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다시 노예가 될 시간입니다
[연예뉴스] ‘노예식당’ 시즌2는 유럽으로 떠난다
스케줄 조율에 난항을 겪었던 예능 ‘노예식당’의 스케줄이 잡혔다. 비행시간까지 포함하여 열흘간 진행되는 스케줄이었다.
유수한은 ‘노예식당’ 촬영 전에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었다. ‘핫가이 헬스’ 메인 모델로 촬영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몸 만드는 데 진심이었다.
“촬영 끝나고 뭐 먹고 싶어요?”
한동안 계속 닭가슴살과 아메리카노만 마신 유수한을 보며 보라가 물었다.
“얼큰한 뼈해장국.”
“오.”
“여러 명이니까 감자탕이 낫겠다.”
진심이었다.
지금 유수한은 그 어느 때보다 우거지가 잔뜩 들어간 감자탕이 먹고 싶었다. 자극적인 얼큰한 국물을 한 모금 맛보고 바로 부드러운 살코기를 뜯어 입에 넣고 싶다. 촬영이 끝나고 맛있는 걸 먹을 생각에 벌써 기분이 좋았다.
“옷이나 입고 나오세요.”
이번 화보 촬영은 표지 모델이었다.
A형, B형으로 나뉘어서 촬영을 하고 먼저 A형부터 진행했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 있는데요?”
아직 딱히 작업을 하지 않았지만, 유수한의 복근은 선명했다. A형 의상은 단순한 청바지였다. 청바지를 입고 상의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다. 보통 몸 자랑 하는 촬영은 청바지가 국룰이었다.
오늘 촬영에서 보라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거의 벗고 하는 촬영이나 다름없었기에 속옷 브랜드가 잘 보이는지, 청바지가 유수한에게 잘 어울리는지 정도만 확인했다.
“좀 부끄럽다.”
대놓고 벗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에는 욕심이 생겨서 하겠다고 덜컥 말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기분이 묘했다.
“이거 찍으면 진짜 여자들이 좋아하겠다.”
보라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요즘 점점 몸 좋은 남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마른 체구의 배우도 많았는데, 이제는 하나둘 벌크업을 하며 근육을 만들고 있었다.
특히 상대 여배우와 함께 있을 때, 덩치 차이가 없으면 케미가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키 차이는 물론 덩치 차이도 중요해졌다.
“무슨, 지금도 충분한데.”
괜히 긴장을 털어 보려 유수한이 너스레를 떨었다.
“나 요즘 충분히 인기 있지 않냐?”
“맞긴 한데, 농담이죠?”
“응, 농담.”
유수한의 팬덤은 탄탄하다.
아이돌급 팬덤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기가 좋은 배우 중에 하나였다. 인기는 많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그 인기에 취하지는 않았다.
촬영 전에 몸에도 화장을 한다. 유수한은 근육에 붓질하는 걸 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이미 경험이 있었다. 예전에 드라마 ‘시간’ 포스터 촬영 때도 복근에 화장을 했었다.
가볍게 푸시업으로 근육을 펌핑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서서 미소를 지으며 촬영을 했고, 살짝살짝 포즈를 바꾸어 가며 진행했다.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사선으로 선다. 카메라를 응시하며 촬영을 이어 나갔다. 그리 까다로운 촬영은 아니었다.
뭔가 대단한 콘셉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잘 키운 몸을 보여 주면 되는 촬영이라, 다른 화보 촬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두 번째 촬영은 티셔츠를 입고 진행되었다.
“네, 좋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촬영했고 서서히 복근을 드러내기 위해, 티셔츠를 들어 올렸다.
“아, 좋아요! 익살스럽게!”
그 주문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다 아예 티셔츠를 입에 물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화보 촬영도 하면 할수록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서 촬영하는 것 자체가 어색했는데, 지금은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익숙해졌다.
“어때요?”
결과물을 확인한다.
B형은 티셔츠를 물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컷이 선택되었고 A형은 평범하게 청바지 뒷주머니에 손은 넣은 채 찍은 사진이 정해졌다.
“다 좋은데요?”
나머지 B컷도 괜찮았다.
사실 딱 하나를 고르기 아쉬울 정도였다. 따로 이야기를 해 보니, 표지로 선택할 컷 외에 B컷도 잡지 내에 함께 실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끝났다. 밥 먹으러 가자.”
촬영을 마치고 유수한은 바로 팀원들과 함께 근처 감자탕 집으로 이동했다.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식당에 가기 전에 편의점에서 제로콜라를 사 온 유수한은 먹을 준비를 마쳤다.
“민수야.”
젓가락을 드는 순간, 유수한의 눈에는 김민수의 뱃살이 보였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요즘 유독 김민수가 살이 찌는 것 같다. 매일 스케줄 끝나고 야식을 먹는 습관도 있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인 듯했다. 거기다가 담배까지 피우니 몸 상태가 걱정이 되었다.
“너 형이랑 같이 운동 시작할래?”
“네? 제가요? 왜요?”
“왜긴, 운동하면 좋잖아.”
“아니요. 전 괜찮아요.”
“너 나중에 장가도 가야 하고…….”
그 말에도 김민수는 완강했다.
살이 찐 건 사실이다. 일 끝나고 치킨이니 피자니 시켜서 맥주와 함께 먹고 운동도 하지 않으니 살이 찌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운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운동까지 하면 더 몸이 힘들 것이다.
“형이나 열심히 하세요. 저는 장가 못 가도 운동 안 할래요.”
“아니. 너 그러다 죽어.”
“형은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하세요?”
“아니야. 진짜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경험자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몸을 막 굴리다가 죽은 입장에서 하는 소리였다. 물론 거리에 나앉게 되어 아사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래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김대한일 때 술 담배는 물론이고 몸에 좋지 않은 것만 골라 했다. 운동도 하지 않았으니, 병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막상 유수한이 되어 운동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좋았다. 몸이 탄탄해지는 건 물론 체력이 생기니,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한다. 정신력에도 체력이 붙는 느낌이었다.
“잘 생각해 봐. 나랑 운동하면 돈도 안 든다? 매일 하라는 것도 아니고 시간 날 때, 주 3회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치익.
유수한은 제로콜라를 땄다. 컵에 따라 마시며 청량한 단맛을 느낀다.
“맞아요. 하면 좋죠. 내가 봐도 요즘 매니저님 몸 심각함.”
보라는 마른 체구였다.
하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협찬을 받아 오고 가끔은 직접 옷도 만들기 때문에 발품 파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살이 찔 겨를이 없다. 물론 타고난 체형이 마른 체구였지만, 그만큼 걷고 뛰는 날이 많아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보라 씨까지? 너무하네.”
김민수가 볼멘소리를 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그 순간, 분위기가 차분해진다. 음식 앞에서는 말이 필요 없었다. 감자탕이 팔팔 끓고 유수한은 가장 먼저 보라를 챙겼다. 그다음 민수를 챙겨 주고 마지막에 자신의 몫을 앞접시로 덜어 낸다.
“잘 먹겠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먹는 음식은 꿀맛이었다. 먹고 싶었던 걸 참고 또 참은 후에 먹는 음식이라 더더욱 그랬다. 살코기를 발라 소스에 찍어 입에 넣는다. 그 순간, 고생했던 모든 것들이 사르륵 녹아내렸다.
* * *
[빛유/자유] 핫가이 헬스 선착순으로 브로마이드 준대요! +154
열흘 후.
팬사이트 ‘빛나는 유수한’이 들썩거렸다. ‘핫가이 헬스’ 잡지가 발간되었다. 심지어 이벤트로 브로마이드를 걸고 있었다. 당연히 브로마이드를 쟁취하기 위한 움직임이 생겼다.
[빛유/자유] 학학학, 선착순 성공한 결과물 구경 ㄱㄱ +245
브로마이드는 A형, B형 표지 랜덤이었다.
운 좋게 A형, B형 모두 성공한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같은 종류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브로마이드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었다.
대부분이 선착순에 들지 못해 브로마이드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빛유/자유] B형 브로마이드 두 갠데, A형과 교환할 사람 있음? +45
다른 브로마이드와는 현저히 다른 반응이었다. 다른 화보는 옷을 꼭꼭 챙겨 입었지만, 이번 화보 같은 경우는 상의를 벗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예전과 다른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주었다.
[빛유/자유]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벗은거임? (ง˙∇˙)ว +16
[빛유/자유] 와, 이번에 화보 진짜... 최고... +6
[빛유/자유] 이번 잡지 너무 좋은데 숨어서 보고 있음... 야한 잡지 산 기분... +19
반응은 당연히 좋다.
이번에 유수한을 표지 모델로 세운 ‘핫가이 헬스’는 불티나게 팔리다 못해 품귀 현상을 보였다. 단순히 다른 잡지를 사러 온 사람들마저 표지를 보는 순간 사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HOT] <핫가이 헬스> 7월호 모델 유수한(feat.빨래판) +214
커뮤니티도 들썩거렸다.
유수한 팬들이야 미리 정보를 알고 예약 구매를 진행했지만, 일반인들은 발간이 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유수한은 탄탄한 팬덤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서서히 머글 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복귀 후 계속 성공을 거둔 데다가, 예능 ‘노예식당’ 덕분에 긍정적인 이미지가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나도 모르게 샀어 사실은 문제집 사러 간건데, 어느새 내가 이걸 들고 있더라
└ 22222 보이면 사게 됨...
└└ 3333333
└└└ 좋겠다! 나 뒤늦게 사려고 했는데 없대 ㅠ 품절... ㅠㅠㅠㅠ
- 난 대놓고 드러내는 거 보다 은근히 드러내는게 좋더라 ㅋ 티셔츠 입에 문 거 돌앗
└ 222 맛잘알...
└└ 3333 격하게 ㅇㅈㅇㅈㅇㅈ
└└└ 44444 뭔가 개구져서 좋아 ㅠ
└└└└ 555 맞아 ㅋㅋㅋㅋ 대놓고 벗은 거 보다 은근한게 더 좋더라 ㅇㅇ
- 이렇게 좋은 건 좀 공유하자; 나 몰랐잖아;; 지금 품절이라매;; 대체 어디서 사냐고
└ 22222
└└ 333 진심 배신감 느낌
저 빨래판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알려주실 분?
└ 22222 진심 탐난다
└└ 333 저도 갖고 싶은데 구입처 어디임?
└└└ 444444 딱 하나만 갖고 싶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ㄱㅇㄱ
지금 유수한은 공항이었다.
오늘은 ‘노예식당’ 시즌2 촬영 날이었다. 매니저를 두고 오라는 지시를 들었기에, 유수한은 직접 운전을 해 공항에 도착했다.
분명 짧은 휴식기였는데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화보 촬영을 한 후에는 짧게 휴식을 취했지만, 완벽한 휴식기는 아닌 느낌이었다. 계속 자잘한 일이 생긴다.
“수한 씨, 오랜만입니다.”
핸드폰을 보며 공항으로 들어가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오 피디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벌써 시작이다.
오 피디 뒤로 스태프가 보였고 카메라가 나타나 유수한을 찍고 있었다. 유수한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했다.
“자.”
오 피디가 웃으며 유수한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이제 다시 노예가 될 시간입니다.”
슥.
손을 내민다.
“핸드폰 압수.”
“네?”
“가방도 압수.”
“……네?”
“지갑도 압수입니다.”
유수한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즌1과 다르게 이번에는 ‘노예식당’을 촬영하러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말은 여전히 ‘노예식당’이지만 다른 포맷으로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오 피디의 행동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 어…… 자, 자, 잠깐만요!”
오 피디가 미적거리는 유수한을 보며 손짓하자, 작가와 조연출들이 몰려왔다. 유수한이 들고 있던 캐리어를 가장 먼저 빼앗아 가고 그다음은 메고 있는 배낭이었다. 유수한은 속수무책으로 주머니까지 털렸고 마지막은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었다.
“아.”
순식간에 모든 걸 털린 유수한은 입을 벌린 채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사람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일이 진행되면 사고 회로가 정지돼 버린다.
“모자도 압수입니다.”
노예에게는 모자도 사치였다.