빵에나 가겠지.」

이인태는 바닥에 누운 서윤한을 보았다.

모로 누운 서윤한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축 처진 사람처럼 보였다. 서윤한은 젊다.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였다. 북이 아니라 남한에 태어났다면 이렇게 외롭게 살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래도 내가 네 코치로서 방법을 찾아본다면…….」

비현실적이다.

여전히 간첩이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 이 집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눈부신 사격 재능에 끌려서 데리고 왔던 청년이 북한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계속 생각한다.

위험하다고. 더 가까이 하지 말고 거리를 두며 달아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쉽지 않았다. 계속 머리에 울린다.

[나 사격 선수 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하던 서윤한이 눈에 선했다. 총을 든 손에는 흔들림이 없으면서도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눈빛에 간절함이 엿보였다. 사격 선수가 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

「선수로서 성적을 내는 길밖에 없어.」

이게 맞나?

「네 정체가 들통나기 전에 그 누구도 쉽게 버릴 수 없을 만큼 업적을 쌓아. 전국 대회든 세계 대회든 가리지 말고 성적을 내라.」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밖에는 없다.」

이인태는 서윤한과의 위태로운 동거를 시작한다.

더 깊이 연관되면 이인태 역시도 위험했다. 서윤한은 간첩이었고, 그의 정체가 들통나면 이인태 역시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서윤한은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서 실력이 늘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의 자세를 살펴보던 서윤한은 딱딱하게 총을 겨누다가 자세를 살짝 바꾸었다.

슥.

무심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아직 혈기왕성한 나이였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였고 멋있어 보이고 싶을 나이기도 했다.

아무리 북한 사람이라고 해도,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마음은 같았다.

「영상 보여 준 거 기억나지?」

오늘 서윤한은 처음으로 사격 대회에 출전한다. 여러모로 존재가 드러나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전국 대회는 그리 사람의 이목을 끌지 않는다. 들키는 건 시간문제라고 해도,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기에 별다른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너 잘생겼더라.」

이인태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카메라가 다가오면 웃어.」

진지했다.

이인태는 진지한 얼굴로 서윤한의 얼굴을 움켜쥐며 말했다.

「입 찢어져라 웃으라고.」

손으로 서윤한의 입꼬리를 쫙쫙 끌어 올린다. 이인태의 말대로 서윤한은 잘생겼다. 이미 서윤한은 유명인사가 되었다. 사격 훈련을 마친 후에 밥을 먹으러 가면 따라오는 여자들이 꽤 많았다. 요즘 이인태는 귀찮다. 이인태가 관리하는 실업팀 여자 선수들이 죄다 서윤한에 대해서 물어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순간 깨달았다. 또 다른 돌파구가 있음을.

「사람들은 잘생긴 거 좋아해. 알고 있냐?」

「…….」

「잘생겼는데 실력까지 좋다? 그럼 사람 미쳐.」

서윤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 싫어도 웃어.」

서윤한은 그 말을 귀담아들었다.

이인태에게 정체를 밝힌 이상, 그의 말을 신뢰하고 따라야 했다. 가끔 마음에 안 드는 구석도 있지만, 이인태는 좋은 사람이었다.

선수들 사이 서윤한이 존재한다. 선수 소개가 시작되자, 카메라가 따라붙는다. 서윤한은 긴장한 얼굴로 정면을 보다가 이인태의 조언을 떠올렸다.

「이수원 선수. 이번이 첫 출전인데요. 어떤 기량을 보여 줄지 기대됩니다.」

서윤한은 웃었다.

이인태의 말대로 카메라를 보며 환히 웃었다. 살면서 이렇게 웃을 일이 없었다. 억지로 웃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무겁다가도 이 비현실적인 순간에 웃음이 나왔다.

이런 순간이 찾아올지 몰랐다.

서윤한은 선수가 되고 싶었다. 사격 선수가 되어 의미 있는 순간을 인생에 남기고 싶었다. 간첩은 사격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10.7! 이수원 선수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옵니다.」

「주원시청 이인태 감독이 직접 발굴한 선수라고 하는데, 실력만큼이나 얼굴이 참 잘생겼어요.」

이인태는 경기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서윤한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과격을 향해 총구를 조준하는 서윤한은 그 누구보다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축하한다.」

기어코 서윤한은 전국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서윤한은 말없이 목에 걸린 메달을 만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상을 받아 본 적이 없던 그였기에,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일상은 바뀐 듯 바뀌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우승 기념으로 맥주 한 캔을 마셨고 좋아하는 소고기도 먹었다. 메달이 책상에 놓였고 서윤한은 가끔 말없이 금메달을 바라보고는 했다.

「뭐야, 이게? 뭔 사람이 이렇게 많아?」

잠시 잊고 있던 이인태의 전략이 먹혔다.

밝게 웃던 서윤한의 얼굴은 그 누구도 관심 없던 국내 대회를 수면 위로 오르게 했다. 심지어 서윤한만 따로 편집한 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 시작하며 유명세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뭐? 어디서? 어디?」

심지어 방송 출연 요청이 쇄도한다.

서윤한이 잘생긴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갑자기 방송 섭외까지 들어오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 사격장 밖에는 서윤한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심지어 기자까지 따라 붙었다.

「이게 호재일까……?」

이인태가 불안한 듯 입술을 뜯었다.

일부러 서윤한이 유명해지길 기다리긴 했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빨랐다. 이제 겨우 국내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했을 뿐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어떡할래?」

이인태가 물었다.

「방송, 나갈래?」

선택을 서윤한에게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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